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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번호: SCP-662-KO
격리 등급: 무효(Neutralized)
위협 등급: ● 황색
특수 격리 절차: 초기 격리 절차 삭제 및 미보존 처리됨.
SCP-662-KO는 지리산에 있는, 재단이 지은 생활실에서 격리 중이다. 이곳은 제45K기지로부터 약 1.2km 떨어져 있다. 생활실은 항상 굳게 잠긴 상태를 유지하며, 입실할 때는 SCP-662-KO의 돌발행동에 대비해 최소한 2명 이상의 제압용 무기를 갖춘 인원이 동반해야 한다. 매일 표준형 식단을 제공하며, 이는 습기, 순간적인 기온 변화, 강풍에 영향받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 아직까진 SCP-662-KO가 현 위치에서 벗어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재단 직원들도 면담을 통해 대상이 계속 그 위치에 있어야 함을 상기시켜 줘야 한다. SCP-662-KO의 취미생활을 위해 다용도 방수·방한 단말기 및 다용도 공구를 지급했으며, 단말기는 주기적으로 전지를 교체한다.
SCP-662-KO가 있는 지역의 위성 사진은 모두 조작되어야 하며, 생활실 근처에 보초 인원을 최소 한 명 이상 둬 민간인 접근 시 구류 후 기억소거한다. SCP-662-KO의 변칙성의 범위가 더욱 넓어져 민간인의 시야에 훤히 노출될 때 적용시킬 역정보는 아직 없다.
SCP-662-KO가 무효화됨에 따라, 이상의 특수 격리 절차는 모두 중단되었다. SCP-662-KO가 그간 재단에 적극적으로 협력했고, 제45K기지의 업무에도 어느 정도 지원을 할 수 있을 거라 판단되기에 기억 소거를 하지 않고 1등급 감시 하에 구류를 해제할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현재는 기밀 엄수의 가능성, 기억 소거의 부작용에 대해 검토 중이다.
설명: SCP-662-KO는 1999년생인 한국계 한국인 여성이다. 키는 160cm에 체질량은 55kg가량이며 별다른 신체적 특징은 없다. SCP-662-KO는 자신의 변칙성 때문에 오랫동안 재단에 구류되어 온 것에 대해서 큰 스트레스를 표했었으며, 이는 대상의 변칙성의 범위가 확장되면서 차츰 심화되고 있었다.
SCP-662-KO의 주변 일정 범위는 외부와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독립적인 기상 상태를 보였으며, 범위 내 공기의 조성 또한 항상 인간에게 적합한 상태를 유지했다. 변칙성의 범위는 대상의 발 부분을 중심으로 하는 원기둥형 구역이었으며, 그 크기는 주로 팽창하는 쪽으로 바뀌었었다. SCP-662-KO 자신도 또한 자신의 변칙성에 의한 기상 현상 외 다른 기상 현상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다. SCP-662-KO의 변칙성에 적용되는 일출과 일몰 여부는 지리산 천왕봉을 기준으로 했다. 즉, 맑은 날 천왕봉에서 해가 진 상태에서는 SCP-662-KO의 주위는 그 위치에 관계 없이 햇빛이 아닌 달빛과 약한 별빛이 비치는 수준의 빛이 비친다. 이러한 변칙성은 SCP-662-KO가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며, 변칙성의 근원 및 조절 방법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SCP-662-KO-1은 SCP-662-KO의 과거 지인인 김나준 씨(요주의 인물 등록 취소됨)의 소유물이었던 지름 3cm짜리 백색 구체로, 현재는 파괴되었다. SCP-662-KO-1이 파괴된 순간 SCP-662-KO의 변칙성이 무효화되었기 때문에, 해당 물체가 SCP-662-KO의 변칙성의 근원이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SCP-662-KO-1이 파괴된 즉시 고운 입자로 분해돼 날아갔기 때문에 구성 물질 분석 및 추후 연구는 할 수 없었다. SCP-662-KO, -1 및 김나준 씨 사이의 관계는 아래 기록 참조.
SCP-662-KO 자신과 대상이 몸에 소지하고 다니는 물품은 이러한 변칙적 기상 현상에 범위 내 다른 물체보다 영향을 훨씬 적게 받았었다.
SCP-662-KO는 2019/07/19에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에서 발견됐다. 대상은 재단 인원의 협조 요청에 순순히 응했으며, 문제 없이 제45K기지로 이송되었다. 대상 발 위 3m 높이에서 적란운이 형성돼 지름 2m 원형 범위에 시간당 10mm 정도의 비를 뿌리고 있었는데, SCP-662-KO 자신이 민간인과의 접촉을 피해 목격자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송 직후 면담을 시행했으며, SCP-662-KO의 신상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록 시작
김나진1: 반갑습니다. 신분증을 확인했는데, 1999년생 이한령 씨 맞으시죠?
SCP-662-KO: 네. 근데 여긴 어디고… 뭐 하는 덴가요? SCP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김나진: 간단하게 설명하면, 당신 같이 변칙적인- 그러니까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격리하는 곳이에요. 머리 위 구름은 언제부터 나타난 건가요?
SCP-662-KO: 잠깐, 격리라뇨? 그럼 제가 여기 갇혀 산다고요? 침묵. 왜인지는 알겠는데… 뭐 학교에 알린다거나 그런-
김나진: 말을 끊음. 죄송합니다. 이미 역정보 작업과 기억 소거를 진행하고 있어서, 당신 변칙성이 있는 한 연락이나 외부 접촉은 이제 힘들 것 같아요. 모쪼록 여기서라도 편히 지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SCP-662-KO: 침묵. 그래요, 어쩔 수 없죠. 아, 제 머리 위 이거 언제부터 생겼는지 물어 보셨죠? 진짜 얼마 안 됐어요.
방학에 오랜만에 고향으로 내려온 참이었거든요. 슬럼프가 빡시게 와서 머리도 식히고 초심도 되살릴 겸 왔었죠. 그래서 마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정말 오랜만에 다시 산에도 올라 보고… 당신들도 산 계곡에 놀러 다니세요?김나진: 네, 가끔씩 동료들이랑 가까운 계곡에서 놀기도 하죠.
SCP-662-KO: 야영 도구를 챙겨서 어릴 때 친구들이랑 놀던 계곡으로 향했어요. 이젠 같이 놀 애는 없었지만… 다시 거길 보니 추억이 되살아나더라고요. 참 오랜만에 한바탕 헤엄 치고, 물고기도 잡고 그러다 한숨 자고 일어나 보니까 빗소리가 들리지 뭐예요?
뭐 장마철이기도 하고- 산 날씨가 어지간히도 변덕스러운 게 아니잖아요. 어차피 우산도 챙겼고 텐트도 안전한 데 세웠으니 괜찮다 싶었죠.
침묵. 그리고 텐트를 여니 뭐가 보였는지 아세요? 맑은 햇빛. 그리고 비. 내 머리 위 구름. 한숨 소리. 그쪽은 여기 지리산이 얼마나 신기한 곳인지 잘 아시는 거죠?김나진: 그렇죠. 보안 때문에 자세히는 못 말씀드리지만, 저희가 놀러 다니는 계곡도 평범한 곳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 변칙성 때문에 산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시다 저희를 만나신 건가요?
SCP-662-KO: 그렇죠. _한숨 소리._ 그런데 왜 하필 저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물론 지리산에서 놀라운 일을 한두번 본 게 아니기야 한데- 적어도 제 마을 사람들 중에는 본 건 몰라도 이런 식으로 직접 겪은 사람은 없었거든요. 기적 같은 거 바란 적 없는 삶인데, 일어나도 꼭 이런 게 일어나서 이리 갇히는 신세가 돼 버렸네요. 차라리 기적이라도 일어날 거면 복권에나 당첨시켜주지…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긍정적으로 생각해야겠죠. 이렇게 비밀스럽고 큰 기관이 있단 건 제가 생각하지도 못한 경이가 가득하단 뜻이잖아요? 정말 운이 좋으면 신기한 새 걸 알 수도 있는 거겠죠. 그보다도, 아직 제가 그쪽 이름을 모르는데 통성명이라도 할까요? 앞으로 얼마나 같이 지낼 지 모르니까, 앞으로 잘 지내 봐요.김나진: 네. 김나진이라고 해요. 저도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기록 끝
SCP-662-KO가 지리산의 여러 변칙 현상들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재단 측에서 정보 제공을 요청했다. SCP-662-KO는 여러 편의를 정보 제공의 대가로 제시했으며, 기지 영역 밖으로의 외출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허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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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자의 말은 기울여서 표시했다.
기록 시작
정기 면담을 진행하다가, 면담자가 SCP-662-KO에게 말을 건넨다. 이한령 씨, 오늘부터 이름으로 불리시니 조금은 편해지셨나요? 이제부터 슬슬 옛날 얘기를 시작할 때인 것 같은데, 뭐 다른 불편한 점이 있다면 알려 주신다면 좋겠네요.
이리 오랜만에 이름으로 불리니… 어색하기도 한데, 그래도 이제야 좀 사람 취급 받는 것 같네요. 다른 불편한 건- 한겨울에 후텁지근해가지고는 머리 위에서 비가 쏟아진다는 것만 빼면 없어요. 어쨌든, 오늘은 제가 처음으로 겪은 일을 말씀해 드리면 되는 거죠?
네. 되도록이면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좋겠네요.
그래요. 그러니까 처음은, 아 그래, 대충 제가 아홉 살일 때였어요. 아마 이전에도 확실하게 본 적은 있었을 거예요. 근데 대부분 쓱 하고 지나가는 정도였어서, 자세히 말씀드릴 만한 기억은 딱 이때부터 생겼네요.
그러니까- 2007년 1월. 산쪽 계곡 근처에서 얼음을 깨면서 놀고 있었어요. 다른 애들은 닌텐도 같은 그런 거나 하면서 놀고 있었고요. 제 고향 마을이 산중 시골 한구석인 것 치고는 돈도 많은 편이고 유행 같은 거에도 민감했거든요. 마을이 명당이라 산 기운을 쭉쭉 빨아들이는 거라 했었나? 그랬었죠. 어쨌든 새로 게임기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애들 대부분 손에 그게 들려 있더라고요.하지만 제 손에 들어오는 건 없었죠. 저는… 네, 조사하셨으면 아시겠지만 넉넉할래야 넉넉할 수가 없는 집이었거든요. 굶을 걱정이야 당연히 없었지만은, 다른 애들 갖고 노는 컴퓨터나 장난감 같은 건 없었어요. 한숨 소리. 그래요. 솔직히 부러웠죠. 어, 나도 갖고 싶다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해 봤고요. 그래도, 정말, 정말로 괜찮았어요. 산에서는 놀 것도 많고, 좀 특이한 먹을 것도 많았거든요. 산토끼 드셔 보신 적 있으세요?
산토끼요? 글쎄요, 별로 먹어 보고 싶단 느낌은 안 드는데… 그보다도 기생충 같은 거, 많지 않나요? 그런 거에.
어린 나이에 그런 거 생각하겠나요. 뭐 고기조차 못 먹을 정도로 가난한 건 아니었는데, 제가 직접 사냥해서 먹는다는 게 신났어요. 배탈은 몇 번 났는데, 덫 만들면서 손재주가 이리 늘은 데다가 몸도 지금은 아주 건강하니 이득 본 셈 치죠 뭐. 웃음.
말이 많이 샜네요. 본론으로 갈게요. 그러니까…. 얼음을 깨고 있는 도중에 물에서 뭔가 반짝이는 게, 둥글고- 은은히 빛을 내면서 영롱한, 네. 그런 게 보였어요. 당연히 주웠고요.
그리고 생각했죠. '가까이서 보니까 더 예쁘네… 잠깐, 이거 혹시 여의주 같은 거 아니야? 친구들한테 보여준 다음 어른들한테 물어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주머니에 넣고 마을 쪽으로 돌아서는데-
음, 어디선가 목소리…라 해야 하나? 가 들렸어요. "야, 이 새끼야! 남의 걸 멋대로 가져가면 쓰냐!" 하면서요.말투가 좀 뭐같긴 했지만, 두근거리면서 돌아섰어요. '이무기다! 말로만 듣던 그!' 주변에 사람은 확실히 없었거든요. 하늘에서 여의주 찾다가 여길 찾아내서 온 거다 싶었죠.
