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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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수습 기자로 생활하다 한달 만에 간신히 집에 들어온 그였다. 한달만에 씻었고, 한달만에 침대에서 편안히 잠들었다. 아니, 기절했다. 붙어서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그는 휴대전화를 보았다. 선배의 이름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그는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선배!"
"뭐 하는거야? 지금 온 도시가 발칵 뒤집혔는데!"
전화기가 쩌렁쩌렁 울렸다.
"나 카메라 들고가니깐, 당장 다리로 가! 사건이야, 사건! 취재라고!"
그러고선 전화는 끊겼다. 그는 저편으로 선배의 이름을 불렀지만, 이미 끊겨진 전화에서 소리가 나올 리 없다. 그는 멍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도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말인가. 사건, 사고, 화재, 방화, 살인, 테러. 어질어질했다. 시간은 꼭두새벽, 그는 어질러진 방을 가로질러 텔레비전을 켰다. 공중파 방송은 아직 나오지 않을 시간이었지만, 각 방송국의 리포터들은 황급히 상황을 보고하고있었다. 사건, 사고, 화재, 방화, 살인, 테러. 그의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 그는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못하고 주머니가 많이 달린 겉옷을 하나 걸쳤다. 잡히는대로 종이쪼가리와 휴대전화, 펜을 주머니에 구겨넣었다. 문을 잠그지도 않은 채 계단을 뛰어내렸다. 잠이 덜 깬 발걸음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 그가 입속으로 되뇌었다. 인생의, 인생의! 큰 길로 나왔다. 택시가 지나갈 때 마다 온몸을 던지다시피 흔들었지만, 다들 무시한 채 휙휙 지나갈 뿐이었다. 그나마도 다들 반대편 차선으로 달려갈 뿐이었다. 그는 집으로 다시 달려들어가서 자전거를 끌고나왔다. 자전거 선수가 된 것 마냥 페달을 밟아댔다. 골목을 꺾을 때 마다 자전거가 누었다. 오래된 자전거 바퀴에서 끼익끼익하고 소리가 났다. 한참을 달리고 있을 때, 그의 앞을 웬 사람들이 가로막았다.
"죄송합니다만 여기부터는 지나가지 못합니다."
위압적으로 서있는 그 사람들은 경찰같지는 않았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그들을 쳐다봤다.
"돌아가십시오."
그는 급히 핸드폰을 꺼냈다. 집에서 나온 뒤로 한시간 가까이 흘러있었다.
"돌아가십시오."
"저는 기자입니다."
"기자분들을 들여보내기엔 너무 위험합니다. 사건이 다 수습된 뒤에…."
"비켜! 난 기자라고!"
그가 그들에게 기자증을 보여주며 흔들었다. 그들은 꿈쩍도 안했다. 그는 앞으로 달려들었다. 내 인생이 달린 일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보다 더 힘이 셌다. 그는 뒤로 밀려나 엉덩방아를 찧었다.
"기자든 누구든, 관계자가 아니면 지금 출입할 수 없습니다."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달래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눈은 그들의 어깨 뒤를 향하고 있었다. 다리. 큰 강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다리 중 하나. 도심 이편과 저편을 연결하는 바로 그 대교.
"사람들의 알권리를 제한하면서까지 행해야 할 작전이 뭔지 차암 궁금하네요."
그가 비아냥거렸다.
