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기지 사람들 - 3

예전부터 그랬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내 불길한 예감들은 쓸데없이 잘 적중하곤 했다. 심슨 씨는 재단에서 전화와 함께 전송된 메일이 있다면서 인쇄기로 걸어가 첨부파일들을 인쇄하기 시작했다. 종이에 잉크가 찍혀 나오는 그 시간이 나에겐 얼마나 길었는지 모른다. 사실 나에겐 재단에서 온 일이 귀찮다는 마음보다도, 이번에도 내가 일을 망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 컸다. 그동안 내가 참여한 일들은 전부 중간에 내가 뭔가 실수를 하거나, 결과가 흐지부지 되어버리곤 했다.

“자, 한 장씩들 나눠가지고.”
내가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던 도중, 심슨 씨는 어느새 인쇄된 파일을 우리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내가 받아든 인쇄물에는 평소와 같은 평범한 문서의 내용이 쓰여 있었다.

분류번호: 79-K-0714
개체 위험도: 하
격리여부: 격리되지 않음.
종류: 생물
설명: 대상은 평범한 수컷 날다람쥐(Petaurista leucogenys)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주요 특성을 제외하고는 모든 행동양식이 기존의 날다람쥐와 일치한다. 생후 12개월 정도의 야생 날다람쥐인 것으로 추정된다.
대상은 대상에게 가해지는 중력의 정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비행한다.
현재 격리절차가 수행되지 않음.
민간에 발견될 시 경미한 혼란이 예상되므로 신속한 포획 요망.

아무리 읽어봐도 첫 번째 장의 내용은 평소에 우리에게 보내지던 평범한 변칙개체 목록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건 격리가 되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다.
“뒷장을 보면 본사에서 내려온 지시사항이 쓰여 있을 겁니다.”

이런 말을 하게 돼서 미안하지만, 이 녀석이 그 근처에서 직원의 실수로 인해 행방불명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근처의 격리담당 특무부대원들이 모조리 케테르급 변칙개체 포획작전에 투입되어 인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관찰결과로는 대상의 위험성이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므로, 아무쪼록 대상의 포획에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상의 비행 가능 높이는 최대 2m 정도 되니까, 그렇게 어렵진 않을 거예요. 포획완료시 대충 케이스 같은데다가 넣어서 80기지 변칙개체 관리본부로 전달바랍니다…

문서를 읽던 도중 엘리스 씨가 갑자기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우리더러 그 다람쥐를 잡아오란 거잖아요! 대체 왜 우리가 이런 일까지 해야 되죠?”
나 역시도 똑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엘리스 씨가 내가 할 말을 전부 해버렸기 때문에 굳이 입을 열어 내 불만을 말하진 않았다.
“흠.. 뒷장 마지막 줄을 읽으면 생각이 바뀔 겁니다. 엘리스 양.”

관리본부로 전달바랍니다. 앞으로 일주일 정도면 특무부대 인원이 투입될 수 있을 것 같으니, 혹시 하기 싫으시다면 안하셔도 됩니다만, 만약 포획에 성공하신다면 인센티브와 함께 별도의 포상이 있을 예정입니다. - Fissh 박사

심슨 씨의 말에 우리는 일제히 문서의 마지막 줄을 다시 읽어보았다.
다들 그 문장을 읽었는지 기지 내에 순간적으로 정적이 감돌았다. 엘리스 씨는 무안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연신 손부채질만 해댔다.
“자, 그럼 다들 어떻게 녀석을 잡을지 계획을 세워봅시다!”

우리는 숙소 안으로 다시 들어가서 각자의 침대에 걸터앉아 회의를 시작했다. 우선 제일 처음으로 말이 나온 건 녀석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라임 씨가 가장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 이 근처는 전부 황무지니까 일단 마을 안에 있는 건 확실할거에요. 밖에 가봤자 먹을 것도 없으니까…”
이 말이 나오자마자 잭은 침대 난간을 가볍게 두어 번 치고서는 자신이 쓴 메모지를 보여줬다.
‘먹을걸 찾으러 쓰레기를 뒤지지 않을까’
“그러겠네! 식당에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니까 그 주변을 중심으로 찾아보면 금방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자, 그럼 일단 흩어져서 수소문을 해보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들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난 내 침대 위에 앉아 사람들이 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잭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또 다시 메모를 보여주었다.
‘왜 안나가’
“아, 녀석을 잡을 방법을 조금 더 생각해보다가 나가게요.”
내 말을 듣고 잭은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내가 나가지 않은 이유는 햇볕이 너무 따가워서도 있지만, 수소문을 한다는 건 마을을 돌아다니며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야한다는 것이 아닌가. 내가 더듬대며 사람들에게 날다람쥐의 행방을 묻는 모습을 상상하자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놀고만 있겠다는 뜻은 아니다. 나도 나 나름대로 녀석을 잡을 방법을 궁리할 생각이다. 우선 인터넷에서 날다람쥐의 생태부터 검색해보기로 하였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아무리 검색 해봐도 날다람쥐를 잡을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화면에 나오는 말들은 날다람쥐는 잽싸서 잡기 사진으로 찍기도 힘들다는 암울한 말들뿐이었다. 그때, 밖으로 나갔던 사람들이 한 둘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들어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전 마을 주민들에게 날다람쥐를 봤냐고 물어보고 다녔어요. 그런데 봤다는 사람이 한명도 없더라구요.”
“나는 전체적으로 돌아다니면서 직접 찾아봤는데, 아무래도 내가 찾기엔 무리인 듯 하구만.”
‘난 식당가. 대상 본 사람 없음.’
다들 그다지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앞으로 뭘 중점적으로 조사해야 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직 엘리스 씨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가 위험하다.
“혹시 마을 돌아다니면서 엘리스 씨 본사람 있나요?”
내 질문에 모두들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엘리스 씨는 외진 곳을 중점으로 돌아다니겠다고 해서 마주친 적이 없어요.”
“…뭔가 불길해요. 다들 엘리스 씨를 찾으러 나가봐요.”
내 말에 다들 뭔가 불안했는지, 일제히 일어나 엘리스 씨를 찾으러 마을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렇게 30분쯤 돌아다녔을까. 근처에서 라임 씨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에요! 여기!”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엘리스 씨와, 그녀를 부축하는 라임 씨가 있었다. 내가 도착한 직후, 내 뒤를 이어 잭과 심슨도 도착했다. 나는 라임 씨를 대신해 엘리스 씨를 업고, 마을의 작은 병원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머리에 가벼운 찰과상을 제외하고는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의사는 엘리스 씨가 그냥 놀라서 쓰러진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주변이 유난히 시끄러웠는지 엘리스 씨가 정신을 차렸다. 엘리스 씨는 막 깨어나서 정신이 없었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있는 곳이 병원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아챘는지,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라임 씨가 내가 엘리스 씨를 업고 왔다고 하자, 엘리스 씨는 연신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나는 괜스레 가슴이 뿌듯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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