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프 박사의 사직서

 
O5 평의회의 모든 의원들에게

지금은 펜을 들기도 싫지만, 이 빌어먹을 상황을 타개하려면 어쩔 수가 없군요. 오늘 부로 난 재단에서 나갈 겁니다.

19기지는 이제 없습니다. 젠장할 브라이트 원숭이도, 콘드라키 자식도, 웬만한 SCP엔 눈도 꿈쩍 않던 미친듯이 유쾌한 친구들 전부가 저세상 사람이 되어버렸단 말입니다. 내가 담당하던 SCP들도 전부 한줌 재로 변해버렸습니다. GOC는 아예 증발했고 미국 정부도 옛날의 영광만 남긴 채 사라졌습니다. 신을 믿지는 않지만, 오 주여 맙소사. 난 어제 하룻밤 사이에 재단에서 살아오던 모든 기반을 잃었습니다. 당장 O5 위원회가 날 믿어줄지도 난 확신 못하겠군요. 보증 서주던 내 착한 멍청이들이 없으니.

좋습니다. 그렇게 날 못 믿겠다면, 내가 본 것을 모두 적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겠구만. 당신네들이 처박혀있던 17기지에도 폭격기가 집적댔을진 몰라도 대부분의 공격은 워싱턴과 19기지에 집중되었습니다. 버섯 구름만 5개는 봤고 후시아틴 숲에서 쓰이던 모든 병신같은 무기들도 거기 있었죠. 염산 수조가 깨지고, 기계 좀비가 들끓고, 방사능 잔뜩 묻힌 조각상이 콘드라키 목을 꺾으려 달려들고, 시체 위에 녹색 젤라틴이 떨어지고… 난 그날 비번이라 숙소에서 자고 있었는데 건물이 그따위로 흔들려대니 버틸 재간이 있겠습니까. 엽총을 집어들고 복도로 뛰쳐나갔죠.

많이도 죽었지. 매정한 소총탄이 라이츠의 목덜미를 꿰뚫었을 때 우리가 지른 비명을 당신들이 알기나 합니까? 기어스가 살아나온, 아이스버그가 갇혀있던, 브라이트가 기어들어간 콘크리트 더미 위에 떨어지던 폭탄들을 상상이나 할 수 있냔 말입니다. 에버렛은 갑자기 뿅 하고 사라져버렸고 케인은 불더미 속에서 완전히 지져졌습니다. 콘드라키는 목비틀린 왕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죠. 그 아수라장 속에서 내가 구해낸 인간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장담하는데, 그 날의 19기지를 제치고 생지옥이라 불릴 수 있을 곳은 달리 없을 겝니다. 기어스 박사가 잡아끌고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내 시체도 그 폐허에 멋쩍게 누워 있었겠지요.

자, 이미 공습은 끝났으니 걱정 없겠습니다, 그렇죠? 그럴리가 없지. 놈들이 재래식 무기만 가지고 이 모든 타격을 해냈다고 생각합니까? 제국 녀석들이 가장 먼저 공격한 곳이 바로 그린란드 기지입니다. 원환체를 보관하고 있던 바로 그 곳 말입니다. 놈들은 우리가 대응할 만한 수단을 없애놓고, 프로이센 지부의 447-KO를 가지고 농간을 부린 겁니다. 어떻게 아느냐고? 멀쩡하던 지반이 무너지고 직원들이 증발해대는데 눈치 못채는 게 병신이지. 그딴 위험한 물건이 우리 통제를 벗어났는데 당신들은 목에 밥이 넘어갑니까?

이제 SCP 대상도 왕창 풀려나 버렸고, 라인 강변의 촌놈들이 때린 선전 방송으로 재단의 존재도 까발려졌으니, 선택의 여지가 많아보이진 않는군요. 댁들은 19기지를 버린 원죄를 짊어지고서, 장담컨대 세상에 나서야 할 겁니다. 모든 악재를 방관한 책임을 지란 말입니다, O5 요원 여러분. 물론 그 전에 이 초췌한 중년 박사 한 명을 해임하는 것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알토 클레프, 51년 1월 2일

 
 
 
 
 


SCP-447-KO 배출 문서 기록 31-4
«이전 문서 | 목록 | 다음 문서»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에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