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선생님
평가: +3+x

금성이 밝게 빛나는 동녘 하늘이 파랗게 밝아 왔다.

남자는 자신의 제자들을 살펴보러 나선 길이었다. 그러나 첫 발을 뗀 열사의 땅에서부터 일이 수틀려 버렸다. 웬 근본도 알 수 없는 코 큰 털복숭이들이 자신과 자신의 제자들의 땅을 짓밟고 군림하고 있었다. 남자의 제자들은 이미 씨가 말랐고, 얼마 남지 않은 그 후손들도 뙤약볕 아래 부러질 듯 마른 허리를 구부리고 면화 열매를 따 코쟁이들에게 갖다 바친다고 바빴다. 그들은 굶주렸고, 억압당했다. 코쟁이들은 무자비하게 채찍을 휘둘렀다.

남자는 불덩이가 땅 밑에서 꿈틀대는 시틀랄테페틀 산 위에 걸터앉아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우울하게 바라보았다. 일찌기 남자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쳤다. 제자들은 모래에 물이 스미듯 쉽게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기특한 제자들이었다. 남자의 가르침 아래 그들은 옥수수를 심고 베를 짰다. 불을 피우고 술을 빚었다. 옥석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돌을 찍어 집을 만들었다. 하늘을 보고 시간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고, 잘잘못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먹고 살 만 해지자 제자들 사이에서도 분란이 일어났다. 더 가진 자가 덜 가진자를 짓누르고, 덜 가진 자는 더 가진 자의 것을 빼앗으려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죽음이 사방에서 피어오르자, 제자들은 "삶"을 주는 남자의 존재를 잊었다. 그들은 삶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더 많은 죽음을 원했다. 물론 자신들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죽음을 원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 역시 또다른 이들의 죽음을 원했기에, 미친 듯한 순환 고리 속에서 대지 곳곳에 죽음의 악취가 피어올랐다. 실망한 남자는 제자들을 떠났다.

회상에서 깬 남자는 열사의 땅을 떠나 대륙의 허리의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밀림 속에서도 남자의 상념은 계속되었다. 남자의 제자들은 열사의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밀림 속에도, 저 산 위에도 존재했다. 한 곳에서 실망하면 남자는 또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든 남자는 실망했고, 그 곳을 떠났다. 계속되는 실망 속에, 남자는 세상을 아예 등져 버렸다. 이제 돌아온 남자는 또다른 제자들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이번에 남자를 맞은 것은 아예 텅 빈 돌덩어리들 뿐이었다. 남자는 일렬로 늘어선 기둥들 사이를 거닐었다. 아무도 없는 돌덩어리들 사이를 계속 돌아다니려니 마음속에서 서글픔이 올라왔다. 남자는 밀림 속 깊숙히 발길을 돌렸다. 이번엔 남자는 자신이 있었을 적에 이미 멸망해 버린 제자들의 흔적을 찾았다. 어두컴컴한 돌집 속에 새하얀 곰팡이가 꽃처럼 만발해 있었다. 갈빗대가 모조리 부서져 흩어진 백골사체들 위로 곰팡이꽃이 화사했다. 맨발로 곰팡이꽃을 자박자박 밟아 돌집 지하로 내려간 남자는 한참 뒤 다시 맨발로 자박자박 소리를 내며 올라왔다. 남자의 발이 지나간 자리에는 곰팡이꽃이 불에 탄 듯 시커멓게 사그라들어 죽어갔다. 그의 손에는 점토판이 들려 있었다.

남자는 높이 솟은 돌집 꼭대기로 올라갔다. 꼭대기에 앉아 동쪽을 보니, 아직 해는 미처 다 뜨지 않았다. 남자는 점토판에 밀림 속의 제자들의 글자로 무엇인가 끼적이기 시작했다. 쓸 것을 다 쓴 남자는 돌집 안으로 돌아가 점토판을 고이 모셔두고 다시 꼭대기로 올라왔다. 그리고 한 걸음만에 땅으로 내려왔다. 남자는 산 위의 제자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남자는 발길을 재촉했다. 하루 안에 대륙의 허리를 거쳐 남쪽 얼음 바다까지 가려면 빨리 움직여야 했다. 떠오르는 새 태양에 회칠을 한 듯 새하얀 얼굴이 드러났다. 맨발로 걷고 있었지만 비늘 덮인 발바닥은 고통을 몰랐다. 등을 뒤덮은 은백색 비늘이 태양광에 광택을 냈다. 알록달록한 깃털이 촘촘한 녹색 날개가 펼쳐졌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에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