그의 등 뒤에서 사람들이 역시 그를 비꼬아대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지금 그는 이긴 것이다. 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비로 이, 강은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강이었다. 그는 이, 강으로 들어가는 온갖 샛길을 알고있으며, 몸을 숨길 수 있는 갈대밭을 알고있으며, 물이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마른 땅인 곳도 알고있으며, 위험하기 때문에 높은 펜스를 쳐놨지만 거기에 뚫린 작은 개구멍도 알고있다. 자전거를 골목에 아무렇게 세워놓고, 그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시간은 어느정도 지나있었다. 하지만 그의 선배로부터 연락은 더이상 오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런 것을 고민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주머니를 뒤지니 펜이 하나 나왔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겉모습은 펜이지만 사실은 녹음기라 하였던가. 딸깍, 하고 녹음 버튼을 눌렀다. 펜의 클립으로 펜을 주머니에 잘 고정시켰다. 그는 다시 뛰었다. 핸드폰을 만져 소리가 안 나는 카메라를 켰다. 강가를 빙 둘러싸고있는 사람들은 강으로 들어가는 큰 길만 막고 있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하지만 입꼬리는 숨이 차 일그러져있었다. 그는 속도를 줄였다. 높은 갈대밭이 보였다. 지금 그가 서있는 곳은 갈대밭과 도로를 가운데에 둔 버스 정류장이었다. 여기는 그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도로가 꽤 넓어서 그는 차가 얼른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횡단보도가 없기 때문에 무단횡단을 해야한다. 8차선 도로. 그는 윗몸을 살살 흔들다가 용수철처럼 튀어나갔다. 차 한대가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지만, 결국 그는 갈대밭 안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 커다란 경적소리가 바람결에 흩어지고 있었다. 그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최대한 내지 않으며 갈대밭을 헤치고 지나갔다. 갈대잎에 베이지 않도록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겉옷을 최대한 끌어올려 얼굴을 가렸다. 그는 그가 떠났던 쪽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그의 얼굴로 바람이 달려들 때 마다 매캐한 화약 냄새가 났다. 도대체 강을 지키던 사람들은 누구였던가. 거친 말소리가 들려 그는 정지했다. 천천히 오른 쪽을 보니, 멀찍이 그 사람들이 보였다. 그는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포위망 안으로 들어왔다. 성공이다. 말소리는 띄엄띄엄 들렸다. 그는 둔치 가까이까지 다가갔다. 땅바닥에 거의 엎드린 채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최대한 줌을 당겨서 사진을 한장, 두장, 세장… 찍었다. 화질이 좋지도 않고, 그렇게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찍어댔다. 만족할만한 사진이 안 나오자, 그는 다시 천천히 갈대밭 안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조용히 갈대밭을 헤집고 앞으로 나섰다. 화약 냄새가 점점 가까워졌다. 아침 공기를 가르고 나는 그 이상한 소리를 그는 믿고싶지 않았다. 도대체 저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사람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 때 마다 그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사람의 목소리는 분간이 가능할 정도로 가까웠다. 그는 돌아가고싶었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귀를 찢는 비명소리가 났다. 도대체 저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는 약간씩 몸을 떨었다. 비릿한 냄새, 화약 냄새, 사람들의 고함소리, 믿기지 않는 총 소리, 자신의 발자국 소리, 어지러이 흩어지는 그들의 발자국 소리, 풀숲을 헤치며 조심히 나아가는 소리, 풀숲으로 마구잡이로 들어오는 그들의 소리,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다시 돌아갈까.
"그 쪽 조심해!"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조심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조용했다. 테러범일까, 그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이상한 무기를 들고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일까. 소리가 안 나는 무기로 말이지. 그는 실없이 웃었다. 그의 머리 위로 꺼먼 그림자가 잠시 드리웠다. 격해지는 총소리가 들렸다. 믿고싶지 않았다. 하늘에서 사람 한 명이 툭 떨어졌다. 그는 웃고있었다. 도대체. 그는 주저앉았다. 여기서. 그는 그래도 웃고있었다. 무슨 일이. 군인처럼 옷을 입고있는 그 사람의 머리에서 불그죽죽한 액체가 스며나올 때, 그는 웃음을 그쳤다. 그는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비명은 다행이 손바닥을 넘지 못했다. 그는 그가 어디있는지 헷갈렸다. 그는 그가 무엇을 보고있는지 믿고싶지 않았다.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그는 앉은 채로 발을 굴렀다. 어린아이처럼 울고싶었다. 뒤로 물러섰다. 갈대가 그의 밑에서 바스락거렸다. 몸을 들썩였다. 당황한 그는 울고있었다. 비명은 다행히 손바닥을 넘지 못했다. 그는 숨을 헐떡였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그는 앞으로 기어갔다. 손을 입에서 떼었다. 그는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 강가를 지키던 사람들은 풀숲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아무렇게나 으깨진 몸에서 옷을 벗겨냈다. 그는 자신의 옷을 벗고 허겁지겁 그 사람의 옷을 입었다. 그는 중얼거렸다. 발각되면 나도 죽어. 그는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렸다. 나는 죽고싶지 않아. 그는 중얼거리고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렸다. 여기서 들키면 죽어. 그는 중얼거리고 중얼거리고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렸다. 여기서 나갈 수 없어. 그는 중얼거리고 중얼거리고 중얼거리고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렸다. 여기서 들킬 수는 없어. 그는 마지막 신발까지 다 벗겨 자신이 신었다. 옷이 약간 헐렁했다. 신발은 조금 컸다. 허겁지겁 녹음이 되는 펜을 아무렇게나 찔러넣고, 수첩을 챙겼다. 그는 기었다. 일어서자니 다리에 힘이 없었다. 푹 눌러쓴 전투모에 앞머리가 눌려 눈을 찔렀다. 죽은 척을 할까. 사람들의 말소리와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는 필사적으로 기어 그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 방향은 그가 그토록 떠나고 싶어하는 그 사건과 소동의 중심지였다. 다리에 힘이 붙자, 그는 후들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곧 돌부리에 발이 채여 앞으로 거꾸러졌다. 그는 머리를 땅에 박은 채 훌쩍였다. 뒤에서 누가 목덜미를 잡아챘다.
