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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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부터 걷기가 힘들어졌다. 기지에서 500m 떨어진 곳에서 부터는 잡초들이 무성히 피어나고 바닥에는 쓰러진 풀들이 쿠션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그 풀들을 밟을 때마다 푹푹 꺼지는 느낌이 확 들어서 왠지 밑에서 끌어당기는 느낌이 강하다. 어찌나 푹푹 꺼지는지 식물이 땅에서 자라는 게 아니라 허공에서 자라는 듯한 느낌일 정도다.

“저기, 여기 원래이랬어?”
“아닙니다. 개체가 생기고 나서부터 그 주변에서 이 식물들이 생겨 난 겁니다.”

그 개체란 놈도 성가신데 그 개체주변도 정상이 아니라니, 한숨을 쉬면서 그는 계속 걸어간다. 겨우겨우 발을 옮겨서 계속 나아가보니 저 멀리서 우뚝 서 있는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건가. 꽤 크네.”
“너무 가까이 가시지 마십시오. 아직 특성이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그래. 알았어. 너희는 주변 좀 둘러봐 줘.”

쯔산은 요원들에게 주변 정찰을 맡기고 개체를 천천히 보기로 했다. 그 식물은 마치 잎을 다듬지 않은 엄청나게 큰 양파가 땅 밖으로 솟아오른 듯한 느낌이다. 줄기 부분이 나무 같은 껍질로 이루어졌으며 곳곳에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다.

“여기 평소 정찰은 어떻게 했어?”
“먼저 철조망에서 3명이 보초를 서고, 아까 마을에서 5명, 잡초부근에서 7명 정도 섰습니다. 원래 개체 주변에서도 섰었으나, 사고가 자주 일어나 현재 지금 여기선 정찰을 서진 않습니다.”
“그런가….”

바닥에는 잡초들이 누워져 있었으며 뿌리가 듬성듬성 땅 밖으로 솟아나왔다.

“여기 이 녀석 DNA는 조사해봤대?”
“예?”
“아니 뭐, 물론 우리 요원들한테 꼭 얘기해야 할 법은 없지만 대충 여기 연구원이 조사하면서 얘기하지 않았나.”
“후쉰 박사님께선 저희한텐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개체 샘플을 채집하고 가져가서 분석하시는 건 봤습니다.”
“그럼 여기 잡초들은?”
“이 풀에 관해선 조사한 바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녀석이 생기고 나서부터 이 녀석들도 생겨났다면서. 그럼 당연히 조사해봐야 하는 거 아니겠어?”
“그건….”

그는 콧방귀를 뀌면서 가방에서 비닐 백을 꺼낸다.

“자, 이거 받어.”

쯔산이 던진 비닐 팩을 받은 요원들은 어리둥절해했다.

“이것은 대체….”
“우리도 샘플을 채집하자고. 연구원 녀석들 밥도 중요하긴 한데, 우린 한낱 한시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잖아? 여기 정보 좀 알아내서 나쁠 건 없지.”
“후쉰 박사님께서 아시면….”
“괜찮아. 다 방법이 있어. 흠…, 일단 그 박사 우리한테 정보를 줄 린 없을테고. 조금 뜯어갈까.”

쯔산은 한 손에 비닐 팩을 들고 천천히 식물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겉으론 별로 내색하지 않았으나 그의 심장 소리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순 없다고 그는 다시 마음을 바로잡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말해?”
“어…. 넵. 조심하십시오.”

바스락바스락. 우거진 잡초를 밟는 소리가 귓속에서 점점 커진다. 쯔산은 식물의 가늘지만 꽤 큰 잎사귀 밑에서 멈춰 섰다. 그는 숨을 내쉬고 가위를 꺼내 팔을 뻗어봤다. 바로 잘라낼 수 있을것 같다. '습-후' 다시 심호흡하고 잎 끄트머릴 잡아당겨 가위를 가까이 댄다. 침이 고이고 등줄기에 땀 한 방울이 흐른다. 심장은 더욱 고동쳐 그의 손을 저절로 떨게 할 정도이다. 손을 다시 털고 다시 가위를 갖다 댄다-

“어!”
“왁!”

그를 계속 주시하던 요원들 중 한 명이 갑자기 내지른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그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재빨리 그는 머리를 뒤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그 식물한테서 떨어져 갔다. 그의 손에는 가위하고 잘려나간 잎사귀. 어찌어찌 잘 잘라낸 것 같다.

