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난봉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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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r College Odyssey

The Buck Stops Here

스리포틀랜즈시 2018년 4월 20일 금요일 천사의 몫의 절반

4월의 난봉꾼들

술취한 바보들을 위한 1주일

봄 한정 중개업자 팬지 더 피스헤드Pansy the Pisshead(⁂pansies_masterpiece)

유사 이래로, 인류와 술 사이에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견고한 끈이 존재해왔다. 인류가 아직 2족보행의 방식을 완전히 깨우치지 못하고 동아프리카 삼림지대와 초원의 사이를 어슬렁거리던 시절에는1 나무구멍에 손을 넣어 발효된 과즙을 빨아먹었을 것이고, 현재도 그 본질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 사슴대와 술 사이에는 훨씬 색다른 끈이 있는 것이다──그것은 결코 Beer와 Deer의 압운이 맞다거나 하는 유치한 것이 아니며, 더욱 성질이 고약한 것이다. 4월 마지막 주의 기함할 전통, 스피크이지Speakeasy가 바로 그 으뜸가는 존재라 하겠다. 사슴대의 역사를 되짚어 보며, 이 저주받은 축제에 대해 돌이켜 보겠다.

움막에서의 건배: 1957

기념할 만한 개교 이래 몇 년 간, 사슴대 학생들은 학생다운 일을 거의 한 것이 없었다.2 왜 그랬는가 그것은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는데, 개교 직후 사슴대에는 교원도 학생도 적어서, 캠퍼스 주변에 매점이나 잡화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14세기의 수도원과 같은 모양새였다. 스리포틀랜즈라는 뭍 속의 고도(孤島)에서, 학생들은 열악한 환경에 헐떡이며, 매일 행방불명되는 협곡관 입구를 찾아 캠퍼스를 방황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 음모의 최초의 발안자는 당시 3학년생이었던 키블링Kibling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내는 당시 19세였고,3 강의에 출석할 때 이외에는 늘상 술집 구석에 앉아 있는, 당차고 선량하지만 불성실한 학생이었다. 그는 캠퍼스 안에서도 그러한 생활을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자기와 비슷한 처지를 공유하는 몇몇 주정뱅이 학생들을 끌어모아 비밀4결사를 창설했다.

그들은 그 모임을 “틴에이지클럽”Teenage Club이라고 이름붙였다. 참 고약한 농담이었다! 당시의 스리포틀랜즈에서도 미성년자의 음주는 금지였다. 그러나 시경찰5이 일개 학생을 미성년음주로 구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하급인력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동호회는 완전히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기숙사 구관의 한 구석에 비밀 저장고를 건조해 두고, 언제라도 대학 구내에서 술판을 벌일 수 있도록 하였다. 그 시절의 썩어빠진 사슴대생의 흉계란 아직 이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스피크이지의 도래: 1964

1963년까지 사슴대 학생들은 평화를 구가하고 있었다. ICSUT 포틀랜즈 분원과의 무수하지만 사소한 승강이들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전해지는 이 대학의 나쁜 전통들 대다수는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그렇다. 1963년도 봄학기야말로 그 모든 악의 근원, 시대의 분수령이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나고, 레포트에 떠는 나날이 재개되면서 고개를 떨군 채 교문을 들어선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캠퍼스 내에서의 음주를 야간으로만 제한한다는 가공할 만한 규칙이었다.

당시 총장 그링구이스Gringhuis가 간이 부어서 제정했던 이 규칙은, 그 전해 가을학기 기말시험 중에 일어났던 불행한 사고에 근거했다──초과대수론 개론에서 반드시 배우는 매우 초보적인 포인트임에도 불구하고, 한 학생이 기억루프 생성을 소홀히 하여 회색곰 6마리를 현장에 출현시켰다. 혼란 가운데 17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했고, 크노르관 남쪽 탑이 봉쇄되었으며, 곰에게 부여된 변칙적 인과율보호를 해제하기 위해 학회에 갔던 베텔게우스 학부장이 호출을 받고 돌아와야 했다.