헛웃음. 근데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니, 그렇게 어린 나이에 벌써 환청 같은 걸 들을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조금 높은 곳에 있나 하고 올려다 봤는데, 그래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무기라서 투명해질 수도 있는 건가?' 하면서 목 위로 쭉 빼고 "이거 주인분이세요? 어디 계세요-" 하고 불러 댔는데 다시 목소리가 들려 오는 거예요.
"야 임마! 어딜 보는 거야! 네 아래 새꺄!" 이상하다 싶었죠. 막 뒤돌아서 대충 훑어 봐도 제 바닥 쪽엔 이무기 같이 큰 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다시 물어 봤죠. "어디 계세요? 제 눈에는 안 보이는데…" 하자마자, "지랄 말고, 네 아래, 검은 거 보이지?"아하… 벌레네요. 맞죠?
말하고 마법 쓰는 벌레가 제 생각보다 많이 흔했던 건가 보네요? 고작 이것만 듣고 맞히실 줄이야.
자세히 보니 쇠똥구리지 뭐예요. 얼굴을 묘하게 이그러뜨림. 그래서 그 구슬 바로 땅에다 떨궈 버렸죠. "이런 씹. 더럽네 진짜. 뭔 쇠똥이 이딴 빛을 내는데?" 하면서 말이에요. 그러더니, "아니… 이 씨발! 너 이 귀한 걸 어떻게 그따구로 떨궈! 쇠똥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너네 집 전재산으로도 이건 못 사!" 이러면서 존나게 화를 내더라고요. 저도 조금 빡쳤죠. 제가 멋대로 주인 없다 생각하고 가져가려고 했다곤 해도, 쬐까만 벌레가 별 지랄을 하면서 욕을 해대는데… 그래서 "돌려줬으면 된 거지, 왜 자꾸 욕하고 지랄이야? 너희는 말하는 법 가르치는 놈만 있고 기초적인 예법 가르치는 놈도 없나?" 하고 돌려줬죠.거 참… 꽤나 뒤가 없으셨네요.
뭐- 좀 그랬죠. 쨌든 그랬더니 겁나 빡쳤는지, 갑자기 말 없이 가만히 있더니 빛이었나, 그런 게 그 녀석 몸 아래랑 그 구슬에서 뿜어져 나오더라고요. 어린 저도 본능적으로 저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피하려고는 했는데, 도무지 피할 방도가- 없었죠. 그래서 좆됐다… 하고 얼어 있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멈추고는 엄청나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어요. 그러더니 황급하게 개울 옆 바위 틈으로 숨었고요.
뭐지… 하고 가만히 있다 보니까, 어, 한 1분쯤 뒤에 다시 나왔어요. 그래서 제가 "뭐야, 화나서 나 그 빔 같은 거으로 뚫어 버리려는 거 아니었어? 뭘 봤길래 그렇게 다리털 하나 안 보이게 숨냐?"하고 물었더니, "너무 커서 못 봤나? 이거 얻으려고 그렇게 쫓아 다니던 거야, 이거."라고 하면서 저한테 다시 그 구슬을 보여줬어요. "그보다 뭐가 쫓아왔는데?"하고 물었더니, "넌 너무 커서 못 봤나 보네. 그 좆같은 벌레자식들." 하고 대답했죠. 지도 벌레면서…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무슨 벌레?"하고 물었더니 칼같이 "초파리. 당연히 이걸 노리고 온 거고."하면서 다시 그 구슬을 강조해서 보여줬어요. 그리고 안 물었는데도 더럽게 장황하게 얘기를 시작하더라고요.침묵. 어- 그래. 제대로 기억나긴 하는데 너무 기니까 딱 요점만 요약해드릴게요. 그 구슬이 그 쇠똥구리 종 개체들이 각자 산의 힘을 담아두는 그릇이래요. 대를 거치면서 힘을 담기엔 너무 약해진 몸을 대신할 거라대나. 지리산에는 너무 위험한 게 많아서 평소에는 제가 걔랑 만난 계곡 같이 힘이 좀 덜한 데에서 사는데, 구슬도 완전한 건 아니라 느리게 힘이 빠져서 지리산 어디… 힘이 모인? 장소로 가서 힘을 재충전해야 한다네요. 그런데 그 구슬의 힘을 자기들만 쓸 수 있는 건 아니라, 다른- 게네를 아는 것들이 그거를 호시탐탐 노린다네요. 방금 말한 그 초파리도 그런 쪽이고요. 뭐라 했었나… 그 초파리들이 뭔 복수복수 하면서 자기네 구슬을 빼앗아가려고 했다나? 그것 말고도 장생을 노리는 것들이나 본능적으로 힘에 끌리는 것들도 있다 그랬고.
잠깐… 뭔가 다음에 어떻게 될지 알 것 같은데, 제가 한 번 얘기해 볼까요?
그 쇠똥구리 종족 전체가 구슬에 힘을 충전해야 할 때가 왔다. 그래서 쇠똥구리들이 신체능력이 훨씬 강하고 애라 좀 순수한 구석도 있고 산 지리에도 꽤나 능통하신 당신께 재충전 일을 떠맡겼다. 맞나요?놀란 듯이 숨을 크게 쉼. 와, 독심술 쓰세요? 아니면 여기선 이런 일이 잦나? 뭐, 저도 재밌겠다 싶어서 알겠다고 했고. 그랬더니 한두 개도 아니고 수십 개를 맡게 돼 버렸죠. 그래서 혼자 하기엔 확실히 무리다! 싶어서 사람을 좀 모으기로 했어요. 어른들은 아니고, 마을 친구들로요. 어른들이면 믿지도 않을 테고, 무엇보다 말릴 테니까요. 모험심이랑 신기함 대부분에, 아주 약간의 선의로 한 번 끝을 봐보자 싶었죠.
면담 시간이 종료됐음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이야, 정신없이 얘기하다 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협조해 주셔서 고마워요. 이 정도면- 충분히 유의미한 정보가 될 것 같네요. 그럼 다음에도 자세한 이야기 부탁드릴게요.
기록 끝
기록 시작
좋아, 슬슬 얘기를 시작해야겠죠? 그러니까, 전에 말했던 데가… 아, 애들 모으려고 했던 데까지네요. 그럼 바로 거기부터 시작할까요?
좋아요.
되도록이면 어른들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아서, 대놓고 모으진 않고 가까운 애들 중에 입이 좀 무거울 애들 위주로 먼저 찾아갔었어요. 처음으로 말했던 애가 누구였냐, 그렇지, 건영이었네요. 한건영이라고, 저랑 같은 나이인데 똘똘한 여자애가 있었어요. 입맛을 살짝 다심. 요즘은 뭐 하고 지내나, 연락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처음 건영이한테 말했을 때는 당연히 안 믿었어요. 원래 요즘 애들은 유치원 때부터 산타 안 믿는 거 아시잖아요. 사실 저 같아도 직접 본 거 아니었으면 안 믿었겠지만.
그래도 건영이가 현실적이어도 눈치는 참 빠른 친구라 좋았다니까요. 제가 그 구슬을 보여주자마자, 바로 느낌을 받았다는 표정을 지었죠. 이건 진짜다 하는. "어디서 구했어?" 해서, 당연히 제가 구라 없이 순도 100% 진실만 말했다고 확실히 했죠. 그랬더니 준 녀석들을 직접 만나 봐도 되냐고 묻더라고요? 건영이가 좀 머리 쓰는 경향은 강해도 남 이용해 먹고 그럴 친구는 아니란 건 제가 잘 알았으니까, 만나도록 해 줬죠.그래서 둘이 만나니까, 은근 마음이 통하더래요? 하다 보니까 뭔지 모르겠는 얘기까지 가고- 그러더니 결국 건영이가 믿고 저를 돕기로 결정했죠. 근데 쇠똥구리들이 저희를 다시 보고는, "잠깐, 너희 구슬 힘 쓸 줄 아예 모르던가?" 하지 뭐예요? 그런 경이를 본 것도 게네를 만난 걸로 처음이었는데,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그러더니 큰일 날 뻔했다고, 저희가 구슬 쓰는 법 안 배우고 갔으면 분명 죽었을 거라 그러는 거예요. 얘네 진짜 미쳤나, 어떻게 목숨이 달린 걸 까먹을 수 있냐… 그래도 제가 지금 목숨이 붙어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는 건 뭐, 일이 제대로 끝나기야 했다는 거니까요.
목숨 얘기가 나오니까 우리 둘 다 간담이 좀 서늘해졌어요. 뭐 기껏해야 초파리 같은 거 물리나 살충제로 조지면 되는 느낌인가 싶었는데, 세상에 마법 초파리가 애라곤 해도 사람도 죽일 수 있단 거잖아요. 게다가 그런 미친 게 초파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저만 해도 이미 쇠똥구리 중 한 놈이 저 푹 궤뚫으려 했었고. 그러니 확실하게 말해 줬죠. 목숨 얘기는 쏙 빼 놓고 지네들보다 훨씬 덜 산 순수한 애들한테 그런 거 전가하려 했냐고. 물론 기차게 돕겠다고 한 거야 저희였지만, 솔직히 게네라도 양심을 저 멀리 보낸 게 아니면 좀 찔릴 게 있을 거잖아요? 그러더니 역시 자기네들끼리 좀 얘기를 하더니 이렇게 얘기했어요.
"너희들이 구슬 힘을 직접 쓸 수 있도록 해 주겠다. 잘만 배우면 다칠 일도 없을 거고, 설령 다친다 해도 상처 없이 회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일이 전부 마무리된 뒤에는 그에 합당한 보상을 최대한 해 주도록 하겠다. 대신 두 명은 모자라니 세 명 정도만 더 모으고, 조금 오래 걸려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며, 무관계한 이들에게 발설하지 않는다는 걸 맹세할 수 있겠나?" 이렇게요. 뭐… 이 구슬 힘이 보통이 아니라는 건 척 봐도 감이 왔으니, 가르쳐 준다는 게 어떤 식인지만 물었죠. 그랬더니, "산의 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너희가 준비를 하면 우리가 그 녀석들한테 안내하지." 이랬어요. 그래서, 녀석들 말대로 세 명만 더 모으기로 했죠.
한숨. 근데 그게 그렇게 힘들 수가 없는 거 아니겠어요? 일단 기본적으로 입이 좀 무거워야 했는데, 커도 입이 뚫린 새끼들은 심심찮게 있는데 애들이면 어떠겠어요. 자기 딴에는 비밀이니 꼭꼭 숨긴다 했는데 자기도 모르게 얘기하는 애들도 많고 그런데.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는- 뭐 생략하고, 그래서 입 좀 무거운 애들을 찾아도 얘네가 저희를 믿을지도 문제였고. 이 짓만 하는 데 거의 반 년이 걸리고, 결국 8월이 됐죠.
그래서 모은 애들이, 김나준, 박산주, 박현 언니. 앞에 두 놈은 동갑내기 남자였고, 현이 언니는 저희보다 두 살 많았고, 성 같은 걸 보면 아시겠지만 산주 친누나예요. 현이 언니가 보호자 역할을 했죠. 초4긴 해도 그때 저희 중에는 제일 컸으니까 뭐.모아서 오니까 구체적으로 어딘지 안내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아, 어딘지는 못 말씀드릴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이 힘을 노리는 외부인들한테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라 쇠똥구리가 안내한 저희도 애인데도 그렇게 경계할 수가 없었거든요. 이 사람들 있었다는 것도 사실 얘기하긴 뭣한데, 이거 빼면 아예 처음부터 막혀 가지고… 이해해 주실 수 있죠?
침묵. 그래요, 어쩔 수 없죠.