“하아…. 깜짝야. 아 뭐야. 놀랬잖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 땅 밑에서 뭔가가 움직였습니다.”
“뭐?”
“지휘관님이 서신 곳에서 얼마 안 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저 식물에서 연기 같은 게 나왔던 것도 같습니다.”

그는 자신이 서 있었던 곳을 바라봤다. 잡초에 싸여서 밑에 뭐가 있는지 확실치 않으나, 필시 저 녀석의 뿌리라고 그는 확신했다.

“…빨리 여기서 나가자. 여기 샘플 뽑는 거 잊지 말고.”

그와 요원들은 잡초를 뽑고 재빨리 개체한테서 벗어났다. 기지로 돌아가면서 그는 마을의 곳곳에 나 있는 잡초들도 캐두라고 했다. 기지에 가까워지자, 철조망에서 조금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러니까 그 녀석이 언제 돌아오는데!?”
“방금 마을 부근에서 무전을 넣었으니 이제 돌아올 것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이런.”
안 좋은 낌새를 느낀 그는 샘플들을 가방 안에 숨겼다. 샘플을 다 숨긴 걸 확인한 그는 다시 걸어갔다. 아무리 이 짙은 안개에도 묻히지 않는 소리의 주인공의 형체가 점점 보이기 시작한다. 철책의 대문에 도착해보니, 역시 킬리 박사였다. 신경질적인 눈초리가 철책에 있는 요원을 사정없이 닦달하다가 그의 몸이 시야에 들어오자 바로 시선을 거두고 바로 그에게 시선을 보낸다.

“후, 왔군요.”
“어…. 오랜만입니다. 킬리 박사님.”
“빨리 들어오세요. 후쉰 박사가 기다려요.”

그녀는 미간의 주름을 여전히 풀지 않은 채 그대로 기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는 살짝 가볍게 혀를 차며 기지 안으로 들어갔다. 기지 안에는 요원 한두 명이 기지를 청소하고 있었고 처음 본 듯한 중년의 한 남자가 문서를 살펴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중년의 남자는 쯔산요원이 들어온 것을 눈치챈듯하나 그냥 무시하는 것 같다. 그의 가슴팍에는 4등급 연구원 카드가 끼워져 있었다.

“저,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온 지휘관 쯔산요원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후쉰 박사입니다.”

쯔산요원이 먼저 인사하자 그제야 그는 인사를 받아줬다.

“듣자하니 어제 처음 왔는데 오늘 바로 개체한테 접근했다면서요?”
“네, 뭐 저도 그 녀석에 대해서 알아야 하니까요.”
“생각보다 꽤 무모하신 양반이네요.”
“네?”

정찰 다녀오면서 요원들한테 얘기를 들어 좀 빡빡한 양반이겠거니 하고 생각을 한 그였으나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했다.

“물론, 개체를 알아내가는건 나쁘지 않습니다만, 지휘관님께서 굳이 저 개체한테 직접 가실 일은 별로 없을 텐데…. 살짝 주제를 넘어가 버린 듯하군요. 안 그래도 사람없어서 저 멀리서 힘들게 오셨는데 그렇게 행동하시다가 죽으시면 그게 개죽음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지휘관님은 그냥 여기 건물에만 쭉 박혀있어도 누가 뭐라안해요. 지금 사태가 진정될때까지만 계시다가 다시 돌아가면 된단말입니다.”

쯔산은 상대의 건조하고 냉랭한 말투에 얼어붙어 잠깐 입을 열지 못했다. 청소하던 두 요원은 불편한지 재빨리 다른 방으로 옮겨갔다.

“뭐, 그래도 아무 일 없이 돌아온 건 다행이네요. 건질만한 건 있었나요?”
“아뇨. 별일 없었습니다. 꽤 크던데요.”
“그렇습니까. 흠, 초면에 좀 쌀쌀맞은 말을 해서 죄송하지만. 지휘관님께선 자기부하들한테 일을 맡겨두기만 하면 됩니다. 저 식물한테 골로 가버린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니까요. 알다시피 요원은 한낱 한시가 위태롭잖습니까? 자기 몸이 안전할 때 최대한 안전하게 둬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
“웬만하면 저 안으로 들어가지 마시길 바랍니다.”
“네. 뭐, 참고하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죠.”

