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드 온 고래등 같은 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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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디로 가시나요, 쿠리어 제이드?”

“이림이라고. 미멜라. 여기 전송된 좌표로 길을 열어줘.”

내 이름은 이림이다.

고3 때 여자가 되고 뱀의 손이라는 마술사 조직에 들어가게 되었다가 어찌어찌해서 지금은 반강제로 다마스를 몰고 다니는 배달 자영업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죽지 못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이 짓도 요령이 붙어서 어딜 가도 별 문제 없다는 자신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좌표를 받아놓고 그 좌표가 어디인지 확인도 하지 않는 실수를 저질러 버리고 만 것이다.

“? 이게 뭐야. 뭔가 시야가 이상한 것 같은……. 왜 공중에 있―으아아악?!”

“미멜라 백업 완료했습니다.”

“야! 너만 살면 어쩌자는 거야!”

외침도 헛되이, 녹색 다마스는 내가 허둥대거나 말거나 착실히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뇌리를 스치는 생각은 이렇게 죽는구나――가 아니고, 침수차량이 되었다는 핑계로 드디어 이 망할 다마스와 작별할 수 있겠구나 하는 부분이었지만.

텅!

응? 첨벙이 아니고 텅?

예상을 한참 벗어난 충돌음에 황당해할 찰나도 없이, 차체의 아래에서 위로 되튕긴 반동 때문에 몸이 운전석에서 떠올랐고, 나는 연직 상방으로 차 천장에 정수리를 갖다박았다.

“으아으악!!”

머리를 양팔로 감싼 채, 고통을 참느라 다리를 바르작거리며 차체를 걷어찼다. 이빨 사이로 끅끅 억누른 비명이 새어나왔다. 간신히 정신줄을 잡고 비상탈출 버튼의 커버를 벗기려고 손을 갖다대는데, 풍뎅이가 쫑알대며 끼어들었다.

“정확하게 좌표에 도착했습니다. 차량에 심각한 위험은 감지되지 않고 있습니다. 비상탈출을 사용할 만한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없기는 씨발. 공중에서 물 위로 꼬라박았는데. 그나저나 여기 어디야? 진짜 잘못 온 거 아니야?”

“확인 결과 오류는 없습니다. 태평양 한가운데가 맞습니다.”

태평양 한가운데라니. 그 말대로 사방에 보이는 것이라곤 검푸른 물밖에 없었다. 무슨 조화로 차가 가라앉지 않고 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허. 이것 봐라.”

차 아래에 무언가 단단한 것이 있었다. 그 위로 떨어진 덕분에 다마스는 바퀴만 반쯤 잠겼을 뿐, 차 안으로는 물이 들어차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단단할 뿐 아니라 거대한 그 무언가가, 부풀어올랐다 꺼지는 반복적인 운동을 하는 것이 차의 미세한 상하운동으로 느껴졌다.

“이거 설마……. 살아있는 생물인가?”

가만히 살펴보니, 그 무언가는 서서히 팽창과 수축을 반복할 뿐 아니라, 서서히 물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차 아래의 물은 주변의 검푸른 바다와 달리 밝은 하늘색처럼 보이다가, 이내 투명해지면서 아래의 무언가를 비춰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무판자들을 짜맞춰 만든, 거대하고 넓적한 나무바닥이었다. 바닥 곳곳은 마치 흉터를 꿰맨 실밥같은 붉은 섬유질로 덮여 있었다.

잠수함이야 뭐야. 나는 지금까지의 배달에서 배운 요령대로,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모르긴 몰라도 화주는 이 나무바닥 아래에 있는 것이겠지. 요금은 선불로 받았으니까, 화물만 전달해 주면 그만이다.

차문을 열고 내려, 화물을 내리기 위해 짐칸을 열었는데――

“씨발 너 뭐야? 어디서 튀어나왔어. 설명해.”“Who de feck are you? W'ere ded you spreng frahm, explain yooehrself.”

뒤통수에 뭔가 서늘한 것이 와 닿았다.

뒷목의 잔털이 오소소 일어서는 것 같은 감각 때문에, 그 서늘한 것이 다름아닌 총이라는 것을 뒤를 돌아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냉큼 두 손을 들어올렸다.

“아, 아이 해브 어 딜리버리 포 유.”

“배달?”“A delivery?”

“예스. 예스. 풋 더 건 어웨이 퍼스트 플리이즈.”

“……….”

총을 치우는 철그럭 소리와 함께, 목덜미의 섬뜩한 감각도 가셨다. 나는 아직도 소름이 돋아 있는 뒷목을 쓱쓱 문지르며 뒤돌아 보았다. 삼각모를 쓰고 프록코트를 입은……,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전형적인 해적 복장의, 붉은 머리 여자가 서 있었다.

