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비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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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퍼뜩퍼뜩 좀 올라오소! 속 터지긋네!」

「올라갈 힘이 없으니까 힘 좀 얻으려 예까지 왔지요!」

늙수그레한 남자 둘이 산비탈을 휘적휘적 걸어가고 있었다. 앞서 가는 남자는 세월의 풍파에 찌든 듯 새카맣게 탄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했고, 뒤따르는 남자는 낯짝도 희고 뒤룩뒤룩 살이 올라 있었다. 뒤따르는 이는 신발만 장화로 갈아신고 옷은 정장셔츠에 정장바지 차림이었다.

「이야, 아주 드글드글하구먼!」

앞서 가던 남자가 메고 가던 자루를 내려놓고 자루 주둥이를 끌르자 흰 낯짝이 감탄사를 질렀다. 자루 안에는 수십 마리의 뱀들이 드글드글 끓고 있었다.

「이쯤 하면 다 된 거 아닙니까?」

「거 서울양반 무식한 소리 허네, 이기 다 잡사(雜蛇)요 잡사. 꽃뱀, 무좌수 이런거뿌이 못 잡았다 카이. 이거는 다 고기나 건질라 카는 기고, 약으로 쓸라만 큰 걸 잡아야 하는 기요. 아니면 독한 걸 잡거나.」

「큰 거라 하면 뭐지요?」

「구렁이제! 독한 건 살모사고! 그런 걸 넣고 끼리야 약이 되고 처묵으면 좆도 빨딱 서고 그런 기요」

「아, 거 그냥 몸보신이라니까요. 아까부터 왜 자꾸 그런 말씀입니까.」

「몸보신 할라는 양반이 여자캉 같이 오나? 둘이 배낭도 따로 메고 왔는 거 보이 마누래도 아이자네?」 관악산, 북한산, 팔당댐 근처에 이런 사람들 많음. 특히 팔당댐이 최고

「……….」


「여보, 여기 이거 덫에 걸린 거 구렁이 아닙니까?」

큼직한 뱀 한 마리가 통발과 똑같이 생긴 덫 속에 몸의 상반이 끼어서 빼내지 못하고 하반과 꼬리만 애처롭게 비비꼬고 있었다. 땅꾼이 다가와서 살펴보더니,

「이건 구렁이가 아니고 능구리요」

하고는 통발 입구를 열고 막대로 뱀의 머리를 꾹 누른 채 살짝 들어올려 저 멀리 던져 버렸다.

「아니, 여보세요! 구렁이나 능구렁이나 똑같은 거 아닙니까! 지금까지 몇 시간을 여기서 헤맸는데. 그리고 능사주인지 뭔지 해서 능구렁이가 약효가 더 좋다는 건 서울촌놈인 나도 압니다! 해가 질려지 않습니까!」

"서울촌놈"이 씩씩거리자 땅군은 낄낄거리는 낮은 웃음소리만 내뱉었다.

「보소, 서울양반요. 능구리 비늘이 와 뻘겋고 꺼멓고 한 줄 압니꺼?」

「뭐라고요?」

「꺼먼 건 저승사자 도포자락이고, 뻘건 건 그 위에 묻은 피요.」

「……….」

이건 또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린가 싶어 뚱뚱한 서울촌놈은 한숨을 폭 쉬면서 뒷목을 젖혔다.

「구렁이는, 나같은 땅꾼노무시끼가 이런 말 하기 뭐하담서도, 토담집 담벼락이나 창고에 똬리 틀고 사는 뱀이요. 구렁이의 누른 비늘은 바로 추수 철 나락과 같소. 물론 요사이야 죄 뜯어불고 스렛또 지붕을 올려싸이 구렁이들도 산으로 쫓기나지마는, 본시는 그렇다는 기요.」

땅꾼은 아까 덫에 뱀이 걸린 걸 보고 끌렀던 뱀 자루를 도로 묶었다.