문제는 사건 후 현장검증 때 대량의 맥주와 포도주가 시험장 마루 밑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적절한 양의 알코올의 섭취는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위통을 완화해 주어 차분하게 시험문제를 풀 수 있는 마음의 준비에 기여한다고 많은 사슴대생들이6 믿었다. 불성실한 일부 학생들은 어차피 답안에 합격점을 주지 않을 교수에 대한 무언의 항의로 시험장에서 공개적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폭거를 하기에 이르고 있었다.

“불곰연산”을 풀었던 문제의 학생 당사자가 주취상태에 있었는지는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지만, 아무튼 간에 그링구이스 총장은 교내 기강의 숙정을 결의했다. 최소 3차례의 난투 끝에 교수평의회도 총장의 방침을 추인했고, 1964년 봄부터 새로운 규칙이 제정되었던 것이다. 교내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은 20시부터 익일 1시까지로 제한되고, 또한 음주가 가능한 장소도 제한되었다. 일부 시설에서는 음주행위 자체에 제약이 부여되었다──예컨대 흉가에서는 3년 이상 지하에 눕혀놓은 술밖에 마실 수 없었고, 포도주에는 사체용 방부제의 배합이 의무화되었다.

개교 이래 16년간 사슴대 주위에는 식당이나 매점 등의 편의시설이 미비했기 때문에, 캠퍼스 내에서의 음주 제한은 오늘날 우리 학생들의 시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반발을 낳았고, 학교당국과의 충돌이 급증했다. 그링구이스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마태복음에서 말한 것과 같이 “사람이 밥으로만 살 것이 아니”7라는 것이었다. 지옥같은 대학생활을 이겨내기 위해 유사 이래의 소박한 유흥에 빠져왔던 학생들은 총장의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3월에는 학생 몇 명이 당국에 체포되어 봉사활동을 벌칙8으로 부과받기에 이르고, 학내의 분위기는 심각한 긴장에 휩싸였다.

이런 상황에서, 기말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온 4월 중순, 크노르관 앞 학생게시판에 대자보가 한 장 붙었다.

현명한 학생 제군에게 고함

단결하자!

우리들 사슴의 15년간의 영위가 바로 지금 이 순간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링구이스 총장의 결정은 대학 상층부가 사악한 전제정치의 유혹에 사로잡혀 자유로운 지적 호기심의 추구라는 사슴대의 건학이념을 완전히 망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나카르시스Anacharsis의 말을 인용할 필요도 없지만, 술은 약간의 광기를 초래한다──학술적 광기! 번개처럼 뇌리를 오가는 한 가닥 빛과, 그것을 곧바로 망각 너머 저 편으로 보내 버리는 휘프노스의 오른팔! 한 순간의 안식, 행복한 졸음과 다음 날의 쉼없는 두통! 미칠 것 같은 후회, 그리고 똑같은 장소로 돌아가는 반복.

그것을 우리는 요구한다. 자유로운 학구, 자유로운 언론, 자유로운 행동.

석학의 장(長)이 뭐라 떠들든, 여섯 갈래 사슴뿔에 걸고 맹세하건대, 사슴대생은 자유롭다! 사슴대생은 탄압에 굴하지 않는다. 사슴대생을 심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세 가지, 기말시험, 집중강의, 기말시험, 졸업논문 뿐이다. 그 밖의 무엇도 누구도 우리의 탐닉을 멈출 수 없다.

우리들 틴에이지클럽은 대학당국에 저항할 것을 드높이 선언한다. 궐기집회는 27일에 열린다. 곳간을 열어 전학(全学)의 동지들이 모두 목을 축이기에 족한 맥주를 제공할 것이다. 해방구에 모여라.

암구호는 스피크이지speakeasy다.

