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잘 알겠습니다, 과장. 스트링 씨라고 했습니까?”
비서관은 보드에서 눈을 떼고 스트링을 쳐다봤다. 여태 한마디도 않고 있던 스트링이 마른 목소리로 답했다.
“네, 접니다.”
“직급이 어떻게 됩니까? 그러니까, 책임 권한이 어느 정도 있냐는 겁니다.”
어리둥절한 스트링 대신 화이트가 답했다.
“현재 저 연구원 팀의 팀장 대리로 있습니다. 자기 팀원에 대한 책임 권한은 충분히 있습니다.”
“충분히? 여긴 굉장히 부정확한 용어를 쓰는 군요.”
입술을 한 번 물어뜯은 스트링이 대답했다.
“팀원 영입과 배치에 관한 권한 빼고는 다 있습니다. 업무 배정, 업무 일정 관리, 결과 검토,인사 평가까지 전부.”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뭐, 좋아요. 적어도 자기 일에 대한 파악은 하고 있네요.”
비서관은 앞에 놓인 종이 파일을 뒤적이며 물었다.
“그럼 이 가넷 연구원이라는 분에 대해 묻겠습니다. 본인이 생각할 때 가넷 연구원은 평소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일을 열심히 하는 성격이었습니다.”
“…… 그게 다입니까?”
“다입니다.”
비서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습니다. 일을 마치면 따로 하는 일이 있었습니까? 운동이라던지, 취미 활동이라던지.”
“그런 개인적인 일까진 관여하지 않습니다.”
“자기 직장 동료에 대해 모른다? 하나도?”
“네.”
스트링은 여전히 비서관의 미간을 노려보며 답했다. 딱딱한 말투에 비서관은 팔을 파일 위로 떨어뜨리며 말했다.
“팀원에 대해 파악이 전혀 안 되는 겁니까, 협조하기 싫은 겁니까?”
“일에 대한 거 외엔 신경 안 쓸 뿐입니다. 그것보다 이게 다 중요한 질문이에요?”
“당연합니다. 평소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왜 저런 무모한 일을 저질렀는지 아니까.”
비서관은 종이를 들어 올려 펄럭였다. 가넷에 대한 기본 인사 정보일 것이다.
“당신네 재단에서 주는 이런 종이론 알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겁니다. 이름이랑 지금 하는 일이 뭔지 밖에 없고. 사진도 없고, 자기 주소도 번호도 없는 걸로 뭘 알아내란 겁니까?”
“재단 성격 상 보안이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노출 가능한 정보 외엔 기록할 수 없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비서관은 턱을 괴며 종이를 노려보았다. 옆에 앉은 거구의 남자는 수첩에 계속해서 뭔가를 적고 있었다.
“국장님, 실례지만 기록물을 외부로 반출하는 건 금지되어 있습니다.”
화이트의 말에 국장이라 불린 남자는 화이트를 흘끗 보며 말했다.
“그 쪽 사령부로 저희 명의의 정보 열람 신청을 넣었습니다. 허가는 난 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뇨, 아직 제가 직접 받은 공문이 하나도 없습니다. 수첩 넣어주시죠.”
국장과 화이트는 서로를 한참 노려봤다. 스트링은 탁자를 걷어차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청와대에 국정원에…… 살다 살다 별 걸 다 보네.’
“내일 아침에 직접 뽑아오죠.”
겉옷 안주머니에 수첩을 넣으며 국장이 딱딱하게 말했다. 화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질문 없으신가요? 시간이 꽤 늦었는데 오늘은 그만 돌아가시는 게 어떨까요.”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비서관은 스트링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팀장 대리라고 했는데, 원래 팀장은 어디로 갔습니까?”
그 말에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스트링을 쳐다봤다. 화이트, 기동 특무 부대장, 현장 요원, 근처 시설의 책임자, 그 외 요원 복장의 얼굴 모를 사람들까지.
스트링은 똑바로 비서관을 쳐다보며 말했다.
“죽었습니다.”
“저런.”
비서관은 금테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미안합니……”
“알만하군, 이 조직도.”