어쨌든 서로 소개를 하고는, 쇠똥구리들이 저희한테 구슬 하나씩을 줬어요. 이전에 죽은 애들 유품이랬다나. 아 맞다, 그게 이건데. 주머니에서 하얀 구체를 꺼내 보인다. 너무 오래된 거라 빛은 안 나요.
훔쳤어요?
왜 그 쪽으로… 당연히 받은 거죠. 근데 저 들어올 때 소지품 검사 하셨는데, 여기서 뭐 별다른 거는 없었어요?
살짝 감지되는 건 있었는데, 원래 그런 게 힘을 담기 좋은 그릇이라 무시했죠. 보통 기념품이나 유물 같은 것보다 많긴 한데, 변칙 개체 소지품이고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서 오히려 그 구체가 영향을 받았다 생각하고 잊었죠.
그래요? 벌써 다 닳은 건가…
생각하는 듯한 소리를 냄. 별도로 처리를 안 하면 담은 힘이 빠르게 빠져나가긴 하는데- 구체에 힘을 넣는 간격이 얼마나 됐다고 했었죠? 물론 그 쇠똥구리들이 관리하는 방식도 또 다르게 있긴 하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어떻더라, 기껏해야 10년 정도밖에 안 됐는데. 관련 물체에 대봐서 연구를 좀 해 볼 필요가 있겠네요. 혹시 그거, 잠깐 맡을 수 있을까요?
뭐, 상관은 없죠. 혹시 좋은 결과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빠르면 다음 면담 시간에 알려드릴 테니, 한 번 기대해 보셔도 좋겠네요. 잘 된다면, 당신 변칙성의 원리를 이해해서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돌려보내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기록 끝
오늘로 여기 온 지가 1년도 더 됐네요… 어때, 뭐 새로운 건 없나요?
난처해하는 듯한 신음 소리를 냄. 에휴, 이거 영 난해한 게 아니네요. 이걸 만드는 데 사람이 전혀 관여하지 않아서 그런가, 다른 물건이랑 대봐도 제대로 이해할 만한 결과가 안 나와요. 일단 지리산에서 확인할 수 있는 힘이랑 비슷한 흐름은 관찰하긴 했는데, 이건 당연한 거고… 일단 지리산의 힘에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있긴 했어요.
오, 잠깐만요. 제가 처음 그런 이상한 걸 겪은 게- 작년 지리산에 오랜만에 다시 왔던 그때 아니었나요? 그렇다면, 구슬이 지리산에 와서 다시 힘을 얻고 가까이 있던 제가 어쩌다 보니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요?
분명 상관관계를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아직 인과관계라는 게 확실하지는 않죠. 그 구체는 당신 말고 다른 네 분도 받으셨을 테인 데다가, 받은 직후에가 가장 많은 힘을 축적하고 있었을 텐데 그때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게…
혹시 그래도 모르는 일이니까, 한 번 저나 구슬이 지리산 밖으로 나가보는 건 어때요?
글쎄… 일단 시도해 볼 수는 있겠는데, 지금 당신이 법적으로 실종 상태라는 건 까먹지 마셔야 해요. 날씨가 적절해서 변칙성이 안 들키더래도 그냥 민간인한테 들키는 게 치명적이니까요.
아, 예… 그럼 언제쯤 가능할까요?
허가는 쉽게 나올 텐데, 기획을 제대로 해야 허가를 내줄 수 있겠죠. 슬슬 성수기라 근처 민간인 출입이 잦아지기도 해서, 적절한 날짜를 잡는다면… 최소 몇 달은 기다리셔야 할 것 같은데요.
결국 그동안은 여기 밖 구경조차도 못 한다는 거네요. 개같은 거… 뜬금없이 팔자에도 없던 이런 거나 생기고. 하다못해 내가 조종할 수 있는 거면 좀 좋아, 그냥 산 날씨처럼 쓸데없이 변덕이 심하기만 하고. 이렇게 좆같을 수가 없네요.
저, 혹시 조금 힘드시면 검증된 분을 소개해드릴 수 있는데…
아뇨, 됐어요. 병원 간 적 있었는데 멀쩡하다더라고요. 그때도 검증된 사람이었으니까 멀쩡한 거는 맞겠죠.
그렇다면 어쩔 순 없지만, 확실히 힘들어는 보이시거든요. 뭔가 편의가 더 필요하시다면 검토해 볼게요. 지금은 예산도 조금 여유로우니 아마 어느 정도는 될 거예요.
…그래요, 선심 써주셔서 고마워요. 그래도, 지금 필요한 건 제가 뭔 일을 겪었나죠?
어디 보자- 그러니까 수련을 했던 이야기까지였죠. 구슬의 힘을 다루는 방법을. 잠깐 눈을 감고 생각함. 혹시 이 정도 말한 거로 위치 어딘지 추적하실 수 있거나 그러신 거 아니죠? 그 사람들도 저처럼 이렇게 갇혀 살게 된다 생각하면 진짜 미안해지는데.일단은 못 하지만… 저희 입장에서도 찾는 쪽이 더 나으니 알아서 입을 조심하시라고밖에 할 말이 없겠죠?
어우, 무서워라. 그런 식으로 하시니까 진짜 사소한 단서로도 금세 찾아버리실 것 같잖아요. 어쨌든 알아서 조심해서 얘기를 계속 해야죠. 그게 좋은 추억이다- 라고 생각했었죠. 뭐 그건 문제가 아니고, 아 그치. 그 왜 굳이 그 사람들이 아니라 저희가 했는지 궁금해하셨죠? 이거 이제야 말하네. 보니까 아직도 혹시 누가 자기들을 쫒거나 그럴지 몰라서 엄청 불안해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날짜도 매번 만날 때마다 비정기적으로 정하고, 그 사람들한테 갈 때도 누가 보거나 쫓진 않는지 엄청 신경쓰고 그랬죠.
그래서, 배우면서 있던 얘기는 다 했고, 이제 실전으로 들어간 얘기네요. 이게 정확히- 2009년 7월 2일? 다섯 명을 다 모은지 거의 2년 다 돼서였네요. 그 사이에 4학년까지 크고…처음에는 탐색 작업을 나가진 않고, 거점부터 정했어요. 구슬을 감추고, 계획을 세울 곳요. 그 연구하던 사람들 중에 그나마 경계가 덜하던 사람이 도와줬었죠. 대충 재료를 모아서 대충 지었는데도 꽤 그럴듯한 오두막이 되더라고요. 아, 이건 어디 있나 알려드려도 괜찮겠네요. 지금은 오래 돼서 좀 낡긴 했을 텐데, 아마 거기에 저희가 썼던 것들이 조금 남아 있을 거예요.
그래서 거점을 만들고, 구슬을 거기다가 보관해 뒀죠. 이전까지는 다른 놈들한테 안 들키려고 특수 처리한 통에 넣어서 진짜 이리저리 옮기면서 숨겨 놔서 힘들었었는데, 겨우 한시름 놨어요. 잠시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표정이 굳음. 생각해 보니까, 일단 거점부터 만들면 되는 거였네요? 괜히 아무도 그런 생각을 못 해서 2년 동안이나 똥개훈련을 하고 참…지금 거점 상태를 추측하시는 거라면- 작년 여기 오셨을 때는 거기를 들르지 않으셨다는 거네요?
뭐, 그렇죠. 굳이 가서 할 것도 없고, 뭐 신경 쓸 게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위치를 알려 주시겠어요? 혹시 그래도 뭔가 중요한 정보가 남았을지도 모르니까요. 저희가 조사하고 자료를 드릴게요.
뭐 별 건 없을 텐데… 그래요. 그러니까 어디 있냐면…
기록 끝
기록 시작
SCP-662-KO가 턱에 손을 괴고 눈을 감고 있음.
뭔 생각하세요? 저번에 보여드린 것 중에 뭔가 신경 쓰이는 거라도 있으세요?
그러니까- 뭔가 거기서 하나가 없어진 것 같아서요. 이게 너무 오래 돼서 확실하지가 않네요. 어쨌든 작정하고 찾지 않는 이상 닿지도 못할 곳에 있으니까 외부인은 아닐 테고, 누가 흔적을 지우려 했던 거면 굳이 아무도 못 기억하는 거를? 이상하네요.
그런가요… 그러면 출입 흔적도 한 번 조사를 해 볼까요? 현장은 손상되지 않게 조심해서 조사하고 관리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오두막째로 무너져 있었어도 상관은 없어서 조사하셔도 굳이 알려주시진 않아도 돼요. 일단 해 오던 얘기나 하게요. 저번에는 거점 만들면서 있던 얘기랑 거점에서 있었던 일 얘기였죠? 그럼 이제부터가 본격적이네요. 처음으로 탐색을 떠난 때요.
힘을 충전하는 데. 그게 일정해서 쇠똥구리들이 알고 있으면 좋았을 텐데, 이 새끼들, 매번 모자랄 때가 돼서야 단체로 탐색에 나서고는 힘이 모아져 있는 데를 찾으면 즉석에서 쭉 빨아들이고 바로 서식지로 돌아가는 걸 반복했다네요. 그래서 매번 전투로 동족들을 적지 않게 잃고. 사이사이 기간에 조금씩 조사는 해 두지, 미련하지 않아요? 그렇게 전투로 동족 잃는 게 싫으면 중간중간 안 들키게 조사할 애들을 편성할 것이지… 혀를 참.어우, 선의 갖고 도와주신 거 아니었어요? 일도 제대로 끝내셨다고 말씀하셨는데, 별로 그 친구들을 좋게 보진 않으시네요.
제대로라 했지 잘이라고는 안 했잖아요. 거기다 지금 생각하면 게네들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던 거를 괜히 애를 호구 잡아서 부려먹은 거 아니에요. 보수도-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쓸모 있는 것도 아니고, 목숨 건 대가치고는 좀 짜죠.
어쨌든 그런 식으로 반복하다 보니 슬슬 서식지에서 가까운 곳에서는 힘이 모인 곳을 찾기 힘들었다네요. 그러니 찾는 시간도 늘어나고, 사상자도 늘어나고 하던 때에, 딱 자기들을 도와주기 좋은 호구를 찾은 거죠. 하, 저도 처음에 돕겠다 하고 구슬 힘을 다룰 때는 뭔가 엄청난 그런 게 제 눈앞에 펼쳐진 줄 알았는데. 엄청난 건 뒤질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마법을 쓴다는 얘기에 혹해서 미끼를 덥석 문 제 대가리였고요. 혀를 참.
그래도 뭐, 충격요법으로 제 환상을 깨부수고 현실을 보는 눈을 떴다… 이렇게 생각하면 좀 낫겠죠. 그래도 이 경험 덕분에- 시발, 결과적으로 이 머리 위 먹구름이 그 경험 때문에 생긴 거일 확률이 높잖아요? 침묵.침묵. 다음에 얘기할까요?
아뇨, 괜찮아요. 애초에 저번에는 별 소득 없는 시덥잖은 이야기뿐이었으니까, 이번에는 탐사를 나간 얘기를 좀 해 봐야죠. 그래도 뭐,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처음으로 제대로 나간 건… 2009년 8월 1일이네요. 끔찍하게 더운 데다가 마법은- 안 써도 모기도 장난이 아니었는데, 역시 구슬이 참 도움이 되긴 하더라니까요. 시원한 바람 부는 날에 걱정 없이 나서는 느낌이었죠. 그리고는 초파리 떼가 나타나더니, "저기 있는 사람한테서 힘이 느껴진다!" 이러는 거예요. 그 다음에 동조하는 소리가 엄청 들리더니, 갑자기 주변이 검어질 정도로 초파리 떼가 나타나는 거 있죠! 산주 얘는 "와, 존나 많다! 저거 다 태우면 개 쩔겠는데-?" 이러고, 현이 언니는 침착하게 애들 보호할 준비 하면서 산주한테 "그딴 말 어디서 배웠어! 너 이따가 봐!" 하면서 핀잔 주고, 다른 둘은 긴장한 채로 서 있었고요.
