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소

para

sgnnmbr1 9/12/2003 (화) 02:23:15 #18379367


나는 트럭을 운전해서 먹고사는 사람이다. 주로 화물을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일을 하는데, 특성상 오래 운전할 때가 많다. 시간 내에 물건을 옮겨야 하다 보니 끼니는 인스턴트로 때우고 밤잠을 줄여 가며 운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뉴스에서도 가끔 졸음운전으로 인한 화물차 사고가 나오지 않는가. 위험한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다.

나라고 예외는 아닌지라, 일이 많은 날에는 새벽까지 운전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온종일 운전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물론 무척 졸리고 피곤하다. 그럼에도 도로 휴게소를 하나하나를 지나칠 때마다 `다음 곳에서 쉬자…`라며 일 분이라도 시간을 벌려고 한다. 그래도 너무 졸린 경우에는 위험하므로 꼭 쉬어준다. 밤을 새워가며 운전하는 동료들도 있지만, 이것은 일종의 내 원칙이다.

sgnnmbr1 9/12/2003 (화) 02:34:22 #18379367

서론이 길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road

여기에 올리려고 따로 찍었다. 이 부근이 내가 일을 겪은 장소이다.

알다시피 어젯밤에 비가 많이 왔다.
목적지가 거리가 좀 되는 데다가 초반에 길까지 막혀서 밤까지 도착을 못 한 상태였다. 차창은 빗방울에 가려 잘 안 보이고, 도로는 온통 젖어서 미끄럽고, 안개까지 껴서 운전하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뭐, 늦은 시간에 지방 쪽 도로라 차는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해야 하나. 헤드라이트도 별 소용이 없고 차선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이미 늦었지만, 덜 늦기 위해) 액셀을 밟고 있었다.

위 사진에 나온 도로를 지날 때쯤이었다. 분명 낮잠까지 자 두었는데도 불구하고 피곤이 몰려왔다. 눈꺼풀을 뜨고 있기가 힘들었다. 차 안에 오래 있어서 공기가 탁해져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을 열어도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아마도 꼬인 생활 패턴 때문이리라, 생각하며 기를 쓰고 버티려 했다. 장시간 운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알 거다. 일정한 템포를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사두었던 커피도 마시고 졸음 껌도 씹었다. 그런데도 반신욕을 하는 것처럼 몸이 묘하게 이완되며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고개가 떨어지고 어깨가 들썩이고 눈앞이 흔들릴 때마다 트럭의 바퀴가 아찔하게 차선을 걸쳤다. 난간을 들이박을 뻔하고 나서야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내비게이션으로 가까운 휴게소를 검색했다. 최소한 밖 공기도 쐬고 뭐라도 먹으면 정신이 들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작동하지 않았다. 버튼을 눌러도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낯선 경로로 가는 길이라 출발할 때 분명히 켜 두었는데 말이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하는 수 없이 휴게소가 나올 때까지만 마저 차를 몰기로 했다. 비가 그쳤고 주변에는 스산한 안개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음습한 분위기가 불쾌했기에 빨리 사람과 조명이 눈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엔진에서 들리는 윙윙 소리와 타이어와 지면이 마찰하는 소리가 유일한 소음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길가에 차를 세울 고민까지 하던 도중 휴게소가 등장했다. 안개 사이로 밝은 표지판이 비친 것이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는 길로 향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어야 했다. 낮에는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큰 도로에 나 있는 휴게소 입구인데도 불구하고 무성한 잡초가 도로를 뒤덮고 있었으니까. 뻗은 손을 연상시키는 풀들이 트럭 겉을 스칠 때마다 서걱서걱 소리가 들렸다.

도로가 끝나고 휴게소의 밝은 불빛이 보이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휴게소는 큰 건물 하나와 주차장으로 이루어진, 아주 전형적인 생김새였다. 나는 주차장 한편 끝에 트럭을 세우고 요깃거리를 사기 위해 차 밖으로 나섰다.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몸을 스치자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휴게소 본 건물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런 평범한 모습이었다. 가게와 식당이 딸린 튼 건물과 그 옆에 작은 화장실이 달린 구조였다. 분명 조명들은 모두 들어와 있고 건물도 번듯한데도 불구하고 겉모습은 폐건물 같았다. 주위가 온통 두꺼운 덩굴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덩굴들은 모두 붉은색이었다. 커다란 손이 휴게소를 움켜쥐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던 것 같다. 그제야 주위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차장에도 차 한 대 없었고, 건물 안에서도 사람의 인기척은 없었다. 아무리 새벽이라지만 너무나도 조용했다. 바람도 서늘한 것이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보통 이런 곳에는 나처럼 휴식을 취하려는 트럭들이라도 보이기 마련이다. 정말 아무도 없었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만이 소름 끼치게 들려올 뿐이었다.

store

편의점의 모습이다.