어깨에 앵무새만 올려놓으면 진짜 만화에서 튀어나온 줄 알았을 듯.

“무슨 배달을 누가 보냈다는 거야?”“What kenda delivery, and frahm who?”

아이씨, 영어 같긴 한데 억양이 괴상해서 하나도 못 알아먹겠어.

“………어음.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 플리즈?”

“………”

아, 염병할. 표정 썩어들어가네.

말을 잘못 골랐음을 깨달았지만, 뭐라고 변명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고 둥근 권총손잡이가 내 관자놀이로 날아들어왔다. 다음 순간 나는 축축한 나뭇바닥에 뺨을 비비며 뒹굴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더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있었다. 각양각색의 복장과 인종의 사람들에게 둘러쌓인 나는 꼼짝없이 붙잡힌 거나 다름없는 꼴이 되었다.

18세기 해적 차림의 백인 여자, 비늘갑옷을 입은 동양인 남자들, 흑인에 아랍인, 남아시아인도 있고…….

………무슨 근본없는 조합이야, 이게.

그래도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동양인이라 혹시 말이 통할까 기대했지만, 그 남자가 입을 열자마자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좀 전에 충격이 있었잖아. 이 녀석이 저 이상한 물건하고 같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나 봐.”“▯▯▯▯▯▯▯▯▯▯▯▯▯▯▯▯▯▯▯▯▯▯▯▯▯▯▯▯▯▯▯▯”

이건 일본어도 아니고 중국어도 아니고 한국어는 더더욱 아니야!

게다가 방금 전 이상한 억양의 영어로 말하던 그 백인 여자까지 저 못 알아들을 말로 떠들고 있으니, 보고 듣고만 있어도 정신이 멍해진다.

도대체 뭐야, 이 인간들.

“익스큐즈 미. 제가요 좀 전에는 실례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영어? 가 그나마 말이 통할 거 같거든요? 혹시 영어할 줄 아시는 분……. 애니바디 캔 스피크 잉글리시?”

“에블린. 자네 말하고 비슷한 거 같은데. 통변 좀 해 주지.”“▯▯▯▯▯▯▯▯▯▯▯▯▯▯▯▯▯▯▯▯▯▯”

“아, 몰라. 난 멀쩡히 말했는데 내 말 못 알아듣겠다고 개지랄해. 저 새끼 짜증나.”“▯▯▯▯▯▯▯▯▯▯▯▯▯▯▯▯▯▯▯▯▯▯▯▯▯▯▯▯▯▯”

“저기요?”

“누가 가서 리네사 좀 불러와라.”“▯▯▯▯▯▯▯▯▯▯▯▯▯▯”

“아니 저는 배달만 하고 금방 떠날거라니까요! 위드 디스 카!”

“쫑알쫑알 뭐라는 거야. 콱 그냥.”“▯▯▯▯▯▯▯▯▯▯▯▯”

붉은 머리 여해적이 또 때릴 것처럼 팔을 치켜들자 나는 반사적으로 목을 움츠렸다. 도대체 뭐하는 집단이야, 이 인간들. 못 알아들을 말로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는 그들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머리에 무언가 씌우는 것이 느껴져 화들짝 놀랐다.

“어씨 깜짝이야! 뭐야!”

― 악의가 있는 건 아닙니다. 일단 물에 빠진 사람에게는 덥혀주고 마실 것을 주는 것이 우선이니까요.

“아뇨, 전 물에 빠진 적이 없……. 어디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지?”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는 게 아니고, 살짝 고개를 숙이니 보였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구릿빛 피부. 건강해 보이는 얼굴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작은 키의 여자? 소녀? 가 서 있었다.

― 저흰 그저 뱃사람이다보니 물에 빠진 사람을 보면 구해주는 것이 버릇이 되어서 폐를 끼치게 된 것 같네요. 제 이름은 리네사예요.

“이게 뭐죠? 텔레파시인가요?”

― 입이 아니라 생각으로 말을 걸어 보세요. 당신의 입말은 저도 알아들을 수 없어요.

어떻게 말을 걸어오고 있는 거지? 텔레파시인가?

― 제 고향 세계에서는 입을 통하지 않고도 황금빛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요. 지금 쓰고 계신 코로넷은 황금빛 언어를 듣고 말할 수 있게 해 주는 물건이고요.

그 말을 듣고 주변머리를 더듬어 보니 고리 같은 것이 느껴졌다. 방금 전 머리에 씌운 것이 그 코로넷인가 보다. 그런데 고향 세계라니, 이 세계, 그러니까 지구 사람이 아니라는 건가?

