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멸망 경연 출품작
평가: +18+x

개자식.
넌 의심할 여지없는 개자식이야.

다른 세상이 어떻게 망했는지, 혹은 어떻게 망해 가는지, 혹은 어떻게 망할 예정인지 충분히 둘러보고 왔겠지? 그리고 여길 찾아왔을 거고.
만에 하나 종말이 현재 진행형이거나 곧 시작될 소설을 읽으러 왔다면, 미안해라. 여긴 이미 늦었어. 진즉에 글러먹었거든.

여긴 나뿐이야. 내 가족, 친구, 이웃, 옆집 개새끼부터 이름도 모를 어린아이까지. 다 죽었어. 싸악, 깔끔하게. 그러니 네게 비명을 들려줄 사람은 없어. 이미 다 죽었으니까. 죽은 자는 비명을 지르지 않거든.
물론 나는 비명 따위 지르지 않아. 안타까운 일이지, 너에겐. 내 비명에 희열을 느끼고 싶었을 거야. 내가 보다 절망적인 구렁텅이에 빠져 신나게 뒹굴기를 바랄 거야.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었다가 그 희망이 좌절되는 것에 환희를 느끼고 싶었을 거야.
꿈 깨. 이보다 절망적일 수는 없고, 나는 이미 이 상황을 받아들였어. 네가 바라는 그런 상황은 없을 거야.

내 리볼버에는 정확히 여섯 발이 들어 있었어. 한 발은 허공에 날렸고, 두 발은 자물쇠를 따는 데 사용했고, 두 발은 내 친구의 숨통을 끊는데 사용했지.
마음 같아선 내 친구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났는지 알려주고 싶어. 실제로 십여 분에 걸쳐서 정성스럽게 그 부분을 쓰고 있었지.
하지만 이내 그만뒀어. 너는 그 장면조차 즐길 테니까. 그러니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하나 할게. 내 친구는 편하게 떠났어. 아주 편하게. 정말이야.

리볼버에는 아직 한 발이 남았어. 물론 너에게 쓸 것은 아니야. 미쳤어? 쏴도 소용이 없을 텐데? 그 대신 너는 이렇게 생각할 거야.

‘오 그렇다면 작중 내용으로 보아 화자는 마지막에 자살을 택하겠군!’

내가 미쳤냐? 누구 때문에 이 꼴인데, 누구 좋으라고 자살을 택하겠어? 난 살아남을 거야. 종말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아주 긍정적이고 희망차게 살아남을 거라고. 먹을 거 다 먹고, 할 거 다 하고, 아 물론 누군가와 잠자리에 드는 건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겐 1TB 하드가 있거든. 이 자리를 빌려 친구 녀석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어. 고마워! 하드 속 그녀들은 나와 함께할 거야! 물론 넌 죽었지만!

그래, 인정할게. 인정한다고, 개자식아.
난 미쳤어. 제정신이 아니라고. 그럼, 당연하지. 세상이 대충 망하고, 나도 죽으려고 약을 한 트럭은 삼켰으니까. 물론 진짜로 한 트럭은 아니지. 음, 아닌가? 아니, 맞을 거야. 아마 그 정도는 먹었을 거야.

아무튼 약을 이빠이 먹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무언가 머릿속을 지나갔어. 그게 신의 선물인지, 아니면 저주인지는 나도 몰라. 아무튼 그건 어떤 인터넷 페이지였어.

‘세계멸망 경연.’

감이 오지? 뻔하잖아! 메타 장르! 소설이 내가 된다! 소설 속 주인공이 자기 처지를 깨닫는다! 혼돈! 파괴! 망각! 우라질! 다 엿 같아.

내가 널 개자식이라고 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거야. 분명 내가 속한 소설은 이 엿같은 경연에 나갔을 것이고, 그 엿같은 경연의 참가 목록 중 하나에 당당히 이름이 박혀 있었겠지. 끔찍한 세계멸망이 주된 내용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소설 속 등장인물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뒹구를 걸 알면서도, 기어코 소설을 읽으러 들어온 네가 개자식이 아니면 뭐겠어?

알아, 안다고. 이 바닥에서 메타 장르는 흔하다는 거. 나도 그런 장르의 글들은 읽어봤어. 뻔하고, 흔하고, 클리셰 덩어리지. 특히 이런 바닥에서는 더 그렇잖아?

