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

알베르토 박사: 당신이 리지웨이 박사로군.

리지웨이 박사: 그렇습니다.

알베르토 박사: 자네가 윤리위원회의 의장이라고.

리지웨이 박사: 예. 맞습니다.

알베르토 박사: 반갑군, 리지웨이. 나 역시 자네와 같은 관찰자라네.


알베르토 박사는 기나긴 종이를 붙들고 로렌스라는 이름을 찾아 내려갔다. 그 옆에서 레버와 섀넌 부부도 함께 종이의 산을 치우고 있었다. 벌써 7시간째였다. 레버는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하고 있었고, 섀넌은 이미 아까부터 다리가 저렸다. 그러나 알베르토 박사는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처음의 자세 그대로였다. 레버는 그가 안경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박사님, 궁금한데, 나이가 얼마나 되시죠?"

"그게 중요한가?"

'저 애늙은이 박사가 이런 걸 프라이버시로 여기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레버가 대답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도 중요한 화제입니다."

"자네와 그다지 차이는 없을 거야."

"저는 박사님이 저보다 어리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싶군요."

"자네 재밌군."

알베르토 박사는 여전히 종이를 읽고 있었다. 레버는 행정부가 정리해놓았던 지역 거주민 목록을 질린다는 듯 노려보다가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더 이상은 못 참겠습니다. 바람 좀 쐬고 올게요."

"그러게."

"섀넌, 당신도 같이 가겠어?"

"아뇨, 전 좀 더 도와드릴게요. 밖에 나가 계세요."

"너무 무리하지 마."

레버는 그 말을 남기고 문밖으로 나갔다. 섀넌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알베르토 박사에게 눈을 돌렸다.

"박사님, 박사님은 이 남자를 왜 찾으시려고 하시는 거죠?"

"자네도 어지간히 심심했던가 보군, 베일리 양." 박사가 등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얘기는 저번에도 해줬잖아."

"그렇지만 전, 이 남자가 박사님께 무슨 의미인지 묻고 있는 거예요."

섀넌이 웃지 않자 알베르토 박사도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 동안 그는 아까처럼 로렌스라는 이름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종이뭉치를 내려놓더니, 천천히 회전의자를 뒤로 돌렸다.


███████████████

알베르토 박사: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겠나?

리지웨이 박사: 당신은, 상징에 대한 이야기를 한 거죠, 맞습니까?

알베르토 박사: 그리고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지.

리지웨이 박사: 그 말대로라면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뜻인데요.

알베르토 박사: 그래. 머지않아 모든 게 붕괴될 거야.

리지웨이 박사: 루핀 박사의 죽음, 재앙, 세계…… 그렇군요. 이해가 됩니다. 알겠어요.

알베르토 박사: 모든 게 가상 시나리오 그대로였네.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리지웨이 박사: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상대에게 물컵을 권한다) 그렇지만 이제 상황을 알게 되었다면,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 노력해야죠.

알베르토 박사: 내게 말해줄 게 있나?

리지웨이 박사: 그래요. 로렌스는 죽지 않았습니다.


알베르토 박사가 천천히 입가에 가져갔던 손을 내렸다. 마치 반지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것 같았다. 섀넌은 번쩍거리는 그의 손가락에서 하얀 그림자가 흔들리는 것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래서, 결국 그 남자는 처분된 적이 없었다는 건가요?"

"그래. 그는 리지웨이 박사의 손에 의해 재단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고, 자신의 가족에게 돌아갔네."

박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지만 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직 못 들었어요, 박사님. 그 남자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죠? 단지 못다 한 약속에 대한 미련과 해방일 뿐인가요?"

알베르토는 고개를 들었다. 섀넌이 분명히 말해달라는 듯 그의 눈을 마주했다. 그녀는 상담사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 뿐이라 하기엔, 박사님의 행동에는 알 수 없는 간절함이 느껴지네요. 제 착각인가요?"

"심리학을 전공한 건 자네니까, 자네가 맞겠지, 베일리 양.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눈물을 흘리고 기도를 올리며 신에게 감사하거나, 혹은 아마도 기쁜 허탈감을 맛보는 것으로 끝났겠지. 그러나 나는 세계의 존망이 걸린 이 시점에 여전히 그를 찾아 광인처럼 이 종이뭉치들을 붙잡고 헤매고 있고." 그는 고개를 숙이며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자네가 누구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네."

