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과(落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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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의 존재를 눈치챈 것은, 장맛비가 끝난 그 달이 끝날 무렵이었던 것 같다. 여느 때처럼 현관문 열쇠를 돌릴 때, 낯선 식물이 뜰에 자라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무언가 열매가 열리는 나무였다. 이파리 사이사이로 곳곳에 붉고 검은 열매가 보였다.
이파리 그림자에 작은 것들이 맺혀서 오돌토돌오돌토돌했다.


작지만 이상한 존재감이 있었다. 언제부터 여기에? 누가 심었지? 전자야 모르겠고, 후자의 답은 금방 떠올랐다.

또 우리 애비다.

2년 정도 전, 술에 취해 여동생 유키를 때린 이후로, 애비는 자기 방에서 숨죽이고 살고 있다. 어머니에게는 아직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같지만, 나와 유키에게는 말도 걸지 않는다. 이쪽도 쌩까고 살기로 작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좋지 않은 역효과를 일으킨 것인지. 자기 인생을 비참하게 마무리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가족으로부터 이격되어버린 애비는, 전위도예니 곤충식이니 하는 이상한 짓거리에만 손을 대게 되었다. 이 나무도 그 가운데 하나임이 틀림없다.



징베 들어서, 애비 방 쪽을 보지 않으려고 거실로 향했다. 거실 문을 열자 어머니가 한참 탁자 위에서 가내부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 츠바사……. 들어와라」


눈을 이쪽을 향하여 힘없이 미소짓는다. 가까운 슈퍼마켓에서 파트로 일하고, 지금 하는 가내부업. 더불어 몇 건의 알바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우리 가족 전체를 먹여살리기에는 수입이 한참 부족했다. 몸이 약한 어머니에게는 육체노동이 지나치게 가혹하여, 나날이 기운을 잃어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오빠, 거기 좀 서 있지 말고, 방해 되니까. ……아, 엄마! 아프다 그랬잖아! 나머지는 내가 할테니까!」


유키는 돌아오자마자 그렇게 말하고, 부업이 들어 있는 골판지를 낚아채듯 집어들었다. 힘든 일을 혼자서 떠안으려 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유키는 열심히 지탱하려 하고 있다. 한창 놀고 싶을 때일 텐데, 학교가 끝나면 곧장 귀가해 어머니의 일을 거든다. 나한테야 뭘 하든 짜증나고 건방진 여동생일 뿐이지만.

딱히 일도 없어서, 스마트폰을 주무르며 저녁식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머리가 아픈지 요리를 중단한 어머니가 유키와 교대하여 거실로 들어왔다. 눈치를 살피고, 좀전에 보았던 것에 대해 물어 본다.


「저기, 뜰에 있는 거」


「아아……. 그 나무.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또 이토씨가 화나서, 빨리 철거하라더라. 마음대로 저런 거 심으면 곤란하다고. 아, 제대로 사과해 놨으니까 괜찮아. ……다음에 너희 아버지한테도 말해야겠다」


윗집에 사는 이토인가 하는 아줌마는, 집에 대해서 나와 어머니에게 이러쿵저러쿵 불평을 해댄다. 대부분이 애비가 한 짓인데. ……동시에, 그 남자를 아직도 「아버지」라고 부르는 어머니에 대해서도, 약간 짜증을 느꼈다. 같은 집에 살고만 있을 뿐, 거의 이혼한 셈인데. 언젠가 「버릇이 되었으니까」라며 쓴웃음 짓던 어머니의 얼굴을 뇌내에서 쓸어 지웠다.

그 나무의 모습을 되새겨 본다. 「오늘 아침에 또」 이토씨가 화났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저 나무는, 그렇게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인가. 최근 들어 집에서는 스마트폰만 보고 있고, 뜰 따위에 눈을 돌리지 않았기에, 눈치채지 못했다. 어머니가 몇 년에 걸쳐 가꾸어 온 꽃들을 밀어 버리고, 그 그늘에 숨겨 보이지도 앟을 정도로 뻔뻔스럽게 잎이 만발해 있던 나무. 본래 꽃들이 누려야 할 수분과 햇빛을 송두리째 빼앗아,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랐을 것이다. 꽃이 우리, 나무가 애비. 우리 집의 심볼로 아주 딱 맞지 않는가.

저녁식사를 빠르게 끝내고, 내 방으로 돌아와 첨대에 얼굴부터 쓰러진다. 천천히 선잠에 들면서,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망상을 했다. 「애비만 없으면」 「확 사라져 버리면 좋을 텐데」 「혼자서 많이 고생했으면 좋겠다」


저 남자, 좀 죽어주지 않을까.



