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다음날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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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6일 1시 15분 / 도로 위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도로 위 조용히 음직이는 경찰차에는 두 명이 타있었다. 운전석에서는 한 남자가 감겨오는 눈을 억지로 붙잡으며 핸들을 잡고 있었고, 보조석에서는 한 여자가 조용히 스마트폰에 집중해 무언가 타자를 치고 있었다.

"보고 끝났어요, 이제 크리스마스도 끝났으니까 좀 편해지겠네요." 조수석에 있던 여자는 폰을 내리면서 말했다.

"그렇고 말고, 난 일년 중에 크리스마스가 제일 싫어. 제일 힘들고, 제일 끔찍하고, 특히 모든 일이 밤 중에 일어나니까."

"여러 번 겪어보셨으니까 그러시겠죠. 저는 3년 내내 선배랑 붙어다녔는데 기억이 하나도 안 나지만요."

"그래, 그래, 내가 기억을 지웠으니까 그렇지. 사실 감사해야 할 일이리고. 올해는 좀 깔끔하게 끝났지만 못 볼 꼴도 많다니까. 기억하지 못하는게 차라리 나을 걸."

"그니까, 그건 괜찮은데, 그 기억만 지웠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문제인 거죠. 다른 일을 하고 몰래 기억을 지웠으면요?"

"기억소거제는 그렇게 막 쓸 수 있는게 아니라니까. 너는 들어온지 얼마 안 되서 기억소거제 배치가 안 나오니까, 그거 쓰고 받는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모르겠지. 난 차라리 안 줬으면 좋겠어."

"그래됴, 등급 높아서 좋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여자는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고보니 저번부터 궁금했던 게 하나 있는데, 왜 하필 크리스마스에 변칙적 현상이 자주 일어나는 거죠? 잘 생각해보면 크리스마스라는 기념일 자체가 한국에는 원래 없었던 거잖아요, 이렇게 따지면 추석에 변칙현상이 더 많이 일어나야 되는 거 아닌가요?"

"그건… 나도 잘 몰라. 몇 가지 가설은 아는데, 내가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게 진짜가 아니라는 거라. 진짜 이유는 더 높은 보안 인가가 있는 사람들이나 알겠지."

"그럼 무슨 가설인지는 알려주시죠. 궁금한 걸요."

"뭐 흔히 생각해볼만한 건데, 사실 이 부근에서 발생하는 기념일 변칙현상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꾸미는 일이다. 그 이유는 바로 재단 직원들의 휴일을 뺏어서 사기를 떨어트리려는 거다. 이거는 반 농담이었고, 다른 하나는 변칙성이 사람들의 믿음이나 생각에 영향을 받아서 그렇다는 거인데, 그 증거로 이 동네 할로윈은 크리스마스보다 별거 없다는 점을 들더라고. 마지막은 그 자체가 변칙성이라는 거. 미국 어디에는 그런 식인 넥서스가 있다는 걸 증거로 들었어."

"셋 다 합리적인데 이거 3개가 다 아니라고 하면 진짜는 뭐에요? 사실 그냥 우연의 일치였다?"

"우연의 일치 대신 확률론적 변칙성이라는 표현은 어때?"

"전 진짜 그런 보고서식 표현 싫어해요."

"난 좋아하는데, 우리 보안인가1등급 현장 잠복위장요원께선 안 그런가 보네."

"그건 또 어떻게 외우고 다닌데요."

"사실 막 지어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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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6일 2시 10분 / 경찰서

물론, 한밤중이긴 했지만 상당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경찰서에는 두 명의 경관만이 남아있었다. 그 이유는 재단이 한 모종의 조치 때문이었지만 그 덕에 남아있는 두 명의 재단 잠복요원들은 나머지 경찰관들이 휴일을 만끽하고 돌아돌 때까지 평범한 경찰 업무를 둘이서 모두 해야할 판이었다.

좀 큰 사건 같았으면 그냥 다른 관할로 넘겼겠지만, 연말 분위기에 취해, 그리고 술에도 취해서 길거리에서 난동을 부리는 취객 한 명 때문에 30분 거리에 있는 경찰서에 연락하는 건 별로 맘에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둘은 결국 합리적인 방법으로 가위바위보를 했고, 남자가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벽 2시에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여자는 잠시 열린 문에서 몰아치는 추위를 느끼곤, 다시금 승리의 기쁨을 실감했다. 여자가 그 적만한 순간 다음으로 한 일을 눈에 띄게 설치되어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물들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잠깐 오래 설치해둔다고 나쁜 일은 없겠지만, 어제 있었던 일은 크리스마스에 질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여자는 반짝이는 꼬마전구들의 전선을 빼고 둘둘 말았고, 장식을 하나하나 때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남자가 없다는 사실에 위화감을 느꼈다.

