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 재단

티록신을 주입하였을 때만 나타나는 완전히 성숙한 아홀로틀.

발언자: 찰스 멘델 박사

이 현상을 보았을 때 몇몇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굳이 저에게 자문을 구하러 오셨다는 건 좀 더 확실한 검증과 전문적인 의견이 필요하시다는 것이겠지요. 예 맞습니다. 이건 유형 성숙의 문제로 보입니다.

유형 성숙은 일부 동물 종이 비슷한 동물에 비해 어렸을 때의 모습을 유지한 채 성체가 되는 것으로, 평생 어린 모습으로 살며 번식도 하게 됩니다.

인간이 유형 성숙으로 진화했다는 것은 이미 민간 학계에서도 정설로 받아지는 이론입니다. 근연종인 유인원들에 비해서 성체가 되어도 털이 없고 연약한 몸을 지닌 것이 그 증거이죠.

유형 성숙은 대체로 세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는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여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한 유형성숙입니다. 대표적으로 아홀로틀, 혹은 우파루파라고 불리는 도롱뇽의 예를 들 수 있지요. 일반적인 도롱뇽은 올챙이 시절에만 있는 날개와 비슷한 아가미가 성체가 되면서 사라지는데, 아홀로틀은 성체가 되어서도 올챙이의 형태로 성장하며 아가미가 남아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아홀로틀의 서식지인 멕시코의 호수는 꽤나 열악한 환경이어서, 먹이가 부족한 아홀로틀들은 성체로 성장할 때 필요한 티록신을 생성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성장하지 않고 번식할 수 있도록 유형성숙으로 진화하였죠.

그러나 아홀로틀은 외부에서 티록신을 주입하면 다른 양서류와 같이 일반적인 도롱뇽으로 성장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인간에게 그런 극적인 변화는 불가능한 것은 둘째 치고, 그 어떤 생물보다 풍족한 환경을 가진 인간이기에 이 경우는 아닙니다.

두 번째는 성 선택입니다. 번식에 유리하기 위해, 암수 중 한쪽이 유형성숙을 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알을 지키기 위해 애벌레 형태로 성장하는 도롱이벌레 암컷이나, 암컷의 몸에 붙어서 정자만 제공하는 심해 아귀 수컷등이 있죠. 이 경우는 상관이 없군요.

세 번째는 가축화입니다. 쉽게 말해 늑대가 개로 변한 것, 멧돼지가 엄니와 털을 잃어버린 것 등이 유형성숙에 속합니다. 가축화된 동물은 이빨과 두개골이 작아지고 짧은 꼬리, 접힌 귀 등의 생물학적 변화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공격성 또한 줄어들고 인내심이 늘어나죠. 이러한 변화 역시 유형성숙에 속합니다. 인간도 이와 유사한 진화를 보여 다른 유인원에 비해 말단 부위가 작아지고 공격성도 낮아졌습니다.

아, 그렇다고 인간이 가축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과 보노보 원숭이의 경우는 자기가축화 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상하다고요? 이건 재단의 비윤리적 연구가 아니라 민간 연구에 의한 이론입니다. 윤리위원회도 신경 안 쓰죠. 인간이 문명을 이룬 것도 어떻게 보면 자기 가축화 현상이 일어나서 스스로를 길들여 다른 사람속의 아종들보다 협동성이 늘어난 덕분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인간은 유형성숙으로 진화한 생물이고 SCP-1001-KO의 경우를 보았을 때, 본래대로라면 다른 유인원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성장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도롱뇽보단 훨씬 복잡한 고등동물이기에 그리 간단하게 성장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죠. 인간 정도로 진화가 진행되었으면 특별한 본래 모습이라는건 없으며, 이 경우는 변칙적인 기술을 사용해 개발한 SCP-1001-KO을 사용해야만 일어나는 변칙현상이라고 봐야합니다.

그리고 SCP-1001-KO에 의한 성장이 이상한 점도 있습니다. 유형 성숙의 경우가 완전한 성체보다 뇌가 더 성장하것이 일반적인 경우인데, SCP-1001-KO-1이 현 인류보다 지능이 높은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기존 학계의 이론은 인간이 유형 성숙을 통해 지능이 발달해서 문명을 이룬 것으로 여겼는데, 성체의 지능이 더 높다면 굳이 인간이 유형성숙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가만 생각해보니 수상하군요. 이건 자연적인 진화라기보단 뭔가 인위적인……(눈치를 본다) 그렇지는 않겠죠. 흠.

O5-1: 요청대로 SCP-1001-KO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겠소. SCP-1000의 종족 전쟁에 관한 문서 각주에서 한참 토론을 하셨는데, 대부분의 내용은 삭제했소. 이 자리에서 결론을 내리기 바라오.