― 그렇게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그럼 당신들은 별세계에서 온 건가요? 모두 지구인이 아닌 거?

― 그런 선원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 세계 출신의 사람들이에요. 오래 전에 이 세계를 떠나서 여러 세계들을 돌아다니다가, 얼마 전 돌아오게 된 것이고요. 저도 지금은 다른 동료 선원들에게 배워 입말을 구사할 수 있지만, 이렇게 황금빛 언어로 생각 대 생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제가 통역을 도맡게 되었죠.

지구인들끼리 말이 안 통해서 별세계인이 중간에 통역을 해 준다니……. 정말 괴이쩍은 경험이다. 오래 전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오래?

― 글쎄, 한 300년 정도? 그런데 160년인 것 같기도 하고? 궁금한 게 많으신가 보네요.

아뇨. 별로 궁금한 거 없고요. 나는 그냥 해야 할 배달이나 빨리 하고 집에나 갔으면 좋겠는데.

― 배달?

예에. 그러니까 저 자동차에 짐이 실려 있는데.

― 자동차란 게 뭐죠? 같이 떨어진 저건가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서 뒷머리를 벅벅 긁는데, 그만 코로넷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순간적으로 팔을 뻗어 낚아챘다. 원리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충격 받아서 좋을 리는 없지. 내가 다시 코로넷을 머리에 쓰는 사이, 리네사는 나를 지나쳐 우두머리 남자 쪽으로 걸어갔다.

“수부가 아니라 배달부라고 합니다. 여기로 배달할 것을 부탁받은 화물이 있는데, 그 화물만 내려놓으면 떠날 거라고 하네요.”“▯▯▯▯▯▯▯▯▯▯▯▯▯▯▯▯▯▯▯▯▯▯▯▯▯▯▯▯▯▯▯▯▯▯▯▯▯▯▯▯▯▯▯▯▯▯▯▯▯”

“배달부라고? 그럼 배달 온 것이 뭔지나 한번 봅시다.”“▯▯▯▯▯▯▯▯▯▯▯▯▯▯▯▯▯▯▯▯”

“그래, 오랜만에 고향 땅 물건 한번 보자고.”“▯▯▯▯▯▯▯▯▯▯▯▯▯▯▯▯”

자기들끼리 또 뭐라고 떠들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데, 리네사가 내 쪽을 돌아보자 다시 머릿속에 울리듯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 배달해 오신 물건을 보여주시겠어요?

다마스 화물칸을 열고, 그득그득 쌓여 있는 박스들을 하나씩 꺼내 나뭇바닥에 내려놓았다.

― 내용물을 아세요?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누가 보낸 건지도 모르는데.

“종이로 궤짝을 만들어 쓰는구먼. 뭍에 안 올라가 본지도 한참 되어서 원.”
― 라고 하시네요.

귀찮은데……. 궁시렁거리면서도 나는 글러브박스에서 커터칼을 꺼냈다. 드드득 칼날 뽑는 소리를 주변의 갤러리가 신기해하는 것이 말 없이도 느껴졌다.

가장 먼저 뜯은 박스 안에는 과일이 가득 들어 있었다. 사과, 배, 오렌지, 자두, 앵두, 라임, 멜론……. 두 번째, 세 번째 박스도 과일이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박스는 녹황색 채소가 가득했고, 그 다음 박스 세 개는 고기인데…….

뭐야, 어느 사이 왜 이렇게 조용해?

왁자왁자 떠들던 소리들이 싹 가라앉고, 물결 부딪는 ― 어디에? ― 소리만 들려왔다. 위화감에 고개를 들어 보니, 그렇잖아도 나를 가운데 놓고 빙 둘러싸고 있던 뱃사람들이 고개를 빼밀고 나만 지켜보고 있었다.

무섭게 왜 이래.

― 뭍에 올라갈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이런 식재료를 정말 오랜만에 봤기 때문……이라고들 하시는데. 저로서도 아예 처음 보는 것들 투성이라 잘 모르겠네요.

그럼 바다에서 바로 잡은 생선밖에 먹을 게 없었다는 건가.

― 바닷가 정도는 올라갈 수 있지만, 내륙 깊숙히 들어갈 수는 없어서요. 그도 그렇고, 지난 300여년 동안은 별세계들을 다녔기 때문에,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식자재조차 이질적이었죠. 저야 그 중간에 합류해서 잘 모르겠지만, 별세계에서 입맛에 맞는 음식을 구하기란 정말 어렵대요. 그나마 조리장님의 요리 솜씨가 굉장해서 뭐든지 다 먹을만하게 만들어내셔서 다행이죠.

