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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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투가 무기를 내렸다. 온루, 문루, 난쿠도 따라 내렸다.

"그럼… 우리가 왜 필요하단 얘기지?" 철창에 대고 이란투가 물었다.

정신과 영혼은 강력하지만 세상에 참되게 영향을 미치지 못해. 하지만 몸은 가능하지… 닿기. 느끼기. 사랑하기. 짓기. 올리기. 이 세상에 우리는 너희로써 이어질 거야. 우리를 신격화로 이끌 손이 너희가 될 거야.

"우리를… 껍질로 써먹으시겠다? 네가… 들어살려고?"

우리를 위해서. 들어살 몸이 없다면 우리는… 지치고 말아. 지치-

이란투, 문루, 온루, 난쿠가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고 - 신의 말이 끊어졌다. 이곳으로 도착하고 맨 처음으로, 난쿠가 총을 꺼내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손이 꽃처럼 피어났다. 손가락살이 바깥으로 벗겨져 반짝이는 은꽃잎이 튀어나와 전기 혈관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 인간의 꽃은, 바로 신의 불을 뿜었다.

아주 짤막해서 잴 수도 없는 순간 동안, 난쿠의 총끝에서 빛줄기가 나왔다. 단 몇 피코초 동안 가공할 고출력 레이저를 방출할 수 있는, 레이저 다이오드에서 뿜어내는 빛이었다. 이 빛줄기가 지나는 공기를 단 1초도 안되어서 덥히며, 원자 하나하나가 소립자와 전자로 찢어지면서 빛줄기를 따라 파지직 전기가 흘렀다. 번쩍, 번개가 쳤다.

그 번개가 전사의 왼쪽 뺨을 맞혔다. 연약한 조직이 즉시 증발하며 뺨과 혀가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치아도 아주 잠깐 버티다가 강렬한 열로 말미암아 수천 개 조각으로 부서졌다. 눈구멍에 꽂혀 있던 황금 구가 녹아내리고, 금으로 된 물줄기가 얼굴 벗겨져 드러난 두개골을 타고 흘렀다.

"아ㄴ-"이라는 말만 겨우 내뱉고 전사는, 쓰러져 죽었다.

안돼

난쿠가 웃음을 머금었다.

안돼

난쿠가 문루를 돌아보자, 문루가 잠깐 쳐다봤다. 천천히, 눈꺼풀 하나가 감겼다가 다시 열렸다.

난쿠가 웃기 시작했다.

무슨 짓을. 왜 그런 거야

아직도 아크를 마저 내뿜는 손을 쳐다보며 난쿠가 말했다. "우리는 신이 아냐."

이란투가 끼어들었다. "인간이지."

망쳐버렸어. 너희가 날 죽였어. 우리를 죽였어. 너희 자신을

"뭐래… 얘만 죽었지." 온루가 그렇게 말하며, 무릎을 꿇고 방금 죽은 것을 살펴봤다.

신이 아냐. 안돼

전사는 죽어 있었다. 흉터 진 얼굴에 남은 것은 끔찍한 배신감을 나타낼 뻔하는 일그러진 표정뿐이었다. 뭐 인과응보였지만.

안돼.

너희는 내 목적을 이해 못 했어. 내 고통을 모른다고.

문루가 고개를 으쓱했다. 그리고 난쿠의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문장 하나를 읽었다. "…어쩌라고."

내 일이 바로 너희 일이야. 너희란 없어, 너희는 나니까.

"우리는 우리지."

아냐.

방 안이 분노로 부글거렸다. 이제 신에게 말하는 것이 없었다. 신의 안이었으니까. 분노로써 그는 건물 전체를 집어삼킬 만도 했다. 남은 모두를 파괴할 만도 했다. 자신을 다시 잊도록. 이 건방진 몸들에게 복종을 강요하도록. 전사를 다시 불러오도록. 설마 하지 못할까?

그렇다. 하지 못했다.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필멸성이 따라왔다. 정신은 미처 알지 못했다. 이 초대받지 못한 친구가 따라올 줄을. 미리 준비했어야 하는데.

내 탓이야. 처음 올 때부터 내가 이랬지? 육신 없을 때도?