O5-2: 우선 해당 문서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죠. 이 문서는 SCP-1000을 적대하던 단체, 뱀의 손 소속이던 '태양의 아이들' 조직의 아지트에 숨겨져 있던 문서입니다. SCP-1000의 연구 후반에 발견되었으나, 훼손된 부분 때문에 주요 대상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서 문서의 중요도를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SCP-1001-KO가 개발되었고, 문서에서 말하는 갈라진 일족이 누구를 말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O5-6: ……그게 인간이군요.

O5-2: 그렇습니다. 우리 인류 문명 이전에, SCP-1000이 세상을 지배하기도 전의 이야기이죠. 그들의 문명 태동기에 태양의 아이들이라 불리던 우리 인류와 밤의 아이들인 SCP-1000 두 세력으로 나뉘었고, 둘 사이의 전쟁에서 우리가 패배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우리를, 그들 입장에서 성인이 되지 못하도록 유전적인 감옥에 수감하였고 영원토록 그들의 아래에서 복역하도록 한 것입니다.

O5-10: 지금이야 우리의 현재 모습이 자연스럽지만, 당하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한 조치군요.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요?

O5-2: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당장 우리 사회만 해도 미성년자에게는 제한되는 것이 많습니다. 어쩌면 성인이 되지 않으면 그들의 생물 병기를 사용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그렇다면 절대로 대항할 수 없으니.

O5-8: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의 병기를 빼앗아서 문명을 전복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O5-2: 예. 그저 가능성 중 하나죠. 사용 제한 기능에 문제가 생겨서 빼앗을 수 있게 되었던지. 아무튼, 이런 연구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O5-3: 동감합니다.

O5-4: 그렇다면 SCP-1001-KO는 인간이 원래의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석방해주는 효과겠군요?

O5-2: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O5-4: 이전에 말했듯 우리는 우리의 원래 모습을 되찾을 권리가 있습니다. 수 만년동안 억울하게 갇혀 있던 인류를 해방하고, 본래의 능력과 권리를 되찾을 것을 제안합니다.

O5-2: O5-4…….

O5-4: 당장 SCP-1001-KO를 양산해야 합니다! 우선적으론 뛰어난 인재를 양성하여 재단의 인적 자원을 향상시킬 수 있고, SCP에 대한 격리도 더욱 강화할 기회입니다.

O5-9: O5-4. 무리라는 것 아시죠? SCP-1001-KO는 아직 위험성도 효과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데다가, 일단은 격리 대상인 SCP입니다. 무분별한 이용은 지양해야 합니다.

O5-11: 저들은 우리를 버렸고, 우리는 복수에 성공하여 그 빚을 청산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다시 세웠습니다. 이제와서는 저것이 우리의 진정한 모습같은게 아닙니다. 지금의 우리에겐 지금의 모습이 진정한 모습입니다.

O5-7: O5-4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유는 이해합니다만, 아직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너무 서두른 것 같군요. 더욱이 우리는 인류를 지키는 기관이지, 인류를 보완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O5-4: (침묵)

O5-12: 사실 그래서 저는 이 SCP가 왜 이렇게 주목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과거가 어쨌든 이미 오래전에 끝난 일 아닌가요? 애초에 회의까지 열 일이었는지요.

O5-8: 동의합니다.

O5-2: 제가 한 말씀 드리자면, 앞서 말씀드렸듯이 SCP-1001-KO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종족 내전에 관한 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밤의 아이들 중 일부가 숙청당한 정치적 사건 정도로 보고 있었죠. SCP-1001-KO 덕분에 진실을 유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기존에 밤의 아이들에 관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던 것들이 이번 기회에 새로 재발견 될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이번에 여러분들을 모은 이유는 SCP-1000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음을 알리고, 연구에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시다시피 SCP-1000에 관한 내용은 극비니까요.

O5-11: 더 연구할 게 있을까요? 워낙 오래전 일이라 남아있는 자료도 없을 테고, 방랑자의 도서관 자료나 뱀의 손 태양의 아이들 조직도 이미 어느 정도 확보하여 대부분 결론이 난 상태입니다. 기존 자료나 답습하면 되는 일 아닐지요.

O5-2: 그게 중요한 일이죠. 분명 무언가 놓치는 게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문헌을 확보했다지만 그들, 밤의 아이들의 기록은 번역도 불완전하고,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떻게 해서 우리가 그들의 무기를 탈취했는지, 꽃의 날이라 불리는 사건은 어떻게 벌어진 일인지요. 그 부분을 해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SCP-1001-KO와 더불어 SCP-1000에 대한 연구를 다시 시작할 것을 요청합니다.

[상세한 요청 사항은 생략되었음]

O5-1: 그럼 표결을 시작하겠소.

