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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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날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에 눈이 아플 정도로 빛을 내는 조명에서 눈을 돌렸다. 앞엔 50명 정도의 관객들이, 내 옆엔 나름대로 유명한 연예인들이 나를 향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제야 다시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깨달았다. 늦은 저녁 시간에 생방송을 콘셉트로 하여 방영되는 예능 프로그램의 무대. 주된 내용은 유명인과의 대화지만 모든 것이 실외에서 방영된다. 덕분에 늦은 밤에 맞춰 강한 조명을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게 준비된 조명이 좀 강하지 않나싶은 생각에 멍하니 위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에게 질문이 날아온 것 같다. 억지로 이상한 대답을 하기엔 좀 그러니 다시 물어보기로 하였다.

“아, 죄송해요.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내게 질문을 한 여자는 이 프로그램의 고정 MC인 D███였다.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몸매에 얼굴도 나름대로 괜찮아서 꽤 인기 있는 연예인이다. 하지만 인기가 있는 만큼 온갖 루머에 사로잡혀있기도 한데, 그중 하나가 소속사에서 몸을 판다는 거였던가? 뭐, 이런 이야긴 굳이 그녀가 아니라도 많은 여자 연예인들이 시달리는 이야기다. 어차피 사실을 알려고 하면 순식간에 알 수도 있기에 별로 흥미도 없다.

“과연 재벌 2세! 방송은 아무래도 좋다는 자세로군요!”
“네? 아니에요! 여러분! 아닌 거 아시죠?”

역시 고정 MC를 할 정도는 되는지, 내 실수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을 자연스레 넘겼다. 나도 물론 적당한 대응을 했기에 분위기는 관객들의 웃음소리로 가벼워졌다. 뒤의 스태프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이 보였다. 그 와중에 PD가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며 집중하라는 표시를 하는 것이 보였다. 분명 한번이라도 더 이러면 끝날 때 무슨 소리를 할지 뻔하다. 제대로 방송에 집중하자는 생각에 내게 다시 질문을 하는 그녀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아까 질문을 다시 하자면, 우리나라의 대기업인 S██████ 기업의 사장인 A███씨가 아버지인 기분은 어떠세요?”

그녀의 말대로 나는 대기업의 사장인 사람의 자식이다. 그것도 국가의 경제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힘을 지닌 아버지는 날 어렸을 때부터 특수하게 교육시켰다. 예를 들자면, 이런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란 매뉴얼을 준비하여 그대로 외우라고 하거나……, 어쨌든 난 머릿속에 박혀있는 답을 그대로 읊어줬다.

“부담되죠. 물론 많은 도움을 받아왔지만, 지금 제가 이렇게 엔터테이너로서 있는 건 스스로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내가 생각해도 참 성실하기 짝이 없는 진부한 대답이다. 하지만 연이어 나온 질문은 방금 질문은 그저 준비 작업에 불과했다는 걸 알려줬다.

“음, 그렇군요. 그럼 요즘 A███씨 위주의 소문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특히 이상하게 다툼이 많다는데, 심지어 다툰 상대는 행방불명된다는 소문도 있는데…….”

분명 이런 소문이 최근 흐르고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덕분에 내 이미지가 깎이는 것은 물론이고, 대중의 공격대상은 그보다 위까지 향할 때도 많다. 아버지의 힘을 빌려 자신에게 대든 상대를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한다는 등의 이야길 들을 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새삼스레 문명은 발달하지만 사람들의 머리는 발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떠오르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가슴 쪽 주머니에 걸려있는 볼펜에 자꾸 손이 갔다.

“근거 없는 소문입니다. 정말 행방불명된 사람들도 있지만 그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오도록 기도하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주말마다 교회에서 기도까지 하는걸요. 그런데도 저는 물론 저희 아버지까지 욕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내 말을 어떻게 들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조용한 분위기를 보아 어느 정도 내가 전하고픈 것을 느낀 것 같았다. 그건 앞에서 나에게 질문을 던진 그녀가 숙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런 내용을 방송에 내보내는 것은 생각하던 바가 아니었지만 PD나 스태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는 표시를 하는 걸 보고 내심 안심했다.
그 뒤로는 이야기 주제가 소문에서 벗어나 현재 활동이나 이후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적당히 밝게 방송을 끝마쳤다. 스태프들이나 다른 연예인들에게 인사를 한 뒤, MC인 D███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아, D███씨. 혹시 지금 방송국으로 가세요?”
“네? 음, 네. 핸드백을 두고 왔거든요. 왜요?”
“저도 가서 해야 할 일이 생겼거든요. 같이 가죠.”