그 기분은 정확히 표현하자면, 기시감이었다. 여자는 문뜩 한 가지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고, 지금과 똑같이 경찰서에서 트리를 만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리의 반대, 장식을 하고 있었다. 여자는 손에 자그마한 종이를 들고 있었다. 종이에는 산타에게 전하는 선물 목록이 적혀있었고, 여자는 발돋움을 하며 종이를 매달고 있었다. 그 옆에는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기억 속의 남자는 지금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왜?

2021년 12월 26일 2시 21분 / 술집 거리

남자는 영하의 온도에 몸을 떨며 과하게 취한 몇 사람으로 인해 벌어진 상황을 정리했다. 남자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고 추위를 피해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고, 실제로 신속하게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

남은 일은 돌아가는 일이었고, 이번 일도 신속하게 처리하고자 했다. 남자가 차에 올라타 옆을 잠시 쳐다보자 작은 꾸러미를 들고 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남자가 베테랑 요원처럼 얼음장 같은 마음씨를 가졌다면 그냥 고개를 돌렸겠지만, 당연히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그의 정신은 이내 선물로 향했다.

발걸음도 선물로 향했다. 가끔씩은 함께하는 동료를 위하여, 선물할 필요가 있다. 몇년이나 크리스마스 선물로 기억소거제를 준 입장이니 더욱 그러했다. 고민은 무엇을 줄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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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6일 2시 43분 / 경찰서

"선배, 물어볼 게 있어요."

"어, 왜?" 남자는 살짝 손을 뒤로 숨기면서 물었다.

"저희 예전에 만난 적이 있었나요?"

"어제도 봤지."

"어제나 그제 같은 거 말고 더 전에요."

"그래, 작년에도 봤고, 재작년에도 봤지."

"아니, 정말, 정말 전에요. 한 20년? 15년 쯤 전에."

"그때? 그때 우리가 만날 일이 있겠어? 그건 왜?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면 안 될까 추운데."

"오케이, 오케이, 일단 들어와요, 춥네. 이 질문의 의도가 무엇이냐면, 방금 갑자기 생각난 건데, 몇 년 전에 그러니까 제가 한 초등학생 때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는데, 거기 선배가 있었단 거죠."

"그건 그냥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래서 고민을 해봤는데, 선배가 있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나머지 세부사항은 전부 완전 낮선 내용이라 머리 속에서 지어낸 내용이면 있을 수가 없다는 거죠."

"사람의 기억은 정말로 가소성이 높아. 그런 기억이 있었다고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데. 완전히 무관한 기억에 내 이미지만 혼합된 걸 수도 있지. 그냥 무시해. 그리고 이거."

"그건 또 뭔가요?"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 겸 신년 선물. 왜 그렇게 쳐다봐, 나도 선물 정도는 줄 줄 아는 사람이야."

"아뇨, 그냥, 선물 줄 줄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뭔가요?"

"직접 열어보시죠. 자"

"어, 장갑은 아니겠죠, 그 기억에서 제가 달라고 했던 선물이 장갑이었는데, 그 모양이, 네 정확히 이렇게 생겼었거든요."

"오,"

"진심 뭐에요?"

"변칙성의 일종이 아닐까?"

"진심?"

"더 안 물어보는 걸 추천해. 들어버렸다간 다시 잊어버리게 될 거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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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안제은

성별: 여성

연령: 28세

인가: 1등급

약력: 2020년 7월 13일, 한형석 요원의 추천으로 1등급 재단 잠복요원으로 채용되었다. 이전에는 경찰공무원이었다. 채용 이후에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대외적인 지위를 유지한 채로 활동하고 있다.

성명: 한형석

성별: 남성

연령: 30세

인가: 2등급

약력: [편집됨 - 4등급 인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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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6일 7시 30분 / 경찰서

길었던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다음 날이 밝아왔다. 정확히 따지자면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하지만 둘 뿐이었던 경찰서 앞을 출근하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한두명 씩 텅 비어있던 경찰서에도 북적거리는 분위기가 맴돌았다. 지나가던 한 경관은 크리스마스 밤새 당직근무로 고생한 둘을 지나가며 수고의 말을 건네며 물었다.

"그 장갑은 뭐야?"

"선배한테 선물 받은 거에요," 여자는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조금 째려보는 듯 했다.

그 선배는 그냥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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