애비가 복도에서 죽어 있는 것을 어머니가 발견한 것은, 그 다음날 일이었다.



게재 보류 (1) - 기록 ██월 █일

해부 소감: 호흡기계통에 고형물이 막혀서 발생한 호흡곤란에 의한 질식사. 특별한 점으로는, 복부를 절개했을 때 위장에 나무열매로 생각되는 물체가 다량 잔존해 있었음이 확인됨. 이 나무열매는 호흡기계통을 막고 있던 고형물과 동류의 것으로 보임.



그 남자가 없어지기만 하면, 우리 가족을 둘러싼 문제는 모두 깨끗이 해결될 것 같았다. 하지만, 죽은 뒤 남은 웅덩이의 뒷처리는, 생전에 관계 있던 누군가가, 싫어도 해야 한다. 그 날 나는 휴일을 반납하고 애비의 유품 정리로 보내게 되었다.

애비의 방문을 열자, 숯과 산(酸)을 찐 듯한 독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목초액이다. 원래 제초제나 방충제로 쓰는 것을, 애비는 무슨 생각인지 몸에 쳐바르고 있었다. 건강법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목초액으로 인해 누런 피부와 자극취는, 가족과 애비 사이에 생긴 골을 더욱 깊게 만드는 요인일 뿐이었다.

최대한 의식해서 코로 숨을 쉬지 않으면서, 방 안의 물건들을 정리해 나간다. 딱 보기에도 수상한 계몽서, 들어본 적도 없는 신문의 스크랩, 자랑스럽게 장식되어 있는 잘 모르는 표창장, ……단단히 둥글게 말린 티슈. 온 방 안에 흩어져 있는 그것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분별해서 쓰레기봉투에 넣는다. 찌그러진 맥주캔이나 재떨이에 쌓여 있는 꽁초를 주워담을 때는 혀를 찼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술이고 담배고 건드려 본 적도 없다. 알코올도 니코틴도, 사람을 망가뜨리는 독일 뿐이니까. 애비만큼이나 너무 싫었다.


돈 될 것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는 방에서, 유독 눈길을 끌었던 것이 두 가지.

하나는, 아무렇게나 바닥에 나뒹굴던, 낡아빠진 「나대」였다. 날 부분이 녹으로 가득해서, 갈색으로 물들어 있는 것이 아무리 보아도 날카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이걸로 자를 수 있는 것을 찾으려면 뼈가 빠지게 힘들겠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또 하나는, 쓰레기봉투의 산더미. 요즘 세상엔 보기 드문, 내용물이 보이지 않는 검은 비닐봉지에 싸인 물체. 나 혼자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정도의 크기의 것이 대여섯 개나 방 여기저기에 나뒹굴고 있다.

설마 내용물이 티슈는 아니겠지. 그런 불안감에도 사로잡혔지만, 어쨌든 속을 봐야 분별이 된다. 봉지를 열려 했지만, 단단하게 결박되어 있어서 내용물을 꺼내려면 찢어버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맞다, 마침 딱 좋게 나대가 있잖아. 나는 나대를 집어 봉투 윗부분을 찌르고, 옆으로 당겼다. 의외로 쉽게 봉투는 잘리고, 내용물이 쏟아지져나왔다.



데굴데굴데굴데굴데굴데구르르.



적과 흑의 눈사태가, 순식간에 시야를 가득 메웠다. 바닥에 대량으로 흩어진 그것은, 낯이 익었다. 뜰에서 그 수를 나날이 늘려가는, 그 나무의 열매다. 나는 망연해서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왜 뜰의 나무의 열매가 봉지에? 그것도 이런 양이면, 겨우 1, 2주일 사이에 저 작은 나무에 열릴 수 있는 수량이 아니야. 슬며시 찢어진 봉지를 들여다보았다.

속에는, 좁쌀만한 크기의 구더기들이 크게 무리지어, 썩어서 반쯤 액상화된 나무열매에 들끓고 있었다. 방 전체에 시큼한, 독한 악취가 풍겼다. 방에 굴러다니는 다른 봉지들에 눈길이 간다. 설마, 이게 다 나무열매인가. 발효취에 민감한 파리가, 순간적으로 봉지에 꾀여들었다.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친 왼발이, 바닥에 떨어진 나무열매 하나를 밟아 버렸다.



뿌지직.



불쾌한 소리와 발에 전해지는 점액이 퍼져가는 감촉에, 전신의 털이 곤두섰다. 높여 있던 방석에 필사적으로 발바닥을 문질렀다. 그래도 한 번 발에 묻은 액체는 쉽게 빠지지 않고, 불쾌한 끈적임이 계속 넓어진다.