섀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맞아. 나 또한 이 남자에게 내 존재를 걸고 있지……. 나는 그가 모든 것을 해결할 열쇠라고 생각하네."

"위험한 생각이라는 걸 본인도 잘 알고 계실 텐데요."

"자네는 아까부터 사람을 놀라게 하는군. 난 심리학이 쓸모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 남자가 활약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해요, 박사님. 지금은 너무 늦었어요. 죄송하지만 박사님의 친구 분은 죽었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본인도 방금 말하셨잖아요? 광인처럼 헤매고 있다고. 이런 행동은 분명 박사님이 과거에 매여 있는 거라고 밖에 보이지 않아요. 그건 스스로 만든 틀에 자신을 밀어 넣어서 갇혔기 때문이 아닌가요?"

"맞아. 모두 맞는 말이야. 나도 이미 알고 있지. 우리 모두 자기 신세에 대해서 알고 있네. 그렇지 않나?"

알베르토가 섀넌과 다시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 대답 또한 자네가 잘 알 거라고 생각해."

두 사람 모두 그 사실을 먼저 입 밖에 내길 꺼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야."


███████████████

리지웨이 박사: 그렇지만 저는 이것이 옳은 선택인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역할은 이미 끝났어요. 당신이 그를 억지로 다시 끌어들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유념하세요.

알베르토 박사: 나도 알아. 그렇지만 루핀의 죽음도, 재앙도, 모든 문제는 거기서 시작됐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할 수밖에 없는 것 말고는 없네.

리지웨이 박사: ……그래요, 알겠습니다.

알베르토 박사: 자네는 어떤가? 뭘 할 생각이지?

리지웨이 박사: 저는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홀로…… 더 깊게 파고들어 갈 겁니다.

알베르토 박사: (웃음) 자네도 위험한 친구인 건 매한가지로군.

리지웨이 박사: 우리 모두 위험한 사람들이죠. 이번 재앙에서는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까.

알베르토 박사: 그래…… 그걸 막기 위해 모두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겠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말이야. 자네는 어디로 향할 텐가?

리지웨이 박사: 전임자를 따라야지요. 램지 박사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뒤를 쫓으며 그가 놓쳤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찾아갈 겁니다.

알베르토 박사: 행운을 비네. 나는 로렌스 씨를 찾으러 가 봐야겠어.

리지웨이 박사: 행운을 빕니다.


섀넌과 알베르토 박사는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부서진 가로등 옆에서 중절모를 쓰고 잿빛 양복을 입은 사내가 레버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알베르토는 섀넌의 발견에 무덤덤한 표정으로 응하며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섀넌이 레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물었다.

"저 사람이 누군지 아시나요?"

낮게 깔리는 알베르토의 목소리는 죽은 목소리라고 해도 좋았다.

"아무도 아닌 자. 모두들 그렇게 부르지. 그는 개연성을 의미해."

그들이 서있는 위치에서는 양복 신사의 얼굴이 중절모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알베르토 박사는 마치 그렇게 하면 중절모 너머의 얼굴을 볼 수 있다고 여기는 듯 뚫어져라 그를 쳐다보았다.

"설명하기 힘든 사건. 비현실적인 전개. 빠진 연결고리. 그는 언제나 그런 상황에 나타나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고 사라지지. 그가 가져온 단서를 끼워 맞추기만 하면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설명돼. 마치 그가 존재하지 않았기라도 했던 것처럼 흐름은 자연스러워지고, 우리는 애초부터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쪽의 이야기가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되지. 그는 그렇게 정말로 그림자 속의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어."

"하지만 그는 이렇게 존재해요."

"아무도 아닌 자는, 이제 그 자체의 존재만으로 개연성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네."

알베르토와 섀넌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섀넌이 그것을 눈치채고 몸을 떨었다.

"그가 뭘 꾸미고 있는 걸까요?"

"분명한 건 그가 스스로 우리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는 거야."

"……그게 우리가 바라는 바인가요?"

"그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레버 베일리의 심리 검사 기록

면담 대상: 레버 베일리

면담자: XX XX

서론: 재단 내 인원들의 불안과 불만 파악 및 복리 증진을 위한 대대적인 일대일 면담 실시함

(대상이 심리 검사 요청에 응하지 않음)

결과 분석: -
메모: 그가 화이트를 쫓고 있다

판정: 위험 인물(담당관의 서명)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