그리고 저는- 혹시 몰라서 살충제를 챙겨 봤었거든요? 보니까 초파리들이 딱 애들이 든 구슬 쪽으로만 달려오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제가 대놓고 내놓으면서 달려들길 기다리고, 바로 쏴 버렸는데- 죽더래요? 그 많던 놈들이 전부 한 곳에만 모여서 달려드니 어떻게 대응할 틈도 없이 전부 듬뿍 마시고 죽어버렸죠. 마법 경험은 많이 해도 사람 경험은 못 해봤나 봐요.
이러니 다들 허무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굳이 힘 뺄 필요 없이 쉽게 할 수도 있겠다 싶어 들뜨기도 했죠. 그래서 벌레약들 엄청 사서 거점에 쟁여 놓고, 나갈 때마다 든든하게 챙기고.살충제라. 별로 싸진 않았을 텐데, 어떻게 챙기신 거예요?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마을이 좀 부유했던 편이라 애들이 용돈을 참 두둑하게 받고 다녔거든요. 거지인 저 빼고 나머지 애들 용돈 모으니 쓰는 족족 충당할 만큼은 나왔어요. 뭐 그래서 마법은 결국 쓸모 없었나 싶었는데, 갈수록 다양하게 덤벼오기도 하고, 또- 어휴, 진짜 바빴죠. 제가 치유 담당이었던 거는 저번에 말씀드렸죠?
어느 날은 또 무슨, 말벌 떼가 날아오는 거 있죠. 크긴 컸는데 장수말벌이었는지까지는 저도 모르겠고, 막 존나 삼류 만화 악역처럼 "구슬을 전부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이런 소리 내면서. 날갯짓 소리부터 이전 날벌레들이랑은 차원을 달리했다니까요. 산주 이 새끼는 못 태운다고 아쉬워하던 놈이 제일 겁 먹어서 새된 소리나 내고 앉아 있고… 어쨌든 침착하게 살충제를 뿌렸는데, 거 참, 덩치만 큰 게 아니라 대가리도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앞 놈들이 맞고 앓는 소리 내니까 뒷 놈들은 자연스럽게 옆으로 회피기동을 아주- 이야, 이제는 마법도 슬슬 필요하겠다는 게 감이 왔죠.
가까이 다가오더니 무슨 이상한 대형을 취하는데, 보다 보니까 정신이 멍해지지 뭐예요? 그때 감이 딱 왔죠. 이게 그 우리 가르치던 사람이 말하던 뭐랬나, 보거나 하면 이상해지는 그런 거? 그럴 거라고요. 그래서 빨리 다른 애들한테 눈 감으라 소리치고, 살충제를 위로 던졌어요. 그래서 그게 벌들 가까이로 갔을 때, 현이 언니한테 방호벽을 부탁하고 산주한테 살충제 통으로 불을 쏘라 했죠. 살충제 쏘는 거에 라이터 지펴서 불로 지지는 거 몇 번 본 적이 있어 갖고요. 근데 박산주 이 새끼, 중요한 상황에 떨어 가지고 빗나갈 뻔했거든요? 그때 나준이 그 녀석이 바로 반응해서 방향을 맞춰 줘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지금쯤… 어휴. 어쨌든 상상한 만큼은 아니었어도, 시원하게 말벌들을 전부 보내줄 만큼은 큰 폭발이 일어났죠. 그래도 그때부터 슬슬 도구만으로는 안 된다는 게 실감이 나서, 시간이 날 때마다 거점에서 마법 쓰는 연습을 조금씩 했어요. 그리고 협동하는 연습도요. 2년 동안은 각자 자기들 거 쓰는 법만 배웠거든요.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는 연습도 잘 하진 않았고.그래, 또 가끔씩은 쉬는 날도 있었거든요? 그때는 혼자 은폐하는 마법을 쓰고 근처를 돌아다녔죠. 이 은폐가 진짜 도움이 크게 됐다니까요. 어쨌든 은폐를 하면 제가 있는지는 몰라도 구슬 힘은 느껴지는지 가끔씩 위험한 놈들이 가까이 오기도 했는데, 참 쫄려서 뒤질 뻔했죠. 그래도, 그것 말고도 다른 신기한? 아니, 이상한 것들도 자주 구경할 수 있었어요. 아 그래, 구슬 충전하는 얘기는 조금 제치고 이 제가 따로 본 것들 얘기부터 할까요? 제 개인적인 얘기가 적으니까 좀 더 영양가 있을 것도 같은데.
그래요? 그렇다면 저희야 좋죠. 기억나시는 대로 뭐든 말해 봐요.
기록 끝
실험 기록 662-KO: 이 실험은 2021년 1월 1일부터 2일까지 2일간 행해진 실험의 기록이다. 당시 유행병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때문에 지리산 입산이 통제되었으며, 이때 민간인에 노출되지 않게 SCP-662-KO를 임시로 제45K기지 권역 밖(즉 지리산 영향권 밖)에서 가장 가까운 제32K기지로 옮겼다. 다음은 도착 1시간 후 제32K기지에서 SCP-662-KO와 면담한 내용이다.
기록 시작
SCP-662-KO: 아, 안녕하세요. 저 데려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박진기 요원: 암요, 뭘. 좀 갑작스레 잡은 일정이라 그쪽도 조금 정신 없으셨을 텐데, 잠깐이라도 편하게 지내시길 바랄게요. 그래서, 뭔가 다른 느낌 같은 건 없으세요?
SCP-662-KO: 글쎄요, 이게 처음 생겼을 때도 직접 보기 전에는 아무 느낌도 안 들었어서, 다른 느낌이랄 게 딱히? 그보다도, 요새 더럽게 춥다고들 하는데 저는 별 느낌 없네요. 아니 오히려 따뜻해서는, 빛도 은은하게 비치는 게 제법 쾌적한데요? 허, 이게 도움이 된다 싶은 날도 있네 그래요.
박진기 요원: 아 맞다, 이거 돌려드리는 거 깜박했네… (백색 구체-당시는 SCP-662-KO-1이라는 일련번호를 부여받지 않은 상태였음-를 SCP-662-KO에게 돌려준다.) 당신 자체 변칙성이 완화되는지와는 별개로, 실험해볼 게 또 있어서요.
SCP-662-KO: 예?
박진기 요원: 그 구체로 간단한 동작을 실행해 보실 수 있으시겠어요? 이 책상 위 볼펜을 든다든가, 아니면 간단하게 빛을 내거나요. 위험한 행동은 밖에 인원이 대기 중이니 하지 않으실 거라 믿어요.
SCP-662-KO: 예, 근데 저도 될지는 모르겠네요. 구체에 정신을 집중하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역시 안 되겠는데요?
박진기 요원: 어, 너무 포기가 빠르신데, 오랫동안 쓰신 적이 없어서 쓰는 법을 까먹으셨다던가 그런가요?
SCP-662-KO: 아 그러네. 이거 말한 적이 없었구나. 이거 제 거 아니에요.
박진기 요원: …네?
SCP-662-KO: 김나준, 걔 거였어요. 유학 갔는데, 가던 날에 걔 어머니가 저한테 주시더라고요. 걔가 저한테 달라고 했다시면서. 그게- 그 이상한 일이 저한테 생기기 반년 전쯤?
박진기 요원: 그럼 당신 거는…
SCP-662-KO: 말하기 조금 기네요, 일단 말하자면 부서졌어요. 완전 가루가 돼버려서 이젠 못 찾을 걸요?
박진기 요원: 김나준 씨 그 사람은 왜 당신께 구슬을 줬고, 또 왜 직접 주지는 않은 건가요?
SCP-662-KO: 그러게요? 걔한테 제가 뭘 한 적도 없었던 것 같은데.
기록 끝
이후 1월 2일이 돼도 SCP-662-KO의 변칙성은 그대로였으며, 오히려 범위가 증가한 것이 관측되었다. 제32K기지의 규모 및 담당 업무 상 SCP-662-KO의 격리 및 연구를 꾸준히 맡는 것은 불가능하다 판단돼 SCP-662-KO를 제45K기지로 복귀시켰다. 자료 분석 결과 SCP-662-KO의 변칙성의 범위는 격리 이후 꾸준히 증가하였으며, 2020년 7월부터 증가하는 속도가 점진적으로 증가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성일(2021/01/06) 기준 SCP-662-KO의 변칙성의 범위는 평균 지름 9m, 높이 10m다. 백색 구체는 SCP-662-KO-1로 지정되었으며, SCP-662-KO와 가까이 있을 때와 멀리 있을 때의 차이를 연구 중이다. 평상시 SCP-662-KO-1은 격리이사관보 주수현의 판단에 따라 SCP-662-KO가 소지한다.
추가로 SCP-662-KO 관련 인물 넷의 행방 추적을 개시했다.
기록 시작
긴 침묵.
이거… 이젠 눈에 띄게 넓어졌네요.
그리고 조금 격해진 것도 같고요.
침묵.
저기, 격리 절차가 수정됐어요.
뭐, 좋은 방향일리는 없겠죠.
최근 한령 씨 변칙성이 너무 심해져서… 격리실 안에서도 기지 내 다른 시설에 영향을 끼칠 정도가 돼버렸어요. 그래서 좀 떨어진 곳에 생활실을 지어서, 당분간은 그쪽에서 지내셔야 할 것 같아요. 시설은 최대한 불편하시지 않게는 지었고, 꾸준히 관리해 드릴 거예요.
아, 그래요? 좆같기도 하지.
너무 그러시진 마세요. 모..
말을 끊음. 네, 네. 알아요 알아. 그래도 교도소 독방보단 훨씬 좋단 거, 그리고 여기 갇힌 사람들 중에는 저보다 훨씬 운이 없어서 아예 하루하루가 고통인 그런 쪽도 있을 거라는 거. 근데 그 사람들은 전부 제가 아니잖아요. 결국 제가 이렇게 아무 것도 못 하고 발목 잡혀 사는 건 그대로니까.
어쨌든,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혼자서 옛날 책 읽고 살다가 가끔 이렇게 당신들한테 도움이 된다고는 하는 이 얘기밖에 없으니까, 할 건 해야죠. 그러니까 어디까지였죠? 괜히 기분 나빠하다 까먹었네.일단 구체 힘 되찾는 이야기는 하다 말았고, 사이사이에 당신이 보신 변칙 위주로 이야기가 돌아갔었죠. 굳이 당신 기분 좋게 해드리려는 건 아니고, 확실히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어요. 순수한 아이는 접근법이 달라서 그런지, 저희가 이미 알고 있던 개체들도 새 특성을 알 수 있었고요. 그동안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신 건 정말 고마워요. 그래서, 이젠 슬슬 그 구체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온 것 같죠?
저, 다음부터는 그 생활실에서 대화하나요?
네, 날씨가 나쁘지만 않다면 이렇게 대면할 수도 있을 거예요.
제가 더 이상 생각나는 게 없다 하면요?
에이, 왜 그리 걱정하시나요. 이런 얘기 말고도 꾸준히 면담 하잖아요. 저희가 뭐 중죄인 가두는 것도 아니고, 기본적인 사회적 욕구는 당연히 충족시켜드리는 거 아니겠어요?
….알았어요. 그럼 일단 해야 할 얘기를 해 볼까요. 그럼 중간에 만난 것들 얘기는 살짝 제쳐 두고, 저희 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위주로 얘기하게요.
2010년쯤부터 하면 되려나. 이때부터는 현이 언니가 중학생이 돼서, 조금 일정 조정이 잦아졌어요. 그래도 학교가 이어져 있어서 쉬는 시간마다 얘기할 수는 있었는데, 탐색을 떠나러 갈 때 초5 네 사람이 자주 가는 일이 잦아졌죠. 현이 언니가 쓰는 마법도 연장자로서도 보호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는데, 없으니 사실상 제가 그걸 맡게 됐죠. 마법도 그렇고 처음 끌어들인 것도 저였고.