박사는 문서를 들고 그대로 뒤로 돌아 자기 개인실로 들어가서 문을 잠가 버렸다. 쯔산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망치 같은 걸로 제대로 한 방 맞은 듯한 느낌이다. 머릿속이 점점 윙윙거리더니 서서히 제정신을 찾아간다. ‘뭐 저런 놈이 다 있나. 또 요원 깔보는 녀석하고 앵겨 붙었네. 한동안 피곤해지겠구먼. 하아, 역시 괜히 왔어.’ 후회스런 생각들이 그의 뇌 속을 돌고 있다.

“후-우, 한 소리 들으셨네요?”

귓등 너머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킬리 박사였다.

“그러니 왜 바로 나가셔서 한소릴 듣는 겁니까? 그냥 여기 계속 계시지.”
“아니, 뭐 전 저것에 대해서 알면 안 된답니까?”
“그거야 저 박사님께서 잘 설명해 주실 수 있어요. 굳이 요원님께선 아까도 말했다시피 저기까지 갈 필요 없었다고요.”
“허…”
“요원들 통솔하는 것도 문제없어요. 그 개체에 가까이만 안 보내면 실종되지도 않는다고요.”
“후…. 예예, 알겠습니다. 제가 잘못했네요.”
“…흥, 괜히 다치는 짓 하지 마시라고요.”

할 말이 다 끝난 듯 박사는 쏜살같이 복도로 뛰듯이 걸어갔다. 쯔산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짧게 숨을 내뱉고 가방을 들고 개인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방 안의 샘플을 보면서 그는 '적어도 후쉰 박사한테는 보이면 안 되겠네. 아무래도 몰래 연구소에 보내봐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샘플을 상자 속에 넣었다. 그러곤 자리에 앉아서 자신이 봐왔던 광경을 하나둘씩 떠올리고 정리해보기 시작한다.

“실례함다. 촙스 요원임다. 청소하러 왔슴다.”
“어, 촙스. 마침 잘 왔다. 이것 좀 몰래 연구소에 보내줘.”
“이게 무엇임까?”
“그런 게 있어. 후…. 여기 박사 좀 이상하지 않냐?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
“원래 여기 있던 요원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 박사님이 좀 저희들이 개입하시는 걸 싫어하신다고 하심다. 이전 지휘관하고도 말싸움이 자주 일어났다고도 했슴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그게 겉으로 말씀하신 적은 없었지만, 자기 것을 뺏어가지 마라며 으르렁거린다는 것 같다고 여기 요원들이 그랬슴다. 하지만 정작 실험 같은 것엔 D계급이나 저희나 똑같은 취급 한다고 함다. 이거 말고도 그런 적이 많다고 함다.”
“이상한 새끼 다 보겠네. 하아, 아주 제대로 피곤한 놈 만났구먼. 웬만하면 마주치지 말아야겠어.”

촙스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책장에 있는 먼지를 털었다.

“저희들은 최대한 신경 건드리지 않기로 하고 있슴다. …근데 저 지휘관님 질문 있슴다.”
“뭔데?”
“저야 예전부터 지휘관님 밑에서 일해 온 지 오래라서 자주 봤긴 했었지만, 킬리 박사님은 지휘관님께 유난히 떨떠름하게 대하시는 것 같슴다. 등급 상으론 낮은데 별 상관없이 막 대하시고.”
“그 사람이야 내가 일하기 전부터 재단에서 일했던 사람이야. 그래서 나랑 그렇게 별 어려움 없이 대하는 거고 나도 뭐 불만은 없어. 게다가 다른 동기들은 다들 위에 있는데 자기만 밑에 있으니까 주변엔 아무도 없지…. 그나마 내가 얼굴 알고 제일 가까운 사람이라서 저렇게라도 나한테 말을 붙이는 거야. 다른 사람하고는 말 붙인 걸 본적이 없어.”
“정말 괜찮슴까? 후배 요원들은 보기엔 좀 못마땅해 하는데.”
“아니 뭐 난 괜찮아. 그냥 그러려니 해. 겉보기엔 저래도 나쁜 사람은 아냐.”
“음…. 알겠슴다.”
"그래. 청소 마무리하고 좀 쉬다가 정찰 들어가라."
“넵. 알겠슴다.”

촙스 요원이 나가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봤다. 밖은 여전히 뿌옇다.

“후우, 그럼 잠깐만 쉬어 볼까.”

다음: 조사결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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