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 재단

SCP 재단 자동 녹음·문서화 장치 문서화 기록.

장치 일련 번호: █████████
녹음 시작 일자: 2023. 02. 02. 18:43:24
녹음 청자: 김준연 3등급 박사 (한반도변칙동물학총괄부 변칙동물조사과 과장)
녹음 대상: 함인수 3등급 요원 (제35K기지 울릉도 생물군 감시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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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

[자동차 정차음]

[노래 흥얼거림]

[철문 열리는 소리]

김준연 박사: 오랜만입니다, 소장님.

함인수 소장: 아이고, 김 팀장, 아니 과장님! 내일 오신다더니! 언제 오셨데요?

김준연 박사: 정기 조사 예정된 거 하고는 상관 없이 온 겁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함인수 소장: 난 또, 내일 오신다 그러니까 괜찮은 식당 예약이나 잡아 놓으려고 나갔다 왔더니 과장님이 이렇게 있어 가지고 얼마나 당황했는데.

김준연 박사: 저희가 팀에서 과로 조직 개편되고 나서는 처음 뵌 거죠?

함인수 소장: 그렇네요, 일단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김준연 박사: 변칙동물조사팀이었을 때도 바빴는데. 총괄부 설치되고 저희도 과로 승격되고 하다 보니 일도 어디서 굴러 들어왔는지 더 늘었지 뭡니까, 사람이 늘어서 그런지 이상한 걸 찾아오는 양이 참 많이 늘었습니다.

[열쇠 부딪치는 소리, 문 열리는 소리]

함인수 소장: 고생 많아요, 김 과장. 온다고 얘기 해 줬으면 예약만 잡아 놓을 게 아니라 아예 밥이나 같이 한 끼 하는 건데.

김준연 박사: 여기 사정은 좀 어떤가요? 저희 직원들이 울릉도에 정기 조사 나와서 새롭게 찾는 건 없어서 말입니다.

함인수 소장: 어휴, 다른 시설들은 가끔 바빠질 때 있는 것 같던데, 우린 한가해요. 그냥 산 타고 다니면서 이상한 건 없나 보고, 해변가 나가서 일구삼칠이들. 가제들 안 나타났나 살펴보는 게 다죠, 뭐.

김준연 박사: 그래서 그 일구삼칠. 바다사자들 말인데, 그동안 뭔가 많이 숨기고 계셨지 않으셨습니까.

함인수 소장: 그게 무슨 말이에요, 김 과장?

김준연 박사: 직접 보여 드리는 게 빠르겠네요.

[휴대폰 액정 두들기는 소리, 재생된 동영상 내의 고함 소리, 바다사자 울음소리]

김준연 박사: 저도 자세하게는 얘기 못 해드립니다만, 비밀리에 재단 시설들을 시찰하는 내부 조직이 있다는 것만 알려 드리겠습니다. 거기서 확인한 겁니다. 여기 찍혀 있는 것들, 바다사자에 울릉도 감시소 직원 분들 맞죠?

함인수 소장: 최대한 조심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결국 김 팀장도 알게 됐나 보네요.

김준연 박사: 사실대로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장님. 어린 개체들도 버젓이 나타나는 걸 왜 지금까지 계속 숨겨서 보고하셨는지, 그리고 여기 찍혀 있는 것처럼 확보는 안 하고 바다로 도망치게 하는 건 또 무슨 상황인 건지.

함인수 소장: 김 팀장 전공이 포유동물 쪽이었죠? 그럼 바다사자에 대해서도 잘 알테고?

김준연 박사: 기본적인 건 알고 있는데, 울릉도에 살던 바다사자, '가제', '가지' 하는 그 바다사자들 이야기는 함 소장님한테서 제일 자세히 들었습니다. 그러니 함 소장님이 저보다 더 자세히 아시는 게 있을텐데요?

함인수 소장: 가제, 요즘 사람들은 다 '강치'라고 부르기는 하던데, 울릉도에서는 그렇게 불렀죠.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미 내 아버지 세대들한테서 바닷가 저기 저 바위에 올라 앉아서는 개 짖는 소리로 울어 대더라, 물개하고는 다른 거다, 돼지고기 맛이더라. 하는 이야기만 들을 수 있었어요.

김준연 박사: 그 이야기가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요?

함인수 소장: 천천히 들어요, 김 팀, 과장. 운은 때고 시작하고 싶으니까.

함인수 소장: 아무튼 여기저기 졸라 대면서 들은 걸로 그렇게 가제라는 게 있었다 하는 줄로만 알고 살다가, 팔십구년 팔 월에. 밤에 서면 바닷가를 돌아다니다가 가제를 세 마리 봤어요. 물개는 그르륵, 그르륵 하는 소리로 우는데 이건 멀리서 어욱, 어욱 하는 소리로 우는 데다 제일 큰 한 마리 머리는 위로 툭 불거져 나와 있고, 아. 이게 물개나 스텔라바다사자가 아니라 진짜 가제구나, 싶었죠. 사진기고 뭐고 없던 때라 증거는 없지만, 아무튼 그랬어요.