발언자: 리처드 세이버 SCP-1000 연구 자문위원

SCP-1000 자문위원 리처드 세이버

남아있는 기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 사실을 알고 말았군요. 이제 와서 속일 생각은 없습니다. 재단에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제가 아는 역사에 따르면 우리 태양의 아이들은 밤의 아이들과 같은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문명 초기에 서로 갈라서게 되었고, 우리는 그들에게 한 번 패배하여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었죠.

그 후 문명 초기에서 우리에게 닥친 현실은 지옥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노예로써, 도구로써 사육하였죠.

그렇게 노예로써 가축화된 이후 수천 년이 지나고, 그들 사이에서도 전쟁에 대한 감정이 사그라들자 일종의 인권운동이 일어나 우리를 해방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를 배척하는 풍조는 남아있었습니다. 그렇게 또 오랜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그들에게서 추방당했습니다. 그들의 고위계층은 우리가 동족이었다는 사실조차 혐오했고, 결국에는 그들의 문화에서 우리가 동족이었다는 사실조차 잊혀졌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르던 중, 마침내 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전 지구적 밈적 재해'로 우리들은 본능적으로 변칙을 규정하게 되었고, 밤의 아이들을 변칙 존재로 보고 극도로 혐오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의의는, 문명을 갖지 못했기에 단합을 이루지 못했던 우리가 일제히 그들에게 적의를 갖게 됨으로써 한뜻으로 반기를 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 지구적 밈적 재해'가 일어날 당시, 밤의 아이들의 '생물 병기'들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도구들은 모두 생물이었고, 미약하지만 지성이 있어서 명령을 내리면 컴퓨터처럼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그 도구들은 우리처럼 밤의 아이들을 즉시 적대하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우선순위'가 생겨버렸습니다. 밤의 아이들의 명령보다 우리의 명령을 우선 복종하도록 변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추방당하여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변화는 수 천 년간 발견되지 않았죠.

마침내 '꽃의 날'이 되어서야 우리는 생물 병기의 우선권이 우리에게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일시에 그들의 무기를 빼앗아 복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무기를 빼앗고, 그들의 문명을 짓밟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그런 사건이 일어나서 생물병기의 소유권을 빼앗기는 사태를 막기 위해 모든 무기를 파기했습니다. 심지어 일종의 '정보 생물'로써 아는 것만으로도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첩보용 인식 재해 생물병기도 있었기에, 우리는 밤의 아이들에 대한 기억조차 전부 지워야만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알고 있는 역사입니다.

실험 개요: 밤의 아이들의 생물 병기에 대한 태양의 아이들의 명령 우선권을 확인하기 위해 SCP-3140을 투입하여 제어권을 실험한다. SCP-3140은 다에바의 이족보행형 식물병기였으나, 연구 결과 밤의 아이들이 사용하던 병기를 탈취하여 개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험에 쓰인 SCP-3140은 농업용으로 개량된 SCP-3140-3을 사용했다.

실험 인원: 기동특무부대 제타-1000, 기적학적 원예사 존 로즈, D-1001-K(SCP-1001-KO-1, 찰스 멘델 박사)

실험 1: 농업용으로 재배된 SCP-3140-3 개체를 SCP-1000의 서식지에 노출시켜 그들에게 발견되도록 한다.

결과: SCP-3140-3을 발견한 SCP-1000 개체(이하 A-1000)는 SCP-3140-3을 보고 다급히 접근한다. 왼다리 아랫부분의 지시부에 손을 얹고 중얼거리자 SCP-3140-3이 가동되었고, 긴장한 태도로 자신의 언어로 SCP-3140-3에게 명령을 내리자 SCP-3140-3이 움직인다. A-1000은 SCP-3140-3를 조종하여 현장을 이탈하려 한다.

실험 2: SCP-1000 개체에 의해 가동 중인 SCP-3140-3에 대해 기적학적 원예사 존 로즈가 명령을 내린다.

결과: 존 로즈가 접근하여 다에바어로 명령을 내리자, SCP-3140-3은 A-1000에 의해 가동 중임에도 로즈의 명령을 수행한다. 로즈는 SCP-3140-3에게 포박을 명령하여 A-1000을 회수한다.

실험 3: 기적학적 원예사 존 로즈에 의해 가동 중인 SCP-3140-3에 대해 SCP-1001-KO-1이 명령을 내린다.

결과: D-1001-K가 접근하자 SCP-3140-3은 로즈의 명령 수행을 중단하고 D-1001-K를 바라본다. 이후 로즈의 명령은 듣지 않으며 D-1001-K의 명령만이 유효했다. D-1001-K가 명령을 관두고 자리를 이탈한 뒤에야 다시 로즈의 명령을 듣는다.