“뭐라고요?”
국장이 팔을 벌리며 말했다.
“느낀 그대로요. 대체 몇 명이 죽어나가는지. 조직 운영이 얼마나 어려우면 이렇게 쉽게 죽는다고 하나요?”
스트링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벌려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벌려 대답을 쥐어짜냈다.
“가넷은 아직, 안 죽었습니다.”
“그렇겠죠.”
이번엔 모든 사람의 시선이 국장에게로 쏠렸다. 비서관이 옆에서 국장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국장님, 그만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글쎄요, 안타깝게는 생각해다. 단지 전 그런 일에 익숙해서 그렇습니다. 여기 분들은……”
국장은 주위를 슥 둘러보더니, 스트링을 보고선 코웃음 치며 말했다.
“준비가 안 된 모양이군요.”
“씨발, 진짜!”
컨테이너를 걷어차며 스트링이 소리 질렀다. 화이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리 다칠라.”
“진짜 저 새끼들 뭐에요! 지들은 이 안전한 곳에서 얼마나 열심히 뛴다고!”
계속된 발길질에 컨테이너가 살짝 일그러진 듯 보였다. 스트링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교수님은 또 왜 그러세요! 저딴 허접 쓰레기한테 빌빌 기듯이 쩔쩔 매기나 하고!”
“어차피 진짜 정보는 하나도 안 줬잖나. 저런 사람들한테까지 기억 소거를 남발하고 싶지 않으니, 최대한 좋게 좋게 해야지.”
“하, 진짜……”
스트링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얼굴을 손에 파묻었다. 화이트가 말을 이었다.
“가넷에 대한 1차 수색은 회의 때 나온 대로 내일 아침에 바로 시작할 모양이야. 부대장이 그러더군. 최선을 다해 찾을 테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처음 듣는 얘긴 아니네요. 회의를 이렇게까지 질질 끌 때부터, 이미 알아봤습니다.”
화이트는 스트링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이만 밴에 올라타게. 숙소는 잡아 뒀어. 밤에 자야 조사에 들어갈 거 아닌가.”
화이트는 스트링을 달래며 밴으로 데려갔다. 계속해서 뭔가 말을 건네긴 했지만, 스트링은 그 말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머리에 열이 가득 차서 제 일을 안 하는 느낌이 들었다.
“잘 들어가고, 내일 아침에 보자고.”
스트링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문이 닫힌 뒤 출발한 뒤에도, 스트링은 마음 같아선 앞자리 등을 마구 걷어차고 싶은 심정이었다. 바로 앞에 앉은 사람이 특무 부대의 지휘관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어이, 연구원 님. 아까는 잘 참았어요. 먼저 화를 안 냈으면 내가 큰일 낼 뻔했어.”
스트링이 고개를 들자 옆에서 고글을 벗은 남자가 씩 웃으며 말했다. 스트링은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지금도 못 참겠습니다. 계속 소리 지르고 싶네요.”
“하하, 참아 주세요. 이따 숙소에 가서도요.”
남자는 손을 뻗으며 악수를 청했다.
“케일렙입니다. 케일렙 모랄레스. 들어온 지는 삼년 쯤 되었습니다.”
“저도 비슷합니다. 스티븐 스트링입니다.”
손을 떼며 케일렙이 씨익 웃었다.
“비슷하다는 건 짬을 얘기하는 거겠죠? 역시 짬이 되니까 인내심이 좋은가 봅니다. 전 어렸을 때 아버지가 워낙 꼰대였는데, 한 마디 할 때마다 개겼어요. 잘 참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래서 부럽네요.”
“옛날 기억은 안 지우셨어요?”
스트링은 살짝 고개를 기울며 물었다. 주로 현장에서 뛰다가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직원들은 아예 기억을 지우고 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지우기엔 옛날 추억이 너무 아쉽더라고요. 아버지도 그렇고. 꼰대라곤 해도, 그리운 사람이었으니까. 사령부 기지에 계신 고든 소령님과 비슷한 케이스죠.”
“맞아요. 그나저나 팀원이 다 오시진 않았나 보네요.”