근데 역시, 저는 현이 언니보다 확실히 모자란 게 절실히 느껴지더라고요. 일단 치유란 게 맞은 걸 아예 없던 거로 해주는 건 아니잖아요. 아픈 건 그대로니까 애들 사기가 떨어지는 게 보이더라고요. 현이 언니는 아예 안 맞게 해줄 수 있었는데… 그리고 떨어진 사기도, 현이 언니는 언제나 듬직하게 살려 줬는데, 저는 못 하겠더라고요. 아니, 사기를 살리긴 커녕, 이해하지도 못 했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네요.침묵. 아마 제가 산에 너무 익숙한 탓이었을까요? 멧돼지를 눈 앞에서 봐서 쫄아서 튄 적도 있고, 넘어지면서 무수한 가시에 베인 적도 있고, 독버섯 잘못 만져서 하루 종일 앓은 적도 있고… 그런데도, 산의 약초 같은 거로 응급처치를 한 다음 집에서 구급상자로 해결하고 나면 하룻밤 새에 낫더라고요. 심지어는, 팔이 부러진 적도 있었어요. 병원에 가야 했는데, 저는- 병원비가 걱정돼서 다른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대충 감기 걸렸단 핑계로 사흘 정도 집에서 쉬었었죠. 뭐, 당연히 예상하셨겠지만 그새 나았어요. 그땐 몰랐는데, 제가 쇠똥구리를 보기 전에도 참 지리산의 경이 덕을 많이 봤었네요.
그래서, 전 겁이 없었어요. 다치는 건 좀 아파도, 어차피 죽지 않고 나을 수 있다면야 상관 없다는 주의였죠. 뭐, 이런 생각을 초등학생이 할 리 없다는 건, 그쪽도 잘 아시겠죠? 다른 애들은 겁 먹어서 은폐한 다음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자 하는데, 저는 답답하다고 생각해서 조져 버리자고 그랬죠. 혼자라면 몰라도, 넷이라면 할 수 있을 거다 하면서. 어- 애들 말이 틀린 건 아니었죠. 회복 속도도 한계가 있고, 구슬 힘을 언제까지 계속 쓸 수 있을지도 모르는 거였고, 괜히 저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대놓고 알려도 안 좋은 거였고. 근데 그때 저는 혈기도 넘치고, 또 좀 빨리빨리 정신이 있었다 해야 하나. 한 번에 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는데, 그 한 번에 조금이라도 진전을 못 낸다는 게 답답했어요. 침묵. 결국은, 이것도 제가 현이 언니보다 못한 탓이었으려나요.왜요?
아, 몰라요. 현이 언니가 있을 때는 그렇게 시원시원할 수가 없었거든요. 우회해야 할 때는 재빠르게 우회로를 찾고, 싸울 때는 제가 일이 없을 정도로 안전하게 없애고, 매번 조금씩 진도를 내고. 그러니 저도 매번 확실하게 뭔가를 해냈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했는데, 우회로를 찾으면 날이 새고, 싸울 때는 현이 언니가 없으니 좀 더 자주 다치고, 이리 지체하다 날이 새고.
결국 악순환이었다는 거네요. 당신은 억지로 뭐라도 하려 했고, 친구 분들은 반발하고, 그러니 오히려 천천히 했으면 할 수 있었을만큼보다도 훨씬 못 했고.
작은 웃음소리. 맞아요. 하, 제가 얼마나 잘 안다고 그런 고집이나 부리고 앉아 있던 걸까요. 현이 언니가 적당히 중재를 해 줬지만 매번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도통 해결되지를 않았으니까요. 그러다 현이 언니가 없을 때 한 번 터졌죠.
나준이 그 녀석, 날짜는 잘 기억 안 나는데 그래, 지금 제 주변처럼 우중충한 날 말을 걸어 왔어요.
"한령아, 우리 너무 힘들어… 아니, 우리만이 아니라 너도 엄청 힘들어 보여.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그래서 제가, "그럼 당연히 힘들겠지, 난 이 정도는 각오했어." 그랬는데… 참, 지금 봐도 어릴 때 제가 참 꽉 막힌 사람이었네요. 제가 그러니까 걔가,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못 버티겠어. 조금만이라도 조정을-" "그럼 너흰 현이 언니 있을 때만 오든가! 뭐 그래. 아픈 게 싫은 거잖아? 그럼 나 혼자 가면 될 거 아니야. 됐지? 너흰 편하게 쉬고나 있으라고." "아니, 난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 네가-"
"아, 됐어. 애초에, 우리가 시간이 많긴 해? 나중에 우리도 중학생이 되면 어쩔 거야. 안 그래도 자주 못 다니는데, 그때는 거의 손 놓다시피 하게? 뭐, 그렇게 미루다 고등학생이 되면 어쩌게. 그때부터는 하루 종일 학교에 있을 텐데, 그 쇠똥구리들한테 '아이고 미안하네~ 우리는 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다른 사람이나 찾아 봐.' 이 지랄하게? 너흰 몰라도, 난 내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야. 그래, 너희는 푹 쉬고나 있어라, 나 혼자 가 본다."긴 침묵.
저… 에휴, 그래요. 한심하죠? 그래, 더 바보 같았던 게 뭔 줄 아세요? 혼자 다니면서, 그게 편하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애들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은폐도 유지하기 편하니 우회할 때도 현이 언니 있을 때처럼 신속하고.
다른 분들이 걱정은 안 하셨나요?
저희가 처음 배웠던 거, 벌써 까먹으셨나 보네요. 구슬 간 연결, 이게 유지된다면 적어도 제가 구슬을 잃지는 않았다는 거고, 그러면 어지간히 다쳐도 곧 회복해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단 거였죠.
아뇨, 뭐 처음에는 당연히 걱정했어요. 침묵. 현이 언니한테는 제가 말하지 말라 했고요. 제가 생각해도 현이 언니는 제 선택을 어느 쪽이든 막아버릴 걸 직감했거든요. 그래서 애들도 한 명씩 돌아가면서 몰래 따라오곤 했는데- 제 움직임을 따라오진 못했나 봐요. 제가 산을 타다보면 어느새 쫓아오는 기색이 없어졌거든요. 그래도 몇달 간 제가 큰 상처 없이 돌아오니까, 애들도 뭐, 괜찮겠다 싶어했나? 그랬겠죠.그러면 이제 슬슬 그 큰 상처 이야기를 할 때인가요?
기록 끝
2021년 5월 1일, 박현 씨와 박산주 씨를 만나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대구광역시 동구 방촌동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며, 재단 인원이 거주지를 방문했을 때는 이사를 위해 짐을 싼 참이었다. 한편 한건영 씨의 행방은 찾지 못했으며, 김나준 씨는 재학 중인 대학을 확인해 인원 파견을 대기 중이다. 아래는 박씨 남매와 나눈 대화의 녹음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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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어디서 오신 거라고요?
김나진: 그- 지리산 관리사무소에서요. 두 분 이한령 씨하고 전에 알던 사이 맞으시죠?
박현: 한령이? 걔는 어떻게 아세요?
김나진: 저, 이 말 드려도 될지는 모르겠는데, 실종되셨거든요.
박산주: 아니, 그 진짜요? 연락하려니 안 닿는다 싶긴 했는데…
김나진: 저, 혹시 마지막으로 연락을 하신 게-
박씨 남매: 서로 마지막 연락 날짜를 확인함. 네. 걔 고등학교 들어가고 난 뒤에는 연락을 해본 적이 확실하게 없었네요. 서로 바쁜 데다가 걔도 별로 연락을 하고 싶어하지는 않아서.
김나진: 그러시구나. 그럼 그 이후로는 이한령 씨가 어떻게 지내오신지 모르시는 거네요. 그게, 이한령 씨가 실종된 곳이 딱 지리산에서였는데, 마지막으로 본 게 저였어요. 근데 아무리 봐도 자살은 커녕, 막 힘들어 보이고 그런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사고사일수도야 있겠는데, 장마철인 거 감안해도… 시체를 못 찾는다는 건 역시 이상하거든요. 게다가 소지품도 안 발견됐고.
그리고 또 이상한 게, 그런 것 치고는 조사가 은근히 미적지근하더라고요. 애초에 인간 관계가 협소했는지, 주변 인물 조사도 순식간에 끝나고- 심지어 이한령 씨가 어릴 적 살았다던 마을도 제대로 조사를 안 했었다네요?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조사를 좀 하다… 겨우 두 분을 찾게 된 거예요.박산주: 어음, 그렇다곤 해도 저희도 딱히 감이 안 잡히는데요. 고등학교 졸업식 날 봤을 때도 여느 때처럼 생기 가득한 모습이었고, 위험한 거에 자진해서 휘말릴 것 같은 애도 아니고.
김나진: 오, 잠깐. 이한령 씨에 대해 잘 아시는 건가 봐요?
박산주: 아무렴요, 중학생 때까지는 같이 놀고 그랬으니까요.
김나진 연구원: 혹시 그럼 같이 노시던 시절 이야기라도 해주실 수 있나요? 그게, 이전까지는 말 그대로 얼굴만 알던 수준이거나 했어 가지고요.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은 적은 없었거든요.
박현: 그러시구나. 그러면, 뭐 도움이 될진 모르겠는데, 얘기는 해드릴게요.
한령이는 뭐라 해야 하나… 거리낌 없다? 그런 느낌인 애였죠. 뭐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확실하게 말하고,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칼같이 하고. 그리고 분위기도 잘 읽었는데- 그게 한령이한테는 독이 됐던 것 같아요.
한령이는 가난했거든요. 혹시 조사해 보셨으면 아실 텐데, 저희 마을이 좀 부유한 편이거든요? 그래서 저희 또래는 전부 새 거를 쉽게 가질 수 있었거든요, 한령이만 빼고. 한령이 집은 텔레비전도 지상파만 나온대나 했고, 컴퓨터도 없었다네요.
어릴 때는 이렇게 유일하면 눈에 띄는데, 가난같이 눈에 보이는 점이면 어떻겠어요. 다른 애들이 따돌림 대상으로 삼죠. 아마 한령이도 다른 애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챈 것 같더라고요. 애들이 뭐라 해도 아예 대꾸도 안 하고, 자기가 다가오려 할 생각도 않고…박산주: 그리고 그때 제가 좀 인싸래야 하나? 어쨌든 그랬는데, 저는 누구든 일단 얼굴을 트고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거든요. 그래서 아마 제가 처음으로 한령이한테 친절하게 말 건 애였을 거예요.
처음에는 대답하려 하지 않더라고요. 놀란 건지, 겁이 났던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실 한령이처럼 경계가 심한 사람은 본 적이 없어서, 그냥 얘가 다른 사람들을 다 싫어하나 했어요. 그래도 제가 다른 애들한테 일부러 말까지 해주면서 끼워주고 하다 보니까, 조금은 마음을 여는 것 같더라고요.
…완전히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이상하게, 저희가 집에 초대하거나 게임기를 빌려주거나 하려 할 때는 한령이가 거절을 하더라고요. 그냥 저희 물건에 닿는 것 자체를 꺼려 하고. 자기 말로는 자기가 밖에서 자주 나돌아다녀가지고 더러울 거라면서 그랬는데, 저희가 뭐 그런 거 신경쓸 나인가요. 괜찮다고까지 하는데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 같아서, 원. 조금 서운하기도 하고.박현: 어쨌든 그리 친해지다 보니까, 애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는 한령이가 그럭저럭 잘 적응하는 것 같더라고요. 음… 그래도 산주가 말한 저거는 초등학교 때도 여전했어요. 저희랑은 다르게 아예 나가 노는 걸 좋아했고.
아 그래, 산에 자주 나가서 그런지 한령이 걔가 참, 산에 있는 재밌는 걸 많이 알더라고요. 뱀 머리만 들고 나타날 때는 우리 다 기겁하면서 도망쳤는데.박산주: 하, 기억 나네. 그렇게 놀다 보니까, 한령이랑 주로 만나서 노는 건 저희 남매랑, 한건영, 김나준… 이렇게였네요. 다른 애들은 몰라도 저희는 뭐라 해야 하냐- 산에 좀 더 친밀했다? 에이, 잘 모르겠네요. 어쨌든 그래서 걔랑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 맞다, 건영이 얘는 아직 저희랑 가끔 연락하거든요? 번호 드릴까요? 건영이한테는 미리 말해둘 테니까.김나진: 아, 감사합니다. 근데 김나준 씨는요?