"여기서 뭐해! 죽고싶어?"
"살려주세요!"
그의 목덜미를 잡아챈 사람과 그가 동시에 부르짖었다. 그 사람은 그의 목덜미를 놓았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소리높여 울었다. 아주 어린아이처럼 울부짖었다. 뭐라고 말해야하는지 머릿 속에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용서를 빌어야하는지, 어떠한 사실을 말해야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냥 울었다. 그 사람은 그런 그를 약간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그 사람은 한숨을 내쉬었다. 입꼬리는 한쪽이 비스듬하게 올라갔다.
"어이, 신참."
그 사람이 그에게 말했다.
그는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신참.
"이거 봐, 이렇게 교육을 해도 정작 집어넣으면 강아지 새끼처럼 꼬리를 만다니깐. 참나."
그 사람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죄… 송……."
그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방금 죽은 그 불쌍한 사람은 신참인 것일까.
"정신이나 차려! 정신 놓으면……."
큰 소리가 났다. 그 사람은 뒤를 돌아봤다.
"에라이. 여기 있으면 방해만 된다! 후방으로 빠져!"
후방은 또 어디란 말인가. 그는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 사람은 이제 화난 것처럼 보였다. 그 사람은 그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세웠다.
"저 쪽이잖아, 저 쪽! 끝까지 이렇게 방해만 할래! 아주 가서 그냥……."
그 사람은 그를 한쪽으로 밀어버리고 달려 사라졌다. 그 사람이 뭐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는 그 사람이 가리킨 쪽을 향해 달렸다. 신참. 그렇다면 그의 분장이 제법 괜찮았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이제 살 수 있는 것일까. 그는 갈대잎이 그의 뺨을 베는지도 모르고 달렸다. 갈대밭이 끝난 그 시점, 그의 얼굴에는 마냥 행복한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그의 시야 끝에는 그가 한번도 보지 못한 커다란 괴물이, 강가에서 작은 사람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 괴물은 사납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무서울 정도로 그 주변은 조용했다. 그는 그 광경에 온 몸이 굳었다. 두려움을 넘어서 모종의 희열마저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상자를 후송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후송하는 사람들과 반대편으로 무기를 들고 뛰쳐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난 죽지 않아. 그는 너무나도 느긋하게 부상자가 가는 쪽으로 걸어갔다. 부상자에게 응급처치를 하던 사람들이 그를 쳐다봤다.
"괜찮아요?"
그 중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그는 활짝 웃었다. 그러자 그에게 물었던 그 사람은 옆의 동료를 힐끔 쳐다봤다. 동료는 관자놀이 부근에서 손가락을 빙글 돌렸다.
"신참인가봐. 하여간 뭘 교육을 시켜도……."
그는 투덜거리는 소리를 뒤로한 채 걸어갔다. 그런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튀었지만, 하지만 너무나 튀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그를 한심하게, 혹은 불쌍히 여겼다. 그는 방긋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번 취재, 누가 믿기나 할까?"
