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들의 프로 1화 -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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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류 60일 및 보안 등급 1등급 강등을 명령한다.”…
…“정당한 사유가 없는 바, 유클리드 등급으로의 격상을 기각한다.”…
…“제발 망할 티타늄 좀 특수 격리 절차에서 빼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지”…

재단의 직원들은 과연 현실적인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까요?
오로지 확보, 격리, 보호라는 모토에 맞추어 인류에 헌신하는 업무만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과학자면 연구, 격리 전문가면 설계, 요원이면 정보 탐색만 맡으며 일하는 걸까요?
오늘도 수습 직원들은 이런 낭만과 환상에 젖어 직책을 고르고 있습니다.
수습 직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고, 적성에 맞는 직책을 고를 수 있도록, 치열하게 살아가는 재단 인원들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프로페셔널(Professional)을 찾아 떠나는 프로그램(Program), 프로들의 프로!
지금 시작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관리부 인적자원관리국과 윤리위원회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 지역사령부에 와 있습니다. 이곳은 기동특무부대보다는 연구원들의 수가 훨씬 많은 곳이죠. 지금 보이는 사무실에서도 열 명이 넘는 연구원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업무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이 있군요. 아니, 사람은 아닙니다. 물고기니까요. 바로 피쉬 박사입니다.

피쉬 박사: 안녕하세요, 피쉬 박사입니다.

잠시만요, 하나만 짚고 넘어갑시다. 지금 이 방송을 보는 수습 직원들 중에는 이걸 못 믿을 사람도 있을 것 같거든요. 정말로 생물학적으로 물고기가 맞는 겁니까?

피쉬 박사: 네, 반쯤은 물고기가 확실히 맞죠. 설마 무슨 종인지 물어보시는 건가요? 하하, 그건 안 대답해 드립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닥터피쉬는 아니라는 거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도록 하죠. 와우, 지금도 뭔가를 계속 컴퓨터로 입력하고 계시는군요. 이곳에서 정확히 어떤 업무를 맡고 계시는 건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피쉬 박사: 아, 지금은 안전 등급 SCP들의 격리 절차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일단 이곳 지역사령부에는 지역사령부에서 자체적으로 확보한 SCP-KO 개체들과, 그리고 본부에서 이관시킨 SCP 개체들이 있습니다. 본부에서 2000개가 넘는 개체들을 다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이관 정책을 시행하는 중이고 저도 안전 등급 SCP 6개를 이관 받아 관리하고 있습니다.

아니, 잠깐만요. 격리 절차가 온전한지 아닌지는 격리 전문가들이 따질 일 아닙니까? 연구원들은 보통 변칙 개체의 특성을 연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하지 않나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피쉬 박사: 원칙적으로는 그게 맞죠. 하지만 이곳 대한민국 지역사령부는 계속 일손이 딸려서요. 관리자님도 여러모로 외무부나 관리부에 이리저리 건의를 하지만, 어쨌든 사람이 영 부족해요. 게다가 있는 사람들 대부분도 다 연구원이나 박사들이고, 격리 전문가나 요원, 행정관들, 비서들은 거의 없다니까요. 그러니 이것저것 다 할 수밖에 없죠.

아, 알겠습니다. 그럼 SCP를 ‘관리’한다는 게 뭔지 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SCP가 격리실패를 일으키지 않았는지는 감시 요원들이 담당할 일이니, 그래도 연구원들은 뭔가 할 일이 다르지 않나요?

피쉬 박사: 아, 그렇죠. 감시카메라를 들여다보는 건 확실히 제 업무 중 하나는 아니니까요. 음… 제가 하는 일은 특수 격리 절차의 개정을 제안하고, 또 구체적인 격리 방법을 명령하는 거에요. 예를 들어… 지금 모니터에 있는 SCP-701 보고서를 보면 세 명의 이름도 알 수 없는 L이니, R이니, J니 하는 사람들이 승인하지 않으면 접근을 못 한다고 되어 있죠. 그리고 ‘SCP-701과 관련된 모든 자료는 삼중으로 잠겨진 기록 보관소에 보관해야 한다.’ 뭐라뭐라 하는데 이해가 안 가요. 왜 삼중이죠? 그 연극을 직접 공연하고, 그리고 그 중에서도 한 37%만 효과가 나타나는데 왜 굳이 돈 아깝게 삼중으로 잠가야 하냐고요? 이렇게 격리 절차를 너무 비현실적으로 쓰는 경우가 꽤 있어요. 그런 것들을 찾아서 다 개정안을 본부에 신청하는 거죠.

오, 그럼 SCP-701 격리 절차도 곧 개정이 되겠군요?

피쉬 박사: 하하, 아무래도 재단의 관료제의 피라미드를 잊으신 것 같군요. 제가 이 개정안을 본부 과학부로 보내면, 담당자가 그걸 보안부에 보내서 안전성 심사를 받게 할 것이고, 그걸 통과하면 다시 과학부에서 잠재적인 위험이 있는지 심사할 것이고, 그걸 통과하면 다시 관리부로 보내서 최종 승인을 받고, 그 개정안을 생산부로 보내서 필요한 격리 시설을 다시 갖추게 할 것이고, 마지막으로 저한테 통과되었다고 알려 주겠죠. 아마… 한 4년만 있으면 될 걸요?

