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는 주워담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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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했다. 샌드맨은 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또 다른 천치 녀석이 마지막 희망을 안고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샌드맨은 차에서 내렸고 그 자를 끌어냈다. 미안한 일이지만 여기서 끝내게 해주는 자비를 베풀 수는 없다. 어쨌든 최소한 몇 분 동안은 이 엿 같은 세상을 더 살아야할 것이다. 남자는 축 처진 채 거리 저편으로 다시 사라졌다.

하룻밤 사이에도 몇 명씩 이 곳의 문을 두드린다. 그들이 품고 온 희망이 자살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샌드맨은 이 나라가 진짜로 글러먹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몇 십 몇 백 명의 사람들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굳이 표현을 골라 쓰자면 쓰레기 같은 상황이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유지하기 위해서? 샌드맨은 아주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 웃기는 건 그가 그들에게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몇 분간 고민해보았으나, 역시 그만두었다. 별로 목표라고 할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생활하기에도 남부럽지 않았고 딱히 책임져야 할 가족도 없었다. 모두 다 자기 알아서 잘 살고 있으니까. 사실 있었어도 별 차이 없었을 것 같다.

목표가 없다는 건 자신이 업으로 삼은 이 일이 언제 어디서 죽을 지 모르는 위험한 것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장기적인 계획이 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휴가를 기다린다며 조잘거리던 동료의 소식이 어느 순간 뚝 끊기는 것을 그는 흔히 보아왔다. 언젠가 자신도 그렇게 죽겠지, 하면서 그는 그냥 별 생각 없이 살았다.

그런데 빌어먹을, 자신은 지금 1개월 내내 낮에 자고 밤을 새면서, 경보만 기다리며 옷도 벗지 못하고 소파에 늘어지고 있는 것이다. 샌드맨은 시계를 보았다. 아직 3시 밖에 되지 않았다. 대화할 재미가 없는 동료가 돌아와 교대할 때까지 적어도 네 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차에 손을 짚고 멍청히 서 있으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언제 생겼는지 자신도 모르는 버릇이었다. 그에게 하루는 너무 길었다.

그 대목에서 그는 갤러리 안의 샤워실에 대해 떠올렸다. 몇 번 생각해보았지만 걸릴까 싶어서 그만둔 일이었는데, 1개월 동안 쳐박혀있는 내내 술 마신 얼간이들 말고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시계를 다시 봤다. 아직 세 시였는데 아까 봤을 때랑 똑같아 보였다. 그는 다시 갤러리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Chance. 그래, 이건 기회다. 이 의미 없는 삶을 좀 더 빠르게 돌릴 방법이다. 얼간이들이 원한 것이 이거였나? 잠시 또 서 있다가, 그는 천천히 건물로 다가가 잠금을 해제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다시 잠그고, 특별한 것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따분한 회랑에 섰다. 양 옆의 벽으로 이름표만 남은 액자의 흔적들이 있고, 중앙에는 큼지막한 유리공 안에 종이 모형을 움직이게 하는 태엽 장치가 들어있는 기둥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무지개 만드는 장치, 불꽃 만드는 장치, 사람 인형들이 손 잡고 빙글빙글 돌 것 같은 장치가 나란히 서 있었다. 뒤에 있는 것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걸 특별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갤러리에 어울리는 물건은 아니니까. 하지만 샌드맨은 갤러리라는 곳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발을 질질 끌면서 회랑을 지나왔다. 어쩌면 여기서 생기는 마찰 저항이 자신의 하루를 좀 더 때워줄 수 있으리라는 이유에서였다. 덕분에 그의 구두는 늘 형편 없이 망가진 상태였지만, 새로 사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구두 하나 사자고 시내까지 가는 건 귀찮았다. 샌드맨은 샤워실의 문을 열었다. 거기까지 왔을 때에야 그는 천장에 달린 카메라에 생각이 미쳤으나, 어쨌거나 감시역은 자신이므로 별 문제 없으리라 여겼다. 그래, 어쨌거나. 두 시간 정도면 적당할까. 그는 건조하게 흥얼거리면서 샤워를 하기 위해 옷을 벗었다.

다음 날에도 샌드맨은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교대가 끝나기만을 기다렸지만 막상 집에 와도 할 게 없었다. 무더운 여름이라 그런지 더 짜증났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제 하루에 22시간만 버티면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체감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 점이 다행스러운 점을 상쇄했다. 그는 다시 짜증이 났다. 아무래도 하루를 좀 더 줄여야할 것 같았다. 절반으로 줄이면 어떨까?

샌드맨은 진심으로 교대 시간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바로 다음 날, 그의 하루는 12시간이 되었다. 이제 좀 숨이 트일 만한 것 같았다. 이제 시계를 볼 때마다 분침이 훌쩍훌쩍 지나있었다. 소파에 누워서 잠깐 잠을 자면 바로 출근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부스럭대다보면 다시 집에 갈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이 하루를 보내는 동안 그는 그렇게 이틀을 지나쳤는데, 문제가 터졌다. 그가 시간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 기간 동안 경비역도 함께 없어진다는 사실이었다.

