오랑우탄과 뱀-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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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가장 오래된 기억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거예요. 가지들을 잡아도 손바닥만 할퀴고 미끄러지죠. 그러다가 엄마가 와서 절 낚아채요. 그러니까, 절 길러줬던 암컷 원숭이 말이에요. 엄마는 힘겹게 절 다른 나무에 안착시키고 드러눕죠. 제 뒷바라지 하느라 엄청 힘들었을 거예요. 다른 새끼 원숭이들은 그 나이 때 다들 나무 타는 건 기본으로 하는데.

그래서 다른 원숭이들한테 따돌림 당하고 지독하게 괴롭힘 당했어요. 제 몸 구석구석에 그 자식들이 낸 이빨자국이 수도 없이 나있어요. 짐승들이라 다들 괴팍하기 짝이 없는데, 그 사이에서 인간 어린애가 살아남은 게 기적이었죠. 열 살쯤 된 후엔 몽둥이 쓰는 법을 터득해서 괴롭힘은 안 당했어요. 그래도 다들 저보다 세니까 사리면서 지냈죠.

그러다가 사람들한테 발견됐어요. 재단 사람들이요. 전투 부대는 아니었고 그냥 연구원들이었는데, 그쪽에서 뭐 연구 중이었던가 했어요. 그 사람들은 그 지역 거주지에서 3년간 절 보살펴줬죠. 친절하게 대해줬어요. 전 야생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온갖 난리를 쳤었는데.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니에요. 그냥,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웬지 연구 대상으로 취급당한 기분이 들어서요. 길러준 건 고맙지만, 그렇게 정은 안 들었어요. 그쪽에서 정을 주려고 했던 것 같지도 않고.

언젠가 저한테 타잔 애니메이션을 보여줬는데, 기억하기론 얼굴들이 꽤나 기대하는 눈치였어요. 뭔가 긍정적인 반응을 기다리는 듯한. 긍정적인 반응. 전혀 아니었죠. 전혀 아니었어요. 오히려 참담한 기분이 들었죠. 원숭이뿐만 아니라 온갖 동물들하고 친하게 지내는, 영웅적인 타잔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나만 별종인 외톨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외톨이.

그때쯤 전 굉장히 혼동을 하고 있었거든요. 여태까지 저 자신을 원숭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저랑 똑같은 사람들이 나타나 오래도록 지내다보니까 헷갈렸어요. 혼동이 시작되고 날이 갈수록 외로움이 커져갔죠. 그러다가 16살 되는 해에 재단 산하 훈련기관으로 보내졌어요.

원숭이 사이에서는 나무를 되게 못타는 거였는데, 인간 사이에서는 제가 가장 잘하더라구요. 그러니까, 나무타기가 아니라 몸놀림이요. 침투 부문에서 항상 1등을 했어요. 하지만 전투에선 항상 꼴찌였죠. 원숭이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싸움이 무서웠어요. 맨날 그러니까 거기서도 쫓겨날 위기에 처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도와주더라구요. 그럴 줄 몰랐어요. 왜냐면, 원숭이 사회에서는, 열등해서 도움 못되면 그냥 나가죽던가 취급을 받았거든요. 하지만 인간들은, 친구들은 각자 장점을 파악하고, 거기에 칭찬을 해주고, 함께 나가려고 하는 습성이 있었어요. 뭐, 사실 다 그런 게 아닌 건 저도 알아요. 인간만의 사악함, 비열함, 이기심을 저도 보긴 했죠. 그래도 장점들이 훨씬 더 큰 것 같아요. 친구들에게 위로받은 후에 전 제가 인간이라고 확신했죠. 확신이 아니라, 인간이길 강렬히 원했어요. 그리고 전 정말 인간이었고, 나중에 완전히 깨달았을 때 큰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어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훈련도 수석으로 마쳤죠. 부대 배치될 때 애들과 헤어져서 서운했어요. 무슨 오류 때문에 여기저기 뺑뺑이 돌고서야 겨우 배치되고. 아, 여기 온 게 싫다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행운이죠. 처음엔 많이 무서웠는데 적응되고 나니까 다들 좋으신 분들이더라구요. 으하하, 아부가 아니라, 하하하하하!

그러니까, 그래요. 그냥. 인간이란 대단한 동물 같다고 생각해요. 한때 원숭이였던 사람으로서 정말 절실히 느껴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데에 있어서 그 특유의 아름다움이 꽃피죠. 우정, 연대, 충성심, 희생 등등 그 수많은 경이로운 감정들. 다른 짐승들도 그런 걸 가지고 있지만, 인간이 가진 건 좀 더 고급스럽죠. 인간은 그 본성을 향유할 줄 알아요. 가꿀 줄 알아요.

인간의 의지는 대단하죠. 본능을 억누르고 더 큰 이상을 위해 살아가요. 인간은 멸망하지 않을 거예요. 적어도 외부의 요인에 의해서는요. 모든 걸 희생하고 인류를 위해 바쁘게 뛰는 우리들과 동료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러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선임분들도 굉장한 분들이세요. 팀 안에서의 연대 하나로 개인의 능력들이 몇 배는 올라가는 느낌이에요.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가족 같은 느낌. 내가 뭐라 그러는지 모르겠네요. 그냥 횡설수설하는 거 같은데. 평소에 안 쓰던 어려운 말이나 써대고. 하하.

그러니까요, 결론이요? 그, 그게, 제가 처음에 무슨 이야기를 했죠? 어쩌다 이렇게 흘러왔지. 그냥 좋다구요. 이렇게 같이 있으면 위험한 상황에서도 항상 마음이 놓일 것 같아요. 선임분들과 최대한 오래 지내고 싶어요. 원숭이 때는 친구 하나 없었고, 훈련소 친구들은 이제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이제 솔직히, 부담 드리고 싶지는 않지만, 여기가 제 마지막 정착지인 것 같아요. 진정한 가족이라고 해야 하나요. 으하, 오그라든다.

어쨌든 그러면 행복할 거예요.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고 활동하면서, 동족인 인류를 지키면서. 그렇게 살다가갔으면 좋겠어요. 네? 아 당연하죠. 돈 왕창 벌어서 은퇴 생활을 즐기다 죽어야죠. 그땐 친구들도 찾고, 같은 부대원들하고 자주 만나서 술도 마시고. 그러고 싶어요. 사실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는 끈끈한 관계가 자랑인 곳에 온 것만으로도 행복한 걸요. 예? 네, 하하하하하. 명령 받들고 선임분들과 함께 벽에 똥칠하고 늙어빠질 때까지 현장에서 뛰겠슴다! 충성!
 
 
 
계속해서: 오랑우탄과 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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