케일렙은 앞을 슬쩍 보면서 말했다.
“네, 뭐. 지휘관님하고 저하고 또 다른 한 명. 이렇게 셋만 먼저 왔습니다. 나머지 부대원들은 원래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올 예정이에요. 한 삼 일이면 오지 않을까 싶네요.”
“희한하네요, 팀원 전체가 움직이지 않고 쪼개져서 움직이다니.”
“급한 상황이니까요. 안에 들어간 사람이 박사님 팀원이라고 들었는데요.”
“……”
스트링은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말이 없는 스트링을 보며 케일렙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시는 거 이해합니다. 아까 그 놈들 말은 저도 어이없긴 했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 느낌에 당신 팀원은 무사할 겁니다. 정말이에요.”
그 말에 스트링은 며칠 새 처음으로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위안이 되네요. 고마워요. 솔직히, 건물 부수고 다니는 분들이라 좀 거치실 줄 알았어요.”
“하하, 아뇨. 전 부수는 쪽 사람이 아닙니다. 제 전문은 요인 추적인걸요.”
“네? 아, 그러셨나요?”
밴이 멈춰 섰고, 시종 아무 말 없이 앞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부대 지휘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랄레스, 그만 내려라.”
“네네, 대장. 아, 박사님, 내일 아침에 뵙죠. 힘내십쇼!”
주먹까지 불끈 쥐어 보이며 케일렙이 하얀 치아를 빛냈다.
문이 닫히자, 차에는 다시 스트링 혼자 남게 되었다. 앞 쪽의 운전수는 가림막에 보여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찾아온 고요함에 스트링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박사님, 도착했습니다.”
한참 손톱을 물어뜯던 스트링의 머리 위 스피커에서 마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문이 열렸고, 스트링은 비척거리며 밖으로 걸어 나왔다. 스트링의 눈앞엔 이런 시골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호텔이 서 있었다. 척 봐도 10층 높이에 황금색 조명이 번쩍이고 있었다. 감상할 처지가 못 됨을 깨달은 스트링은 로비에 들어섰다.
“어서오십시, 아. 스트링 씨 되십니까?”
로비 카운터의 직원은 스트링을 보자마자 빙그레 웃었다. 스트링은 그제야 자신이 고글을 여전히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서둘러 마스크와 고글을 벗으며 스트링이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열쇠 여기 있습니다. 방은 414호입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고객님.”
직원이 건넨 카드키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탄 스트링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땀으로 엉망진창이 된 얼굴 위로 AR 안경이 코끝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완전히 지쳐버린 눈이 거울에서 마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샤워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문을 따고 들어간 스트링은 슈트를 하나씩 벗어서 침대 위에 던졌다. 침대 근처의 스위치를 켜자 은은한 주황빛 수면등이 들어왔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편안한 방이다. 거실 쪽 테라스로 캄캄한 숲 한 가운데에 하얀 점 같은 조명이 빛나고 있었다. 조명 가운데로 아까의 회색 건물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답답한 기분에 크게 심호흡하면서 샤워실에 들어가려던 스트링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손은 빈손이었다.
“제기랄.”
침대 옆을 살펴보니 침대 옆 옷걸이에 실험실 가운이 걸려있었다. 어쩔 수 없이 축축한 방호 바지를 껴입은 스트링은 맨 살 위로 가운을 위에 걸쳤다. 호텔 직원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서니 텁텁한 여름 밤 공기가 덮치듯 불어왔다. 스트링은 가운 가슴팍을 펄럭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길을 따라 한참 멀리에 편의점 불빛이 보였다. 걸음을 옮기며 뒤를 돌아보자, 도로 한복판에 서 있는 호텔 외엔 주위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을 외곽에 들어선 리조트 호텔인 듯싶었다.
“어?”
가까이 간 편의점 안의 사람 얼굴이 보일 무렵, 스트링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그는 곧 자기 입을 때리며 잽싸게 옆 길가 나무 뒤로 모습을 숨겼다. 고개를 살짝 빼고 아까 본 얼굴을 쳐다보니, 익숙한 얼굴이었다.