넋이 나간 채로 웃고있는 그를, 어떤 이가 조심스럽게 인도했다. 그는 부상자들과 함께 차에 실려, 그 곳을 떠났다. 그 괴물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그는 다시 진정할 수 있었다. 차근차근 겪은 일을 생각해냈다. 하지만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져 산산조각 난 것만은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는 지금 그가 본 것이 사실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옷 주머니에 꽂힌 펜에 모든 것이 녹음이 되어있겠지만, 녹음만으로는 부족했다. 그 때 왜 정신을 놓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만 정신을 차렸다면, 핸드폰으로 그 빌어먹을 괴물을 찍었을텐데. 하긴, 그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기는 했다. 순간 피가 흘러내리는 그 시체가 생각났다. 그는 황급히 입을 손으로 막았다. 안그래도 부상자들 가운데 섞여서 그 시체가 저절로 생각나는데. 그는 필사적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최대한 행복한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이번 취재를 다른 사람들이 믿을만하게 잘 꾸며내서 신문에 싣기만 해도 성공이다. 다행이 이송자들은 심하게 다친 사람들을 돌보느라 그에게 신경도 안 썼다. 이 상황을 몰래 찍어놓으면 아마 조금 더 신빙성이 있는 기사를 적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조용히 바지 주머니를 더듬었다. 오른쪽 한 번, 왼 쪽 한 번. 그리고 그의 얼굴은 흙빛으로 질렸다. 핸드폰이 없었다.

그는 그가 탄 차가 멈출 때 까지 핸드폰을 찾지 못했다. 내린 다음에는 이송자가 그의 옆에 바짝 붙어있었기 때문에 주머니를 뒤지지도 못했고, 무엇보다 부상자들을 옮기는 소란을 틈 타 도망칠 기회도 놓쳐버렸다. 기사는 둘째치고 여기서 사기친 것이 걸리면 그는 그대로 죽을지도 모른다. 왼쪽 가슴에 붉은 천조각을 매달고 총 든 군인들 앞에서 서있을지도 모른다. 죽기 싫어서 죽은 사람의 군복을 훔쳐입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는 입술을 악 물었다. 호랑이 동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던가, 그 괴물이 난장판을 쳐놓은 곳도 어찌어찌 빠져나왔는데 설마 저 군대 하나 못 빠져나올까, 그는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이렇다할 기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저 멀리서 경비가 부상자들의 신원을 하나 하나 파악하며 다가오고있었다. 그는 입술을 질겅질겅 짓씹었다. 경비는 마침내 그의 앞에까지 다가왔다. 경비는 두 다리로 서있는 그를 보았다.
"이 사람은 멀쩡한데?"
경비가 그의 옆에 서있는 이송자에게 물었다.
"좀 여기가 약한지, SCP를 보자마자 정신이 나간 것 같아."
이송자가 답했다.
그는 이송자의 말에 바보처럼 웃었다. 미친놈처럼 행세를 하면 혹시 넘어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참 나……. 훈련은 뭐로 받은거야?"
경비가 투덜거렸다.
"개목걸이는 어딨어?"
그는 그냥 활짝 웃었다.
"아니 웃지 말고, 너 이름이랑 혈액형이랑 뭐 그런거 써있는 목걸이 어딨냐고."
"잃어버렸냐?"
경비와 이송자가 동시에 물어댔다.
"이거 일이 복잡하게 되겠구만. 지금 정신 나가버려서 답도 못할 것 아냐. 이름 기억나?"
경비가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진짜 복잡하게 되었구만. 자네는 나 대신 이 일 좀 맡아줘. 확인 방법은 알지?"
경비가 이송자에게 말했다.
"암. 몇 번 해봤지."
이송자는 순순히 자리에 남았다.
"따라와."
경비는 그의 어깨를 붙잡고 길을 안내했다. 그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다잡았다. 일단 첫번째는 어떻게 넘어갔지만, 그 다음 어떤 것이 올지 몰랐다. 이 어깨를 놓기만 한다면 곧장 뛰쳐나갈테지만, 경비는 그를 끝까지 놓지 않았다. 경비는 그를 데리고 작은 초소로 들어갔다. 초소라기보다는 작은 경비실에다 동사무소를 합쳐놓은 느낌이었다.
"자… 여기다 손 올리고……."
경비가 그의 손을 패드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냉큼 손을 떼었다.
"손 올려."