박산주: 유학 갔댔나. 그럴 걸요? 저는 연락처 없는데, 누나는 있어?
박현: 나는 있었는데… 걔가 유학 가면서 번호를 바꾸고는 알려주지도 않고 떠서. 게다가 유학도 갑자기 재작년에 떠나 버렸고. 걔 부모님도 전화번호 모르신다는데, 그럼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닐까요? 아니 잠깐, 한령이가 실종된 게 언제인 거예요?
김나진: 제가 마지막으로 봤으니까 확실히 기억하죠. 재작년 7월 18일에 마지막으로 봤었어요.
박현: 그래, 나준이 걔 떠난 것도 재작년이잖아요? 뭐 걔는 2월쯤에 유학을 가긴 했는데… 어쨌든 같은 해면 뭐 있을지도 모르지 않을까요. 연락은 안 닿아도 미국으로 갔었다고 들은 것 같긴 한데, 어떻게 걔 한 번 찾아보시는 건 어때요? 뭐 도와드릴 거 있으면 저도 조금은 거들어 드릴게요.
김나진: 그래요? 일단 여러 가지 알려 주셔서 고마워요. 다음에 또 만나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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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4일 뒤 김나진 보조 연구원의 휴대전화로 한건영 씨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아래는 해당 통화 기록의 녹음본이다.
알림: 보안 인가 등급 맞지 않음. 열람 불허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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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참 궃네요. 안 그래요?
침묵.
헛웃음. 아, 왜 그래요. 이러면 '이쪽은 존나 화창한데.' 이런 말씀 하실 것 같았는데. 이런 칙칙한 화면 보면서 분위기 밝게 해줄 농담 하나 정도야 할 수 있잖아요?
왜, 괜히 말싸움이나 하고 싶으신가 봐요? 전 그럴 기분 아닌데. 뭐, 이제는 말같은 거 하고 싶으시지도 않으시니 그러신가요? 안 그래도 슬슬 이야기도 끝나가는 것 같던데.
침묵.
뭐 그리 나가고 싶으시면, 도시 한가운데 그 상태로 보내드려 볼까요? 저흰 적어도 인체 실험 같은 건 안 하잖아요? 오히려, 저희가 잘만 지켜 드리는 거지.
침묵. 씨발, 그래요. 저도 알아요, 알아. 어차피 이 꼬라지로 나가봤자라는 거. 그냥… 뭔 소리든 하고 싶네요. 억울하잖아요. 내 삶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어찌할 수 없는 일로 미래가 가로막힌다니.
내 삶이라- 그러고 보니 공부를 좀 열심히 하시던데, 그게 그거 때문인 건가요?
예. 전부 끝난 다음에, 중학생 생활 내내 그냥 아무 일이나 하면서 보냈었거든요. 그땐 정말 생각 같은 걸 안 하고 지냈어요. 동네 일 도와주면서 용돈 좀 벌고, 그걸로 주말에는 읍내나 도시 가서 놀고- 부르면 적어도 한 명 정도는 시간이 있길래, 전 다른 애들도 저같이 생각 없이 사는 줄 알았나 봐요. 근데 중3 2학기때부터…
다른 애들 전부 도시 고등학교로 나간다네요? 거기 학교 기숙사에서 살면서 매일 학원에 다닐 거라고. 머리를 뭐로 맞은 기분이었어요. 보니까 다들 대학은 어디로 갈지, 그래서 뭔 진로로 갈지를 생각해 뒀다고… 그제야 제가 얼마나 바보같이 살아왔는지, 감이 왔죠.근데 그때도 제가 뭘 해야 할지는 잘 몰랐어요. 그냥…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별 생각 없이 살았으니까요. 결국 뭔가 가슴을 두드리는 듯한 답답한 느낌만을 쟁여 두고, 고등학교로 올라갔죠.
솔직히 제가 할 건 다 하는 성격이라, 입시나 그런 거는 무난하게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첫 모의고사에서 제가 몇 점을 맞았을 것 같으세요? 한숨. 국영수 465. 뭐 입시 관련해서 아는 것 하나 없던 저래도 이게 제 인생을 조질 조짐이라는 느낌이 딱. 중학생 때는 할 것만 하고 교과서 대충 읽어도 상위권이니 괜찮겠지 했는데, 우물 안 개구리가 뭔지 알겠더라고요. 나는 도시 애들이랑은 경쟁도 안 된다. 이때 알았어요.음… 그렇구나. 그럼 그때부터 다른 분들과는 연락을 전부 끊고 혼자 공부에 몰두하신 건가요?
그렇죠 뭐. 어차피 게네도 공부하느라 바빴으니 연락할 틈도 없었을 테고.
그럼 고등학교 이후로 그 분들을 만나신 적은?
어- 없네요. 게네는 몰라도, 저는 바빴거든요. 입시가 끝나도 해둘 게 너무 많았죠. 대학에서는 어떤 식으로 공부하는지, 또 뭘 미리 공부해둬야 할지 같은 거. 간신히 제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긴 했는데, 아시잖아요? 농어촌전형. 그것도 턱걸이로 들어갔으니, 도시 애들한테 밀려버릴 거란 건 기정사실 아니겠어요? 애초에 고3 때는 공부에 전념하려고 휴대전화도 아예 버려가지고요. 수능 끝나고 다시 맞추긴 했는데, 전화번호도 바꿨고 굳이 이젠 만나지 않는 사람들 전화번호를 등록할 필요는 없겠다 싶었죠.
잠깐, 근데 딱 한 번 만난 적은 있었네요. 졸업식 날에요. 저 졸업식 하는 데에서 저랑 같이 힘 모인 곳 찾던 사람들 보이더라고요. 처음에는 다른 사람 만나러 왔나 하고 별 신경은 안 썼는데, 저 보니까 반갑게 인사하더라고요? 말 들어보니까 가끔 시간 날 때 마을로 가도 맨날 저만 공부한다고 해서 만나본 적이 없었다고, 뭐 하고 지내나 궁금해 하더라고요. 그래서 대충 뭐 때문에 연락을 안 했는지, 앞으로 뭐 할 계획인지 짧게 얘기했죠. 그랬더니 좀 놀라는 분위기더라고요. 하기야 중학교 때는 할 것만 하고 남는 시간에는 놀기나 하던 애가 그랬으니… 그리고는 이번에는 제 쪽에서 물어봤는데, 뭐 다들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들었던 거랑 비슷하더라고요. 그래서 김나준 얘는 어디 있는지 물어봤는데, 입시 조지고 재수 준비를 한다더라네요? 거 참. 그랬더니 한 해 뒤에는 뭔 수능이 아니라 외국 대학에 합격했는지 슝 떠나버리고.
아마도 다들 저랑 좀 더 얘기하고 놀고 싶었나 본데, 뭐 어쩔 순 없죠. 다들 놀러 간댔는데 저는 대학 준비할 게 너무 많아서 같이 안 간다 그랬거든요. 뭔가 많이 아쉬운 눈치긴 했지만…그럼- 말을 정리하고 보면,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고향으로 돌아오신 건 변칙성이 생긴 그날이 처음이시란 거네요?
그렇네요. 첫 겨울방학 때는 여유가 있긴 했는데, 그때는 단기 알바 몰아 잡았었거든요. 그러다 19년 2월 중순쯤에- 이 구슬을 받았고. SCP-662-KO-1을 집어올림. 참… 이게 대체 뭐람.
기록 끝
오수윤 수습 사무직원이 김나준 씨가 재학 중인 대학에 위학생으로 위장해 들어갔으며, 서서히 친분을 쌓았다. 주요 대화는 문자메시지로 기록됐다.
원 문자메시지의 형식을 살려 기재했으며, 왼쪽이 김나준 씨, 오른쪽이 오수윤이다.
넌 여친 있냐 1월 6일 오후 9시 24분
오후 9시 24분 좆까셈
뭔데 급발진함
그냥 묻는데 오후 9시 25분
시발 내가 그런 거 있게 생긴 얼굴인지 봐라
오후 9시 25분 애초에 유학 몇달 전에 와서 겨우 너랑만 친해진 게 지금 내 상태인데
오기 전에 사귄 사람은? 오후 9시 27분
있으면 자랑했다
오후 9시 28분 너도 없어 보이는데
응 난 안이고 넌 못이야~ 오후 9시 28분
지랄하네
오후 9시 29분 그래서 뭐 닌 있었다고?
후단데?ㅋ 오후 9시 29분
얼마나 좆같이 대해줬으면 아무도 연락을 안 하냐
오후 9시 29분 그러니까 이런 시각에도 이런 아다새끼랑이나 오붓한 대화 나누지
아 게이같은 새끼야 말을 해도 그따구로 하냐
그리고 연락 내가 끊었다 오후 9시 30분
오후 9시 32분 왜
공부 집중하려고 오후 9시 33분
오후 9시 33분 왜
왜 왜만 해
왜구같은 새끼오후 9시 34분
말 돌리네
넌 공부하고 싶어할 상이 아닌데
오후 9시 36분 솔직히 어머니가 강제로 여기 보내신 거 쪽팔려서 그러지
그건 니 얘기고
그럴 거였으면 아예 내가 뭐 하고 다녔는지를 안 말했지
나 공부하는 거 제일 많이 보는 새끼가 왜 이럼 오후 9시 36분
그러냐
근데 갑자기 그딴거 왜 물어
오후 9시 39분 평소에는 벙어리마냥 내가 말할 때까지 암말도 않으면서
그냥
갑자기 누구 생각나는 사람 있음 오후 9시 43분
그러냐 시발
난 여자는 엄마 생각만 나는데
오후 9시 45분 뭐 누군데 귀국할 때까지 기다려줄 사람이라도 있음?
없어
연락 다 끊었다니까 오후 9시 46분
오후 9시 48분 그럼 대체 누구를 그리 폐관수련하면서 생각하고 그러는 거임?
이름 대면 알겠음? 오후 9시 49분
오후 9시 54분 알면 신이지
뭐 생각이라도 했냐
은근 늦게 답장하네 오후 9시 55분
야식 해먹고 있었어서
존나 맛있음
오후 9시 56분 그래서 그 생각난다는 사람은 몇 번째였음?
첫사랑이다 오후 9시 59분
오후 10시 00분 언제 사귀었는데
중2쯤부터 졸업할 때쯤까지? 오후 10시 01분
그러냐
오후 10시 03분 근데 왜 많고많은 사람 중에 그 사람이 떠오르는데
아직도 좋아하니까 그렇지 오후 10시 04분
찐사랑이네
오후 10시 05분 근데 왜 헤어짐?
다른 고등학교 가면서
중3 기말고사 끝나고 엄마가 나 부르더니
도시 고등학교 가랜다
그것도 2학기 시작할 즈음에 이미 결정한 거였대 오후 10시 06분걔는 함양고 가서 나도 읍내 고등학교로 갈 줄 알았는데
존나 통수 맞은 기분이었지
그래서 존나 싸우고 냉전하고 했는데 결국 GG침
뭐 그래 어쨌든 이게 내 장래를 위한 일이기야 했을 테니까 오후 10시 09분그래도 다른 고등학교 가도 시간 날 때 연락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
근데 연락이 갑자기 끊기더라
일단 알아보니까 공부한다고 그러대
직접 만나보려 해도 맨날 바쁘고 해서 못 만나고…
그래 뭐 사실상 차인 거네 오후 10시 12분(오리 캐릭터가 눈물을 흘리는 이모티콘)
근데 나한테 이렇게 상세하게 말해줘도 됨?