D███는 그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자기 차에 탑승했다. 나 또한 내 차에 타고 먼저 출발하는 그녀를 뒤쫓아 갔다.
출발한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목적지인 방송국이 시선에 들어왔다. 직원들도 대부분 퇴근한 늦은 밤이기에 겉으로 보기엔 거대한 사각기둥과도 같은 그 건물에 그녀와 내가 들어갔다. 그녀의 뒤를 따라 로비를 지나, 복도를 지나, 분장실을 지나, 개인 로커가 있는 방의 앞까지 다다랐다. 그러기까지 건물 내부에서 우리를 제외한 다른 사람을 한명도 못 봤다는 건 꽤나 으스스한 상황이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그제야 앞에 가던 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기, 언제까지 따라올 생각이에요?”
“아, 볼일 끝나셨습니까? 제 볼일은 D███씨한테 있는데요.”

현재 상황이 그녀와 나밖에 없는 만큼, 그녀는 괜스레 경계의 눈초리로 날 노려보았다.

“그렇게 노려보지 마요, 그냥 단순히 잘못알고 있는 걸 고쳐주려고 하는 거니까.”

그녀가 잘못알고 있는 것.
그것은 현재 나에 대해 흐르고 있는 소문에 대한 것이다.
우선 나와 다툰 후 행방불명된 사람이 있는 것은 분명 맞다. 하지만 살짝 왜곡된 면이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을…, 어?”

나와 다툰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게 관심을 끈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다.

“거기에 아버지가 처리하는 게 아니라 내가 죽인 걸 아버지가 뒤처리하는 거야.”

그녀의 목에는 펜이 꽂혀있었다. 정확히는, 내 가슴 쪽 주머니에 걸려있던 펜이 꽂혀있었다. 날 보던 그녀의 눈에서 힘이 빠지고, 마치 줄 끊긴 꼭두각시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진다. 그걸 잠시 동안 바라보다가 펜을 뽑았다. 그러자 붉은 액체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고, 옷에 묻지 않기 위해 한발자국 뒤로 움직였다.
빠른 속도로 피부가 창백해져가는 그녀를 뒤로하고, 휴대전화를 꺼내 익숙한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잠깐 신호음이 들리더니 이내 달칵하고 연결되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아빠? 나 ███에 있는 방송국인데, 방금 실수로 연예인 한명 죽였거든? 뒤처리해줘.”

그 뒤로 뭐라 말소리가 들렸지만 그대로 연결을 끊었다. 어차피 내 아버지란 인간은 내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아마 그의 인생 최대의 실수는 이런 자식을 두는 것과 대기업을 경영하는 것을 동시에 행한 것이 아닐까.

“흠, 심심하네.”

아무리 아버지가 뒤처리를 해준다곤 해도 이 상황을 들키지 않게 하는 것 정도는 해야 한다. 이 방만 들키지 않으면 나머진 아버지의 부하들이 와서 처리해줄 것이다. 이 건물에 있는 감시카메라 영상이나, 혹시라도 있었을지 모를 사람들의 증언 처리 등등.
이런 사소한 기다림 정돈 다음엔 무슨 일을 벌일까 하는 상상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다…지만 그래도 심심한 건 심심한 거다. 뭔가 할 일이 없을까 주변을 둘러보자, 때마침 천장에 달려있는 TV가 눈에 들어왔다. 자연스레 리모컨을 찾아 전원을 키자 검었던 화면에 빛이 들어왔다.

“응? 이 시간에 뉴스가 하던가?”