내부의 편의점에도 사람이 없었다. 매대와 상품들은 모두 방금까지 관리되던 것처럼 깨끗했지만, 먼지가 쌓여 있었다. 손으로 훑어보니 꽤 두꺼웠다. 주변의 유일한 흔적은 먼지 위에 찍힌 내 발자국이었다. 사람이 다닌 지 오래된 모양이다. 그렇다면 왜 불이 모두 켜져 있지? 관리인은 어디 있는 거야? 의문이 맴돌았지만 일단 둘러보기로 했다. 혹시 몰라서 사진도 찍었다. 같이 올린다. 포장된 음식들은 모두 유통기한 내였다. 나는 소보로 빵 한 개를 집어 들고 아무도 없는 계산대에 지폐를 올려둔 채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bath

화장실. 맨 끝 소변기는 나오지 않았다.

다음으로 간 곳은 화장실이었다. 물도 잘 나오고 조명도 밝고 청소도 깨끗이 되어 있었다. 맨 끝 소변기에 갈색의 무언가가 덕지덕지 붙어있던 것만 빼면 말이다. 검붉은 색의 이상한 액체가 소변기 하수구에서 역류해 나오고 있었다. 흘러나온 그것은 소변기를 타고 내려와 바닥의 배수구로 흘러 내려갔다. 그쪽에서 무언가 썩는 듯한 냄새가 났기 때문에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볼일을 보고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려 할 때, 머리 위의 전구 하나가 지직거리더니 깜빡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구가 고장 난 줄 알았다. 접촉이 불안정한 것처럼 빠르게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깜빡이는 전구 개수가 점점 많아지더니 이내 화장실의 모든 전구가 깜빡이기 시작했다. 지직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각 전구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눈이 부셔서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천장에서 무언가 미친 듯이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천장을 부수고 내려오려는 것처럼 말이다. 쿨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맨 끝 쪽 소변기에서 붉은 액체가 아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액체들이 바닥의 배수구로 미처 다 빠져나가지 못해 역류해 나와 신발을 적셨다. 다른 소변기들에서도 역류해 나왔다. 내가 방금 손을 씻은 세면대도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비릿한 썩은 내가 진동했다. 두드리는 소리가 오른쪽에서, 왼쪽에서, 바닥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천장에 금이 가며 틈으로 붉은 액체가 떨어졌다. 나는 뒷걸음질 쳐서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밖에 나와보니 휴게소의 모든 조명이 깜빡이고 있었다. 건물 전체가 감전된 것 같았다. 사방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벽과 천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건물이 흔들리면서 덩굴의 마른 잎이 흔들리며 스치는 소리가 온 공기를 메웠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트럭으로 뛰어갔다.

트럭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세게 닫고 시동을 걸었다. 사이드미러를 보니 건물 전체가 들썩이며 움직이고 있었다. 금이 간 틈으로 촉수처럼 길쭉한 무언가가 빠져나와 흔들리더니 벽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틈새로 검붉은 액체들이 배어 나오며 바닥에 흥건한 웅덩이가 생겼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사방을 메웠다. 내가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아 출구로 향할 때쯤에 엔진 소리를 뚫고 뒤에서 무언가가 포효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뒤돌아볼 수 없었다.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지나가는 차들의 경적을 듣고 나서였다. 나는 핸들에 얼굴을 대고 누워 있었다. 고개를 드니 햇빛이 눈을 찔렀다. 트럭은 고속도로 한 쪽에 세워져 있었다. 바삐 움직이는 차들이 뒤에서 달려오다 경적을 울리고는 재빨리 옆으로 비켜 옆으로 스쳐 갔다.

주위를 돌아보니 어제 휴게소를 찾던 그 길이었다. 안개는 모두 걷혀 있었다. 아마도 깜빡 잠들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지독한, 악몽을 꾸었다고 말이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순간, 비닐봉지가 만져졌다. 꺼내 보니 소보로 빵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기어올랐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봉지를 뜯고 빵을 반으로 갈랐다.


불쾌한 냄새와 함께 검붉은 액체가 배어 나왔다.





평가: +8+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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