“가서 조세핀 좀 올려보내라. 나머지 녀석들도 다 올라오라 그래. 고래등에서 잔치를 열어야겠으니 화로하고 조리도구도 챙겨서 가져오라고.”“▯▯▯▯▯▯▯▯▯▯▯▯▯▯▯▯▯▯▯▯▯▯▯▯▯▯▯▯▯▯▯▯▯▯▯▯▯▯▯▯▯▯▯▯▯▯▯▯▯▯▯▯▯▯▯”

뭐라는 거야.

묵직한 다음 상자의 내용물은 뜯기 전에도 알 수 있었다. 유리가 서로 부딪히는 특유의 소리가 들려왔으니까. 어허, 몇몇 사람들 눈 돌아가는 거 보게.

“럼주잖아!”“It's rum!”

그래, 방금 그건 알아듣겠다. 술입니다, 술이에요.

붉은 머리 여해적이 냉큼 한 병 쌔벼간 술이 두 상자로 가장 많았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세 상자들에도 커피, 찻잎, 설탕, 꿀 등 기호품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걸 본 선원들이 다시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 다들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까 기분이 좋네요.

리네사가 해 준 설명대로면, 이런 기호품들은 별세계들에 아예 없을 테니까 그럴 만도 하다. 세계들마다 그 세계의 기호가 따로 있을 테니. 어라, 그러면 정작 리네사는?

― 저야 뭐 충분히 오래 되어서 익숙해졌어요. 그리고 고향을 떠나올 때 가져온 게 아직 남아 있기도 하고요.

가져왔다니, 별세계의 기호품은 뭘까?

― 이따 직접 보여드릴게요.

아뇨, 필요 없거든요. 나는 배달할 거 다 했으니까 집에나 좀 가면 안 될까.

― 흠, 선장님이 말씀하시는 걸 봐선 순순히 보내주지 않을 거 같은데요.

뭐요? 왜 안 보내줘? 뭐야 시발 보내줘요!

“그런데 이 술과 음식들은 누가 보내준 건가?
― 라고 하시는데요.

그건 건 나도 모른다. 사실 당당하게 하는 일은 아니어서, 가끔 자기 신원을 비밀로 하고서 배달을 보내는 의뢰주도 있는데, 그런 경우 나도 굳이 정체를 찾아보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것들을 우리가 받아도 되는 건가? 그리고 그 보내준 사람은 우리가 이 바다 한가운데 어디 있는지를 어떻게 알고?”
― 라고 하셨어요. 방금 말씀하신 건 경리주임님이세요.

받기 싫으면 그냥 바닷속에 처넣으라지. 보내는 사람을 모르기 때문에 반품 서비스는 못 해줍니다.

경리주임이라는 남자가 선장이라고 불린 우두머리와 뭐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리네사가 통역해주지 않는 것을 보면, 내가 알 필요 없는 얘기겠지.

뭔가 왈강달강 하는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려보니, 선원들이 큼직한 솥을 끌고 오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요리라도 하려고? 나뭇바닥인데?

― 가지 말라는 게 다른 뜻이 아니고, 이걸 전해주신 배달부님도 같이 식사 한 끼 하고 가라는 말씀이세요. 요리가 되는 동안 저희 선내 구경도 한번 해 드릴까요?

흠. 어떡한다.

지금까지 통역을 듣고 짐작한 바, 이 사람들 출신은 제각각이지만, 못해도 전부 100년 200년은 넘겨 살아온 것 같다. 그리고 저만큼 오래 산 사람들 말을 거절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건, 지금까지 경험을 통해 몸으로 익힌 사실이었다.

그래서 권유받은 대로 바닥 아래, 즉 선내에 들어와 보니 기가 찬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대포……?”

대항해시대 때나 굴러다녔을 것 같은 청동 대포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나름 장관이라면 장관이지만, 지금 이 전체적인 공간과 물체의 부조리 때문에 거의 초현실적으로 보였다.

예상대로 이 거대한 물체의 정체는 잠수함이었다.

나무로 만든 잠수함이며, 소금물 속에서 멍텅구리 대포를 무기로 쓴다는 점에서 상상초월이었지만. 무슨 원리로 가능한 것일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나무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육벽 같은 뭔지 모를 유기체와 나무, 금속 따위가 섞여 있는 것이었다. 유기체 같은 부분을 만져 보려다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냉큼 손을 거두었다.

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길은 구불구불했다. 마치 잠수함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물의 뱃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마냥…….

뭐지? 앞서 가던 리네사가 뒤돌아 보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다시 텔레파시가 전해져 온다.

― 여기는 우리가 자랑하는 보물창고랍니다.

보물창고라. 책들이 빽빽히 꽂혀 있는 서가를 보니, 내게도 익숙한 어딘가가 떠올랐다.

