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기지 사람들 - 4

엘리스 씨는 자신이 그곳에 쓰러져있던 이유를 우리들에게 설명했다. 뒷골목을 돌아다니던 도중, 날다람쥐를 발견하고 쫓아가고 있었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센티브가 탐나서 다른 사람을 부르지 않고 혼자 잡으려고 했었다고 한다. 하기야, 문서에도 안전하다고 적혀있었으니 혼자 잡을 욕심이 났으리라. 아무튼 그녀가 날다람쥐의 뒤를 쫓아가던 중, 날다람쥐와 눈이 마주쳤고, 서로 대치상황이 되었었다고 한다. 그녀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 날다람쥐에게 달려들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갑자기 몸이 하늘로 붕 떴고, 그대로 추락.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병원에 와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녀석을 잡는 것은 힘든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왠지 나는 이번에도 일을 흐지부지 끝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잠깐 생각해 볼 것이 있다고 한 뒤 병원 밖의 작은 정원으로 나가 음료수를 하나 뽑아 마시며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었다. 봄바람을 맞으며 마음을 진정하다보니, 머릿속이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원의 구석에는 자그마한 호수가 놓여있었다. 호수에는 큰 잉어와 작은 잉어가 정답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작은 잉어는 크기를 보아하니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잉어인 것으로 보였다. 그때, 아까 날다람쥐에 대해 찾아본 것 중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자료가 있었다. 나는 급하게 병원의 데스크로 가서 잠시 컴퓨터를 빌려 날다람쥐에 대해 다시 검색해 보았다.

학명 Petaurista leucogenys
계 동물
문 척삭동물
강 포유류
목 쥐목
과 다람쥐과
멸종위기등급 관심필요
생활양식 초식성, 야행성, 보금자리에서 1∼2마리 서식
크기 몸길이 40∼45cm, 꼬리길이 25∼36cm, 몸무게 0.9∼1.5㎏
몸의 빛깔 등쪽은 다갈색에서 어두운 갈색까지, 배쪽은 밝은 빛
산란시기 번식기는 4월 중순∼5월 초순, 한배에 1∼3마리를 낳음
서식장소 나무의 빈 구멍, 돌담의 틈 같은 곳
분포지역 한국·일본·중국

역시, 내 기억은 틀리지 않았었다. 나는 당장에 89기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병실로 달려갔다.
“녀석을 잡을 법이 생각났습니다.”
다들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라임 씨, 혹시 이 마을에 애완동물 가게 있나요?”
“네? 어… 아마 근처에 하나 있을거에요. 그런데 왜요?”
“지금 당장 거기로 안내해 주세요.”
나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다들 당황했다. 사실 나도 지금 내가 이렇게 자신감 있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놀랍다. 어쩌면 이번에도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좋다. 이번 일까지 실패한다면 나라는 인간에게 찍힌 사고뭉치라는 낙인은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 계획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사명감 비슷한 것을 띄고 있었다.