비고: 실험 3 수행 중 SCP-3140-3의 표면과 D-1001-K 주변 숲의 식물에서 꽃이 무작위로 개화하는 현상이 발견됨. 해당 현상에 대해 조사 중. 현재 발견된 내용은 태양의 직사광선을 받아야 하며, 개화 시기가 아닌 식물도 급격히 성장하여 꽃을 피운다는 사실이다. 또한, A-1000은 D-1001-K의 개화 현상을 보자 비명을 지르며 겁먹은 태도를 보임. A-1000과의 의사소통 대책을 세우는 중.

실험 결과: SCP-1000보다 인류에게 생물병기의 우선권이 있고, SCP-1001-KO-1에게 더 우선함이 검증됨. 그러나 실험 중 발견된 SCP-1001-KO-1의 식물 개화 현상에 대해 보다 자세한 조사가 필요함이 제시되었다.

<기록 시작>

존 로즈: 수고했습니다. 멘델 박사님. 실험은 성공적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개화 현상에 때문에 정신이 없었네요. 혹시 이상한 점 못 느끼셨습니까?

D-1001-K: 이상하지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아무래도 개화 현상은 저, SCP-1001-KO-1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존 로즈: 물론 관련이 있지요. 박사님이 접근하셔서 발생한 일이니까요. 아니면 혹시 직접 일으키신 일인가요?

D-1001-K: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개화할 식물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존 로즈: 느껴진다고요?

D-1001-K: 그렇습니다. 그 특별한 식물의 위치나, 미약하지만 감정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워낙 미미하여 저도 헷갈립니다만.

존 로즈: 감정 말입니까? 어떤 감정이지요?

D-1001-K: 일종의 환희, 안도, 감사, 간절함과 같은…… 긍정적이지만 어쩐지 부정적으로도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입니다.

존 로즈: 꽃이니까 좋은 느낌이긴 하겠지요. 하지만 잠깐 관찰해본 결과, 개화 시기가 아닌 식물은 급격하게 성장하여 꽃을 피운 반동으로 에너지 소모를 감당하지 못하고 고사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정적으로 느껴진 게 아닐까요? 무엇이 죽음을 감수할 정도로 간절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D-1001-K: 죽는 것은……, 오히려 그걸 바라는 듯한 느낌입니다. 제가 다가가는 것을 환호하고, 개화하고 죽어가면서도 무언가에서 해방되는 듯한 후련함……. 참 묘한 기분이군요. 마치 식물들의 스타가 된 듯한 기분입니다. 극성 팬들이 죽을 만큼 기뻐하는 느낌이네요.

존 로즈: 아직은 이해할 수 없군요. 좀 더 연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 특정 식물들의 위치도 느껴진다고 하셨죠? 샘플을 채취해야 하는데 종류별로 찾는 걸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D-1001-K: 물론이지요. 마침 저 부근에서 그 특별한 식물들이 많이 있는것이 느껴집니다. 아까부터 특히 강렬하게 부르는데, 머릿속에 있는 귀가 따가운 듯한 느낌이네요.

존 로즈: 이런, 어서 조사를 해봐야겠군요.

미확인 된 식물 샘플

존 로즈와 D-1001-K는 기동특무부대 제타-1000 대원들의 보호하에 해당 방향으로 이동한다. 약 10분간 이동하자 미발견된 동굴이 나타난다.

존 로즈: 동굴이네요? 동굴 속에서 식물이 부른다고요?

D-1001-K: 그렇습니다. 이상하긴 하지만, 다른 식물들과 똑같은 신호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가까이 오니 더 강하게 느껴지네요.

존 로즈: 다행히 좁은 동굴은 아니고, 대원 전체가 한 번에 진입할 수 있을 정도로 크군요. 위험하지 않을 때까지만 들어가 봅시다.

전 인원이 경계 태세를 유지한 채 동굴 속으로 진입한다. 약 5분 정도 들어가자, 뚫린 천정으로 어슴푸레한 햇살이 들어오는 넓은 광장이 나타난다. 햇살을 받는 곳에는 하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존 로즈: 이건, 백합의 일종인 것 같습니다만, 동굴에 사는 종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신종인지 샘플 채취를 해봐야겠습니다. 멘델 박사님, 이 꽃들이 신호를 보내고 있나요?

D-1001-K: 이 꽃들도 환호하고 있습니다만, 좀 더 다른 무언가가……

D-1001-K는 광장의 한구석으로 이동한다. 꽃 무더기 아래를 뒤져 유리병 하나를 발견한다. 그는 그것을 손에 쥐고 바라본다.

존 로즈: 그게 뭐죠?

D-1001-K: 말라비틀어진 식물 하나. 안도하고 있습니다. 아, 반응이 사라졌습니다. 이미 죽은 지 오래됐지만 어떤 의지가 남아있던 것 같은……. 어쩐지 슬프군요.

존 로즈: 각별하군요. 특이한 샘플인 만큼 바로 샘플 상자에 보관하겠습니다. 나머지 샘플을 채취하고 어서 연구를 시작해야겠습니다.

<기록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