― 온갖 별세계에서 수집한 책들, 그리고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적은 박물지가 모두 보관되는 곳이랍니다. 별세계에서 가져온 기념품들도 서랍이나 궤짝마다 들어 있어요. 그것들을 정리하는 게 제가 여기에서 맡은 일이에요. 사실, 제가 합류하기 전까지는 수백년 동안 정리고 뭐고 없이 난장판이었어요.

분명히 소중하게 아껴지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편안하게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책걸상 위에는 작게나마 주전부리도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벽에는 커다랗고 투명한, 둥근 창이 붙어서 바다의 푸른 빛이 비쳐 보였다. 유리창인가? 정말 점점 더 알 수 없는 곳이다.

― 우리는 바다 가장 깊은 바닥까지 잠수하곤 하는데, 평범한 유리라면 큰일나죠.

내가 창문을 쓰다듬으며 신기해 하자 리네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건 아레낙Arenak 금속이라는 거예요.

예? 뭐라구요? 금속이 투명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식적으로 금속이라는 건 정의상 자유전자가 가득차서 불투명하고 빛을 반사하는 물질인 것인데. 무슨 마술이라도 쓴 건가?

― 마술이 아니라 소재 자체가 튼튼하고 투명한 거예요. 강철보다 500배는 더 단단하답니다.

아니 뭔 개소리야.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 그런 게 있는 세상을 갔다 왔다는 말이죠.

뭐라 더 반박할 기운도 들지 않았다. 하긴. 세상‘들’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을 수 없다고 했던가.

그래도……. 이렇게 바닷속에서 바깥을 내다보면서 별세계들의 보물을 옆에 쌓아 두고 책을 읽으면 확실히 분위기는 살겠다.

지금은 물 위로 떠올라 있어서 그런가, 아쉽게도 물고기 같은 건 보이지도 않지만.

리네사가 신이 나서 아기자기한 장신구들을 보여주면서 열심히 설명했지만,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벽에 십자로 교차되어 걸려 있는 칼 쪽이 차라리 나는 더 궁금해.

뭔가 서율이한테 어울릴 것 같은 하늘색 보석이 박힌 은목걸이도 보았지만, 달라고 해서 받아갈 수 있는 게 아니겠지.

충분히 구경을 시켜줬다고 생각한 것인지, 리네사가 앞장서서 이 도서관인지 보물창고인지를 나섰다. 다시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내려올 때와는 방향이 달랐다. 내려올 때 잠수함의 가운데 부분으로 내려왔다면, 올라갈 때는 앞쪽을 향하는 느낌이랄까?

― 여기 위로 올라가면 항해선교, 말하자면 조종실이에요.

이 기묘한 잠수함의 조종실이라니.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못 참지. 정말로 궁금하다.

팔을 뻗어서 사다리를 잡으려는데, 리네사가 앞을 가로막으며 제지했다. 아니, 왜?

― 잡념이 많은 사람은 항해선교 출입금지예요. 위에서 에블린 언니 봤죠? 배달부님을 처음 험하게 다루었던. 그 언니도 마찬가지로 출입금지고요.

잡념이 많다니, 내가 잡념이 많은지 아닌지 그걸 어떻게 알아?

― 신성한 황금빛 언어는 단순한 텔레파시가 아니에요. 제 고향의 여왕님과 그 신부들 사이에, 모든 생각과 모든 감정을 함께 나누는 거죠. 통역을 위해 코로넷을 사용할 때는 사용자에게 익숙한 감각을 유도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말을 거는 것처럼 해 보라고 하지만.

아니, 잠깐. 그 말은 그럼, 내가 일부러 무슨 생각을 떠올리지 않아도, 가만히만 있어도 내 생각이 그쪽에 다 읽힌다는 거 아냐?

― 그렇죠. 패시브하게.

그 생각이 들려오자마자 코로넷을 벗어 버렸다. 아오씨, 꺼림칙해.

인상을 쓰고 리네사를 노려보자, 리네사는 고개를 저으며 코로넷을 다시 쓰라는 듯 몸짓을 해 보였다.

이게 아니면 말이 아예 안 통하니 어쩔 수 없이 다시 머리에 썼지만…….

― 많이 놀랐나요?

놀라다마다.

― 처음부터 말씀을 안 드린 건 실례했어요. 하지만 저도 처음 코로넷을 씌어 드렸을 때 전달되는 상념들 때문에 놀랐었다고요. 에블린 언니만큼은 아니지만, 이렇게 잡념이 많은 사람은 에블린 언니 이후로 처음이에요.

