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드 온 유물환수
평가: +12+x

「그럼, 제대로 전달했습니다」
「그래. 제대로 받았다」

청에게 받아든 작은 나무궤짝을 왼쪽 겨드랑이 아래 끼운 호야가 모자챙에 폴란드식 경례를 붙였다. 청이 웃으며 목례로 화답하는 사이, 호야는 아무렇지도 않게 궤짝을 옆에 선 이림에게 집어던졌다.

「아악!」
「그것도 하나 제대로 못 받냐. 띨띨하긴……」
「림 군, 괜찮아?」
「괜찮아요」

이림이 궤짝에 부딪혀 아픈 왼팔을 주무르며 바닥에 떨어진 궤짝을 주워들었다.

「뭘 궁시렁거려. 확 씨」
「예전부터 생각하는 건데, 림 군한테 너무 혹독하신 거 아닌가요?」
「저거는 천성이 뺀질이라서 수시로 느슨해지는 나사를 조여 줘야 해. 꾸물거리지 말고 냉큼 차에 실어」
「저한테 상냥한 건 누나밖에 없네요……. 친누나도 안 그런데」
「친누나가 아니니까 예의 차리는 거지. 헛소리 그만하고 차 시동이나 걸어!」
「네이네이」

풍뎅이 2호의 운전석에 올라탄 이림이 열쇠를 돌렸다. 미약한 전기모터 소리와 함께 켜진 전조등이 어두운 동굴을 밝혔다.

「야이씨, 쌍라이트 안 꺼!」
「아이고, 이게 왜 켜져 있었을까……」
「뒤질라고 진짜」

호야가 조수석에 올라타며 옆자리의 이림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솔직히 바로 옆동네 오는 건데 대장 혼자 왔다가도 되는 거 아니었어요?」
「짜식이, 며칠동안 따라다니면서 맛난 일식 실컷 얻어처먹어 놓고. 생각해서 데려왔더니」

조수석 창 바깥 쪽으로 고개를 돌린 호야가 시부렁댔다. 백미러 너머로 손을 흔드는 청과 그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오오에야마가 보였다.

「대장……」
「왜, 이제 좀 고맙냐? 그런 눈치도 없어서 언제 사람구실 할래?」
「아뇨, 그게 아니라요. 설마 요며칠 숙식비로 배달비 퉁치려는 거 아니죠? 이거 엄연히 제 생활비 벌이기도 하니까 그거하고 별개로 제 차로 화물 픽업해서 운송하는 값은 처리 주셔야죠?」
「명치 좀 줘 봐라. 처먹은 거 다 토해내」
「미멜라, 본부 차고지로 좌표 찍어, 빨리!」









차에서 내린 호야와 이림을 맞이한 것은 모리안과 홍희지였다. 모리안이 늘 그렇듯 능글능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여, 귀염둥이 림이. 호야하고 데이트는 잘 하고 왔어?」
「맛있는 거 잔뜩 먹였다고 생색내시는데 불편해서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네요」
「배은망덕한 자식. 너 앞으로 일살다생에서 밥이고 술이고 처먹을 때마다 다 돈 내라. 아니, 다트하고 당구도 할때마다 돈 내고 해」
「그런데, 도대체 뭘 받아온 거예요?」
「야, 씹냐?」

다들 익숙한 듯 으르렁대는 호야를 무시한 채, 홍희지가 이림의 의문에 대답했다.

「청대장에서 이자메아 시절 조선에서 가져갔던 물건을 하나 찾았는데, 우리한테 넘겨주겠다고 얘기를 했거든. 아무래도 백택 3호계획 때 넘어갔던 거지 싶어」
「오……. 그런데 받고 나서도 집어던지고, 올 때 차 뒷칸에서 덜컹덜컹 굴러다니고, 그렇게 막 다뤄도 되는 건가요?」
「대장……」

홍희지가 호야에게 흐린 눈을 떴다. 호야는 뒷머리를 긁으며 변명했다.

