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와 나무는 사귀기 어렵다

로키 산맥 어딘가 소나무 숲 한가운데, 젊은 여자가 누워 있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여자가 누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백골만 보고 어떤 사람이었는지 제대로 알아맞히기는 어려우니까. 하지만 누운 것은 틀림없이 35살 여자였다. 여자는 똑같은 자리에서 3년 동안 아무 동요도 방해도 없이 누워 있었다. 하이킹 다니는 사람이나 미친 사람에게는 숲 가까운 곳을 지날 때면 여자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하이킹 다니는 사람은 바람 소리인가 하며 넘어갔고, 미친 사람은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하며 넘어갔다. 그래서 아무도 여자가 우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여자가 누운 자리는 불편한 곳이었다.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땅이 울퉁불퉁한데다 척추에 조그만 돌멩이가 박혀 있었다. 여자는 살지 않기 시작했을 때 촉각도 잃어버렸다면 좋았을 텐데 하고 바라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걸로 뭐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 거야 살아 있을 때 족히 다 투덜거렸으니까. 나무 보고 투덜대고, 솔잎 보고 투덜대고, 흙 보고 투덜대고, 척추에 박힌 돌멩이 보고 투덜대고, 아무튼 뭐든지 여자는 투덜거렸더란다.

그래도 기쁠 때도 있었다. 여자는 마냥 혼자 있기만 하지 않았다. 이따금 여자에게 목소리가 들려오고 이미지가 보였다. 이미지를 볼 때면 신혼여행 때 기억이 어김없이 떠올랐다. 정말 멋진 기억이며 또 더럽혀진 기억이었다. 다행히 목소리에는 향수가 담겨오지 않았다. 항상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나중에는 무서워하는 목소리였다. 보통 첫마디로 꺼내는 질문은 이랬다. "너 누구야? 내 머릿속에서 뭐해?"

처음으로 목소리를 듣고 나서부터 여자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찾아올 때마다 여자는 농담 삼아 여러 가지를 부탁했다. 여자도 목소리에게 정말 도움을 받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목소리들은 여자에게 찾아가는 가장 빠른 길이 어떤 방향인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가며 최선을 다했다.

대화는 즐거웠다. 그래서 여자는 불안해졌다. 목소리가 떠나고 다시 찾아올 때까지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더 길게 느껴졌다. 다섯 번째 목소리까 떠나자 여자는 외로움을 더는 참지 못했다. 그래서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우선 여자는 다음 손님이 도착할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래서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뭐야 이건?"

이윽고 새로 친구가 도착했다. 이 남자가 데려온 이미지는 얼어붙은 폭포였다. 여자도 이 폭포를 기억했다. 그리고 그때 얼음 동굴로 찾아갔던… 그러다 여자는 떠오르는 향수를 머릿속에서 털어냈다.

"어… 음… 안녕하세요!"

"너 누구야? 내 머릿속에서 뭐해?"

"하하! 저 그런 말 자주 듣기는 해요."

"아니 그게 무슨…"

"렘Rem이라고 해요. 두 번째 질문은 대답하기 조금 어렵네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D-4505."

"별로 이름 같아 보이지 않는데!"

"아, 음… 브래드, 이긴 한데?"

"왜 그렇게 확신 없이 말하는 거예요!" 렘이 살짝 킥킥거렸다.

"아니, 내 이름… 브래드 맞아요. 미안해요, 오늘 하루가 좀 이상해서. 보통은 괴물한테 쫓기거나 괴물의 뒷처리를 해주거나 괴물의 미끼가 되거나 하면서 살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할 일이 '이 사진 보세요'뿐이라고 하니까 살짝 놀랐어요."

"오오, 운 좋은 날이라니 저도 기쁘네요! 드디어 이야기할 사람이 생겼다!" 렘이 몇 년 이내로 가장 신이 나서 말했다. 손님이 찾아올 때마다 맨날 하는 소리였지만.

"그렇긴 하겠네요.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하세요."

"저기… 음… 브래드…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요?"

"아, 음, 말해봐요."