상사는 그를 질책하고 시말서 작성을 요구했다. 놀리는 시간 동안 할 일도 없겠다 차라리 잘됐다 싶어서 그는 그걸 써보려고 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상사는 다시 돌아와서 비속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동료까지 찾아와서 무어라 위로의 말을 건넸는데 샌드맨은 그것이 창피했다. 그가 써야할 양은 두 배가 되었고, 시간은 아무리 생각해도 두 배보다 두 배 더 빨리 갔다.

사라지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샌드맨은 상사를 다시 보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는 이제 어차피 경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동료의 얼굴을 보는 것도 두려웠다. 단순히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SCP를 이용했다고 말하면 그들이 뭐라고 생각할 것 같은가? 차라리 그 시간조차 없어졌으면……. 그래서 그는 다시 샤워를 했다.

하루가 다시 여섯 시간으로 줄었다. 이제 방문을 여닫을 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샌드맨은 여기까지가 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는 샤워실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시계를 보자 벌써 바늘이 다섯 칸을 지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샤워실을 이용한 목적을 떠올렸다. 그리고 6시간 동안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편하게 보내보려고 했다. 하지만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제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있나? 결국 40시간이 채 되지 않아서 샌드맨은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다. 물론, 아무도 그를 맞이할 수 없었다.

자꾸만 사라지는 자신을 두려워하는 동료들을 보고 신경질적으로 변한 그는 여섯 시간의 대부분을 다른 사람과 말싸움을 벌이는 데 보냈다. 누군가를 붙잡고 어떻게든 하소연을 하고자 했으나 고작 삼십 초 얘기할 기회가 생긴 동안 상사는 제 할 말만 지껄였다. 본사에서 사람이 파견될 거라고 했다. 그는 무서워졌다.

샌드맨이 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이틀이 지나있었다. 그는 부재 중 전화로 가득 찬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그 사람이 와 있었다. 샌드맨을 말소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샌드맨은 악을 쓰며 방에서 튀어나갔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았다. 시계 바늘은 벌써 아래쪽을 가리켰다. 잠시 서 있다가 다시 방문을 열어보니 아무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난 그는 구석에 내팽겨쳤던 휴대폰을 다시 집어들고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수신음만 들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새 연결이 끊겨있었다. 몇 번이고 재차 시도하자 전화를 걸자마자 응답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샌드맨은 문자 메세지를 보내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두드리다가 그 새 몇 번의 전화가 또 부재 중으로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화가 치밀어서 휴대폰을 부숴버렸다. 밖에서 해가 지고 있었다.

샌드맨은 그만 지쳐버렸다. 포기하자. 이런 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차라리 아무도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샤워실에 다시 발을 들였다.

그의 하루는 두 시간이 되었다. 직장에 출근할 필요는 없어진 것 같았으나 그는 계속 나갔다. 홀로인 상태로 남아 평소처럼 행동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눈을 깜빡거릴 때마다 감시역을 맡은 동료들이 놀라는 얼굴이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깜빡거리면 그들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시계 바늘은 이미 한 바퀴를 다 돌았다.

그는 결국 방에 틀어박혀 지내기 시작했다. 자신이 부숴놓은 가구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는 7일 째 되는 날에서야 자신의 모습이 폐인과 다름없음을 자각했다. 그리고 그건 샤워실을 이용하기 전과 똑같다는 얘기였다.

밖으로 나갔는데 벌써 몇 개월이 지난 것 같았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돌아갔다. 그는 계속해서 뒤쳐졌고 아무도 낙오자를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근무지로 갔다. 이제 모르는 얼굴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몇 시간 동안 동료들이 어디로 갔냐고 그들의 눈앞에서 외쳐댔지만 그는 이미 저멀리 앞서간 친구들이 자신을 향해 돌아봐줄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함 소리는 몇 시간을 간격으로 두고 끊어졌다.

재단은 이미 사태를 알아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무어라 도움을 요청할 틈도 없이 그 시점에서 튕겨나갔다.

샌드맨은 Chance라고 쓰인 갤러리에 다시 발을 들였다. 비로소 태엽 장치가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기회는 이쪽이었다.

그는 무지개를 만들어보려고 했다. 태엽을 돌렸다.

다시 보니 태엽이 되돌아가 있었다. 그는 안간힘을 쓰며 태엽을 돌리려고 했다. 좀 도는가 싶었는데

다시 멈췄다. 샌드맨은 이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는 허우적거리며 종이 불꽃으로 다가갔다.

그는 태엽을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붙잡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싶었█

그는 또 실패했다. 불꽃█ 바닥에 늘어졌다. 뒤를 ██보았다. 하늘이 파랗█ 빛났다.

그는 사람들이 손을 잡고 있는 모형█로 다██다.

그는 █엽을 █리지 못했다. 유리공에 노을이 반사█고 있███

███은 너무 늦었다. 이제 샤워실█ 그를 부르고 있█다. 그는 힘없이 걸어갔다. 발을 ██ 끌면서 걸었는데 눈을 █보니 벌써 안이██.

시계를 깨버렸다. 이제 모래를 감아쥐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모두 흘러내려버렸다. 그는 엉엉 울면█ 샤워기█ 틀었██

샌드맨은 바닥에 주저앉아 검은 것이 점점 커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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