「허이 구렁이는 베풀어 주는 뱀이요. 사람캉 같이 살면서 쥐새끼들을 잡아먹고 자기 비늘처런 누런 나락을 지키주는 기요. 하지만 능구리는 그기 아이라. 이놈아들은 애당초에 산에 살믄서, 성질머리도 아주 더러워 미치제. 구렁이가 베풀어주는 뱀이마는, 능구리는 거두어 가는 뱀이요. 착히 살았든 못됐게 살았든 잘 살았든 몬 살았든 디지면 다 똑같은 데 가삐는 기요. 땅바닥 기는 벌게이맹쿠로 살든, 그 벌게이 잡아묵는 머구리맹쿠로 살든, 물 밖을 나갈 수가 없는 물괴기맹쿠로 살든, 지 꼴리는 대로 하늘을 날 수 있는 새새끼맹쿠로 살든, 다 똑같이 능구리 입 속에 들어가는 신세인 기고, 그 안에 들어가삐면 다 똑같아지는 기요.」

땅꾼이 장황하게 늘어놓은 동물의 세계 강좌에 발기부전 환자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럴싸하다 싶기도 하고 이런 촌구석의 촌로가 그런 생각을 하다니 — 사실 촌구석이기에 떠올릴 수 있는 발상이지만 — 놀라웠다.

「카이 인제 알겠능겨? 내사 와 능구리는 안 잡는지.」

해가 떨어지기 직전이 되어서야 둘은 살무사 한 마리를 뱀 자루 속에 잡아넣고 휘적휘적 마을로 내려왔다. 뱀탕을 끓이기 위함이다. "서울양반"은 좋은 구경 하겠다 싶어 따라갔다가 쓸데없이 생고생만 했다 싶어 다소 언짢았다. 아니, 사실 언짢아할 기력도 없이 피곤했다.


「금마 거 미칭개이라 그거!」

마루에 앉은 동네 사람이 빽 소리를 질렀다. 마당에는 모기를 쫓기 위해 풀을 태우고 있었다.

「또 뭔 구렁이가 어쩌고 능구리가 어쩌고 되도 않은 소리를 했나본데 마 기딴 개소리 싹 잊어삐소. 저놈아도 원래 그렇치는 않았는디, 한날 후로는 땅꾼누무시끼가 무슨 귀신이 들었나 능구리는 죽어도 못 잡게 하는 기요. 지만 그라문 말도 안 한다 카이. 동네 다른 땅꾼들도 능구리 잡아왔다 하면 풀어주라고 생 지랄을 다 해가, 그래가 능구리라도 잡으면 점마 저거 없을 때 샤샤샥 내리와가 후딱 뱀탕 끓이뿌고 치아야 된다 카이.」

「마 탕 다 끓었소 퍼뜩들 들오소 모기 뜯긴다」

「……….」


— 여가 어디고.

— 이기 뭐꼬?

[안 쏘나? 와 안 쏘노?!]

뒤에서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에쿠 소리라도 내고 발로 찬 놈을 되받아 후려 버리려 하는데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의 손에는 에무왕 소총이 들려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움직이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기 사람이 할 짓입니까?]

[뭐라꼬?]

[이 사람들이 무슨 빨개이라요! 스장님이 사람입니까? 우째 인두껍을 쓰고 바로 어제 아레꺼정 짖고 떠들던 사람들을 굴비두름 엮어가 다 쏴 직이삐라 지랄인겨! 우리 다 동네 사람들 아이가!]

[이 새끼가 니 미칬나? 니도 죽고싶나?]

[미친건 나가 아이고 스장님하고 저 우에 양반들이요. 내가 이따우 짓거리 할라고 순사 된 줄 아시오? 순사는 도로보노무 새끼들 잡고 사람들 밤잠 잘 자구로 지키고 그러는 게 순사 아니냔 말요!]

[그래가, 그래가 뭐 우짤낀데? 니가 무슨 힘있나? 낸들 무슨 힘있는줄 아나? 내라꼬 하고잡아 이러는 줄 아나 이 후레새끼야!]