‘아까 그 떡대?’
비서관 뒤에 앉아있던 두 명의 직원들 중 하나가 편의점 계산대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깨가 들썩이는 걸 보니 말을 하는 듯싶었다. 맞은편에 선 나이든 점장이 손을 절래절래 흔들며 뭐라고 답하고 있었다. 스트링이 편의점 주위를 살피자 비서관이 타고 갔던 검은색 세단 차량이 바깥에 두 대 서 있는 게 보였다.
‘왜 여기에 있지?’
한참 말을 듣던 직원은 고개를 까닥하더니 편의점 바깥으로 나왔다. 보조석에 직원이 타자 차량 두 대가 동시에 움직였다. 차는 스트링이 있는 쪽으로 천천히 달려왔다. 스트링이 납작 바닥에 눕듯이 숨어 있는 사이, 차는 도로를 따라 계속 나아갔다.
차의 후미등이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스트링은 벌떡 일어섰다. 편의점으로 달려간 스트링은 주위를 살피며 문을 열었다. 들어서자마자 시원한 공기와 함께 점장의 상투적인 인사말이 들려왔다. 스트링은 곧장 계산대로 다가가 말했다.
“저기, 혹시 방금 전에……”
“아아, 이 옷이었네.”
“에?”
편의점 점장은 위아래로 스트링을 훑으며 말했다.
“아까 어떤 남자가 와서 물어보더라고요. 흰색 가운을 입은 사람이 혹시 여기 지나가지 않았냐고. 뭔 소린지 몰라 암말 않고 있었는데, 이거 보니까 그 말이 맞네, 맞아.”
“가운이라니, 어떤 사람이었죠? 누가 여길 또 들렀었나요?”
점장은 천장을 보며 눈을 찡그렸다.
“그러니까…… 며칠 전이었더라? 하여간 저녁 때 쯤 이었을 게요. 이쁘장한 아가씨가 그 옷을 입고 뭘 사러 왔더군요. 우유를 엄청 많이 사가던데. 여덟 통인가를 사가더라고요.”
“아가씨면, 어떻게 생겼었어요? 키라던가, 머리라던가……”
“키는 여자치곤 꽤 큰 편이었죠. 머리는 짧게 잘랐고. 무슨 척척박사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 기억에 남았는데, 아까 왔던 사람한텐 못 말해줬었네.”
점장이 고개를 스트링의 뒤로 쭉 빼며 말했다.
“아, 다시 오네.”
스트링은 황급히 뒤로 돌아섰다. 아까의 세단 중 한 대가 다시 돌아와 편의점 앞에 멈춰 섰다. 머리가 새하얗게 된 스트링은 뒷걸음질 쳐 음료수 코너 앞에 멈춰 섰다. 문에 달린 작은 종이 울렸다.
“어서오셔-.”
뒤에서 뚜벅뚜벅하는 구두소리가 들렸다. 스트링은 어색하게 음료수 자판대 앞에서 뒤돌아 선 채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잠시 동안 아무도 말이 없었다.
“……”
등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박사님?”
스트링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옆엔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서 있었다.
“……찰스?”
“여긴 어쩐 일에요?”
찰스는 태평한 얼굴로 물었다. 캔커피에 꽃힌 빨대를 쭉 빨아올리는 찰스를 어이없는 얼굴로 쳐다보던 스트링은 흠칫하며 곁눈질을 했다. 계산대 앞에 아까의 검은 양복의 직원이 서 있었다.
“핸드폰을 두고 갔군요.”
“아예, 그러시군요. 아, 아까 말했던……”
스트링이 뒤에서 필사적으로 손짓했다. 온몸으로 가위표를 보내는 스트링을 본 점장은 말꼬리를 흐렸다.
“…… 게 담배 달라고 했던가요?”
“아닙니다. 수고하세요.”
직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편의점을 나섰다. 쭈그리며 긴 안도의 한숨을 내뱉은 스트링은 다시 튕겨지듯 몸을 세웠다.
“내가 묻고 싶어요. 찰스, 여긴 뭐 하러 온 거에요?”