그럼 빨리 보내주면 안 될까. 나도 내 생각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패시브하게 읽힌다고 생각하면 기분나쁘거든.

― 밥은 먹고 가셔야죠.

아, 필요 없대도!

― 그리고 배달부님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도사린 상념은, 어쩌면 제가 해결에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 걸요.

뭐?

내 마음 가장 깊은 곳?

그게 뭔데? 아니, 그 전에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을 왜 들여다 봐?

― 들여다 본 게 아니라, 패시브하게 저절로 보인다구요. 아무튼. 방금 전에 제가 여왕님과 신부라 그랬잖아요. 제 고향은 여자들밖에 없는 세계예요.

? 그거하고 내가 무슨 상관?

― 어쩌면 제 지식이라면, 배달부님이 지금 사랑하고 계신 여성분과의 사이에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릴 수……

다시 벗은 코로넷을 그만 부러뜨릴 뻔했다.

아니, 그리고 안 보여줄 거면 뭣 하러 데려왔어.

― 사람을 데려가야 하니까요.

사람? 누구?

“이에레모아나 언니! 내려와 봐요!”“▯▯▯▯▯▯▯▯▯▯▯▯”

당연히 그 사람이 조종석에서 일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기 전에, 뭔가 묵직한 것이 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으악! 뭐야! 아파!”

연두색 털뭉치가 시야를 가리나 싶더니, 목덜미를 날카롭게 긁고 지나갔다. 정신을 차려 보니, 발치에서 뚱뚱한 앵무새가 뭘 보냐는 듯 적반하장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고개까지 갸웃거리면서.

“리네사? 무슨 일이야.”“▯▯▯▯▯▯▯▯”

항해선교로 올라가는 사다리 위에서, 갈색 피부의 여성이 고개를 쑥 내밀었다. 턱에 마치 수염처럼 세로로 문신을 새기고 있었다.

“오늘 식사는 마가라 등 위에서 할 모양이에요. 데리러 왔어요. 아까 그 충격 있었을 때 다들 위에 올라갔는데. 언니는 아무렇지도 않았나요?”“▯▯▯▯▯▯▯▯▯▯▯▯▯▯▯▯▯▯ ▯▯▯▯▯▯ ▯▯▯▯▯▯▯▯▯▯▯▯▯▯▯▯▯ ▯▯▯▯▯▯▯▯▯▯▯▯”

“등에 뭔가 닿은 거 같다고 올라가 보라고 한 게 난데, 왜 몰랐겠어?”“▯▯▯▯▯▯▯▯▯▯▯▯▯▯▯▯▯▯▯▯▯▯▯▯▯”

“그런데 왜 안 올라와 보시고?”“▯▯▯▯▯▯▯▯▯▯▯▯▯”

“배가 뭐에 부딪었다고 키를 놓는 조타사가 어디 있니? 그런데, 이쪽은 누구야?”“▯▯▯▯▯▯▯▯▯▯▯▯▯▯▯▯▯▯▯▯▯ ▯▯▯▯▯▯▯▯▯”

“배달부님이요.”“▯▯▯▯▯▯”

“배달부? 무슨 배달부?”“▯▯▯ ▯▯▯▯▯”

“그……러게요. 뭐부터 설명해야 하지? 일단 아까 그 충격 말인데요.”“▯▯▯▯ ▯▯▯▯▯▯▯▯▯ ▯▯▯▯▯▯▯▯▯▯▯”

“아니, 저기요.”

내가 입을 열어 말하자 두 사람이 동시에 내쪽을 돌아보았다.

통역하는 사람 어디 갔어? 팔짱 끼고 불편한 티를 팍팍 내자 겸연쩍어 하는 리네사의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 배달부님이 누구냐고 물어보셔서,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어떻게 이야기했는데?

― 우선 배달부님의 그 탈것이 하늘에서 떨어진 이야기부터…….

아니, 이봐요. 사람을 소개할 때는 보통 말이죠……, 그 이전에 리네사. 내 이름은 알아요?

― 아.

에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검지손가락으로 리네사를 가리켰다.

“리네사.”

그리고 다시 나를 가리키며.

“이림.”

이림이라고. 내 이름은.

― 예쁜 이름이네요! 무슨 뜻인가요?

옥구슬 부딪혀 나는 소리 림琳 자……. 아니, 젠장. 이것도 생각하는 것만으로 다 읽힐 거 아냐. 이름이 뜻까지 예쁘다고 호들갑떠는 리네사의 텔레파시를 무시하고, 펼친 손을 사다리 위로 뻗었다. 그쪽의 이름은?

내 뜻을 알아들은 것인지, 조타사가 웃으며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에레모아나.”

― 이에레모아나 언니의 이름은 소리-바다라는 뜻이에요.