오후 10시 17분 그렇게 내가 믿을 만하냐
모르겠다 걔 오래 못 보니까 갑자기 어디에 풀고라도 싶어지냐
뭔가 딱 너가 생각나네
한국인이 편하다 생각한 건가 모르겠다 오후 10시 18분
그러냐 새끼
뭐 쨌든 날 그런 믿음직한 사람으로 봐주다니 땡큐
오후 10시 21분 근데 너 내일 1교시 강의 아님? 일찍 자야 한다며
어 시간 언제 이렇게 됐냐 미친
나머지는 나중에 말한다 잘 자라 오후 10시 22분기록 끝
기록 시작
전화 연결음
한건영: 여보세요? 어, 나진이네.
김나진: 어, 그래 건영아. 오늘은 좀 어때?
한건영: 뻐근해 뒤지겠다 야… 본업하랴, 개인적인 일 하랴.
김나진: 그래도 이 시국 그 나이에 공무원도 아닌데 안정적인 일 잡아서 하는 게 어디냐. 차라리 본업에 지장 안 가게 그 개인적인 일을 쉬지.
한건영: 한령이 찾아야지. 나 못 쉬어. 따로 흥미 있는 것도 좀 있고.
김나진: 하여튼 열심이다. 이제 이한령 그 사람 실종된 지 거의 2년 반째인데, 어째 계속 열심이네. 대체 이한령이 너한테 어떤 사람이었길래 그러는 건데? 빚이라도 졌어? 아니면 오히려 받아야 할 빚이라도 있어?
한건영: 둘 다 없어. 그치만… 이대로 사라지기에는 한령이가 너무- 불쌍하다? 아깝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래도, 한령이는 지금 이렇게 허무하게 가야 할 사람은 분명 아닌 것 같거든. 혹시 아직도 살아서 뭔 고생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거잖아. 확실하게 죽은 거 확인하기 전까지는 포기 안 할 거야.
김나진: 그럴 정도로? 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그래? 내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건 걔랑 대판 싸웠던 부분까지였는데.
한건영: 어, 그러니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림. 어, 현이 언니랑 산주 왔네.
박현: 건영이! 뭔 얘기 해?
한건영: 나진이. 듣다 만 얘기 계속 듣고 싶대.
박산주: 그래? 그럼 우리도 같이 얘기할란다.
박현: 좋지. 그래, 어디까지였더라?
한건영: 언니 고등학교 어딘지 결정났을 때쯤?
박현: 그래. 그때 내가 도시로 나가게 됐었지.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너희랑 같이 찾는 일 하는 게 불가능하게 됐고.
박산주: 그리고 누나가 그거를 알리면서 우리한테 잘 지내라 그랬지. 누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박현: 그야 당연히 몰랐지. 그래도 내가 몇 년동안 너희를 봐 왔는데, 기류가 심상치 않은 건 못 눈치채는 게 이상하잖냐. 난 너희 다 잘 지내기만 바랐으니까.
박산주: 하긴, 모르는 게 당연한가. 에휴, 말을 하는 게 나았던 거였을까. 잘 모르겠다.
박현: 븅신이가, 당연히 말하는 게 낫지. 왜 굳이 그딴 걸 숨겨 가지고…
박산주: 그럼 누나는 그거 듣고도 한령이 앞에서 안 들은 척하면서 잘 조율해줄 수 있었겠어?
박현: 어…
박산주: 한령이는 우리가 자기한테서 등을 돌렸든가, 아니면 이제 함께할 생각이 없다는 식으로 생각했나 봐. 그나마 누나야 모르니까 아직 제대로 해주고 있는 거라 생각했고. 누나도 한령이가 혼자 다니고 그랬단 거 알면 당연히 반대했을 테고, 솔직히 대놓고 안 그래도 한령이가 분위기를 잘 읽잖아. 그럼 한령이가 전부 자기한테서 뒤돌고 있다고 생각해버릴 것 같았어서, 그래서 못 말했어. 한령이가 매번 지 장비로 상처 치료해도, 흉터는 조금씩 남는 데다가 점점 피곤해하는 건 숨기기가 영 힘드니까.
박현: 그래… 그럼, 내가 말한 뒤에는 어떻게 됐어? 그동안 좀 일이 많아서 못 들었으니 나도 정확히 뭔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지. 그 때 내가 아마 '고등학교를 도시로 가게 됐다. 앞으로는 못 도와줄 것 같아 미안하다. 다들 내 빈자리를 잘 채워주면 고맙겠고, 꼭 다치지 말고 무사히 끝내달라.' 정도로 말했지.
한건영: 뭐, 형식적인 인사였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령이는 저게 진짜로 모른다는 투란 걸 알았겠지. 그래도- 다치지 말라는 거, 한령이 자기한테도 진지하게 말한 그거만은 조금 한령이 생각에 전환 같은 걸 줬던 것 같아. 그 이후부터는 쭉 언니 없이 우리서만 해야 한다는 뜻인 거였잖아.
그리고는 그 다음 탐색가는 날에 말하더라. "역시, 내가 너무 성급했던 걸까? 내가 너희 의욕을 무시한 걸까? 잘 모르겠어." 솔직히 존나 놀랐어. 한령이가 원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진짜 안 굽히다시피 하는 애였는데, 갑자기 그러다 보니까.박산주: 그리고 엄청 반겼지. 사실 우리도 현이 누나가 아예 못 도와줄 때를 대비해서 따로 준비해둔 게 있었거든.
우리 각자 누나가 했던 걸 나눠서 익혔어. 궁극적으로는 이걸 숙달해서 한령이랑 같이 다니려 했거든. 전에 한령이가 혼자 다니게 된 계기 말했었지? 그때도 나준이도 우리도 다 한령이를 걱정해서 한 얘기였는데, 우리가 힘들어서 그만두거나 설렁설렁 하고 싶어하는 거라 생각했었나 봐. 그래서, 우리도 노력의 결과를 보여줘서 한령이만큼 하고 싶어한다는 걸 보여주고 더 이상 한령이가 너무 힘들어하지 않게 도우려 했었던 거고.김나진: 근데 그랬던 사람이 연락을 끊고 공부벌레가 됐다는 건, 결국 오해는 못 풀었고?
한건영: 아니… 하, 그건 좀 나중 일. 일단 하던 얘기부터 하고, 그건 나중에 말하자.
한령이가 그 말 하니까 제일 좋아했던 건 나준이 걔였지, 아마. 뭐, 그럴 만해. 그 새끼 한령이 좋아하는 티 대놓고 냈으니까. 제일 열심히 한 것도 걔였고, 그렇게 노는 거 좋아하는 애가 뭐에 엄청 집중하는 거 본 거는 그게 처음이었어. 정작 한령이는 예민한 상태라 몰랐든가, 알아도 신경 안 썼던 것 같지만…
그래 갖고 나준이 걔가 바로 말했지. "괜찮아. 사실, 네가 좀 우리 생각을 오해한 것 같긴 했었는데… 그래서 우리도 노력했어. 네가 힘들지 않게, 도와주고 싶어. 그, 그러니까, 어- 이제라도 함께할 수 있을까? 혼자일 때보다 더 빠르게 할 수 있을 거라고. 꼭 약속할게."박현: 피식거림. 뭐야, 그랬어? 흐- 조금 오글거리는데.
한건영: 사랑에 빠진 어린애가 용기내서 말 거는 거잖아 뭐. 언니는 아직도 모쏠이라 그런 느낌 모르는구나, 응?
박현: 이 새끼가? 너 자꾸 그쪽으로 기만질 한다?
김나진: 뭐야, 건영이 애인 있었어?
박산주: 그러니까, 나도 놀랐다니까? 약혼까지 했다는데, 진짜 뭔 약점을 잡았길래…
한건영: 야! 박산주! 개소리 집어쳐라. 뭐, 나 애인 있는 건 논점이 아니니까 넘어가고 어쨌든! 한령이가 그 말을 듣고 정확히 뭔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 솔직히 우리는 나준이 평소 성격도 잘 알고 하니까 어떻게 봐도 사랑에 빠진 애처럼 보였던 거지, 한령이는 그 뭐냐, 그동안 얘기도 잘 안 하고 해서 그냥 오래 얘기 안 해서 어색한 줄만 알았나 봐. 뭐, 나준이 진짜 마음은 몰라줘도 우리 마음은 닿은 것 같았지만. 그러니까 한령이가 처음으로 안 나가고 거점에서 가만히 생각을 하더라니까? 그렇게 시간이 진득하게 흐르다 결국 집 갈 시간이 돼서 그날은 별 거 없이 돌아갔지.
박산주: 그리고 바로 다음날에 학교에서 한령이가 애들 모으고 얘기를 했지. 뭐 대충 오해해서 미안하고 지금이라도 되겠냐, 이런 투로. 우리도 당연히 반겼고. 한령이가 처음 모은 사람인 데다가 집념 강한 거 알고 있으니 별 말은 안 했지만, 어쨌든 처음부터 한령이 오해만 없으면 만사형통인 거였으니까.
그리고 원래는 그날이 안 가고 쉬는 날이었는데, 다시 계획을 짜려고 바로 갔지. 기본적인 건 알고 있으니까 다른 거는 어느 정도 빠르게 익힐 수 있겠더라고. 그래 봤자 어깨 너머로 익힌 수준이라 어느 수준 이상은 안 됐지만. 그래서 점점 남는 시간이 생기길래 셋이서 한령이랑은 별개로 효율적이거나 빠른 길 같은 걸 익혀 뒀지. 그랬더니 엄청 수월해졌지 뭐냐? 거점 지도에 후보지 표시하는 속도는 거의 두 배로 빨라지고, 지우는 속도도 더 빨라지고. 다치는 일도 줄어서, 한령이도 점점 덜 피곤해 했고. 솔직히 우리도 맞는 데 찾는 건 고등학교 안에 아슬아슬할지 싶었는데, 한령이도 그새 요령이 장난 아니게 늘었더라. 중2 올라가기도 전 겨울방학에 찾았는데, 처음부터 협력했으면 혹시 중1때 끝낼 수도 있었을까?김나진: 뭐 모르지. 혹시 그랬으면 너무 여유 부리다가 더 못했을 수도 있잖아? 그보다도, 너희 뭐 보수 같은 거 약속받았다 했지. 도대체 뭘 받았던 거야?2 너넨 금수저라 보물 그딴 건 좆도 안 필요했을 테고. 그 사람들은 뭔 보수를 줄 생각이길래 얘기를 안 했던 걸까-?
박현: 그래, 그거- 그거 아직도 빡치네.
김나진: 설마 아무 것도 못 받았어요?
박현: 받았어, 그 장비로.
김나진: 아 잠깐, 받았단 게 그거예요? 그럼 아직도 갖고 있어요?
박현: 그러엄. 가끔 일상에 쓰는데 유용하더라.
김나진: 대체 뭔 물건이길래 일상에도 쓸 만하단 거예요? 그리고 그거 준 사람은 대체 정체가 뭐고.
박현: 알면 찾을 거냐?
김나진: 아뇨.
박현: 알아 뭐하게. 다쳐.
김나진: 예, 예. 근데 말만 들으면 딱히 그거 받은 게 불만은 아닌 것 같은데, 뭔 일 있었길래 그래요?
한건영: 하… 그때 그거 시발. 한령이가 공부벌레 된 계기. 멀리 생각해 보면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우리가 그 보물 있는 곳 찾았다 방금 말했지? 근데 거기에 그 위험한 놈들이 있지 뭐냐. 심지어 좀 많이. 우리보다 한발 앞섰던 거지. 근데 그 새끼들은 우리같은 장비는 없었나 봐. 보니까 챙겨갈 방법이 없어서 주변에 어기적거리고만 있었던 것 같고. 근데 이게, 교대근무를 해서 시간적으로도 빈틈이 없고, 경계도 삼엄해서 훔쳐보다가 들킬 뻔하기까지 하고, 숫자까지 많고. 총체적 난국이었다니까?