"저를 위해서 아이다호의 어떤 곳으로 가줄 수 있어요?"

"네, 그럼요. 안 그럴 이유가 없죠"

"멋져요! 어떤 곳이냐면-"

"쇼쇼니족 얼음동굴인가요?"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아 음… 글쎼 어떻게 알았지… 찍었달까요?"

렘이 또 킥킥 웃었다. 좋은 사람 같았다.

"어떻게 가는지도 아세요?"

"네. 아는 것 같아요… 이상해요, 내 몸이 그냥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다니. 마치 근육 기억처럼."

"아. 미안해요, 저랑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그런 일이 많다더라구요."

"걱정 마요. 이것보다 더한 일도 많이 겪어봤어요. 사실 하얀 가운들이 발벗고 저를 도와주려 하고 있어요. 그게 훨씬 이상하죠, 머릿속의 목소리보다도."

둘은 그렇게 대화를 계속 나눴다. 앞으로도 렘 생각에 "충분히 길지 않다"고 느낄 시간이 지났다. 둘은 온갖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브래드가 신기한 이야기 한 움큼을 말하면 렘은 따분한 자기 삶 한 토막을 내놓았다. 한쪽은 "렘"이라고 불리기를 그리워했고, 한쪽은 "브래드"라 불리기를 그리워했다. 렘은 둘이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렘, 나 동굴 입구까지 왔어요. 어디 있어요?"

"아! 좋아요! 음… 뾰족한 거 구할 수 있어요? 칼이라거나?"

"알았어요. 하나 구해서 동굴로 들어가 있을게요."

"위치 알려드릴게요, 알았죠?" 렘은 브래드가 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렘은 얼어붙은 폭포로 가는 길을 브래드에게 가르쳐줬다. 브래드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안다고 말하는 와중에도.

"다 왔어요, 렘."

"알아요, 저도 지금 보여요!" 아니나 다를까, 번듯이 서 있었다. 주황색 점프수트 입은 남자가, 적어도 일주일은 면도하지 않은 채로. 한 손에 든 기념품 칼을, 그 남자는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짜요? 아 음… 저는 안 보이는데요."

"걱정 마요. 좀 있으면 보일 거예요. 저랑 함께하기만 하면 돼요."

"함께해요?"

"그러니까… 지금쯤 됐으면 제 정체가 뭔지 약간 짐작하실 것도 같고… 음… 제가 좀 많이 외로워서…"

"아…" 브래드가 칼을 목덜미 앞으로 갖다댔다. "이렇게 함께하면 될까요?"

"음…" 렘이 침을 꿀꺽 삼켰다. "어… 맞아요."

"알았어요. 좀 있다 봐-" 브래드가 바닥에 와당탕 엎어졌다. 칼이 2피트가량 뒤로 떨어지고, 실험복 입고 동그란 안경 쓴 남자가 그 칼을 집어들었다.

"브래드!"

"망할 하얀 가운!"

"괜찮아요?"

"미안해요 렘."

"아니아니아니 미안하다고 하지 마요!"

"만나서 반가웠-" 그리고 렘은 브래드의 말을 다시 듣지 못했다. 브래드를 보지도 못했다. 렘은 주변의 차갑고 울퉁불퉁한 땅을 돌아봤다. 척추를 찌르는 돌멩이가 여느 때보다 훨씬 더 성가셨다. 렘은 훌쩍임을 한 번 삼켰다. 두 번 삼켰다. 그러다 울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몇 년 동안, 아무도 렘을 찾아오지 않았다. 렘은 숲속에서 몇 날 며칠을 울었다. 나무 보고 울고, 솔잎 보고 울고, 흙 보고 울고, 척추에 박힌 돌멩이 보고 울고, 아무튼 뭘 보든지 울었더란다. 하이킹 다니는 사람이나 미친 사람에게는 숲 가까운 곳을 지날 때면 여자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하이킹 다니는 사람은 바람 소리인가 하며 넘어갔고, 미친 사람은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하며 넘어갔다. 그래서 아무도 렘이 우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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