이 자보를 쓴 것이 틴에이지클럽의 어느 멤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초보적인 산수 오류에도 불구하고,9 격문의 효과는 컸다. 실제로 기말시험이나 논문제출을 앞두고 있던 학생들의 프러스트레이션은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기 때문에, 그 배출구가 마련된 바 사태는 일거에 전학적인 운동으로 발전했다.

대개의 예상과 달리, 대사건이라 할 만한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협곡 주변의 호반에서 열린 술판은 참가한 학생의 수10에 비해 소규모였고 절도있게 이루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몇몇 학생들이 결투 소동을 일으켜 자율청원경찰Community Safety에 적발된 것 외에는 큰 혼란은 없었다. 오후부터 시작된 술판은 이틑날 아침까지 계속되어서, 대학당국이 이를 사실상 묵인한 것이 되었다. 학생들은 내년에도 이 축제에 다시 모일 것을 맹세하고11 해산했다.

급전직하: 1966

“급전”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사소한 내용임을 먼저 밝히고 넘어가야겠다.

우선, 1965년 역시 평화로웠다. 그링구이스 총장이 퇴임하고, 후임 총장 히터 "혼리스" 데이비스Heather "Hornless" Davis는 이사회를 장악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틴에이지클럽과 유쾌한 동지들은 작년의 승리의 여운에 젖어 있었다. 술판은 작년보다 조금 규모를 줄였다.

1966년에는 술판이 열리지 않았다──축제 전날 밤, 자율청경대가 기숙사 구관의 비밀의 작은 방에 쳐들어가 적게 잡아도 수백 갤런에 달하는 알코올성 음료를 압수하고, 또한 전야제를 열던 학생 5명을 구속했다. 그 시각이 오전 1시를 넘은 시점이었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클럽측은 확장공간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스리포틀랜즈의 기저시간선과 다르다고 항변했지만, 교수평의회 심판소는 이 주장을 각하했다.12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은 꽤 기발했다. 데이비스 총장의 분명한 가학성이 뭇 사람의 눈앞에 닥쳤다──압수된 주류를 그녀가 손수 정화마법을 걸어 맹물로 바꾼 뒤, 축제 장소로 예정된 호수에 방류해버렸던 것이다. 4교시가 마칠 무렵, 당시 존재했던 캠퍼스 내 대부분의 건축물에서 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지상 30미터 위에 떠오른 한 무더기의 맥주통에서 쏟아져나오는 황금색 액체가 공중에서 투명하게 변화하며 호숫물에 쏟아지는 모습에, 많은 사슴대생들이 공포로 전율했지만, 일부 학생들은 오히려 반골심을 위험수준까지 강화시켰다. 이 본보기 행위가 결국 무엇을 야기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몇 년후에 밝혀졌다.

혼란의 개막: 1971

1970년대 초엽, 사슴대는 거칠었다. 데이비스 총장의 장기집권으로 압박이 점증되었고, 자율청경대는 압제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기록에 남을 만큼 큰 사건은 없었다. 이 무렵부터 총장을 포함한 학장급 교원들이 매년 시험기간 전후로 학생들에게 학점을 노린 습격을 받게 되었지만, 기말고사를 통과할 가망도 없는 낙제생에게 뒷박을 까여서야 사슴대에서 교원 노릇을 할 리가 없다.

그러나 사태는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클리퍼 스트로스Clipper Strouse는 재입학생으로, 66년의 섬쩍지근한 탄압13을 경험했던 소수의 사슴대생이었다. 그는 매드사이 지하실에서 밤낮으로 비밀연구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심오한 이치에 도달했다──현재까지 사슴대의 명물인 자가양조 맥주homebrew beer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는 이 발명품을 “골드 롱혼”Gold Longhorn이라고 명명했으나, 레시피의 출처를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아서 여러가지 억측이 생겨났다.