이에레모아나가 내 손을 잡은 채로 펄쩍 아래층으로 뛰어내렸다. 헐렁한 것인지 늘어난 것인지 아무튼 헐렁한 옷 사이로 드러난, 한쪽 어깨에서 쇄골까지를 덮은 커다란 고래 모양 문신이 박력있었다.

“마타누이, 이리 와.”“마타누이, ▯▯▯▯.”

이에레모아나가 뚱뚱한 연두색 앵무새를 안아들었다. 그러고 보니 피난 거 아닌가 싶어 목덜미를 더듬었는데, 찰과상이 났지만 찢어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으, 기분 나빠.

이에레모아나를 달고 셋이서 — 그리고 한마리 더해서 — 밖으로 돌아와 보니, 아까 보았던 커다란 솥에서 음식을 끓이는 김이 무럭무럭 피어나고 있었다. 근데 나뭇바닥 정말 괜찮은가? 걱정이 되어 솥 가까이 다가가 쪼그려 앉아 불가를 살펴보려는데, 솥을 젓고 있던 흑인 여성 — 이분이 조리장이라던가 — 이 솥에서 한 국자 크게 퍼서 그릇을 내밀어 왔다.

“한 그릇 들어요. 덕분에 재료가 생겨서 오랜만에 가장 자신 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선장님께도 오늘 잔치의 가장 큰 공로자인 배달부께 첫 그릇을 대접하자고 말씀하셨어요.”
― 라고 하셨어요.

“어, 네, 네?”

받아든 나무그릇에는 붉은 국물의 스튜가 푸짐하게 담겨 있었다. 고기와 야채 건더기가 국물보다 더 많아 보여서 얻어먹기 눈치 보일 정도로.

― 그런 걱정 하지 마세요. 다들 고마워하고 계시니까요.

내 생각에 끼어들지 마요, 리네사.

“고맙습니다. 땡큐 베리 머치. 와……. 케이준 요리 같네.”

“케이준을 알아요? 300년이나 지났는데. 혹시 그동안 루이지애나는 어떻게 되었나요?”“Do you know Cajun? It's been 300 years, so anything happened to Louisiana?”

역시 익숙한 억양은 아니지만, 도저히 알아먹을 수 없던 에블린의 해괴한 영어에 비하면 충분히 소통히 가능한 영어가 또렷하게 고막을 때렸다.

소통부재 — 말이 안 통해! — 와 소통과잉 — 내 머릿속 읽지 마! — 사이의 조화진동으로 정신이 멍해지고 있었던 나는 그만 감정이 복받쳐 버렸다.

“아니, 왜 울어요? 울지 말아요.”“Why are you crying? Oh, don't cry.”

안 울어……. 그냥 눈가에 좀 고이기만 한 거야…….

“이렇게 따스한 대접을 받아본 지가 너무 오랜만이라 그렇대요.”“▯▯▯▯▯▯▯▯▯▯▯▯▯▯▯▯▯▯▯▯▯▯▯▯▯”

“정말?”“▯▯▯”

“어……, 음……, 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리네사와 조리장 사이에 오가는 대화. 또 내 생각이 그대로 전달되었겠지. 쪽팔림을 더 견딜 수 없었던 나는 그만 코로넷을 벗어서 떠넘기듯 리네사에게 돌려줘 버렸다.

그 뒤, 유일하게 나와 입말이 통하는 조리장 조제핀은 배식을 자율에 맡기고 — 물론 자기 그릇도 챙겨갖고 — 한켠에 나와 함께 앉아 내 말동무를 해 주었다. 조제핀이 뭍을 떠난 뒤로 링컨이 대통령이 되었고 미국 땅에서 흑인 노예제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해 주니, 이번에는 조제핀이 왈칵 울음을 터뜨려 내가 달래 주어야 했다.

“왜 울고 자빠졌어? 럼주나 쳐 마셔. 럼 마시면 행복이 와요.”“Why de 'ell are you cryin? Joehst drenk sahme rum. Rum makeths you 'appy.”

술냄새를 풍기며 다가온 여해적 에블린이 나와 조세핀을 뒤에서 어깨동무하며 끌어안았다. 벌써 엄청나게 술이 꼴았는지, 하얀 살갗 아래로 벌겋게 혈류가 소용돌이 치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저리 가요, 술주정뱅이.”

“뭐라는 거야? 아, 알 거 없고. 마셔, 마셔!”“What are you sayin? Ahh, I dahn't need to know. Joehst drenk, drenk!”