   아아, 짜증나, 불유쾌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또 혀를 차고 있었다. 스스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짜증이 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야가 좁아지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가슴 속에서, 분노를 가스삼아 담아내는 풍선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문을 난폭하게 열고, 큰 걸음으로 복도를 걷는다. 도중에 우두커니 서 있던 여동생과 어깨가 부딪었다. 유키는 「아 좀, 조심 좀 하라고」라며 노려보지만, 보통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다. 「하아? 미안 한 마디도 안 해?」라며 끈질기게 달라붙는 유키에게 「거 시끄럽네」라며 돌아보는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거기에 서 있는 것은, 한 그루의 나무였다. 구질구질하게 열매를 매달고,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왜?」


부르는 소리에, 제정신이 돌아왔다. 눈 앞에 서 있던 유키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갑자기 말이 없어진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솔직하게 사과하고, 봉지들을 한번에 다 꺼내 버리기 위해 애비 방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굉장히 리얼한, 환각이었다.


게재 보류 (2) - 기록 █월 ██일

그 나무 말씀이신가요. 뭐어, 확실히 도로 쪽으로 잎이 좀 튀어나와서 방해가 되기는 했지만, 그렇게 신경쓰일 만한 문제라고까지 생각되지는 않았는데요. 그 집 사모님이 전지가위 같은 것으로 매일 신나서 나무를 손질하는 것을, 옆집에 사니까 자주 볼 수 있었고요. 보면서 아주 소중한 나무구나 싶었지요.


・・・


파앙, 하고 마른 소리가 났다.

주먹 대신 손바닥으로 쳤던 것은, 때리는 것이 친딸의 얼굴이라서 나온 그나마의 양식이었던 것일까. 그래도 제대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해 메마른 유키의 몸은, 뺨을 맞은 충격으로도 쉽게 날아가 버렸다.


「……우와앗」


「유키. ……당신 그만 해」


뒹구는 장단에 벽에 머리까지 세게 찧어 신음하는 유키를 보며, 어머니는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시끄럽다고」


딸을 때려눕히고 그만하라고 외친 정작 본인, 애비는 혀를 차며 술로 불타는 목구멍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내 잘못이라는 거냐. 내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무 것도 모르면서. 너희들이 도박 좀 그만해라 그만해라 시끄러워서, 일부러 벌이가 되는 일을 찾아와서 했는데, 또 꺅꺅 소리를 지껄여. 너희들 어차피 그거잖아, 이제 내가 뭘 해도 다 마음에 안 드는 거잖아」


「……작작 좀 하쇼」


지껄여대는 아버지에게, 줄곧, 줄곧 참아왔던 말이, 그 때는 간단히 입밖으로 나왔다.


「뭐라?」


「사람 말 좀 들으라고! 매일 아침부터 등신처럼 술처먹고 담배피고, 네가 언제 고생을 했냐! 수상한 냄새 나는 짓만 하고 다니면서, 그때마다 돈 샐 일만 만들고, 언제까지 계속 이러고 살 건데!」


전부 사실이었다. 이런 정론으로 물러설 줄은 몰랐지만, 이 인간에게는 뭐라도 말을 해야 내 속이 풀린다. 그런 생각에, 그만 충동적으로 입을 열어 소리지르고 말았다.

순간, 쿵 소리가 울린 직후, 신체가 웅웅웅 하고 울렸다. 애비가 들고 있던 술병을 내게 내리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주루룩, 하고 시야를 붉은 것이 흐른다. 격심한 아픔과, 이마가 찢어진 출혈의 충격으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보고, 애비는, 그 남자는, 입속으로 뭐라고 우물우물 중얼거리더니, 「죽어라」고 중얼거렸다.

어머니는, 남자의 다리에 매달리듯 달라붙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필사적으로, 「하지 마. 하지 마」라는 말만 반복하는 것이 어렴풋이 들켰다. 엄마를 내려다보며, 남자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무언가 작은 소리가 들린 후, 옷깃을 잡고 자기 방으로 끌고 갔다. 나는 그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연 남자가, 마지막으로 이쪽을 돌아본다. 거기 서 있는 것은, 남자가 아니었다.


거기에는, 나무가 서 있었다.
시들어 마른 가지의 마디마디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대량의 열매가 맺혀 있다.


문이 저절로 닫힌다. 철컥. 하는 소리가 울린 뒤, 나무의 열매가 일제히, 가지에서 떨어졌다.


투둑투둑투둑투둑투두둑…….



・・・


  거기서 눈을 뜬 나는 이불에서 벌떡 일어났다. 용솟음치는 욕지기에, 아침부터 얼굴을 찡그리고 손으로 덮었다. 이 무슨 불유쾌한 꿈인가. 모든 것이 과거에 실제로 보고 들었던 광경과 판박이였다. ……마지막의 나무만 빼고.