경비가 그의 손을 꾹 눌렀다.
"안 올리면 신원 확인이 안 되잖아."
경비의 말에 그는 필사적으로 손을 떼려고 했다.
"아이, 이 자식이? 야, 너 신원……."
경비가 그의 손을 으스러지게 붙잡았다.
"신원을… 확인 해야……."
몇 초간 그렇게 패드 위에 눌러놓고선 곧 그의 손을 놓았다.
"나도 편하고 너도 편하지. 도대체 뭘 봤기에 저렇게 미쳐 돌아온담? 정신자라도 가진 녀석인가."
경비가 탁자 너머로 컴퓨터를 확인했다. 그는 재빨리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잠시 뒤 경비도 그의 뒤를 따라 달려나왔다.
"저 새끼 잡아!"
경비의 고함이 들렸다.
그는 필사적으로 도망갔지만, 다리에 총을 맞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다리가 아팠다. 사람들은 그를 끌고가서 지혈을 해주고 진통제까지 놓아주었다. 그래도 다리는 아팠다. 이제 곧 그 시체 꼴이 난다는 것을 생각하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속이 안좋았다. 하지만 토하면 안된다고 그는 계속 생각했다. 그는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온통 하얀 방이었다. 정신병원같았다. 그는 이제 어떻게 될지, 그의 운명을 곰씹어보고 있었다. 최대한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좋은 쪽은 없었다. 그는 다리쪽에서 올라오는 통증을 느끼며 책상을 꼭 잡았다. 이제 더이상 희망은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살아나갈 수만 있다면, 그는 생각했다. 살아나갈 수만 있다면.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어차피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이다. 그리고 자신은 기자이고. 그는 다시 마음을 굳게 먹었다. 바로 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살아나온 사람이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 남자의 복장은 허술했다. 머리는 자르는 것을 잊어버린 듯 자라있었고, 약간 헐렁한 칠부바지에 슬리퍼를 꿰차고 있었다. 그나마 그가 걸치고 있는 실험복 가운과 옆구리에 끼고 있는 타블렛 피시가 그의 지위를 짐작하게 했다. 그는 남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뭔가 묘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가면이었다. 그는 이 와중에도 내심 놀랐다.
"안녕하세요?"
남자가 유들유들하게 인사했다. 그는 고개를 어색하게 까딱였다. 남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지문을 조회해보니 범죄자는 아니시고. 엄……."
남자는 잠시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남자가 타블렛 피시를 집어들었다.
"기지 관리자 여사님은 파일을 선호하시는데, 뭐 그렇게 구닥다리를 지금까지 쓸 필요가 있을까요? 아, 여기있군요. 기자님?"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바싹 긴장한 채 남자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가면때문에 표정의 변화가 거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닐라 스카이란 영화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기자가 아닌가요?"
남자가 물었다.
"아, 아뇨. 맞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수습기자죠."
그가 말했다.
"응… 고개를 갑자기 흔들길래……."
남자가 타블렛 피시를 옆에 내려놓았다.
"자, 그러면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아마 순순히 대답해주시는게 좋을것입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는 법이거든요."
남자는 자신의 말에 웃었지만, 그는 굳어버렸다. 그의 표정을 봤는지, 남자는 곧 웃음을 그쳤다.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그냥 농담이니까요. 자, 첫 번째 질문. 기자님은 어째서 여기까지 흘러들어오셨을까요?"
"사실……."
그는 잠시 생각했다.
"오늘 강가에서 아침 운동을 했는데 길을 잃었달까요."
"진짜?"
남자가 비꼬듯 말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뜻이 뭐냐면요."
"너무 티나는 거짓말이었나요?"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지끈거리는 다리때문에 인상을 찌푸렸다.
"저는 기자에요. 그것도 수습기자요. 저는 특종을 잡고싶었고, 그래서 제가 아는 샛길로 흘러들어오다보니 이렇게 된겁니다."
"음. 좀 말이 되는군요. 하지만 그 대답으로 풀리지 않는게 있어요. 당신의 그 옷은 어떻게 설명하실래요? 그냥 특종을 잡고 싶어서 들어온 민간인 기자가 우리 특무부대의 군복을 입고있다고요? 하!"
남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건 제가 살려고 입은겁니다."