원자재 생산부터 가공, 양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사슴대 교정 구내에서 이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도발적인 황금색 음료는 대학당국의 눈을 완전히 속이는 데 성공했다. 스트로스는 일부 교원들의 공공연한 협력을 받아 스리포틀랜즈의 몇몇 기업과 제휴관계를 맺고 산업용 액체여과장치의 개량에 나섰는데, 이 선진적인 산학제휴협정의 이면에는 스리포틀랜즈 전역에 이 사슴대산(産) 밀조주를 판매하겠다는 야망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대망(大望)은 어중간한 형태로 결실을 맺었다. 71년 4월, 그는 5년 전의 굴욕적인 패배를 정산하고자 했다. 스피크이지라는 암구호는 이미 사슴대의 전설이 되어 있었기에, 그는 수제 밀조주를 거기에 연결시켜서 완전 무료로 자신의 맥주를 게릴라 판매하기로 했다. 만전을 기하기 위해 도주수단으로서 헤르메스의 깃을 준비하는 용의주도함까지 갖추었다.

뜻 있는 학생들의 백업을 받아 실행에 임한 계획은, 실행 며칠 전에 파탄났다. 스리포틀랜즈시경찰국이 시의 판매허가증을 득하지 못한 채 과세대상인 주류를 판매한 죄목으로 스트로스의 판매원을 체포했고, 그의 조직을 일망타진한 뒤 터무니없는 액수의 추징금을 청구했던 것이다.

스트로스는 그 날부로 스리포틀랜즈에서 종적을 감추었고, 라 뤼의 늪지대로 도망가 잠적했다. 그의 하수인들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의 지하실은 그대로 남았다──부자연과학부 4학년생이었던 아우렌딜Aurendil이 양조장치를 연금학과의 액체 호문쿨루스 설계공모 실험기계로 가장하여 시경찰의 수사망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매드사이 3층에 걸려 있는 그의 초상화가 황금 사슴뿔로 장식되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리히여 “황금의 뿔”의 최초의 고안자는 사슴대의 역사에서 모습을 감추었으나,14 스피크이지의 전통은 기묘하게도 형태를 바꾸어 존속했다. 그 이름의 어원 그대로, 스피크이지는 밀조주와 결부되어, “금주법 시대”의 사슴대에서 은밀히 유흥을 즐기는 비밀의 전통이 된 셈이었다.

이 해에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자율청경대의 가열찬 적발이 마침내 체육활동에까지 미친 것이었다. 사슴대 대 ICSUT 럭비 정기전이 그 최초의 현장이었다. 그것도 마침 사슴대의 홈경기였던 차라, 양측 학교의 관객들이 야유를 날리는 가운데 비집고 들어와 관객으로부터 맥주를 빼앗으려 한 청원경찰의 만행은 맹렬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사슴대 측 잔디에서는 유혈의 소통이 일어났다. 다행히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데이비스 총장은 이 사건의 해명을 피할 수 없었고, 한동안은 학내 통치가 온순해졌다. 아마 이것이 최종적으로 사슴대생들의 승리를 확실히 한 것일 터다.

이 사건 이후 몇 년 간은 어느 세력이든 몸을 사리게 되었다. 머리에 오른 피를 진정시키기 위해 희생이 필요했다는 말은 그다지 공정하지 않다. 불어불문학과 전년도 학과장이었던 듀드네이Dudenay는 불운하게도 싸움에 휘말려 견갑골이 6미터나 자라나서 일상생활이 불편할 지경에 이르렀다. 아직도 그에게 문안편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마도 사슴대생들에게 근소하게 남아 있는 양심 때문 아닐까.