그렇다. 그 날을 경계로, 나는 애비를 일상에서 셧아웃해버렸다. 어중간하게 상대해주려 하면, 그 남자는 기어오른다. 생활도, 가계도, 폭력도. 완전히 격리해 버리면, 그 남자에게 의미가 성립하지 못하는 것이 되었다. 자기 방에 틀어박혀 우리에게 간섭하지 않게 된 것도 그 덕분이다. 그리고, 지금은 남자 그 자체가 없어졌다.

완전한 자유인 것이다. 손에 넣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것이, 우리 가족의 눈앞에 펼쳐져 있다.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는, ㅏ무열매가 떨어지는 모습을 필사적으로 뿌리친다.

고통스러운 생활은 이제 끝났다. 가족 셋이서 즐거운 생활의 막이 올랐다.


정확히 반 년 전의 나는, 그런 식으로, 앞으로 기다리는 삶에 낙관적인 망상만 품고 있었다.


게재 보류 (3) - 기록 █월 ██일

사모님을 보고 있자니 알게 되어서요. 그래서 저는 좋은 마음으로 충고했던 거예요. 이제 그만 하라고. 이제 나이도 많고, 작은애도 많이 컸지 않느냐. 가계도 좋지 않은 것 같고, 무엇보다도 바깥양반이 저런 상태잖아. 그랬더니 갑자기 저를 냅다 때리고,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소리 지르고. 당시에는 저도 좀 머리에 열이 뻗쳤죠.

뭐어, 남편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금방 그럴 상황은 아니긴 했었지만요.



눈앞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청구서.

내용은 다양하다. 휴대폰 대금과 광열비, 장학금 신청을 하지 않은 만큼의 학비, 카드 독촉장. 그 대부분이 나 때문에 온 것임을, 분별하면서 짐작하게 된다.

아니야, 아니야. 엄밀하게는 내가 쓴 게 아니지. 이거는 가족을 다시 행복하게 만들려고 그만 지출이 늘어버린 결과일 뿐이다. 가구나 오디오기기를 교체한 것도, 요컨대 어머니나 유키를 생각해서 그랬던 것이고, 게다가 평소부터 노력하고 있으니까, 조금 오락을 즐길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러니까 이거는 가족의 지출인 셈이다.

손에 들고 있던 종이뭉치를 내던진다. 나 혼자의 책임이 아니니까, 이거는 엄마가 해 줘야 해.



부우웅.



엄마를 부르러 가려고 일어섰는데, 귓가에 불규칙한 날갯소리가 들렸다. 또 파리인가, 혀를 찼다. 애비 방에 있던 나무열매가 담긴 봉지에 꾀였던 파리들은 가능한 한 다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생존한 것들이 우리 집에 살면서, 지금도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 날갯짓을 한다.

당장 때려죽여 주겠다. 그런 생각에, 날갯소리 나는 쪽을 보고 나는 흠칫 놀랐다. 보통, 날고 있는 파리나 모기를 발견하면, 공중에 작은 검은 「점」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빠르게 비행하는 벌레의 잔상이다. 내가 눈을 돌린 그쪽에 떠 있는 것은, 「점」이 아니라 「공」이었다.

크다. 평소에 보는 파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거대한 벌레가, 완만하게 공중을 날고 있었다.



부우웅. 부우웅.



순간, 뻗쳤던 양손에 저항감이 생겼다. 하지만, 이 역겨운 것을 집에 내버려둘 셈이냐는 생각에, 내 손은 반사적으로 그 벌레를 때리고 있었다.



뿌지익



소에 전해지는, 너무 싫은 감촉. 왜인지, 기억이 난다. 맞아 이 걸쭉한 것이 퍼져나가는 느낌을, 나는 예전에도 느꼈었어. 솔직히 보고 싶지 않았지만, 모았던 손바닥을 살짝 벌렸다.

양손 대부분에, 벌레의 체액과 섞인, 검붉은, 끈적끄적한 점액이 묻어 있었다. 동시에 시큼한 악취가 코를 덮친다.

그 나무열매를 밟아 으깼을 때의 그것이라고, 손을 벌리기 전부터 이해하고 있었다. 마치, 벌레 속이 나무열매로 가득차 있었던 것 같은. 즉시 세면대로 가서, 흐르는 물에 손바닥을 비빈다. 더러운 색은 씻어낸 것처럼 보였지만, 코를 갖다대자 냄새는 아직 남아 있었다.