"살려고… 요?"
"네, 살아남으려고요."
"살아남는다라."
"제가 갈대숲을 지날 때……."
시체가 하나 하늘에서 떨어졌지. 그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입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침착하자. 그는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살아나가는 것을 상상했다. 행복한 상상을 했다. 간신히 말이 나왔다.
"…위험한 소리들이 들렸거든요. 총소리라던가."
"아하. 그래서 죽은 사람 군복을 빼입었구나."
남자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남자를 쳐다봤다. 겁에 질린 눈빛이었다.
"이해해요. 뭐 살아야겠다는데."
남자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하나 꺼냈다. 그 앞에 던졌다.
"갈대밭에서 발견했어요. 아주 죽이 되어버린 우리 특무부대원 옆에서 발견했어요. 당신 옷도 있었고."
"제가 죽인거라고 생각하진……."
"아. 뭐 어떤 형태로 곤죽이 되었느냐에 따라 어떻게 죽은건지는 척 보면 딱이죠."
남자는 또 다시 웃었다. 그는 저 남자의 우스갯소리에 질려버렸다.
"무튼 그 특무부대원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그렇다 치고……. 네. 당신은 특종을 잡으러 몰래 잠입했다가 뭔가 신변에 위협을 느껴서 곤죽이 된 부대원의 옷을 벗겨 갈아입고 여기까지 오게되었다. 맞나요?"
"네."
"그럼 두 번째 질문을 할까요? 뭔가 이상한 괴물 못 봤어요?"
그는 잠시 망설였다.
"확신은 못 하겠지만……."
"아, 확신하셔도 됩니다. 실제로 있는 녀석이니까요."
"괴물……."
그가 말을 흐렸다.
"맞아요. 괴물이죠. 그 녀석 때문에 이백오십몇명이 죽었어요. 음. 갱신은 끝났고요. 방금 잡혔다고 소식이 들어왔거든요."
"거 참 다행이군요."
그는 진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제 다리 좀 어떻게 해 주실래요? 엄청 욱신거리고 아픈데."
"그건 안되요."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그가 물었다.
"그러세요. 무슨 대답이 돌아오는지에 대해서는 책임 안 집니다."
남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괴물, 뭡니까?"
"아. 그거요? SCP요."
"에… 에스…"
"S, C, P. 에스, 씨, 피."
남자가 또박또박 발음했다. 그는 남자를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괴물따위를 우리는 SCP라고 불러요. 당신들을 해치지 못하게 이 기지 안에 넣어서 보관하고 있고요. 정말 죄송한 말입니다만, 당신이 오늘 본 그 괴물, 즉 SCP는 우리 측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탈출한 놈입니다."
"이거 기사로 쓰라고 줄줄 읊는건가요?"
"당연히 아니죠."
"그럼 알려주고나서 총으로 쏴 죽이려는건가요?"
"그건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는 민간인에게 그런 비인간적인 방법을 접어둔지가 한참 되었거든요. 대신 당신의 기억을 지워드릴겁니다. 아마 이 방을 나서면 당신은 저와의 대화, 당신이 보았던 그 괴물, 당신 앞에서 죽이 되서 널브러졌던 우리 대원 그 모두를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더 물으려다 말았다. 하긴 저런 괴물도 밖을 나돌아다니는데 기억을 자유자재로 지우는 것이야 못 할 것이 뭐가 있는가. 그는 심호흡을 한번 했다.
"뭐, 사실 당신에게 물을 말은 얼마 없어요."
남자가 책상을 툭툭 쳤다.
"당신 신원은 이미 파악을 다 했고, 신문사에 물어보니 당신 신원을 정확히 알려주더군요. 우리와 적대적인 단체 소속이 아니라는건 확실히 알았고……. 이제는 기억소거를 받는 일만 남았다고요."
"뭐 죽이지는 않는다, 이 말인거군요."
그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요."
그가 중얼거렸다. 다리가 쑤셨다. 그는 눈을 감았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남자의 테블릿에서 경쾌한 알람음이 울렸다. 그는 게슴츠레 눈을 떴다. 남자는 테블릿 피시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축하해요. 기억소거 투여를 허용하는 허가서가 드디어 나왔네요."
남자는 테블릿 피시를 내려놓았다.