정적: 1977

모든 의미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해를 언급하는 것은 악명 높은 데이비스 총장이 퇴임한 해였기 때문이다. 퇴임식에서 포도주 비를 내리게 해서 그녀가 자랑하는 학모를 새빨갛게 물들이자는 시도가 실행 직전까지 가고 있었지만, 결국 어째서인지 실현되지 않았다. 아무렴 사슴대생들이라도 대학을 용퇴하는 총장의 등에 침을 뱉는 것은 꺼렸던 것인까, 아니면 단순히 겁을 먹었던 것일까. 퇴임 후 그녀의 당당한 마법결투 전적을 볼 때, 목숨을 사린 당시의 사슴대생들을 비겁하다 규탄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리는 최후에 이긴다: 1985

1980년대가 되면, 사슴대생들의 인내력이야말로 최종적인 승리의 열쇠임이 명확해졌다. 브랙던Bragdon 총장은 당초에는 전임자의 의사를 이어받아 사슴대생들의 건전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학내 알코올 배제정책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는 데이비스에 비해 훨씬 인간적인 기호의 소유자였다──그가 저녁 식후에 꼭 맥주를 2잔씩 마시는 사람임이 밝혀지자, 어떻게든 이 유쾌한 털보 덩치를 학생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지상명제가 되었다.

1981년 크리스마스 파티 자리에서, 매수된 학생자치회 멤버들이 공모하여 브랙던의 조끼 내용물을 “골드 롱혼”으로 바꿔치기하는 데 성공했다.15 그는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조끼를 들이키더니, 눈동자를 빛내며 오늘 이 한 잔은 예전보다 훨씬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사슴대생들이 열망했던 결과이자, 승리의 봉수대에 연기가 치솟은 순간이었다.

역대 학생자치회, 그리고 청원경찰 중견부대장, 칼리지 경비원, 학생식당 수위, 기타 수많은 직원들에게 유무형의 뇌물을 뿌린 가공할 시도의 결과, 틴에이지클럽의 말예들16은 전례없이 대학집행부에 접근한 상태였다. 이윽고 총장의 저녁 식탁에는 우리가 만든 밀조주가 필히 올라가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당시 자치회장 스벤손Svensson이 총장의 귓가에 진실을 속삭였다. 실로 6년에 달하는 공작활동이 결실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정도의 열의와 노력을 기울여가며 자유로운 학내음주의 권리를 쟁취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사슴대생들의 반골사상의 문제로서 실제로는 술에 대해서는 다들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간에 1985년 3월, 역사적인 성명이 발표되었다. 공명정대한 교육자이신 브랙던 총장님은 과거에 이루어진 다양한 탄압행위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으며, 대학은 적절한 학내풍기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입장을 굽히지도 않았으나,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몇 가지 규칙을 합리화」할 것임을 선언했다. 그링구이스 전 총장이 만들었던 규칙들은 폐지되었다. “골드 롱혼”의 학내 유통은 완전히 보장되었고, 적정한 주세가 대학을 통해서 스리포틀랜즈시에 납부되게 되었다.

이 해 4월 24일은 수요일이었다. 호반에서 열린 술판은 이 때 처음으로 스피크이지제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칭했다. 성대한 술판에 30명 이상의 교원들이 참석했으며, 그 가운데 브랙던 총장도 있었음을 기록으로 남길 만하다. 특별히 초대된 사슴대 럭비팀은 전원이 코가 삐뚤어지게 만취했다가 ISCUT과의 정기전에서 참패했다. 그래서 그 다음해부터는 5월의 대항전을 앞두고 있는 모든 체육팀들의 참가가 금지되었다. 유일한 예외는 퀴디치팀이다.17

축배를 들어라: 현재

장장 18년에 걸친 대학집행부와 사슴대생들의 싸움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현재 모두가 알다시피 스피크이지제는 기말기간 이전의 마지막 축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축제 이전에는 시험과, 논문과, 이런저런 교류전들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 해 최후의 싸움을 앞두고 배터지게 술을 마셔 원기를 충전한다.

올해 24일은 화요일이다. 식전은 17시부터 호반에서 개최된다. 첫 날은 몸을 사리는 게 좋다──애인을 동반한다면 수요일 밤이 좋다. 콘서트는 금요일 하루종일 계속되고, 썸머스케이트는 토요일 낮부터 탈 수 있다.

자, 지옥에 뛰어들기 전 최후의 1주일을 즐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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