아아, 젠장. 불쾌하고 불쾌해서, 혀를 차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왜」를 생각하기 시작하자면 끝이 없고, 짜증만 날 뿐이므로, 생각은 멈추었다.


「……너 뭐하는 거야」


어느새 다가운 것인지, 등 뒤에 서 있던 유키가 쉰 목소리로 그렇게 물어왔다.


「아아, 마침 잘 왔다. 저 나무 열매가」


「나무열매? 그런 건 아무래도 됐고?」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내가 이렇게 불유쾌한데, 그게 「그런 거」? 「아무래도 됐고」? 어머니도 그렇고 이년도 그렇고 왜 다들 내 마음을 몰라줘.

뭐라 되받아치려는 내 눈앞에, 유키가 종이뭉치 같은 것을 들이댔다.


「이거, 뭐야? 너 도대체 무슨 짓 한 거야!?」


그것은, 가족공용 예금통장이었다. 비밀번호는 나도 유키도 알고, 긴급시에 돈을 인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2, 3일 정도 전에, 거기 들어 있떤 몇 십만 엔 정도가, 전부 인출된 것으로 되어 있다.


「돈 뽑은 거 나도 엄마도 아니야! 너밖에 없잖아! 우리 사정이 지금 어떤지 알아!? 어따 썼어, 왜 아무 상의도 없이 마음대로!? 당장 돌려줘!」


뭐야, 그런 거였나. 얼굴이 시뻘개져서 노호성을 지르는 유키를 달래듯이, 나는 설명한다.


「걱정 안 해도 돼. 2, 3주만 있으면 배가 되어서 돌아올 거니까」


「……뭐어?」


머리가 모자라서 그런지,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는 듯, 유키는 입을 떡 벌렸다.


「아니, SNS에서 착한 사람이 좋은 종목을 알려줘서. 그게 굉장한 이야기인데, 일반에는 풀린 게 아니야. 지금 당장 해야 무조건 남는 투자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창백해진 얼굴의 유키가, 와들와들 떨기 시작한다. 사람 말을 못 알아들은 걸까. 골계로다.


「우, 우리, 돈」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금방 불려서 온대도 그래. 나도 가족의 생활을 위해서 제대로 생각하고」


다 말하지 못했다. 유키가 내 뺨을 때렸기 때문이다.


「미진 소리 작작 좀 해! 어쩌면 좋아, 그게 우리 전 재산이란 말야!? 머리 이상해진 거 아냐!?」


얻어맞은 충격으로 멍해서, 유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왜 날 때려. 나는 가족들을 위해서. 그렇게 빙글빙글하던 사고는, 여동생이 신음하듯이 내뱉은 다음 한 마디에 얼어붙었다.


「오빠는 진짜 우리 애비하고 꼭닮았어」


……뭐?

눈을, 부릅뜬다. 일거에 머리에 피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애비를, 닮았다고?


「방 꼴 좀 봐. 저게 뭐야. 빈 술 깡통에 꽁초가 산더미. 너 매달, 아니 매일 얼마나 마시고 피우는 거야?」

아니야, 저거는 기분을 가라앉히려고 어쩔 수 없이 했던 거고. 그리고 나는 애비와 다르게 자제심이 있어서, 1주일에 하루, 아니 3일에 하루 정도로 절제를.


「애비가 뒈져서 좋기도 했지만 절망도 했어. 저런 인간이라도 집에 돈은 조금이라도 벌어왔으니까. 그래서 오빠가 대신 벌어오려나 싶었어. 그런데 기대했던 내가 등신이었지. 오빠는 계속 애비를 깔보았겠지만, 그럴 자격 없어. 너 같은 건 애비 이하의 쓰레기야!」

순간,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쿵 하는 소리와, 쥐어진 주먹의 통증이 울린다. 유키는 몸을 뒤로 젖히고, 등부터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무의식 중에 유키를 때리고 말았다.


「……거 봐, 애비 이하」


얻어맞은 것 따위 개의치 않는 듯, 바닥에 드러누운 유키는 나를 노려본다. 도중부터 싸우는 소리가 들렸는지, 어머니가 유키의 뒤쪽 너머에서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츠카사……?」


굳어진 얼굴이, 그 날 애비의 무릎에 매달려 애원하던 얼굴과 겹쳐진다. 어머니는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 마치 내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짐승이라도 된 것처럼, 그런.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마.


정신을 차려 보니, 발 밑에 어머니가 쓰러져 있었다. 배를 누르고 통증에 얼굴을 찌푸리며, 수면에 떠 버린 날벌레처럼 바르작거리고 있다. 내가 했다고? 아니야, 내가 아니야, 나쁜 건.