오우, 그렇군요. 확실히 격리 절차를 처음 짤 때 확실하고 꼼꼼하게 짜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럼 SCP-701처럼 이상한 절차를 짜 놓았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죠? 이상하다고 안 따르면 바로 징계를 받지 않습니까?

피쉬 박사: 따라라!(괴상한 효과음) 그럴 경우를 대비해 편법을 쓰는 거죠. 어쨌든 삼중으로 잠그라고 하지만 재질을 써 놓지는 않았잖아요? 윤리위원회에서도 상식과 보편적인 통념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이면 정해진 격리 절차 내에서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다고 하고. 그냥 유리 세 장 가져다가 삼중 유리벽 설치해 버리면 그만이죠! 삼중으로 잠근 것 맞잖아요? 거기다가 그 알 수 없는 사람 세 명의 승인은 이니셜 똑같은 사람 찾아서 승인 받으면 그만이고. 아니면 우리 관리자님 승인서 받으면 되죠. 4등급 이상은 뭐든지 씹어먹을 수 있으니까.

그건 편법 아닙니까?! 이건 수습 직원들이 직책 고르기 위해 보게 될 방송이라고요. 그런 방송에서 이렇게 규정을 이용해 먹는 방법을 보여 줘도 되겠어요? 다시 찍는 거 어때요?

피쉬 박사: 아, 수습 직원들 용이라고요? (잠시 침묵) 여러분! (괴성) 뭘 해도 연구원은 절대로 고르지 마세요! 아주 죽어라 갈려나가게 될 테니까! 전 세계로 출장 나가서 온갖 변칙 개체 다 만져보고, 요상한 질병 걸려서 의료국에 한 6개월 쓰러져 있고, 갑자기 핵무기 담당자로 임명됐다고 러시아로 던져 버리는 Diplomacy Party 같은 사건에 휘말리기 싫으면 연구원은 절대 하지 마요! 스트레스 지수도 연구원이 제일 높으니까! 평균 수명도 정보국 요원에 이어 뒤에서 두 번째라고!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괴성 계속됨)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네,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 정도면 수습 직원들도 연구원이 어떤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어, 피쉬 박사님이 갑자기 컴퓨터를 끄고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하는데요. 어디 가는 건지 쫓아가서 물어봅시다!

피쉬 박사: 아직 안 끝났어요? 해 질 때까지 할 거라고요? 된장, 큰일 났네. 에… (헐떡거림) 지금 중국어 수업 들으러 가요. 세 번 지각이면 제적인데 벌써 두 번이나 지각했다고요! 일단 촬영이고 뭐고 일단 뜁시다!

아니, 헥, 도대체 왜, 헥헥, (헐떡거림) 한국에서 근무하면서 왜 중국어 공부는 하려는 겁니까? 물론 중국도 주요 국가고 지부가 설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중국 지부 규모는 큰 편도 아니잖아요? 무슨 사업하는 것도 아닌데 중국어는 왜?

피쉬 박사: 이따 말합시다, 네? 저 수업 좀 듣게.

뭐, 알겠습니다. 피쉬 박사님은 열심히 중국어 수업을 듣고 있군요.

강사: 我说汉语说得真不好。따라해 보세요. 我说汉语说得真不好。

수강생들: wo shuo hanyu shuo de zhen buhao.

강사: 한 번 더! 我说汉语说得真不好。

수강생들: wo shuo hanyu shuo de zhen buhao.

흐흠, 중국어를 모르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학구열에 불타는 수업인 것 같습니다. 아, 이제 수업이 대충 끝나가는 것 같군요. 그럼 피쉬 박사에게 가서 어서 물어봅시다. 중국어 수업은 왜 들으시는 거죠?

피쉬 박사: (한숨) 지금 영어 하나만 한다고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재단도 예외는 아니더라고요. 인사고과에서도 제2외국어 할 줄 알면 우대해주고, 더군다나 고위직이 꼭 영어나 한국어를 구사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제가 쓴 보고서가 최대한 많이 읽히게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언어를 할 줄 알아야 하더라고요.

그렇습니까? 그럼 중국어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는 거죠? 아니면 혹시 인사고과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영되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수습 직원들한테 실용적인 조언이 될 것 같습니다.

피쉬 박사: 아, 그런가요? 어디 보자… 제가 기억하기로 신 HSK 5급 이상이면 인사고과 가산점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대충 능숙하게 할 정도 되려면 그 정도 수준으로는 배워야 하고. 여러모로 힘들죠. 하지만 이 방송을 보시는 수습 직원분들, 기억하세요. 보안 등급 높은 게 장땡입니다. 그러면 재미있는 연구도 많이 할 수 있다고요. 보안 등급 높이려면 제2외국어는 기본이에요! 관리부 인적자원관리국이나 기지에서 꼭 수업 들으세요!