내 입가에 들이밀어지는 — 아마 이미 병나발을 불었을 — 술병. 대학교 1학년 때 MT에서 남에게 술 먹이는 주사를 부리던 선배가 생각났다. 그 뒤로 지긋지긋해서 MT 따위 한 번도 따라간 적이 없었다. 정확히는 그 선배가 서율이한테 자꾸 술을 먹이려는 걸 말리려다가 시비가 붙어, 내가 그 선배 죽빵을 때려갖고 그 뒤로 우리 둘은 MT에 오라고 부르는 일이 없어졌던 것이었지만……. 불러도 안 갔을 거다, 뭐.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봐도 죽빵을 때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때렸다간 나를 번쩍 들어서 바다에 메다꽂아 버리지 않을까.

“운전해야 해서 술 마시면 안 돼요. 노 드링크!”

“술을 안 마셔? 너 무슨 금욕주의자냐? 따분한 년일세.”“No drenk? what, 're you sahme kenda teetahtaler? What a doehll girl.”

내가 계속 반응하지 않고 심드렁하게 있자, 에블린은 흥이 떨어졌는지 다른 선원을 잡아 괴롭히러 가 버렸다. 그 사이 눈물을 다 닦아낸 조제핀이 말을 걸어왔다.

“처음에, 장 선장님이 이런 선물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다니, ‘호마’가 보낸 것일 수밖에 없다고 하셨어요. 선장님을 처음부터 따랐던 동양인 선원들은 환호했지만, 저나 에블린을 비롯해서 나중에 합류한 사람들은 좀 시큰둥했죠. 호마는 우리가 믿는 신이 아니니까요.”“At first, Captain Jang said that such a gift fell from the middle of nowhere, so it must have been from ‘Homa’. The Asian sailors, who followed the captain from the beginning, cheered, but I and Éibhlín and others, who joined later, were a bit reluctant. Because Homa is not our God we believe in.”

호마? 호마가 신의 이름이라고? 그런 신이 있었나?

“하지만, 이렇게 기쁜 소식을 들으니까, 정말 배달부님이 희년이 왔었다고 알려주러 오신 신의 사자 같아요.”“However, with such good news, it really seems like you, Miss Courier, are like a messenger of God, came to tell us that the jubilee had been here.”

“신의 사자라뇨. 저는 그냥 돈 받고 일하는 노동자일 뿐인데요.”“Messenger of God? Nahh, I'm nothing but a humble worker, working for money.”

“신의 사자……. 천사. 천사 같은 분.”“Messenger of God. The angel. You are like a angel.”

천사라니. 얼굴에 열이 확 올라왔다. 아마 좀전의 에블린만큼이나 벌겋게 달아올랐겠지.

예쁘다, 귀엽다, ……, 그런 여성스러운 수식어로 불리는 것을 질색팔색해 왔지만, 지금은 딱히 그런 의도로 하는 말이 아닐 터이고, 나도 이 상황이 질색팔색할 상황이 아니라는 정도의 눈치는 있다.

지금 후끈거리는 얼굴의 열감은 그래서다.

결국, 식어가는 케이준 스튜를 다 비운 뒤에야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조제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선원들도 오랜만에 보는 고향 세계의 외부인을 모두 반가워하고 또 신기해했기 때문이다. 다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어 주길 바라는 눈치를 장난 아니게 보내왔다. 관찰당하는 느낌이라 결코 마음이 편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악의가 느껴지는 시선은 또 분명 아니었다.

다마스에 올라타 시동을 걸자 선원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어 배웅해 주는 것이 후사경에 비쳐 보였다. 나도 상체를 내밀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미멜라가 "길"을 열기 위해 계산하기를 내가 기다리는 동안, 선원들은 어디서 난 것인지 굵직한 쇠사슬을 당기며 커다란 기둥을 세우고 있었다. 다 세워진 그것의 형태는 영락없는 돛대였다.

잠수함의 거대한 나무 뚜껑을 활주로로 삼아 굴러가는 다마스. 열린 "길" 너머로 진입하기 직전, 돛대에 늘어진 검은 돛에 붉은 글씨가 커다랗게 쓰여 있는 것이 보였다.

과거, 대장에게 한자를 억지로 배웠던 덕분에, 나는 그 글자들을 반사적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사해수로군
행군대총관
파신대원수
청해진대사
장보고좌선.

장보고? 청해진?

돛대 아래에서 검은 돛을 올려다보는, 우두머리로 보이는 동양인 남자 — 조제핀이 말했던 “Captain Jang”의 모습을 후사경 속에서 찾아내려는데, 후사경의 시야가 흰 색으로 뒤덮였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가속하여 공중에 들어선 다마스와 저 뒤의 잠수함 사이에서, 커다란 물기둥이 치솟고 있었다.

“…………….”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종잡을 수가 없는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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