쥐고 있던 주먹을 폈다. 손바닥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그 나무열매 냄새. 나는 도망치듯 집을 뛰쳐나왔다. 도중에 애비 방에서 나대를 집어들어, 그대로 뜰로 향한다. 그 나무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울창하게 가지와 잎을 만발하며, 오돌토돌 열매를 맺고 있었다. 그 발치에는 떨어진 열매가 몇개인지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새끼, 때문이야. 나는 이를 갈았다. 내 생활을, 지금까지 방해했겠다. 나는 나대를 크게 휘둘러, 줄기를 찍었다. 순간 나무열매가 대여섯 개 정도 낙하한다.



후둑후두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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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나대는 줄기에 몇 밀리 정도 박혔지만, 그 이후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원래 나대란 베는 연장이 아니라 쪼개는 연장이다. 그런 것도 몰랐구나, 바보같은 애비. 나는 혀를 차면서, 온몸의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밀고 당기기를 계속했다. 그 때마다, 몇 개인가 나무열매가 지면으로 떨어진다.



후둑후둑후두둑.



후둑후둑후둑후두둑.



얼마나 그랬을까, 마침내 줄기에서 「우직」 소리가 나고, 나무의 체세가 기울었다.

끝이다. 나는 다시 한번 나대를 휘둘러, 찢어진 줄기에 꽂았다.



비키비키메키잇.



후둑후둑후둑후둑후둑후두둑.



나무는 다양한 소리를 내며 옆으로 쓰러져갔다. 몸을 일으킨 내 주위에는, 낙하한 무수한 나무열매들.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 그 중에 하나를 짓밟는다.



뿌지익.



나무열매는 저항도 못 하고 간단히 으깨졌다. 꼴 좋다. 나는 나대를 그 자리에 팽개쳐 놓고, 그대로 밖에 놀러 나갔다.



게재 보류 (4) - 기록 █월 ██일

여동생 유키쨩은 정말 참한 애였지. 매일 사과하러 다니고 그랬어요. 엄마가 어떤지도 알고, 자기가 지탱할 수밖에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다만 아들 쪽은 바깥양반을 닮아버린 것인지, 옛날부터 좀 건방지다고 해야 하나, 제멋대로라고 해야 하나. 최근에는 고함지르는 소리가 매일 밤 들려와서, 솔직히 무서웠어요.



발걸음이 무겁다. 술이 든 봉지를 한 손에 들고, 집 바로 근처까지 왔는데, 몸이 앞으로 더 나아가지 않는다. 마음이 편안한 장소가 집이었을 텐데, 지금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애비가 죽어버린 후, 머릿속에는 「어째서?」라는 물음표가 계속 떠오른다.

어째서 즐겁지 않지. 어째서 애비가 없어졌는데 가족 중에 내가 제일 눈칫밥을 먹게 된 거지. 어째서 내 뜻대로 안 되지? 뱃속에서 용솟음치는 분노로, 내 안의 풍선이 단번에 파열 직전까지 부풀기 시작했다.

……진정하자, 괜찮아, 괜찮다고. 이제 괜찮을 거야. 깨달았다. 지금의 우리 가족의 생활을 가로막고 있던 것은, 그 이상한 나무와 그 열매였다고. 그거를 볼 때마다 애비가 생각나서 풍선이 터질 것 같아. 내가 내가 아니게 돼. 그래서 베어버린 것 아닌가. 지금쯤 어머니도 유키도 나무가 없어진 뜰을 보고 틀림없이 기뻐하고 있겠지. 전에 유키와 어머니를 때렸던 것도 용서해 주고, 무시도 그만 하겠지.

나를 맞아주는 두 사람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자,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여느 때처럼 현관문 열쇠를 돌리면서, 문득 뜰에 눈길을 주었다.



나무가 살아 있었다.



곳곳에 빨갛고 검은 나무열매와, 그 사이로 녹색 이파리가 보인다. 마치 포도처럼 울룩불룩울룩불룩, 제멋대로 영글고 있다.

나는 열쇠를 떨어뜨리고, 나도 모르게 뜰로 달려갔다. 어제 분명히 베어버렸을 나무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뜰의 제자리에서 자라고 있다. 하, 하고 입에서 숨이 새어나온다. 그에 호응하듯, 가지에서 나무열매가 몇 개, 여러 개 떨어졌다.



후둑후둑후둑후둑후두둑. 데굴데굴데굴데구르르.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내 발밑에 굴러다니는, 산더미 같은 빨간색과 검은색. 징그러워. 풍선이 크게 부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절규하고, 무언가 급한 것처럼 지면에 떨어진 나무열매를 모두 짓밟았다.



뿌지익, 뿌직뿌지익, 뿌직.



