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 진출: 6

수하스 쿠마란 박사는 화장실 거울을 빤히 들여다봤다. 1년 전쯤 우주선을 탈 때보다 얼굴은 주름살도 늘었고, 흰머리도 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보크만 박사가 처방해 준 차[茶]에 든 첨가제 덕분에 다크서클은 한결 나았다. 덕분에 잠은 잘 잤으니까.

면도 도구를 끄르면서 쿠마란은 거울에 대고 보안 코드를 읊었다. 오른쪽 아랫구석에 조그만 빛이 띵 비치고, 이윽고 한 스크린이 나타났다. 스크린에 글자가 떠올랐다.

대장님, 필요하신 것 있나요?

쿠마란은 비누로 거품을 내고, 브러시로 거품을 얼굴에 펴발랐다. "마누, 다른 대원들한테 메시지 좀 전송해 주겠어?"

알겠습니다. 어떤 메시지인가요?

쿠마란이 거품을 다 펴발랐다. 그리고는 깔끔한 면도기를 꺼내들었다. 미소가 씩 나왔다. 구식 기술, 100년 전 기준으로도 공연한 겉멋이었다. 하지만 이것만큼 예리한 물건도 없었다.

면도날이 웃긴 물건이었나요? 팡 하사님은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하지만요.

목에다 면도날을 조심해서 갖다대고는, 쿠마란은 면도를 시작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을 적어 줘. '동료들에게'… 아니다, 고쳐 줘. '친구들에게'. 그게 더 맞겠다."

대장님, 대원들을 친구라 부르시나요? 세뇨르 엔리케스는 어제 대장님보고-

"그래 고마워 마누, 그냥 불러주는 대로 써줘."

친구들에게.

면도날이 쿠마란의 손에 등속도로 이끌려, 턱선을 조심스레 쓸면서 하얀 거품을 걷어내며 깔끔한 흑갈색 피부를 드러냈다. "여러분에게 하나만 부탁하고자 한다. 이번 임무에서 우리들 중 일부가 못 돌아올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이 마지막 순간에 계획을 수정해서 내놓고자 한다."

기록합니다. 수정이라뇨, 대장님?

쿠마란이 말을 이었다. "탐험에는 내가 직접 참여한다. 엔리케스가 외골격 슈트 하나의 인가를 더 확보했다. 여러분이 모두 프로고, 또 의무를 다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여러분들 다 아무 말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대원들이 사는지 죽는지에 관심이 없다고 여러분 중에 몇 명이 여기는 점은 나도 잘 안다."

기록합니다…

쿠마란은 잠시, 왼뺨을 정리하고 다시 말했다. "너도 그 몇 명 중 하나겠지, 마누. 너한테도 말하는 메시지야."

기록합니다.

"그건 적지 마시고. '2474 안에 들어사는 변칙존재에게 우리가 아주 조금만 노출되더라도 그 상황은 충분히 위험하다. 나도 이해하는 바다. 그리고 그 위험을 나도 같이 무릅쓰고자 한다. 나는 이 계획을 자신하고, 이에 필요한 부분을 맡아줄 카심 박사를 신뢰한다. 내가 어떤 일을 당하든, 결국은 우리 모두가 다 당할 만한 일이겠지.'"

대장님…

"계속 적어 마누. '임무계획에서 자세한 사항은 지표면으로 내려가는 중에 논의하도록 하겠다.'"

쿠마란이 마지막 남았던 거품을 마저 걷어냈다. 얼굴에는 이제 매끈한 피부, 그리고 멋지게 다듬은 콧수염만이 있었다.

"부탁은… 내 부탁은 이 메시지를 개인 보안 디렉토리에 저장해 주는 것이다. 알다시피 이번 작전 중에 우리는 자신한테 매우 강력한 기억소거제를 투여해야 한다.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우리가 어떻게 헤어졌는지 기억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메시지를 저장하고, 내가 여러분 하나하나를 한 치의 여지 없이 신뢰한다는 점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로-19의 대장을 맡을 수 있어서 정말 자랑스럽다. 이 행성 위의 인류가 맞이할 새로운 시작을 우리 모두 목도할 수 있길 희망한다."

대장님. 그럼 임무가 실패하면 플랜 B 작전은 누구한테 맡기실 생각인가요?

쿠마란이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고, 다시 거울을 들여다봤다.

"네가 맡아, 마누."

말씀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만. 거기까지만 해. 2474를 맡은 모든 요원을 통틀어서 네가 최고 유경험자야. 최악의 상황에 최고사령부와 협력할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너밖에 없어. O5-7에게 벌써 의사를 전달했어. 재단이 AI를 그저 인식재해 필터로만 이용해 먹으려고 만들지는 않아. 네 판단력을 이용해. 내가 못 돌아오는 그 순간부터 난 너만을 믿을게."

"이것도 적지 말고."

이상인가요, 대장님?

쿠마란은 셔츠 단추를 채웠다. "그래. 이제 전송해. 난 몇 가지 매듭지을 부분 해결하러 가야겠어."

쿠마란 박사님, 하나만요.

"뭐지, 마누?"

살아오셔서 임무 끝나고 돌아오시면, 온 수염 다 기르셔도 되겠어요.

"…그래. 참 영악해, 마누."

행운을 빌어요, 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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