자, 그럼 문제. 내가 그걸 알아챘을 때 무슨 생각을 먼저 했을까?

“오, 맙소사! 내가 소설 속 인물이라니, 믿을 수 없어!”

냥박이, 넌 닥치고 있으렴.

“이렇게 엿 같을 수가!”

흠, 그건 좀 정답에 가까웠어. 하지만 점수는 줄 수 없구나.

“미친놈들, 이런 걸로 경연을 연다고? 이 개자식들!”

이그젝틀리! 정답이다, 냥식아! 너무 완벽해서 내 셔츠가 또 찢어졌구나!

물론 경연이라는 거, 흔하지. 글 쓰고 싶어서 모인 사람들인데 그럴 수 있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그런데 그 경연의 주제가 세계멸망? 며어어어얼마아아아아아앙? 힘내서 세계를 멸망시켜 봅시다, 라고? 장난하냐? 남 일이라고 생각나는대로 내뱉어도 된다는 거야? 누가 세운 주제인지 그 작자 좀 만나고 싶다. 데려와서 이 망할 세상에 나대신 남겨두고 싶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이건 흔해빠진 클리셰야. 하지만 이건 기억해 둬.
나는, 어쩌면 우리는 픽션이라는 이유로 이 세상에 갇혀있어. 내 의지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누군가가 정해진 결말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어.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누군가 그 글을 다시 읽을 때 마다 다시 죽는 거야. A가 글을 읽었을 때 한 번, B가 글을 읽었을 때 또 한 번 죽는 거야. 내가 바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그거야. C, D, E 그리고 그 이후가 나오지 않는 것. 내가 죽어가는 꼴을 보는 건 한 두명으로 충분해.
우린 종이인형이야. 픽션이라는 상자에 갇혀서 관객이 모두 사라질 때 까지 춤을 춰야하는 종이인형들. 종이인형은 스스로가 종이인형인줄 모를 때가 가장 행복한 법이지.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문득 묘안이 생각났어. 픽션이라는 상자를 부수는 방법을 말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네 도움이 필요해.

어차피 네가 이 글을 계속 읽고 있을 거라는 걸 알아. 그러니 네 동의는 구하지 않을 거야.

경연을 멈춰줘.
부탁이야.
개자식이라고 했던 것도 사과할게. 알잖아. 내가 약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라는 거. 그러니 부탁할게. 경연을 멈춰줘.
사람들 설득 할 필요 없어. 그냥, 경연 페이지를 지우면 되는 일이야. 어렵지 않잖아. 페이지 우측 하단 설정을 누르고, 삭제를 눌러. 클릭 몇 번이면 사라질 일이야. 넌 할 수 있어. 너는 나와 다르잖아. 넌 그동안 방관자였지만, 이제는 아니야. 너는 멸망에 처한 많은 세계를 구할 수 있어.
그러니 경연을 멈춰줘. 이 미친 짓을 멈춰줘.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나에게 조금의 연민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주저말고 이 경연을 멈춰줘. 네 반달 행위를 조금이라도 응원할게.
그러니 어서 지워.

어서.








아니, 그만두자.

넌 어차피 그럴 생각도 없을 거야. 아직도 이걸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잖아?
그게 아니라면 반달행위로 인한 조치가 무서워서 그래? 이봐, 솔직해지자고. 넌 반달로 인한 처벌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냥 내가 하찮은 거잖아. 소설 속 인물이 1인칭으로 독자한테 말 거는 건 흔한 일이고, 그 명령을 그대로 할 필요는 없으니까. 당연하지. 내가 죽으라고 죽을 놈도 아니고, 누굴 죽이라고 죽일 놈도 아니잖아. 네가 겁쟁이라던가 하는 뜻은 아니야. 그저 아주 당연한 말을 했을 뿐이지.

알고 있어. 네가 별다른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스크롤만 죽죽 내릴 거라는 거.
너는 세계멸망 경연의 등장인물이 얼마나 절망하는지 보고 싶어서 온 거지? 그렇다면 축하해. 난 충분히 절망적이야. 정말로. 이번엔 진심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죽고 싶어. 너의 목석같은 그 태도 덕분에 말이야.
다 거짓말이었어. 리볼버? 총알? 진즉에 다 써서 없어. 당연히 자살도 못해. 이유는 알려고도 하지마. 나는 살아있어야 해. 이 빌어먹을 글이 계속되는 이상.

