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시백

제17기지 위로 길게 꼬리를 만들며 떨어지는 혜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기를 가르며 땅을 진동시키는 강력한 힘은 모든 것을 떨리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그리고 그 두려움마저 짓누르는 거대한 쇳덩어리가 찢어지는 돌풍을 만들면서 누구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도록 입과 귀를 막아버렸다. 인간의 힘과 지능의 산물은 이내 콘크리트 덩어리에 깊게 파묻혔다.

빛이 일며 사위가 고요해진 그 짧은 순간, 하늘 위를 할퀴듯 늑대 울음소리가 가로질렀다. 그것이 혀를 뻗으며 입맛을 다셨다. 마치 또 한 번 삼킬 빛이 나타나 천진스럽게 기뻐하는 것 같았다.


SCP 종합대█사령_ 공식 기록 █_█번 1호

모두 떠났군. 겁쟁이 자식들! 진정하게, O5-██. 그들도 이제 재단이 유지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야. O5-██,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우리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인가요? 어쩌면 그럴지도. 이게 마지막으로 들어온 자료인가 봅니다. 펜리르의 출현. 그리고 늑대 떼들. 의지를 잃었던 것 같습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럴 수는 없어요! 우린…… 우린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들도 그러지 않았나요? 이걸 보시오. 봉인과 징조의 목록표. 세계의 멸망란. 아무래도 제17기지를 공격했던 것에 대한 반발이 심했던 것 같소.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반발심은 누를 수 있다고…… 그러나 그들은 반발하지 않았소. 포기해버리고 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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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바다 인간 세계
봉인 레비아탄 카인과 아벨의 만남 붉은 웅덩이 펜리르 기계의 완성 핵무기
징조 세이렌의 노래 배반 죽지 않는 도마뱀 황혼의 그림자 태엽장치 바이러스                

임시 간_ 회#

O5-██: 우리가 아직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 그것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O5-██: 기동특무부대 델타-5가 보내온 문서. 펜리르와 늑대 떼들이 제17기지 주변에 몰려들었다. 자세한 관측조차 할 수 없었다. 이후 연락 두절.

O5-██: 우리에게 남은 외부 기동부대는, 델타-5팀과 알파팀 하나 아니던가?

O5-██: 기동특무부대 알파-16이 보내온 문서. 로즈데일 깊숙이 감염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기계가 주변의 모든 것을 삼키고 있다. 이후 연락 두절.

O5-██: 세상에……

O5-██: UIU 내부 기록 조사 자료. 연방수사국은 그동안 모아온 핵무기를 한 곳에 모아놓고 일제히 발사시키려는 계획을 수립했던 것으로 보인다.

O5-██: 뭐라고?

O5-██: 빌어먹을, 연방수사국 개자식들이……

O5-██: GOC 현황 보고. 뱀의 손에 의해 멸절당했고, L.S.를 포함한 대부분의 뱀의 손 조직원들도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O5-██: 이게 좋은 소식인가?

O5-██: 이게 좋은 소식이냐고요? 빌어먹을, 이건 이제 우리가 외톨이가 됐다는 걸 뜻해요!

O5-██: SCPP 프린스플의 생존자 보고. 수평선 너머로 레비아탄의 그림자가 보인다. 이후 연락 두절.

O5-██: O5-██! 지금 그런 사실을 늘어놓아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O5-██: 지금……

O5-██: 혼돈의 반란. 검은 인간들이 의인을 수용하던 제██벙커에 침입. 의인들의 대부분이 학살당함.

O5-██: 잠깐, 지금 뭐라고?

O5-██: (벌떡 일어남) 의인들이 모두 다 죽었다고?

O5-██: 이런 제기랄, 뭐하자는 소리야?

O5-██: 죽었어? 정말로? 다 죽었다고?

O5-██: 모두 죽었소.

O5-██: 안 돼, 안 돼, 아니, 웃기지 말라고 하시오. 웃기지 말라고 그러시오!

O5-██: 모두 죽었소.

O5-██: 빌어먹을, 그딴 소리 듣자고 이 지랄을 한 게 아니란 말이야!

O5-██: 우린 끝났어.

O5-██: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에 모든 게 끝장날 수가 있단 말인가?

O5-██: ……핵을 쏘시오. 핵을 쏘란 말이오. 언제나 그 수가 해결책이었어. 핵을 쏴!

O5-██: O5-██!

O5-██: 아니, O5-██의 말이 맞소. 레비아탄이든 기계든 빌어먹을 시꺼먼 새끼들이든, 핵 맞고 살아남는 놈들이 어디 있소? 다 때려 박으시오!

O5-██: 진정하세요!

O5-██: 당신 진정이라는 말뜻은 알고 지껄이는 건가?

O5-██: O5-██, 지금……

O5-██: 입 닥쳐, 이 개자식아. 혼자 침착한 척은 집어치워, 이제 이 수밖에 없다고.

O5-██: O5-██!

O5-██: 그딴 식으로 부르는 것도 그만둬, 등신 같으니. 투표하자. 핵을 쏘자고. 찬성하는 사람?

O5-██: 이보시오, 당신들!

O5-██: 과반수가 찬성했습니다. 이제는 의결을 실행에 옮겨야 할 차례잖아, 절차도 몰라? 그 입 다물어 머저리야.

O5-██: O5-██, O5-██, 이 자들을 막아요!

O5-██: 집어치워, 씨발 새끼들아!