아니, 잠깐만요. 그런데 질문이 하나 더 생기는군요. 왜 하필 중국어입니까? 다른 언어도 얼마든지 있잖아요? 아까도 말했지만 중국 지부는 그리 큰 편이 아니잖아요?

피쉬 박사: 미래를 내다보는 거죠. 맞아요, 중국 지부는 큰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나라는 매우 크죠. 거기에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변칙 개체가 널려 있지 않겠습니까? 대륙의 위상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아마 한 몇년만 있으면 중국에 기지를 슬슬 짓지 않을까요? 그럼 저도 아부만 잘 하면 기지 관리자로 슬쩍 승진할지도…(침 삼키는 소리)

네, 하하. 하. 저희 프로그램은 ‘생생중계 감사국’ 같은 고발 프로그램은 아니랍니다. 건전한 얘기만 하면 안 될까요?

피쉬 박사: 아니, 수습 직원들에게 각 직업의 현실을 제대로 알려주겠다면서요? 이게 바로 현실이에요, ‘리알리띠’라고요. 이런 걸 촬영해야지 뭘 촬영하겠다는 거죠?

뭐… 그 말도 맞군요. 알겠습니다. 불안하지만 촬영 계속 해 보죠. 이제 스케줄이 어떻게 되시죠?

피쉬 박사: 아, 이제 연구하러 가야죠. 그래도 연구원인데요 암암.

드디어 이 방송을 보시는 분들이 손꼽아 기다렸을 장면이 나올 듯 합니다. 그렇죠, 연구원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깨끗하게 정리된 연구실과, 실험 장비들과, 하얀 연구원 가운을 기대하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제 연구원들이 진짜 연구하는 모습을 담아 드리겠습니다. 피쉬 박사를 따라 연구실로 이동해 보도록 하죠.

보안 요원: 잠시만요, 연구실에 허가 받지 않은 촬영장비는 금지입니다. 허가증 있습니까?

예, 물론이죠. 관리부 후원으로 만들었는데요. 여기, 여기 있습니다. 아, 깔끔하게 통과되었습니다. 이처럼 연구실에 들어가는 것부터 보안이 삼엄하죠? 이 안에서 어떤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을지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피쉬 박사님은 ‘제2변칙개체연구실’이라는 명판이 쓰여 있는 곳으로 들어가시는군요. 어떤 연구를 진행하시고 계시나요?

피쉬 박사: 음… 뭐 당연한 걸 물어보시니 제가 다 당황스럽군요. 변칙개체 연구실에서 변칙개체를 연구하지 뭘 연구하나요.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지만, 보안 문제도 있고, 저도 바빠서 잠깐 실례.

아, 박사님은 이제 실험을 하시러 들어가시는게… 아니군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작성하시는데요. 보고서인가 보죠, 박사님?

피쉬 박사: 아니요, 논문인데요. 이제 논문 모집 계절이 돌아왔거든요. 또 물어볼 게 뻔하니 미리 대답하자면, 재단에는 여러 가지 학술지들이 있죠. O5 평의회에서 모집하는 고등연구학술지, 과학부에서 모집하는 통괄연구학술지, 지역사령부에서 하는 한국연구학술지. 이름이야 좀 투박하지만, 이 세 학술지에 얼마나 이름을 올렸느냐가 인사고과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요.

그럼 지금 쓰시는 건 논문이면, 변칙 개체 연구는 언제 하는 거죠?

피쉬 박사: 냉정하게 말씀드릴게요, 수습 인원 분들 생각해서. 생각해 보세요. 여기 재단의 연구원으로 들어오면 3년 계약직이에요. 업무 실력이 있어서 정식으로 채용되어도, 인사고과는 정말 철저하게 평가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5년 동안 학술지 하나에도 논문을 못 낸다면, 3등급 이상으로 승진하는 건 물 건너간 거에요. 그럼 여러분은 평생 한직으로 돌다가 퇴직하겠죠. 변칙 개체로 대박쳐서 인사고과 쌓느니, 차라리 논문 쓰는 게 훨씬 빨라요. 연구원 하게 된다면 꼭 기억하세요.

약간 슬프군요. 그래도 재단인데 변칙 개체 연구가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피쉬 박사: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글쎄요. 논문 쓰는 것도 재단에 기여하는 거라고 봐요. 물론 저도 승진 같은 거 생각 안 하고 그냥 재미있게 살고 싶다만, 뭐 어쩌겠어요. (어깨를 으쓱함)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는 거잖아요. 관료제의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인 거고, 아니라면 아닌 거지만, 전 모르겠네요.

네, 알겠습니다. 오늘 촬영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마 지금까지 충분히 연구원들의 실상을 보실 수 있었을 겁니다. 물론 이 모습이 연구원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막연한 환상을 깨고, 보다 현실적인 면을 고려하게 해 주었다면 좋겠군요. 이상, 프로들의 프로에서 보내드렸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음 화에서 뵙지요. 곧 후원이 끊겨서 불가능할 것 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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