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내

제가 스물 한 살 시절 이야기입니다.

저는 공부를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공부보다는 주로 친구들하고 어울리고 놀러 다니기를 좋아해서 책상에 오래 앉아있지 못했던 탓이겠죠. 부모님도 걱정을 하셨지만 사람 타고난 성격이란 바꾸기 쉽지 않았고, 고등학교 3년, 그리고 몇년을 더 즐겁기 지낸 저는 결국 대학은 두 번이나 떨어져 버렸습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어렵게 삼수 이야기를 꺼내자, 불안했던 것처럼 부모님의 안색이 어두워지셨습니다. 아주 크게 반대는 못 하시었지만 공부도 잘 안 되었으니 고향에 남아 일손이나 돕는게 어떠냐고 돌려 말씀하셨죠.

저는 그 말을 듣고 너무나도 수치스러웠습니다. 갑자기 정신이 들더군요. 지금 떠올리자니 부끄러운 생각이지만, 남들처럼 도시에 가서 번듯하게 옷을 입고 일을 하고 싶었지, 손을 온통 잔흙 범벅으로 만들며 조개를 캐고 밭을 파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성적으로는 어림도 없었죠. 다음주부터 저는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과 부담감을 갖고 세 번째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공부를 해야겠다, 고 생각한다 하여 그렇게 쉽게 되나요. 하기 싫은 공부는 해야겠지, 친구들은 전부 대학생이 되어서 연애도 하고 번듯하게 대학 생활 하고 있지, 군대는 코앞이지. 집중이 되었겠습니까. 몸은 책상 앞에 앉아 있고, 펜도 쥐고는 있으나 멍 하니 창밖을 응시하기 일수였죠.

잡념을 없애기 위한 수단으로 산책을 종종 사용하곤 했습니다. 살던 곳은 갯벌이 넓게 펼쳐진 곳이었습니다. 요즘이야 환경을 보호한다 해서 이런 저런 건물들하고 들어섰지만, 당시에는 왼쪽에는 논, 오른쪽에는 뻘, 끝. 이런 풍경이었습니다. 그 사이로는 긴 산책로가 나 있었는데, 물론 공부하기 싫은 삼수생 산책하라 뚫어 놓은 길은 아니겠습니다만, 공부하다 자꾸만 잡생각이 고개를 들 때나, 식사하고 난 뒤의 더부룩한 배를 꺼뜨리기 위해 그 길을 즐겨 걷고는 하였습니다.

바람은 솔솔 불겠다, 간혹 운이 좋으면 바닷물 찰싹이는 소리도 들리는 듯하였으니까, 그곳을 걷고 있노라면 모든 잡념으로부터 초월해진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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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충분하다고, 아직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은 길게만 보였던 여름의 언덕을 가볍게도 넘어 버리었습니다. 찌는 듯한 더위와 습기가 사라지고 나니, 가을의 서늘한 기운에 등골까지 차갑게 서리었습니다. 정말로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마음은 두근대었죠.

그런 반면, 공부는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매일 무언가는 하고 있는데,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지, 지금까지 시간을 허비한 건 아닌지, 나 따위가 과연 이런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지… 괴로운 생각도 많았습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꼬박 꼬박 채워져가고, 그 끝에는 피할 수 없는 관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힘들게 느껴지면서 공포스러웠습니다.

그날은 심란했던 어느 10월 달이었습니다. 수능은 100일이 채 안 남아 있었고 이번 시험마저 망쳐버린다면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은 대학 그까잇거 떨어지면 여기서 내 일이나 도우면 된다고 말은 하였지마는, 그동안 믿고 없는 돈 끌어가며 지원해 주신 기간이 얼마인데, 못난 아들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번마저 실패하면 군대에 가는걸요. 재수할 시절에, 군대에 갔다 오면 머리가 굳는다고, 3수까지는 무조건 붙으라고 한 삼촌의 말이 울렸습니다. 귀찮은 잔소리에 그냥 대충 흘려들었었는데. 왜 그 때 더 잘하지 못했을까요.

