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결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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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에 온 지 약 8일째. 쯔산은 개인실에서 노트에 그려진 지도를 보면서 다시 요원들이 보고한 걸 정리해봤다. 지도에는 격리기지와 폐허가 된 마을, 그리고 개체가 있는 곳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통로가 거기 말고도 마을 쪽에 3곳인가 더 있었다고?”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새로 발견된 3통로 모두 그때 당시 들어가서 나온 방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 방에 대해선 발견한 것은 없나?”
“방에 연결된 통로는 총 8개, 1개는 철문이 세워져 있어서 막혀있었고, 4개는 마을, 1개는 기지 쪽, 나머지 두 개는 개체에서 약 200m 떨어져 있던 곳이었습니다.”
“이전 마을 사람들에 대해선 알아낸 것은 없어?”
“그게, 자기들도 잘 모르는듯합니다.”
“그래…. 근데 통로 중에 철문으로 막혀 있었다고? 거기 통로가 갱도로 이루어지지 않았었나.”
“네, 거기만 중간에 전체가 철로 둘러싸인 채로 막혀있었습니다. 그리고 문 중앙에 이런 문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C.I’

“이건 아마도 분명…. 그거로군. 용케도 살아 돌아왔네.”
“아마도 그 철문 쪽이 그 사람들의 본거지로 통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당분간 열릴 기미는 없을라나…. 아직 지부 쪽은 정리 안 됐지?”
“네, 그때 당한 이후로 계속 복구 중이라고 합니다.”
“흠. 수고했어. 일단 발견된 통로 중심으로 보안을 강화하고, 만일 이상한 낌새가 나타나면 바로 보고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 내용 역시 우리만 안다.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요원이 돌아가고 쯔산은 다시 노트를 들고 지도를 유심히 본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 이 녀석들은.’

덜컥. 갑자기 큰소리에 놀란 그는 들고 있던 노트를 떨어뜨렸다. 올려다보니 킬리 박사였다.

“뭘 그리 놀라요?”

그녀는 그가 떨어뜨린 노트를 줍더니 눈으로 살짝 훑어보고는 콧방귀를 살짝 뀌었다.

“또 남들 몰래 연구하신 거예요?”
“아니, 요원들 배치하려면 지형 정도는 알아둬야지…요?”

통로표시를 확연히 하지 않았다는 것에 그는 내심 안심했다.

“흠. 그럼 이건요?”

그녀의 손에서 종이가 말처럼 툭툭 떨어져 나갔다. 종이 안에는 '신청자 쯔산'이란 글이 써진 염기서열 구성표와 검사 결과가 나타나 있었다. 종이를 알아본 그는 꽤나 당황해했다.

“이, 이건”
“오늘 팩스에서 나오데요? 참 내, 그렇게 연구에 욕심 있으면 연구원 하시지 왜 요원에 지원하셨어요?”
“아, 아니 뭐 이것은 그러니까”
“E-3223의 염기서열도 정리되었던데 자기가 연구원 자료를 내뺄 수 있는 건 아닐 걸고. 설마, 거기 잎을 뜯으신 건 아니겠죠?”
“끄응….”
“세상에 진짜요!? 아니 이분이 미치셨나. 한방에 훅 가고 싶으신 거예요 진짜?”
“….”

딱히 변명거리가 생각나지 않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는 입을 반쯤 벌린 채 그녀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아, 안 죽으려고 몸 사리시는 분이 왜 이러셨대.”

“근데, 이거 꽤 흥미롭네요. 여기 잡초들 분석결과에서 잎 부분은 각자 자신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데, 잎맥에서는 개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단 말이죠. 마을에 있는 잡초에서도 몇몇 샘플이 같은 결과가 나왔었고. 무슨 이유로 이런 짓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체 분석에 도움이 되긴 하겠네요.”

낙담에 빠진 그를 충분히 귀를 쫑긋할만한 결과였다. '그 녀석한테 전염성이 있다는 걸까. 샘플을 그때 뽑길 잘했군.'라고 마음속으로 살짝 기뻐했다.

“뭐, 후쉰 박사님께는 제가 분석했다고 둘러댈게요. 왜 니가 내 의견 없이 마음대로 하냐고 분명 뭐라 하겠지만.”
“네, 그래 주시면 정말, 정말로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거 생각도 마세요. 아셨어요?”
“네네. 죄송해요.”

그녀는 그를 못마땅하단 듯이 잠시 내려다보고는 뒤로 돌아 방을 나갔다.

‘그래도 아주 손해 보지는 않았구나. 흠, 이제 어떡한다….’

제법 쓸모 있는 정보를 많이 얻은 것에 대한 나름 만족감과 앞으로의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것에 대한 막연함이 그의 마음속에서 교차하고 있었다. 혼돈의 반란. 분명 자기는 물론이고 여기 있는 요원들로는 역부족일 게 뻔하다. 근처의 지원부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부 쪽은 아직 정리가 안 되어서 요원들은 여전히 거기에 발이 묶여있으니 섣불리 부르기도 힘들다. 아니, 그 전에 부를 때 스파이가 주워듣고 먼저 선수 칠게 뻔하다.

‘바람이나 쐴까. 산책하면 좀 나으려나.’

개인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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