"따라오시죠."
남자가 일어섰다.
"여기서 받는거 아니었어요?"
그가 물었다.
몸을 움직일 때 마다 다리가 지끈거렸다.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당연히 아니죠. 잠시 따라오세요. 가는 동안……. 아이큐 테스트 비슷한 것을 할겁니다. 아무래도 뇌를 다루는 것이라 좀 이런 저런 테스트를 해야해요."
남자는 저 혼자 문을 열고 나갔다. 그는 절뚝거리며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복도는 계단보다는 오르막길이 더 많았다. 다행인 일이었다. 그는 중간중간 쉬었다. 다리는 점점 더 아파왔다. 다친 쪽의 바짓가랑이가 점점 축축해졌다. 그는 건물을 관찰했다. 복도 곳곳에 마크가 그려져있었다. 화살표 세개가 원 안을 향하고 있었다. 그 마크는 그가 입고있는 옷에도 그려져있는 것이었다. 건물 안에서 보이는 사람들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휙휙 지나갔다. 대부분은 공사장 인부로 보였다. 건축 도면을 들고 왔다갔다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는 그런 사람들을 천천히 구경하며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한쪽 다리를 끌며 드디어 그는 남자가 서있는 곳 까지 갈 수 있었다. 남자는 비상구처럼 생긴 문 옆에 서있었다. 남자가 서있는 곳에는 이 층의 도면이 그려져있었다. 남자는 친절히 문을 열어주었다.
"올라가세요. 저도 뒤따라 갈게요. 아무래도 다친 사람이 뒤에 따라오니 불안하더군요."
남자가 말했다.
그럼 목발을 주던가 휠체어를 태우던가. 그는 속으로 꿍얼거렸다. 그는 끙끙거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층계참을 몇 번 지났다. 묘하게 층계가 길다고 생각했다.
"아. 저기 문 보이시죠?"
남자가 그의 등을 톡톡 쳤다. 그는 남자가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저기 문을 열고 들어가세요. 약간의 테스트가 있을겁니다."
"테스트 뒤에는요?"
그가 물었다.
"뒤에는 뭐가 있긴요. 아마 흰 옷을 입은 의사선생님이 당신에게 기억소거제를 줄겁니다. 당신은 그러면 내일부터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 되요!"
남자가 두 팔을 벌렸다.
"아. 다리는 조금 아프겠지만요."
남자는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마지막 계단까지 화이팅."
그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남자는 그 자리에 서서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가 문을 닫았다.

남자는 지친 듯이 휴게실 소파에 앉아있었다. 남자 옆에는 만만치 않게 지친 표정의 여자가 앉아있었다. 남자는 후드를 푹 눌러쓰고있었다. 쓰고있던 가면은 벗은 채였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따듯한 김이 오르는 잔을 홀짝이고 있었다.
"당신은 정말 대단하달지."
여자가 앞에 놓인 과자를 집어들며 말했다.
"뭐가요?"
"들어온 민간인을 그대로 격리절차에 갈아넣었잖아요."
"아."
남자는 슬쩍 비웃었다.
"재단에 있으면서 그 정도 일도 못하면 이 자리까지 못 올라왔어요."
여자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손에 집었던 과자를 내려놓았다.
"웬 일이셔요, 과자를 다시 내려놓다니."
남자가 놀리듯 물었다.
여자는 잠시 생각을 했다.
"이제 그 SCP는 확실히 격리된거죠?"
"암요."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몇 명을 죽인거죠?"
"사상자 예순여덟명, 부상자 백구십칠명."
남자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심리적 충격으로 한동안 복귀를 못 하는 사람이 일흔다섯명. 그 중 거의 반이 특무부대 소속 대원들. 몇 번의 심리 치료를 받은 다음 복귀 가능한 사람들이 또 여든한명. 물질적 피해는 기지의 43%가 파괴된 것, 그리고 도로가 부서진 것이 있고. 그 SCP가 탈출하면서 다른 SCP들의 격리 실패가 발생할 뻔 했지만, 다행이 초기에 수습되었죠. 민간인은……. 딱히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한 명."
여자가 말했다.
"민간인 사망자 한 명, 그리고……. 또, 우리 잘못으로 애꿎게 죽은 사람이 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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