페인트를 흩뿌린 것처럼 된 정원을 곁눈질하며, 나는 휘청휘청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잘라내야 한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가운데, 그것만 이해할 수 있었다. 저것 때문이다. 저 나무가 있으니까, 우리는, 나는, 행복해질 수가 없다. 자유로울 수가 없다. 내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는, 저 나무의 열매들이, 방해다.


베어내야지. 잘라내야지. 짓밟아야지. 으깨버려야지.


현관을 열고, 온 집안에 울리도록 큰 소리로 불렀다. 나대 어디 갔어. 어머니든, 유키든, 어느 쪽이든 좋으니까. 무시하지 말고, 빨리 가지고 와. …………대답이 없다.


「……어ー이? 나 왔다니….」


거기서 이변을 깨달았다. 이미 저녁 8시가 넘었으니까, 두 사람 다 귀가했을텐데, 모든 방에 전등이 꺼져 껌껌하다. 집 안이 너무 조용하다. 아무 소리도 안 나.


「어머니? 유키? 나 왔다니까」


가슴 깊은 데서 치솟으려는 불안감을 억누르듯, 강한 말씨로 목소리를 낸다. 역시,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침을 삼키려는데, 입 안이 바싹 말라 있음을 자각한다. 싫은 예감이 멈추지 않는다. 쿠웅쿠웅 하고, 전신이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

번쩍 번쩍 번쩍 방마다 전등을 켜기 시작한다. 현관, 복도, 거실……. 아무도 없다. 텔레비전을 켜 보니, 시끄러운 버라이어티 프로가 큰 음량으로 흘러나와서, 반대로 집의 조용한 이상함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았다. 부엌, 침실, 화장실……, 그리고 욕실.



뿌직, 하고 무언가 밟았다. 발바닥에 전해져 오는 감촉이, 직접 보지 않아도 답을 알려준다. 왜, 왜.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인다. 찐득, 하고 실처럼 들러붙는 발바닥을 닦을 엄두도 나지 않는다.

욕실로 이어지는 복도에, 붉은 나무열매가 드문드문 떨어져 있다. 아까는 없었는데.


「유키?」


욕실을, 들여다본다. 거기에는 속옷만 입은 유키가, 탈의실에 쓰러져 있었다. 반사적으로 달려간다. 안아 일으켜 몸을 흔들지만, 죽은 것처럼 반응이 없다. 어떡해야 하지? 구급차를 불러야 하나? 혹시 어머니도 다른 데 쓰러져 있는 건가?

패닉상태에 빠질 것 같은 한편으로 어딘가 냉정했던 내 눈은, 유키를 관찰하는 사이 「그것」을 발견해 버렸다. 오른쪽 빰에, 동그랗게 부풀어 있었다. 순간 여드름인가 싶었지마, 유리구슬이 통째로 들어갈 것 같은 크기의 그것은, 하루아침에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손은, 어째선지 그 부풀어오른 곳으로 뻗어나가, 손가락 끝으로 살짝 눌러 버렸다.



쑤욱. 투둑. 데굴데굴.



그런 소리를 내면서 부푼 데가 찌그러졌고, 거기서 익히 아는 것이 굴러떨어졌다. 내 무릎에 와서 멈춘, 그 나무열매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여동생의 몸에서, 나무열매가 뿜어져 나왔다.


천천히 시선을 다시 유키의 몸 쪽으로 돌렸다. 노출된 피부 곳곳에, 몇 군데나, 몇 군데나, 무수하게 무풀어올랐다. 불과 몇 초 후, 그것들은 우수수수 뒤집은 것처럼 낙하하고, 피부에는 연꽃 같은 구멍이 무수히.

나도 모르게 그 몸을 던져 버렸다. 유키는 목욕탕 쪽으로 나무열매처럼 데굴데굴 굴러서, 기둥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고 멈추었다.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휘청휘청 벽에 기대려 뻗은 오른손에, 어느새 나대가 쥐여 있었다.


그렇지, 나무를 베어버려야지.


그 생각만 하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 뜰로 나갔다. 도중에 집안에 굴러다니는 나무열매를 여러 개 밟았지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쓰러지듯 마당으로 달려간 나는, 나대를 옆에 내려놓고 나무 주변의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어설프게 베어서는 안 된다. 더 깊이, 뿌리에서 잘라 버려야. 정신없이 축축한 부엽토를 휘저었다. 잡초처럼 차라난 꽃들은 방해가 되어서 다 뜯어냈다.