「아니 뭐, 딱히 귀한 것도 아니잖아. 파손될 것도 아니고」
「그래도 그렇지, 우리 걸 우리가 함부로 하면 누가 우리 걸 귀하다고 여겨 주겠어요?」
「솔직히 이런 게 니꺼 내꺼가 따로 어디 있어? 어디 쓸데도 없어서 박물관에나 들어갈 물건을. 난 솔직히 그냥 걔네들 갖고 있으라 해도 별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데, 내용이 궁금해서 받아온 거 뿐이야」









어느새 자리를 옮겨 장소는 회의실. 네 사람은 탁자 위에서 입을 벌린 궤짝을 가운데로 둘러섰다. 완충재를 겸해 고급스러운 재질을 씌운 안감이 드러나 보였다. 그 위에 놓여 있는 것은 제목도 쓰여있지 않은 고서였다.

「이게 뭔데요?」
「선운사 마애불 배꼽에 들어 있던 비결서」
「비결서?」

이림이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이자 호야가 냉소적으로 첨언했다.

「무슨 무림비급 그런 거 아니니까 꿈 깨라. 저거 읽는다고 막 네 막혔던 혈도가 트여서 무공을 쓸 수 있게 되고 그럴까봐 눈이 반짝했냐?」
「그, 그런거 아니거든요」

호야가 책을 들어 첫 쪽을 펴 보였다.

전라감사 이서구가 펴 본다.

「이서구 이양반도 참 인생 개꿀잼으로 살았는데. 그립군」
「이서구가 누군데요?」
「있었어, 개웃긴 새끼」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알아요?」

그 다음 페이지를 넘기니 이렇게 적혀 있다.

동학 남접 무장대접주 손화중이 펴 본다.

뒤로 훌훌 넘기자 한참 뒤에 이렇게 적혔다.

능구렁이 손 주석 호야가 펴 본다.

그 뒤는 백지였다.

「눈치챘냐? 맨 마지막 글자는 이제 방금 생긴 거야. 전설에는 마애불 배꼽에 예언서가 들어 있어서 손화중이 갑오년에 그걸 꺼내갔다고 하는데, 이게 진짜 예언서였으면 동학이 안 망했겠지」
「그럼 이건 뭐죠?」

이림의 물음에 호야가 어깨를 으쓱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소유한 사람이 질문이든 뭐든 대화를 찔러넣으면 거기에 대한 답을 내놓는 거야. 근데 그게 처음 제작한 인간이 어떤 빅데이터를 주입해서 만들어서 거기에 기반해서 내놓는. 말하자면 맥스 같은 거지」
「맥스? 렐페크씨네 아버지 이름이 왜 나와요?」
맥스가 뭔지 몰라?」

호야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희지가 옆에서 거들었다.

「대장……. 요즘 애들은 심심이라고 해야 알아들어요……」
「아무튼 그래봤자 이서구가 1820년에 전라감사를 지냈으니까 일러봤자 그 이전에 만들어진 건데, 그 전에 빅데이터를 넣어 봤자 뭐 얼마나 넣을 수 있었겠냐. 동학혁명 때 이게 도움이 됐겠어? 이거 만든 놈은 개틀링이 뭔지도 몰랐을 걸」
「이걸 만든 게 누굴까요?」
「이런 물건을 만들 수 있을 만한 충분한 마술적 지식, 그리고 주입할 빅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 텐데……. 나도 전혀 모르겠다」
「혹시 전우치 선생……?」
「우리 아버지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 떠들썩하게 일을 벌이는 타입이지, 이렇게 이상한 데 숨겨놓고 소문 퍼뜨리는 타입이 아니었어」
「테러리스트의 귀감이시네요」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시덥잖은 예언서 같은 아티팩트 한두개가 아니라, 세상을 실제로 바꾸는 사람들의 의지와 그걸 한데 모을 수 있는 이념, 그리고 물리적인 힘인 거야. 그건 변칙세계든 정상세계든 다를 게 없어」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