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 사무엘

사무엘은 다른 두더지와 다를 것 없는 두더지였다. 물론, 두더지니까 이름은 없었다. 두더지란 이름은 짓기는커녕 땅 파는 것 말고는 별달리 잘하는 게 없는 동물들이니까. 그나마 사무엘은 땅 파는 건 잘 했다. 적어도 다른 두더지만큼은 잘했다.

그날 사무엘은 여느 날처럼 땅을 파고 있던 중 특히 단단한 흙과 맞딱뜨렸다. 아무리 열심히 파도, 꿈쩍도 안 하는 것 같았다. 둘레를 파 보아도 단단한 흙이 더 나올 뿐이었다.

사무엘은 신기하네라고 생각했다. 아니, 두더지가 생각이란 게 가능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단단한 흙이 이렇게 많이 있는 걸 보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고, 사무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파야 할 구덩이가 있었던 우리 사무엘은 이 커다랗고 단단한 흙덩이를 파들어가고자 했다.

몇 시간이나 파 댔지만 이 커다랗고 단단한 흙덩이는 부서질 낌새가 안 보였다. 아니, 두더지가 낌새를 눈치챈다는 게 가능하다면 낌새를 눈치챘을 수도 있다. 사무엘은 잠시 쉬어 가겠다고 생각했고, 도데체 부술 수가 없어 보이는 차갑고 단단한 물질에 등을 기댔다.

몇 시간이나 잤을까, 사무엘은 땅 아래가 하고 크게 울리는 것을 느꼈다. 이 소리에 불쌍한 사무엘은 움찔하면서 깨어났다. 발아래 땅이 갑자기 사라졌고, 그 위에 있던 모든 것들이 떨어졌다. 우리 불쌍한 사무엘도 포함해서 말이다.

떨어질 때 충격을 그나마 흡수해 준 흙더미를 파 나가면서 사무엘은 고개를 흔들었다. 도대체 어디에 떨어졌는지 알기 위해서 주변을 둘러봤지만, 두더지인지라 시력이 제일 예민한 감각이 아닌 사무엘은 자기보다 훨씬 큰 물체들의 윤곽 정도만 볼 수 있었고, 그 커다란 물체들은 겁에 질린 채 저 멀리 떨어진 문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도데체 뭐 때문에 도망가는 거지?

사무엘이 뒤를 돌자, 거기에는 더 커다란 괴물이 서 있었다. 정말 무진장 거대한 녀석이었다. 얼마나 거대했으면 그게 있는 꽉 찬 복도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두더지인지라 후각이 제일 강한 감각인 사무엘은 그 괴물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끔찍한 냄새가 났다. 피칠갑이 된 듯 쇠 냄새가 뚜렷이 났다. 평범한 두더지인 사무엘을 포함해서 두더지라면 보통은 이런 괴물에게서 달아났지만, 사무엘은 그러지 않았다. 딱히 용감해서는 아니고,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괴물은 잠시 가만히 있었다. 사무엘은 몰랐지만 이 커다랗고 기괴한 생명체가 자기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신중히 생각한 끝에, 괴물은 사무엘이 평범한 두더지라고 결론을 냈다. 괴물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서 강력한 발톱으로 사무엘의 몸을 덮고 있던 흙을 밀어냈다.

사무엘은 사랑하는 흙에서 파내진 두더지라면 누구나 그러듯 겁에 질려서 찍찍댔다. 알아차리기도 전에 사무엘은 괴물의 손에 집혀 있었다. 사무엘은 공포에 질려 자그마한 머리를 흔들어댔다. 괴물에게 잡아먹힐지, 아니면 더 끔찍한 꼴을 당할지 몰랐다. 하지만 괴물은 사무엘을 먹지 않았다.

괴물은 사무엘이 비명을 지른 게 기쁘다는 듯 사무엘을 찬찬히 살펴봤다. 사무엘은 자기를 장난감마냥 갖고 노는 괴물의 면전에서 도데체 뭘 해야 할지 몰라 계속 찍찍대기만 했다. 찍 소리가 날 때마다 괴물의 미소가 점점 커지며 무시무시한 이빨이 더 많이 드러났다. 괴물은 발톱을 사무엘에 갖다댔다. 해치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눌러 보려고 했던 것이다. 사무엘은 할 줄 아는 게 더 크게 찍찍거리는 것밖에 없어 그렇게 했다.

"이 생명체 마음에 드는군."

두더지가 영어를 알 리가 없기에 사무엘은 괴물이 뭐라 말하는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잡아먹히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건 좋은 일이었다. 아니, 그날 잡아먹히지는 않을 것이었다. 대신, 그 괴물체는 등짝을 복도 천장에 붙이고 자세를 고쳐 앉아 한 번 더 크게 소리를 냈다. 괴물은 사무엘이 떨어진 바로 그 구멍 쪽으로 갖다대서, 뒷발은 땅에 붙이고 앞발 힘으로 들어갈 수 있게 했다.

사무엘은 자유였다.

그리하여 사무엘은 길고 단단한 땅이 있는 이 끔찍한 장소에서 걸어나가겠다 결심했다. 사무엘은 그날 뭔가를 배웠다. 아니, 두더지가 뭔가를 배울 수 있는 존재라면 뭔가를 배웠을 것이다. 그래도, 재단은 두더지가 있을 곳은 아니었다.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