그런 부담과 좌절감 때문이었을까요. 시험이 끝나기 전까지는 마시지 않겠다 약속한 술을 거하게 마셔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수능 망치고 마셨으니, 거의 1년을 참아 왔는데, 안쪽에서 차오르는 무언가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술로 그 무언가를 지지고 녹이고 태워버리지 않으면 그것이 목구멍을 막고, 입과 코를 메워 질식사할 것만 같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밭일 하는 친구한테 오는 길에 술을 사와 달라 부탁하고는 그 친구 방에서 마셨습니다. 처음에는 한 잔만 마시기로 생각했지만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세 잔이 되더니, 어느새 주위에는 술병이 쌓여 갔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현실에서 빠져나가고픈 생각에, 다시 에라 모르겠다 하고는 했던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이 되어버린 뒤였습니다. 오늘 밤 계획한 공부도 못하고, 참아왔던 음주도 해버린 것입니다. 아아, 그새를 못 참고… 제 손으로 인생을 모두 망쳐버린 것만 같은 심벙이었습니다. 좌절스러웠지반, 술기운에 정신이 없었죠. 친구는 시간이 늦었으니 자고 가라고 했고 저도 그럴 마음이었습니다. 이런 꼴로 집에 계신 부모님을 뵐 수는 없었지요.

누런 방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있는데 저녁거리가 소화가 잘 안 된 데다가 술까지 먹어 속이 더부룩했습니다. 무척이나 피곤했지만, 이번에는 이대로 잠든다면 녹아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냥 닫힌 창문에 답답했던 것일 수도요. 어쨌든 목이 탁했던 저는 오묘한 기분을 달래며 코를 고는 친구를 뒤로 하고 방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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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이야기했듯이 길은 갯벌하고 그 반대쪽하고 경계를 나누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보통은 낮이나 이른 저녁에 걸었는데, 새벽에 걸으니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새로웠습니다. 꿉꿉한 방바닥에서 벗어나 차가운 공기를 쐬니 정신도 좀 들어 상쾌했습니다. 차갑고 톡 쏘는 바닷가 특유의 텁텁한 짠내가 풍겼습니다. 하늘에는 바늘로 박은 듯 별이 총총한데, 나는 이리 고통받으니 참 슬프단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걷다 보니 거리가 좀 되어서, 이젠 슬슬 돌아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길에서 유일하게 솟아 있는, 얇은 가로등 앞에서 발길을 돌렸죠.

그런데 그 순간, 그 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시골에 있고 오래되다 보니 고장날 순 있죠. 그런데 멀쩡이 돌아가던 게 갑자기 내 앞에서 그러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느끼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잠시 멈춰 서서 그걸 가만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주변이 방출열로 따뜻했습니다. 나방의 흔적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표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깜빡 깜빡.

들어왔다 나갈 때마다 작게 웅- 하는 소리가 들리다가 멈추었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누가 멀리서 불장난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점점 빠르게 깜빡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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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그 해 대학에 기적적으로 붙었습니다. 이후 서울에서 일자리를 얻어 고향을 떠나 지냈죠. 자연스레 친구와도 소식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이야기도 오랫동안 잊고 지냈나 봅니다. 지금까지 저와 제 친구만이 알고 있었던 일 말입니다. 그 친구도 작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이제 우리 둘만이겠군요.

아, 풀숲에서 들린 말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으시는 겁니까?

아직까지도, 그 음성과 높낮이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께름칙한 목소리였습니다, 그건.

너무나도 역겨운 그 한 마디가, 아직도 종종 악몽에서 튀어 나오고는 합니다. 다시 그 날, 그 풀숲 앞에 섭니다. 손에 들고 있던 불이 꺼지고, 그것의 속삭임이 사방의 어둠에서 들려오고는 하는 겁니다.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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