함인수 소장: 털이 물에 젖어서 달빛에 번들번들 했는데, 참 멋졌죠. 저런 게 몇 백 몇 천 마리씩 울릉도하고 독도에 그득그득 들어차서 살고 있었을 때는 참 멋진 풍경이었겠구나. 싶었어요.

함인수 소장: 그 뒤로 조용히 살다가, 구십오년에 내가 감시소 순찰 팀장 자리에 있을 때 마침 딱 이 이야기가 들어왔어요. 가제가 두 세 마리씩 바닷가 동굴 근처에서 나타난다고, 그때 소장이 울릉도에서 가제 안 나타난 지 몇 십 년이나 됐는데 갑자기 나타난 건 안 이상하냐면서 나한테 이거 한 번 조사 좀 해 봐라. 하고 나한테 할당했을 때, 딱 이 생각이 들었죠. 아, 이건 가제를 다시 지켜낼 수 있는 기회겠구나.

김준연 박사: 그래서, 결국 함 소장님은 그 가제들을 지키겠다고 재단까지 속이셨다는 건가요?

함인수 소장: 솔직히 내 생각은 그래요, 김 과장. 조선 때부터 몇 백 년 간 빈 섬으로 있던 울릉도하고 독도에 살던 가제들 딴에는 기름에 가죽 얻겠다고 저 옆에 독도에서 몇 천 마리씩 줄기차게 때려잡던 나카이고, 우리 해녀들하고 독도 지키던 의용수비대가 먹을 게 없어 몇 마리 잡아 먹고 무기하고 바꿀 해구신 얻으려 또 잡았다 하는 거고. 사람 이야기 빼고 보면 결국에는 사람이 자기들 터전을 야금야금 빼앗은 것 뿐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가제가 사라졌다는 사실 자체를 슬퍼하는 게 아니라, 자꾸 다께시마 타령하는 일본이 얼마나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 내세울 용도로 이용하려 하는 것 뿐인 건 아닐까.

함인수 소장: 그리고 그렇게 다들 이미 다 죽어버린 가제까지 이용하려 드는 것 같을 때, 정말로 가제들을 다시 지켜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게 아닐까. 내 생각이 그랬고, 내 후임으로 그 일 하고 있는 감시소 직원들 생각도 다 그래요. 그래서 다 같이 합을 맞춰서 아직 팔팔한 게 발견되거든 바다로 쫓아 보내고, 죽었거나 다 죽어가는 것만 보고로 올렸던 거죠.

김준연 박사: 그냥 바다로 도망치게만 했는데, 지금껏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다는 말인가요?

함인수 소장: 살아 있는 게 바다로 도망치기만 하면, 그걸로 끝이에요, 끝. 꼭 솜사탕 물에 풀어져서 없어지는 것 마냥 없어져 버렸거든요. 죽은 시체는 안 그랬으니 시체하고 물에 들어가지도 못 할 정도로 다 죽어가는 것들을 어떻게 할 방법이 딱히 없었던 거고요.

김준연 박사: 그래서 살아 있는 건 그냥 미격리 상태에서 계속 살고 있도록 내버려 두고, 처치 곤란한 시체하고 죽기 직전인 가제들은 숨기려고 재단에서 가져가도록 하셨던 거군요?

함인수 소장: 그렇죠. 결국 수명을 다 한 건지 십삼년부터 죽은 시체가 나왔는데, 바다에 떠밀어도 그냥 둥둥 떠있기만 하더라고요. 이걸 일반인들이나 학자들이나, 해경이나. 아무튼 그런 사람들이 찾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어요? 여기서 가끔 물개가 발견되기만 해도 뉴스거리가 되는 판에 멸종한 가제가 발견되었다고 해 봐요.

김준연 박사: 그럼 됐습니다, 됐어요. 저는 내일 첫 배 타고 나가 보겠습니다. 숙소에 자리는 있죠?

함인수 소장: 숙소에 남는 자리야 항상…

김준연 박사: 그럼 됐습니다. 내일 진짜 정기 조사할 저희 과 직원 세 명 올 테니 잘 해 주시면 됩니다.

함인수 소장: 알았어요, 김 과장. 그럼 이 이야기는…

김준연 박사: 엄밀히 말해서 여기 온 것도 제 공식적인 일정에는 없는 겁니다. 아마 내일까지 포항 즈음에서 개인적인 휴가나 보내다 들어온 게 되겠죠. 그래도 정 신경 쓰이시면 내일 오는 친구들한테 잘 해 주시고요. 그럼, 그걸로 됐습니다. 가제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런 건 나중에 알아도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수고 좀 해 주십시오, 소장님.

기록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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