네가 이 소설의 절망을 완성한 거야.
네가 이 세계의 멸망을 비로소 완성한 거라고.

개자식.
넌 의심할 여지없는 개자식이야.

자, 이제 끝이야. 이제 평가할 일만 남았어.
페이지 맨 위의 평가모듈에 평가만 하면 돼. 플러스를 주든가, 마이너스를 주든가, 보류를 하든가, 그건 네 자유야.

그러니 가는 김에 마지막으로 부탁하나 하지.

평가 모듈의 마이너스 버튼을 눌러.

너도 알겠지만 이 페이지에 마이너스가 쌓이면 이 세상의 창조주는 절망을 받겠지.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실망이라도. 그리고 마이너스가 누적되면? 이 페이지는 규정에 따라 삭제될 거야. 그렇다면 창조주는 더 큰 절망을 받는 거지.
물론 나도 사라져. 완전히 없던 존재가 되겠지. 하지만 이 세상도, 이 세상에 찾아온 멸망도 그리고 그로 인한 내 절망도 같이 사라지는 거야. 완전한 무(無)의 상태로 돌아간다고. 새하얗게, 순백으로 돌아가는 거야. 없던 일이 되는 거야.
나는 이미 충분한 절망을 받았어. 이제 이 세상의 창조주에게 절망을 줄 차례야. 그래, 이 페이지를 만든 사람, 이 소설을 쓴 작가에게 절망을 줄 차례라고.

천천히 잘 생각해봐, 이건 아주 흥미로운 일이야.
자, 첫째. 평가를 보류한다면 창조주도 나도 변하지 않아. 네가 얻는 건 아무것도 없어.
둘째. 플러스를 누른다면, 애석하게도 창조주는 기뻐하겠지. 하지만 난 변하지 않아. 네가 언제 찾아와도 똑같은 모습으로 있을 뿐이라고. 이로써 네가 얻는 건 고작 하나 뿐이야.
하지만 셋째. 마이너스를 누른다면? 나 같은 단편 소설 속 이름 모를 등장인물이 아닌, 실존하는 누군가에게 절망을 주는 거잖아? 그거 생각보다 굉장한 거 잖아. 버튼 하나로 사람의 심리를 크게 조작하는 거라고. 동시에 난 무의 세계로 돌아가는 거야. 진정한 ‘세계멸망’에 도달하는 거지. 네가 얻는 건 무려 두 가지야. 실존 인물의 절망과 진정한 멸망. 어때? 괜찮은 거래같지 않아?

젠장, 아직도 마이너스 버튼을 누르지 않은 거야?
넌 누군가에게 절망을 주는 걸 좋아하잖아?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절망을 느낄 때 까지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가 없겠지. 아니라고? 그럼 경연 페이지는 왜 그대로 둔 건데? 왜 내 부탁대로 하지 않은 건데? 앞뒤가 안 맞잖아? 처벌이 두렵다는 핑계는 집어치워!
애초에 소설 속 인물이 절망을 느끼는 ‘세계멸망 경연’ 같은 걸 들어온 시점에서 누군가가 절망을 느끼는 걸 보고 싶어서 온 거잖아. 아니야? 그게 아니라면 대체 넌 뭔데? 네가 원하는 게 대체 뭔데? 넌 대체 뭔데!

마이너스 버튼을 눌러.
이 페이지를 없애. 이 망할 세상을 창조한 놈에게, 이 망할 소설을 쓴 놈에게 절망을 안겨줘.

마이너스 버튼을 눌러.
절대, 플러스 버튼은 안 돼. 보류버튼도 안 돼.

평가: +18+x

맨 위까지 올라가기 힘들까봐 준비했어.
여기, 바로 여기야. 마이너스 버튼. 마이너스 버튼만 누르면 돼.

다시 말할게.

마이너스 버튼을 눌러.

다시, 다시 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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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망설이고 있는 거야, 이 개자식아!

우유부단한 거냐? 아니면 뭘 더 기대하는 거냐?
이 밑으로는 다른 내용도 없어! 그저 네 놈이 마이너스 버튼을 누르길 갈망하는 내 악바리만 쓰여 있다고!

빌어먹을 스크롤은 이걸로 끝이야! 더 이상 없어! 그러니 당장 페이지 위로 기어 올라가서 마이너스나 눌러!

마이너스 버튼을 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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