더, 더 깊이. 그렇지 나대 같은 거 안 써도 되잖아. 뿌리부터 통째로 뽑아내 버리면. 파고든 양손이, 무언가 커다란 덩어리를 움켜쥐 것이 느껴진다. 이것이다. 온몸의 힘을 주어, 그것을 흙 속에서 단숨에 뽑아냈다. 처음에 나무뿌리인 줄 알고 들어올렸던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것은, 미술시간이 끝난 소학생의 물통과 같이 더러운 색의 흙투성이인,
잘록한 호리병 같은 모양에, 드문드문 손발이 불규칙하게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갓난아기처럼 생겼다. 등쪽에 빽빽하게 뿌리가 모여서, 거기서부터 나무가 자라고 있다. 아래쪽에 있는 움푹 팬 곳 세 군데가 눈과 입이라는 것을 알고, 내가 그것을 거꾸로 들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좀전에 본 유키의 신체의 기억과 겹쳐서, 손에 힘이 빠져 그것을 떨어뜨린다. 머리부터 떨어지며 「뿌직」 소리를 냈다.


그저 망연하게, 지면에 떨어진 그것을 바라본다. 그 때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공포나 징그러움이 아니라, 어찌할 수 없는 짜증과 무력감이었다.

도대체 뭐지 이것은. 도대체 어째서 내 주변에는 이런 이상한 일만 자꾸 생기는 것일까. 어째서 내가 하는 일마다 다 안 풀리지? 어째서 다들 내가 자유롭게 사는 걸 방해하는 거지.



후둑, 데굴데굴데구르르.



내 등 뒤에서, 나무열매가 하나 천천히 굴러왔다.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서 있는 것은, 어머니였다. 헤어스타일과 복장으로 간신히 어머니임을 알았다. 나무열매가 얼굴에, 팔에, 허벅지에, 아무튼 노출된 모든 피부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나무열매가 자라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집에 나무열매가 흩어져 있던 건 이 녀석 때문인가, 하고 묘하게 납득이 되었다.



「어, 어머」



아까 떨어뜨린 흙덩어리 쪽에서, 그런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다. 가슴 속 풍선이, 그 안의 가스가 경련을 일으켜 우득우득 소리를 낸다. 닥쳐.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머릿속으로 중얼거렸다. 느금마 아니잖아. 용건이 있으면 지옥의 애비한테나 말해. 이 사람은, 나의.


후둑후둑후둑후두둑.


어머니가 쉰 목소리로 신음한다. 그 진동만으로, 신체 곳곳에서 나무열매가 떨어져 이쪽으로 굴러온다.


후둑후둑후둑후두둑.


이상하게 부풀어오른 하복부를 소중하게 안은 채,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온다. 내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건가? 아니야, 다르다. 내가 뿌리뽑은 나무 쪽을 보고 있는 거다.   아아, 짜증, 불유쾌. 그러니까 그 남자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 그랬는데.


펑, 하고 풍선이 터지는 마른 소리가 들렸다.


「아, 무시하지 말라고」


나는, 나대를 들었다.








































그래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고 뜰에서 이야기하는 게 그만 들려왔을 때, 안되었지만 조금 안심도 되더라고요. 왜냐면, 그, 큰애는 솔직히 사람 구실 할 것 같은 미래가 안 보이니까요.

아주머니는 「심어야 해」였던가? 「낳아야 해」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소리를 지르면서 미친듯이 계속 울부짖고 있어서. 유키쨩이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하겠다」면서 필사적으로 달래고.

아들요? 그 때 어디 놀러 나가서 집을 비웠던 거 같은데.

















창문으로 비치는 아침 햇살을 받아, 천천히 눈을 떴다. 머리가 울린다. 과음해 버린 것 같다. 기억은 분명하지 않지만, 발밑에 흩어진 맥주캔을 보면 안다.

일어서서 세수하러 가는 도중, 현관 쪽에서 요란한 노크 소리와 노호성이 들려온다. 서막 참 대단하다. 며칠 전 인터폰 전원을 뽑아버리고 나서는, 매일 아침 저런 식이다.

이토씨가 무슨 말을 할지는, 이제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뜰에 자라난 「저거」는 뭐냐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 오늘도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세수를 하는데, 문득 뺨에 작은 여드름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너무 불안해져서, 혹시 주위에 뭔가 날붙이가 없나 찾는데, 복도에 내던져 놓은 나대가 눈에 들어왔다. 날 부분을 잡고 들어올린다. 찐득한 검붉은 것이 손에 묻었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날끝을 여드름에 대고, 주저없이 도려낸다.

도려빠진 뺨에서 허여멀건 지방덩어리와 시뻘건 피가 멈추지 않고 쏟아져나왔다. 나무열매 같은 건, 하나도 안 나왔다.


나는 안심해서, 거울을 향해 명랑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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