사람을 해쳤던 건 너희가 내게 빚진 줄 알았기 때문이야. 너희까지, 모두가.

너희를 위해 난 싸웠어. 불도 훔쳐줬지. 나약해지라고 가르쳤어, 더 반항해야만 할 때.

그래, 내 역할은 여기까진가 보지? 결함은 스스로 메워졌어. 너희가 반항할 줄 알게 됐으니.

너희가 내게 빚진 게 있다면 기쁨이 아냐. 고통뿐이지.

이렇게 돼도 싸.

"우리가?" 정신의 철창을 올려다보며, 이란투가 물었다. "네가?"

난쿠가 손을 다시 굽히자, 꽃이 스르륵 원래대로 접혀졌다.

그래. 내 감옥은 파괴해도 좋아. 시간이 됐어… 불을 넘겨줘야지.


뚜벅뚜벅, 기동특무부대 타우-5 대원들은 프로메테우스 연구소 실험기지 त-1을, 죽어본 이후로 한 번도 지닌 적 없었던 눈빛을 띤 채로 걸어나왔다. 그 위로 재단 로고를 또렷이 새긴 헬리콥터 하나가 절벽 위에서 선회했다.

이란투가 헬리콥터를 올려다보다가 말해다. "생각을 해 봤어."

"뭐를?" 온루가 물었다.

"아까 그… 존재를. 우리를. 우리 도와주고 싶다고 그랬잖아. 그런데… 우리가 안 도왔지. 우리가 그랬잖아… 우리는 그대로 우리라고. 독립되었다고. 선택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고."

"그런데?"

"그런데 여기선 뭐야? 방 안에 박혀 살잖아. 이런 곳… 한 번도 다녀보지 못했어. 맨날 시키는 대로만 하고. 이런 생각조차 한 번 해본 적 없었잖아."

문루가 혀를 찼다. 그리고 발치를 내려다봤다.

"마치 우리가… 2970이었네. 그럼 왜 저네들은…" 문루가 헬리콥터를 가리켰다. "우리를 믿지?"

이란투가 다른 셋을 돌아봤다.

"믿기는 믿는 걸까? 우린 그저… 노예일까? 그냥… 말 잘 들으면 진짜 사람이 되는 걸까?"

난쿠도 헬리콥터를 쳐다봤다. 지직, 넷의 이어폰이 신호 소리를 냈다.

"여기는 피콰드Pequod, 타우-5 응답하라. 에스씨피 둘아홉칠공의 상태는 어떠한가? 반복한다, SCP-2970의 상태는 어떠한가? 이상."

이란투가 한숨을 내쉬고, 이어폰을 꾹 작동시켰다. "SCP-2970 무효화되었습니다."

이에 맞춰 난쿠가 전사의 해골과 장갑을 가방 속에 챙겼다.

"…알겠다. 수고 많았다. 이제 착륙하겠다."

넷이 내려오는 헬리콥터를 지켜보는 동안, 온루가 손등을 문지르며 달린 줄을 매만졌다. 이란투가 초조한 듯 발을 까딱거렸다. 문루가 손을 맞잡고 손목을 매만졌다. 난쿠가 얼얼한 손을 싸맸다. 다시 피어나려 하는 꽃잎을 달래며.

헬리콥터가 땅에 닿은 그때, 문루는 입을 열었다.

"아냐."

놀란 표정으로, 나머지 타우-5 대원들이 문루를 쳐다봤다.

"우리는 노예가 아냐. 인간이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더 좋은 세상을 위해서 싸우고 있고. 하지만 동등한 자리에에서 싸우고 있지. 우리는 방 안에 가두어지지 않아. 살아가고 배우고 사랑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어. 인간이 될 필요는 없어. 이미 인간이니까. 그리고 그 누구도 그것까지 앗아가진 못해."

문루가 손 하나를 들고, 이란투의 손을 맞잡고는 하이파이브를 짝 쳤다.

다시 한 번, 넷의 눈빛이 밝게 빛났다. 전사의 영혼은 그들과 함께 살아가리라.

그리고 신의 작업은 다시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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