음성 %록 0█_2

안녕, 박사님. 날 찾았네.……패닝.……뭘 바라고 온 거야?……알잖아.……말해 봐.……넌 지금 세계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어.……맞아.……그게 네가 말하는 주인공의 의미냐?……미안해, 형. 난 실패한 거야. 결국 그런 주인공이 되진 못했어. 결말을 바꾸지 못했으니까.……네가 만들고 있는 게 결말이잖아.……그렇지, 좀 극단적인 쪽이지. 영웅의 이야기는 아니야.……실패한 영웅.……그래. 이대로라면, 결국 다음은 혼란과 광기로 가득찰 거야. 그전에 모든 걸 파괴해야지. 이 스위치로. 악순환의 고리를 탈피하기 위해서 말이야.……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그래?……그래.……그렇군.……핵공격을 중단시켜, 패닝.……이번엔 끊을 자신이 있다고 했잖아.……그게 모든 것의 죽음일 수는 없지, 개자식아.

aaaaaaaaaaaaaaaaaaaaaaaa

대니 G. 레이번: (웃음) 조연이라고 그랬잖아요, 우리가 왜 조연이라고 생각해요?

W. 베이커: 이번에 당신 심리 검사 받았나요?

대니 G. 레이번: 아니요, 이 벙커 지키느라 못 받았는데요.

W. 베이커: 글쎄, 이런 거죠. 중요한 사람이었으면 어떻게든 검사를 받긴 받았겠죠.

대니 G. 레이번: 그렇게 생각해요?

W. 베이커: 일단은요. 심심한데 한 번 물어나 볼까요?

대니 G. 레이번: 뭘 말인가요.

W. 베이커: 재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죠?

대니 G. 레이번: …….

W. 베이커: 심리 검사 중에 항상 이걸 물어본다고 하더군요.

대니 G. 레이번: 그렇습니까. 재단은…… 잘…… 모르겠어요.

W. 베이커: 그래요?

대니 G. 레이번: 그냥…… 알 수 없는 자물쇠 같아요. 중요한 게 들어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게 뭔지는 도통 알 수 없는. 꼭 변칙 개체처럼요.

W. 베이커: 제가 말했죠, 그게 뭔지는 당신도 알고 있을 거라고.

대니 G. 레이번: 난 모릅니다.

W. 베이커: 아뇨, 당신도 알아요. 당신도 느끼고 있을 거라고요.

대니 G. 레이번: 뭘 느끼고 있다는 거에요?

W. 베이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이를테면 하나라는 걸.

대니 G. 레이번: 뭐라고요?

W. 베이커: 패닝 박사님께 들었다는 힌트는 그거에요.

대니 G. 레이번: 잠깐만요, 무슨 소립니까?

W. 베이커: 모든 것…… 그러니까 재단과 우리를 포함한 모든 것. 그것이 전부 하나라는 겁니다. 모두들 하나의 생산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요. 다들 겉으로 드러난 형태만 조금씩 다른 바리에이션이죠. 궁극적으로는 하나에서 뻗어 나온…… 한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것처럼.

XK급 1?14_135

하나 물어보자. 넌 얘들 중에 세계가 뭘로 멸망할 거라고 생각해?

뭐야, 젠장, 꺼지라고.

궁금하잖아.

내기야?

이 판국에 아낄 게 어딨어.

(한숨)

난 레비아탄에 걸지.

왜?

왜냐하면…… 젠장, 알 게 뭐냐. 바퀴라고 했잖아. 바퀴는 운명을 뜻하고 동시에 순환을 뜻한다고. 요르문간드, 우로보로스,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뱀. 몰라? 그게 일어나면 온 지구를 박살낼 거야. 그리곤 새로 만들던가 뭘 어떻게든 하겠지.

흥미로운데. 논문 써도 되겠어.

그렇지만 난 지금 생활에 만족해, 제기랄.

넌 어떻게 생각해?

나한테 묻는 거예요?

그래, 구석에 박혀서 징징거리지 말고 이런 말이라도 좀 해 봐.

누가 징징거렸다고 그래요?

알았어, 넌 뭐 때문에 세계가 멸망할 것 같아?

……바퀴.

너도 레비아탄이야?

아뇨…… 바퀴는…… 운명과 순환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세계 그 자체를 의미하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종말이라는 건…… 그냥…… 순환이 깨지는 거잖아요. 그렇죠? 새 세계가 아니라. 그러면 모든 게 다 함께 무너져내려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12명의 남자들이 서로 뒤엉켰다. 그들은 사령부의 복도 끝방으로 통하는 문 앞에 서서, 서로를 밀쳐내고 제지하기 위해 아우성치고 있었다.

"저리 비켜, 이게 아니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다고!"

"이걸 쓰는 순간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모든 것의 멸망이냐, 일부만이라도 존속하느냐에 문제지, 이제 돌이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이건 안 돼!"

"우린 우리들을 지킬 의무가 있어!"

"관리자의 사명 같은 건 예전에 진작 끝장났소!"

그때 모두의 귓전을 때리는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원을 주저앉게 만든 그 소리는 몸 전체의 신경다발을 독주가가 켜고 있는 바이올린의 현처럼 마구잡이로 뒤흔드는 잔인한 활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귀를 막고 몸을 와들와들 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리는 창밖에서, 발밑에서, 벽 속에서도, 모든 곳에서 맞부딪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바퀴가 만들어졌다. 기계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돌아가기 시작한다. 쇠가 서로 긁히고 녹이 비벼져 떨어지고 있다. 지금 그것이 움직이려고 한다.

저지선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성을 잃은 광란의 무리가 미약한 주먹으로 파괴의 스위치를 내리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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