뻑 하고 군홧발이 정강이로 날아들었다.

[셋 센데이. 뒤돌아가, 조준허고, 쏴라이. 하나!]

[살리주이소!]

뒤에서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하나, 둘, 열, 스물, 몇 개인 지 셀 수도 없는 [살리주이소!]가 뒤통수를 찔렀다. 그것이 너무 아파서였나, 눈이 꾹 감겼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것이 느껴졌다.

[두이!]

눈을 감은 채로 뒤돌아 섰다.

[서이!]

눈을 떴다.

[쏴라이!]

— 타닥! 틱! 틱! 타닥! 틱! 틱! 타다다닥!

에무왕의 틱틱거리는 발사음과과 칼빈의 찢어지는 발사음이 뒤섞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나는 어깨 견착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뒤에서 손바닥이 날아와 내 뒤통수를 후렸다. 경찰모가 날아갔다. 손바닥은 내 머리채를 잡고 땅에 메다꽂았다.

[야, 이 새끼야. 사람 말이 말같잖아? 이 씨벌넘이 지금 니 혼자 깨끗켔다 이기가?]

코피가 흘렀다. 그것을 닦아낼 새도 없이,

[그래 이 씨벌넘아, 니 혼자 깨끗허고 사람답게 죽어뿌라]

— 탕!

소리보다 먼저 느껴진 이마의 충격, 뇌를 헤집고 지나가는 탄자, 뒤로 확 젖혀지는 목, 그 탓에 눈에 들어오는 푸른 하늘. 모든 것이 찰나의 일이었다.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 줄줄 미끄러졌다. 그리고 구덩이 속에 이미 숱하게 쌓여 있던 시체들 옆에 굴러가 내 한 몸을 거기 보탰다.

땅꾼은 눈을 떴다. 거칠고 너무 거친 숨이 들어왔다 나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숲 속에 쓰러져 있었다. 일어나야겠는데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마비가 온 것은 아니고, 근육이 놀란 탓이라 금방 나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그냥 누운 채로 하늘을 보았다. 별이 쏟아질 것 같았다.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그는 목을 소리 난 쪽으로 돌려 보았다. 능구렁이가, 정말 큼직한 능구렁이가 스믈스믈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사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그는 이 뱀을 잡아 자루에 넣으려다 물렸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잠에 빠졌던 것이다. 그리고 꿈 —

꿈을 생각하자 숨이 멎을 것 같은 공포가 명치께에서 솟아올랐다. 그게 정말 꿈인가? 너무 생생한 꿈이었다. 그리고 꿈속의 자신에게 총을 쏘았던 그 사람은 분명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공포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충격과, 그리고 뒤이어 분노가 채웠다. 위아래 이빨이 따닥따닥 부딪히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즈음 능구렁이가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입을 벌리더니, 그의 얼굴을 핥았다. 뱀의 혀는 길고 축축하고 서늘했다. 그러나 그 혀가 한 번, 두 번 자신의 얼굴을 훝고 지나갈 때마다, 분노도 공포도 모든 상념이 차차 가라앉았다.

너는 누구냐?

그는 뱀의 눈을 마주보았다. 매끈한 유리 같은 두 눈 속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만이 가득했다.

잠시 뒤 땅꾼네 집의 마당에서 연기 한 자락이 피어올랐다. 땅꾼은 녹슨 깡통 속에 “참전유공자증서”를 쑤셔넣고 불붙인 성냥을 게 던져 버렸다. 증서에 쓰여 있던 이름은 그의 형의 이름이었다. 경찰이었던 형은 6·25 사변 때 공비의 총을 맞고 죽었다. 아니,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는 바작바작 타들어가는 종이쪼가리를 보면서, 한산도 한 개피를 피워물었다.

이게 작년 일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그는 다른 뱀은 몰라도, 능구렁이는 절대 잡지 않았다.
검은 비늘은 저승사자의 도포요, 붉은 비늘은 거기에 묻은 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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