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난신과 상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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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력난신과 상덕치인

한반도 술법사 총서 제2권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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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력난신, 상덕치인의 정의:

한반도 술법사상 가장 문헌이 풍부한 조선시대 문헌에서 자주 나타나는 표현이 "괴, 력, 난, 신"이다. 본래 이 말은 『논어』 「술이편」에 나오는 것으로서, “공자님은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이는 유교의 현실지향적, 정치철학적 면을 보여주는 단면인데, 대개 “군자불어 괴력난신 술이부작(君子不語 怪力亂神 述而不作)”1 같은 맥락에서 사용되곤 했다. 괴력난신에 해당하는 것은 애초에 존재치 않으면 좋고, 설사 존재한다 하더라도 음지에서 조용히 처리할 뿐, 그것에 관하여 공연히 말하거나 쓰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초상현상에 대한 유교적 제세안민의 태도였다.

조선시대의 초상기관 종사자들은 이 괴력난신이라는 말을 분해하여, 자신들이 처리해야 하는 이물 또는 흉물, 요물 등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사용했다. 『주자집주』에 보면 괴력난신의 반댓말은 상덕치인(常德治人)이라고 한다. 그 뜻은 다음과 같다.

  • 상(常, Normal)은 기괴하지 않고 평상적인 것이다. 사람의 생산적 활동은 그 평상적 활동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 평상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덕(德, Virtue)은 도덕으로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다. 이 때 도덕은 끊임없는 내면적 성찰을 통해 꾸준히 쌓아가는 도덕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 치(治, Order)는 질서정연한 다스림이다. 질서가 무너지면 백성이 환란에 빠짐을 역사는 언제나 증거했다.
  • 인(人, Humanism)은 말 그대로 사람이다. 유학의 모든 교리의 최종 목적은 세상을 구하고 사람을 보살피는 것(제세안민)으로 귀결한다.

『이금록』 중 발췌

괴력난신의 정의는 이 상덕치인을 뒤집은 것과 같다.

  • 괴(怪, Paranormal)는 평상적이지 않고 기괴한 것이다. 기괴함은 사람이 생산을 계속할 수 없게 만들고 고통에 빠뜨림으로써 사람을 해하게 된다.
  • 력(力, Power)는 도덕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력이란 사람 스스로의 내면적 성찰과 수양을 통해 얻은 덕과 달리, 사람 외부에서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정신적 그릇에 넘치는 힘이 주어졌을 때, 사람은 필연히 어리석음을 범하고 아와 비아를 모두 해하게 된다.
  • 난(亂, Disorder)은 무질서한 난세에나 보이거나 일어날 법한 패륜스러운 일로, 정의에 어그러지고 정도에 반하는 것이다. 난이 횡행하는 세상을 난세라 하며,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어 서로를 해하게 된다.
  • 신(神, Spiritual)은 소위 귀, 신, 정, 령, 혼, 백을 통틀어 사람이 아닌데 사람으로 행세하는 존재 전반을 말한다. 전국시대 위나라 서문표가 물의 정령신 하백에게 처녀를 바쳐야 한다는 무당들을 오히려 물속에 처넣어 죽였다. 신이 흥하였을 때 인을 해하는 것이 이와 같다.

『이금록』 중 발췌

이렇게 해석된 괴, 력, 난, 신 각 글자는 한 글자씩 더 붙어서 괴이(怪異), 용력(勇力), 패란(悖亂), 귀신(鬼神)이라고 통칭되게 되었는데, 언제부터 이런 통칭이 보편화되었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조선시대의 능력자 처우:

전술한 바와 같이, 조선의 제도적 초상기관의 태초인 불어도감은 전우치의 유언에 따라 만들어졌다. 하지만 국가권력의 일부분으로 편입되는 것은 일평생 권력과 대결해온 전우치가 바라던 방향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전우치 사후 양사언과 이지함이 전우치의 뜻을 여러 도사들에게 전달하며 설득했으나,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던 도사들이 큰 호응을 보내지 않아 결과물이 즉각 도출되지 못했던 것이 근본적 이유다. 이지함과 양사언이 결실을 거두지 못한 채 죽고, 이지함은 죽기 전 조카 이산해에게 자신의 복안과 전우치의 뜻을 전달했다.

일본과의 7년 전쟁이 끝난 뒤 이산해의 정적 류성룡이 실각하고 이산해가 영의정으로 재임하던 1600년, 이산해와 선조의 독대 이후 만들어진 불어도감은 자연히 전우치의 본래 의도보다 국가 관료였던 이산해의 의중과 설계가 더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었고, 이런 점에서 불어도감은 시작부터 관과 능력자(도사들 등)의 갈등의 소지를 품고 있었다.

불어도감의 운용 양태는 현대의 옥리들과 분서꾼의 그것을 합쳐서 절반으로 나눈 것과 같았다. 세상을 구하고 사람을 보살핀다[濟世安民]는 유교적 이상은 지극히 고결하게 들리지만, 그 세상과 사람이 무엇이냐에 대한 정의는 협소하기 그지없었다. 불어도감의 행동방침은 “물건(artifact)은 취하고 존재(entity)는 없애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방침이 가장 확연히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력」을 둘러싼 행태다.

「력」에는 우선 유용할 수 있으나 세상에 보편화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이 포함되었으며, 이것들은 일종의 전략물자처럼 금제소에 보관되었다. 그리고 「력」으로 분류될 수 있는 또다른 범주가 바로 능력자 인간 또는 인간에 상당하는 지성을 지닌 능력자 존재들이었다.

불어도감이 조직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전국의 도사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 그들에 대한 포섭 작업이 이루어졌고, 포섭되지 않은 이들은 「력」에 준하여 요주의 취급되었다. 이후 중기를 넘어서면 불어도감에 포섭되지 않은 도사 등 능력자들은 모두 「력」으로 취급되어 살해 대상으로 여겨졌다. 거의 집단살해(genocide)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집요한 탄압이 이루어졌다. 조선 전기에 지극히 풍부했던 도교적 전통이나 구전담이 조선 후기에는 거의 씨가 마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양상이 불어도감 내부의 능력자들에게 어떠한 불안감을 심어주었고 그것이 숙종 때의 파국으로 이어졌을 개연성도 충분히 있지만, 아직 그것을 확증할 만한 증거는 충분히 누적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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