화면에 떠오른 것은 험악한 얼굴의 아나운서가 소식을 전하고 있는 뉴스였다. 보통 이렇게 늦은 시간엔 뉴스가 안할뿐더러, 가만히 보니 아나운서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물론 내가 모든 아나운서를 아는 것도 아니고, 신인일수도 있으니 그냥 넘어가도 되는 일이었다. 오히려 저 험악한 얼굴은 사실 긴장한 탓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S██████ 기업의 사장인 A███의 아들, A███가 저번 달 █에서 일어난 사건에 이어 ██에 위치한 ████공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분명 완벽하게 뒤처리를 했을 것이다. 아니라면 애초에 내가 이곳에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지금 이 뉴스의 아나운서는 마치 몇 번이나 내가 범인이라고 밝혀진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심지어 멘트만 읊는 것이 아닌, 증거 영상이나 사진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뭐, 뭐야.”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충격에 무슨 반응을 할지도 몰랐다. 그런 나에게 뉴스는 더한 충격을 안겨줬다.

[이번 사건에도 역시 S██████ 기업의 손길이 미쳐 모든 증거물이 제거되었습니다. 제대로 된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역시나 이번에도 사건은 묻힐 것으로 예상됩니다. A███에 관련된 소식은 앞으로도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소식입니다…]

화면이 검게 변한다. 물론 내가 전원 버튼을 눌렀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버튼을 누르고 있는 손가락조차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거지? 누가 준비한 거지? 어떻게? 누가? 이제 난 어떻게 되지? 사형? 어떻게? 왜? 아버지는 뭘 하고 있던 거지?
머리가 아파올 정도로 수십, 수백의 생각이 떠오른 뒤, 난 그대로 문을 열고 복도로 뛰쳐나갔다. 목적지는 관리실. 방송국인 만큼 이곳에서 나오는 방송은 모두 관리실에서 실시간 모니터링 되고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저 뉴스가 찍히는 곳이 이곳이 아니라 할지라도 누가 틀고 있는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후에는….

“죽여 버리겠어!”

하지만 관리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방송들은 온전히 켜져 있었고,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뒤져보니, 건물 내 TV들에 같은 화면을 띄울 수 있는 TV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전원이 꺼져있지만 이 TV가 꺼져있다고 해도 연결되어 있는 다른 TV들에선 지금도 계속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을 것이다.
분명 그 뉴스는 공개적인 방송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런 말투를 하고 있는데 아무도 진실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분명 여기서 이 건물 내에서만 방송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비디오 플레이어?”

그런 TV 아래에 시대에 뒤처지는 디자인을 한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에 있는 테이프를 재생시킨 후 TV 전원을 키자, 역시나 아까와 같은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이 썩을!”

그대로 비디오 테이프를 빼내려는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든 불이 꺼졌다. 갑작스러운 정전인가 싶었지만 너무나도 나쁜 타이밍이었다. 비디오조차 빼내지 못해 어떻게 할지 생각하던 도중, 밖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순간 조용해졌지만 아직까진 그 누구도 내가 무슨 짓을 한지 모를 것이다. 적어도 이 테이프를 만든 자가 아니라면.
천천히 문을 열어 어두운 복도를 살펴보았다. 분명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으니, 근처에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A███?”

다행스럽게도 날 아는 사람인 것 같다.
잠깐, 어떻게 나인 줄 알았지?

“맞나 보군, 당신을 살인사건 용의자로 체포한다.”
“어?”

바보 같은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꺾이면 안 될 방향으로 팔 관절이 꺾여 아무런 힘도 낼 수 없었다. 거기에 위에서부터 묵직하게 누르는 탓에 시간이 갈수록 아파왔다.

“여긴 돌입 A반. 범인을 체포했다. 전원 올려.”

치직, 하는 무전기 소리와 함께 복도의 불이 다시 켜졌다. 억지로 고개를 돌려 내 위를 누르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 하고보니, 야간투시경을 쓴 경찰이었다. 아니, 경찰이라기엔 너무나 험악한 장비를 하고 있었다. 마치 도주 중인 연쇄살인마를 체포하기 위한 것처럼.
도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거지?

“바보 같은 짓을 했더군, 설마 이 큰 건물에 경비원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나? 감시카메라는? 지금까지 네가 저지른 범죄들은 모두 물증이 없었을 뿐이지. 하지만 그것도 몇 번이 한계다. 이렇게나 저질러놓고, 거기다가 이번엔 제대로 걸렸다? 네놈은 사형감이다.”

“응? 뭐야, 이 비디오 플레이어 쓴 사람 누구야? 없어? 흠, 워낙 오래전에 써서 있는지도 깜빡했네. 안에…, 오, 테이프가 있네. 뭐, 어차피 볼 사람도 없으니 대충 창고에 던져두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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