나와 라임 씨는 함께 애완동물가게로 갔다. 내 계획이 궁금했던 라임 씨는 대체 나에게 뭘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봤고, 난 당당하게 대답했다.
“바로 이겁니다. 어떤가요?”
내가 손에 든 것을 보고 라임 씨는 대충 무슨 계획인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바로 암컷 날다람쥐였다. 날다람쥐의 번식기간은 4월 중순에서 5월 초순, 그 말은 지금이 다람쥐에겐 최적의 번식기간이란 소리였다. 우리는 미인계로 사용할 암컷 날다람쥐를 사들고는 근처에 보이는 가로수로 향했다. 나는 나무 위에 땅콩을 잔뜩 뿌린 뒤, 날다람쥐를 풀어주었다. 녀석은 신나게 올라가서 정신없이 땅콩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한 발짝 떨어져 우리가 잡아야할 녀석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뒤, 예상대로 녀석이 나무 아래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혹시라도 녀석이 도망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용히 숨죽여 녀석이 나무로 올라가는 것을 기다렸다. 녀석이 나무로 올라가서 우리가 놓은 암컷 날다람쥐를 가만히 응시하더니, 음… 서로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다. 라임 씨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암컷 날다람쥐를 살 때 받았던 통을 들고 조심스레 놈의 뒤로 다가가 두 마리의 날다람쥐를 동시에 낚아채 통에 넣었다. 녀석은 처음엔 어리둥절한 듯하더니, 이내 다시 암컷 날다람쥐와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통을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통을 라임 씨에게 넘겨주었다. 우리는 녀석이 담긴 통을 들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다들 내가 녀석을 잡아왔다는 사실에 놀란 듯한 표정을 보였다. 심슨 씨는 자신이 직접 80기지에 전달하겠다고 했고, 나에게는 잠깐 동안 쉬고 있으라고 했다. 나는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내가 일을 망치지 않았다. 내가 실패하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답 없는 사고뭉치가 아니다. 뿌듯함을 넘어 희열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래도 이 모든 긍정적인 변화들은 89기지에 온 뒤로 시작된 것 같다. 자신감도 생기고, 일도 망치지 않은 것이 다 내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슨 씨는 금세 녀석을 변칙개체 관리본부에 넘겨주고는, 내가 처음 왔던 날과 마찬가지로 먹을 것을 잔뜩 사가지고 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심슨 씨는 무슨 일만 있으면 축하 파티를 하는 파티광 이라고 한다.

그렇게 날다람쥐 격리임무를 완료한지 며칠이 지났을까.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한가하고 평범한 날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날도 재단 본사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이었다.
“에반 군이 온 뒤로 전화기가 자주 울리는구만. 그 전엔 쓸 일이 거의 없었는데…”
심슨 씨는 엷은 미소를 띠고는 나를 쳐다봤다. 심슨 씨는 전화를 받더니, 손을 까딱여 나를 불렀다. 나에게 온 전화라고 했다. 대체 재단에서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내 손은 수화기를 귀 옆에 갖다 대고 있었다.

“에반 클레빈씨 맞으신가요?”
“예. 맞습니다만. 그런데 무슨 일로…”
“한 일주일쯤 전에 변칙개체 79-K-0714를 잡으신 적이 있으시죠?”
“어… 혹시 그 날다람쥐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예. 제가 잡았었죠.”
“저번에 그 녀석이 사람을 띄웠다는 말씀을 듣고, 위험도 검사를 다시 실시했더니, 유클리드 등급으로 재분류 됐습니다. 그냥 변칙개체로 남아있을 뻔한걸 말이죠. 그 점에 대해 포상을 말씀해드리려고 전화를 했습니다.”
포상이라니, 인센티브를 받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 입꼬리는 살짝 올라갔다.
“그래서, 보상이 뭔가요?”
“이번에 80기지의 격리담당관 중 하나가 징계처분을 받고 강등을 당해서요. 지금 한 자리가 비어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이곳의 격리담당관 자리로 오실 수 있으십니다.”
나는 뛸 듯이 기뻐했다. 격리담당관이라니, 따분한 연구원 일보단 훨씬 멋지고 값어치 있는 일 아닌가. 게다가 지금 내 위치보다 몇 단계는 높은 자리이니 월급도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높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내가 격리담당관이 된 다면 89기지를 떠나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올려 심슨 씨를 바라보니, 심슨 씨는 내가 이제까지 본적 없던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직급이 높아지고 월급이 높아질 순 있겠지만, 여기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값어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린 뒤, 수화기에 대고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전 여기에 있고 싶습니다.”
“그런가요? 의외네요. 아무튼. 알겠습니다. 그럼 격리담당관으로 진급하는 대신 인센티브를 보내드리는 걸로 하겠습니다. 이건 상관없으시죠?”
“예.”
그리곤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재단 본사 사람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주변 사람들도 내 대화내용을 전부 들은 듯하였다. 엘리스 씨는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별안간 나를 와락 껴안았다. 나는 당황하여 엘리스 씨를 밀어내려 했지만, 주변 사람들도 덩달아 나를 껴안기 시작해 밀쳐낼 수가 없었다. 나는 밀어내는 것을 포기하고 사람들의 품에 몸을 맡겼다.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 이제 나는 89기지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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