“헹. 이 쪽 기지에서 건강 검진 받고 올라오다가, 가넷이 여기에서 안 좋은 일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얼른 넘어왔죠. 박사님은 괜찮아요?”
“……아뇨. 별로요. 속이 울렁거리네요.”
스트링은 배를 움켜쥐고 일용품 쪽 코너로 발을 옮겼다. 속옷 세 벌과 셔츠, 바지까지 집고 생수 한 병을 꺼내든 스트링은 진짜로 배가 울렁거리는 게 느껴졌다. 찰스가 옆에서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와, 이 동네는 편의점에서 옷도 다 파네.”
“가끔 있더라고요, 이런 편의점.”
계산대에 물건을 올려놓고서 점장에게 스트링이 물었다.
“혹시 이틀 전에 그 아가씨가 뭐 특별한 말을 했었던가요?”
“우리 동네에서 이상한 일 없었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말해줬죠. 최근에 사람 한 대여섯이 숲에서 사라졌다고. 경찰도 와서 지금 수사 중이에요. 덕분에 해지고 나서부턴 안 그래도 사람 없는 동네가 더 적적해졌어.”
점장이 주름 짙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런데 아까 그 사람은 뭐요? 경찰인가?”
“어…… 저희 직장 동료에요.”
“직장 동료오?”
“아, 네. 같은 직장인데, 아까 그 아가씨가 휴가계를 오버해서 썼더라고요. 그래서 돈을 얼마나 쓰고 다녔나 확인하러 다니는 건데, 오늘 그 아가씨랑 만나기로 했거든요. 제가.”
횡설수설하며 스트링은 점장이 건네는 봉투를 받았다. 카드에 영수증을 돌돌 말아 건네며 점장이 씨익 웃었다.
“알겠구만. 아까 그 사람은 알면 안 되고?”
“에휴, 안 되죠. 회사에 끌려가요.”
“허허허, 알았네, 알았어.”
편의점 밖으로 나서자마자 스트링은 뻐근한 목을 부여잡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뒤따라 나온 찰스는 마을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 숙소는 저쪽이에요. 박사님은요?”
“아, 저는 저 반대편이에요. 내일 가죠? 기지 가서 봐요, 그럼.”
얼른 말을 끊고 돌아가려는 스트링에게 찰스는 이상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엥? 아뇨? 저는 내일부터 작전 장소로 올라오라던데요?”
“찰스도요?”
“네. 근처 지나가니까 협력한다고 요청 넣자마자 이 쪽 업무 들어가라는 지시가 바로 내려왔어요. 과장님 지시던데.”
잠시 할 말을 잃은 스트링이 반문했다.
“과장님? 화이트 과장님?”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 호텔은 세탁 서비스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꾸벅 인사하는 호텔 직원을 보며 스트링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방으로 올라가기 전에 만난 직원에게 요원 전투복 내의를 세탁해달라고 부탁하자마자 들은 말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비닐 봉지를 다시 챙기고서 자기 방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가넷은 저기 뛰어들기 전에 음료수를 그렇게 많이 사가고, 교수님은 찰스를 불러들이고…… 대체 뭐가 돌아가고 있는 거지?’
가넷은 만나기 전까진 속내를 알 수 없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격리 시설 설계 전문가인 찰스를 불러들인 화이트는 무슨 생각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분명 부산 기지 근처에서 파견된 전문 인력들이 있을 게 분명한데도, 개인적인 요청으로 따로 불러들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스트링은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방문 앞에까지 도착해 있었다. 문을 열고서 불이 켜진 그대로의 방에 봉지를 밀어 넣은 뒤, 스트링은 우선 가운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갔다.
‘다른 건 우선 제쳐두고, 씻고 우선 잠부터 자자. 내일 잘 하면 확보 작전에 투입될……’
애써 다른 생각을 밀어내며 가운을 옷걸이에 걸던 스트링은 그 자리에 얼어붙듯 멈췄다. 있을 수 없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운 왼쪽 가슴팍 주머니에 새겨진 이름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C. GA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