근데 더 개같았던 게, 그 우리한테 해달라 한 새끼들한테 어쩌냐 했더니 우리가 직접 처리하라네? 지들이 나서면 크게 위험해진다 어쩐다 하면서 우리가 받은 도구는 장식이냐고 존나 쪼아대고- 아니 지들이 더 잘 쓸 거 아니야. 뭔 손익을 따지면 너희가 하는 쪽이 낫다 어쩌고… 시발, 그때도 빡쳤는데 지금 생각하면 더 빡치네? 개새끼들.김나진: 워, 워. 너무 흥분했다. 빡칠 만은 한데. 그래서 넷이 생고생하다 누구 하나 크게 다치고 그랬던 거야?
박산주: 누구 하나 크게 다치긴 했지. 그리고 생고생한 것도 딱 하나고, 한령이. 우리가 그 새끼들 개소리 듣고 어쩔지 생각 중이었거든? 솔직히 말하면 이젠 그만도 할 때가 왔단 생각도 들었지. 그따구로 대우하는데 누군들 하고 싶겠어? 내가 한령이만큼 눈치는 없지만서도 내가 봐도 한령이도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 같더라. 그렇게 며칠간 고민하다 보니까 슬슬 개학날이 다가오더라. 그 새끼들은 우리가 내뺄 거라고 생각하는지 점점 닦달이 심해지고-
이번엔 누구 하나 제대로 의견을 못 냈어. 다들 끝까지 함께해서 끝내자고 암묵적인 동의를 했었는데, 최소 누구 하나는 좀 크게 다칠 게 거의 뻔한 상황이니까. 이제 와서 안 하자 할 수도 없고, 뭔 계획을 짜도 결국은 허점이 생기고. 한령이도 표정에 그림자 잔뜩 드리우다가는 우리한테 사과하더라. 미안하다고, 괜히 끌어들여서 이런 고생이나 하게 했다고. 아무도 대답을 못 했지. 괜찮다고 하기도 뭣하고, 애초에 탓할 생각은 없었고. 그때 한령이 눈빛 바뀐 걸 알아챘어야 했을 텐데.
다음날에 다시 거점에 모이니까 한령이가 없는 거야. 늦잠 잤나? 해도 한령이는 늦잠 잘 이유가 없고, 집에도 연락이 안 닿고. 혹시 혼자 우리한테 일 시킨 놈들이랑 말싸움이라도 하러 갔나 해서 그쪽으로도 가봤는데, 게네도 모르더라. 산에 갔나 해도 뭐 저 넓은 산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있겠냐. 그래서 일단 거점에서 조금 기다려 보기로 했지. 장비에서도 별 이상은 안 떴고. 근데 얼마 안 지나서, 그 한 점심 먹고 조금 지나서였나. 뭔가 장비에서 이상 신호가 뜨기 시작하는 거야. 그래서 한령이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찾으려 하는데, 감이 안 와서 조금 생각하다 다른 둘이랑 얼굴 마주치니까 다들 순간적으로 똑같은 생각 한 것 같더라. '한령이가 혼자서 보물을 확보하러 갔다.'한건영: 빨리 한령이 장비 있나 확인부터 했어야 했는데, 이미 갖고간 지가 한참 지나 있었어. 이쯤 되면 사실상 확실한 상황이라 서둘렀지. 그리곤 가까이 가니까, 갑자기 상처가 반쯤 회복되다 만 한령이가 눈앞에서 불쑥 튀어나왔지 뭐야. 그리고 뒤에서는 그 위험한 놈들이 거의 새까맣게 밀려오고 있었지. 한령이가 그걸 어떻게 챙겼나, 뭔 계획을 짰나는 아직도 모르겠어. 솔직히, 우리 없었으면 분명 죽었을 것도 같고… 그래서 대충 한령이 부축하고 오는 놈들 견제하면서 튀었지. 원래는 그것들이 마을 쪽으로는 잘 안 와서 마을에 가까운 거점 방향으로 움직이려 했는데, 한령이가 거기 말고 우리한테 그거 부탁한 놈들 쪽으로 가자 하더라. 원래부터 생각한 건지 갑자기 생각해낸 건지는 모르겠는데, 결과적으로는 그쪽이 맞긴 했다. 우리가 그쪽으로 가니까 일단 그놈들이 보물부터 알아보고는 좋아라 하더라. 아- 그때 했던 말도 좆같네. "겨우 쓸모를 보였구나." 이런 느낌이었는데. 그 다음에는 우리 뒤에 몰려오는 놈들을 보고는 말을 잃었고. 우리한테 따지려 들더니, 별 수 없다 싶었는지 방어에 집중하더라.
어쨌든 다 물리치긴 했어. 그리고는 우리한테 일 시킨 애들은 이제 은신처를 옮긴다더라. 뭐, 대놓고 까발려진 거나 다름이 없는데 그럴 만하지. 그리고 보수로는 방금 말했던 대로 그 장비로 준다더라. 지들이 싸우면서 얻은 피해랑 은신처 옮기는 데 드는 비용 감안하면 오히려 무보수로 일을 더 시켜도 모자라지만 지들이 마음이 넓으니까 하면서 지랄도 했고. 뭐, 방금 말한 것처럼 그 장비가 썩 나쁜 건 아니라 불만은 없었어.김나진: 근데 저것들이 좆같이 대한 거 말고도 불만이 또 있는 것 같은데.
박산주: 한령이 거는 박살나 있었거든. 아마 혼자 가서 너무 무리해서 쓴 거 때문이었겠지. 그래서 한령이는 어쩔 거냐고 따지니까, 한령이가 잘못한 거라 그러더라. 정 그럼 넷이서 계획을 제대로 짜서 같이 갔었어야 한다면서, 애초에 제대로 할 생각은 있었냐 그러고. 망할 놈들 같으니. 침묵. 그래도 한령이가 그거 못 들은 건 그나마 다행이었지. 정신 차리고 둘러보니까 기절해 있었거든. 솔직히 안 기절하는 게 이상했어. 장비를 부서질 정도로 썼는데도 상처가 그 모양이었으니…
그래서 서둘러 병원으로 갔어. 왜 이렇게 다쳤냐 물을까 둘러댈 거리 잔뜩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냥 야생동물한테 다친 거 취급하더라. 그래도 우리도 적당히 맞장구쳐 줬지. 한령이는 3일 뒤에야 깨어났어. 나준이가 내내 걔 옆에 붙어 있다가 깨어나자마자 눈물 엄청 쏟더라.박현: 그러고는, 깨어나자마자 다른 세놈 멀쩡한 거 보곤 안심하더라. 그래도 잘 끝난 것 같다고. 근데 또 표정이 바뀌더니 그 뒤엔 어떻게 됐냬, 그래서- 어, 말하긴 뭣했는데, 어차피 한령이 눈치에 그런 거 숨기면 다 드러날 테니까 바로 제대로 말해 줬지. 그러더니 울상 짓더니 미안하대. 그런 고생 하게 해놓고, 자기가 거의 억지로 끌어들이다시피 했는데 결국 자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우리가 괜찮다고 하니까, 한령이라면야 당연히 알았겠지. 근데 제일 큰 피해 본 건 한령이잖냐. 병원비야 우리가 나눠서 내줬으니까 그렇다 쳐도, 처음에 부탁을 받은 것도 걔였고, 제일 열심히 한 것도 걔였는데 혼자 아무 보상도 못 받았잖아. 어느 정도 시간 지나니까 자기도 그거 깨닫고 좀 침울해진 것 같더라.
김나진: 그 장비가 어떤 식인 건지는 모르겠는데, 박씨 남매 중 한 사람 걸 이한령한테 그걸 주는 건 안 됐나?
박현: 당연히 우리도 그리 말해 봤지. 거절하더라. 익숙해지기도 힘들 것 같고 애초에 자기 것도 아니었다면서. 근데 그건 핑계고 그냥 그거에 관련된 걸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았어.
그리고 한령이가 그런 꼴을 당했어 가지고 산은 애들끼리는 못 가게 됐지. 어차피 가는 사람이라 해봤자 우리네 말곤 없은 지가 오래였지만. 그래서 그 일도 끝났고 하니 한령이도 우리 말고 다른 애들이랑 실내에서 노는 게 점점 익숙해지나 보더라. 아하, 그리고 어느 새인지 나준이 걔가 한령이한테 고백했는데 받아줬는지 둘이 자주 놀았었고. 그러다가? 고등학교 들어가고 얼마 안 지나서 연락이 뚝 끊기는 거야. 우리는 다 도시 고등학교로 가고 걘 함양고로 가서 주말 말곤 볼 기회도 없는데 그때마다 무슨 생기부 채운다고 어디 현장체험학습을 가든가 아니면 공부, 또 독서를 하든가… 도통 만날 기회가 없으니까 우리 관심도 천천히 줄고, 그러다 나 대학 다닐쯤 때엔 신경쓸 여유도 없어졌어.
그러다 애들 졸업하고 보니까 함양고 졸업식은 조금 뒤더라고. 그래서 이땐 오랜만에 한 번 정도 봐야지 하고 한령이를 찾았지. 다시 보니까 건강해 보이긴 하더라. 그래서 뭐 하고 지내냐, 어디 대학 갔냐 하니까 참, 대학도 잘 갔더라. 그래 놓곤 턱걸이라 아직 너무 모자라다 하면서- 옛날 일 미련은 다 버린 느낌이었어. 괜히 우리가 오래 같이 있었다가는 뭔가 한령이한테 방해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니까. 그래서 그냥 가버렸어. 목소리가 낮아지면서 작아짐. 하, 그때 연락처라도 달라 했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한령이가 실종돼도 바로 알았을 텐데…김나진: 침묵. 여러 가지 알려 주셔서 고마워요. 근데, 김나준 그 사람은 어쩌다 유학 간 거예요?
한건영: 잘은 몰라. 걔는 말없이 헤어진 충격인지 고등학교 때 우리랑 조금 다른 길 가더라? 그랬는데 입시 때 보니까 완전히 조졌다지 뭐냐. 뭐 탱자탱자 놀았나… 근데 또 1년 지나니까 뭔 바람이 들었나 유학 간다면서 개 뜬금없이 연락 끊고, 그렇게 된 거야.
김나진: 그래. 아, 얘기하다 보니까 시간 꽤 지났네? 어쨌든, 꼭 이한령 그 사람 찾을 수 있으면 좋겠네. 언제 만나서 같이 밥이나 먹게, 내가 쏠게들.
기록 끝
헤이
밥 먹음? 1월 26일 오후 8시 22분오후 8시 22분 방금
그럼 내가 왜 불렀는지도 알겠냐 오후 8시 23분
니가 나 부르는 게 하루이틀이냐
오후 8시 25분 뭐 할 얘기 있음?
잘 아네
저번에 하다 만 그 얘기 있자나
내 첫사랑 오후 8시 26분
아 그거
근데 어쩌다 좋아하게 된 거임?
오후 8시 27분 이쁘냐
ㄴㄴ 내가 말하긴 뭣하지만 평범함
근데 계속 같은 마을에서 살면서 옆에서 보다 보니까 얼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매력이 있더라
털털하고 솔직하고 강단 있고
여튼 그러니까 맘에 들었음 오후 8시 28분
존나 소설처럼 사랑하네
오후 8시 29분 아직까지 기억할 정도로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케 사귄 겨
아
아킬레스건임 오후 8시 30분니가 나 공부할 상 아니라고 한 거 기억남?
나 고등학교 때까지는 진짜 그러긴 했음
중학교 때 걔랑 사귈 때도 별 생각 없이 놀고만 싶어했거든
좀 기만질이긴 한데 금수저 아니었으면 도시 고등학교나 학원이고 유학이고 뭐고 없었을 걸 오후 8시 35분근데 공부 생각도 없는 양아치가 환경이 된다고 저절로 바뀌었겠냐
변명이긴 한데
걔가 말도 없이 연락 끊은 충격으로 괜히 엄마한테 반항심만 더 가진 것 같다
그리고 보상심리 같은 거로 마구잡이로 여자 만나고 놀기만 하고 오후 8시 37분그렇게 3년 보냈으니 입시야 어떻게 됐겠냐
선생들도 다 나 포기해서 당연히 추천서 그런 건 기대도 못함
근데 그런데도 정신 못 차리고 놀 생각만 하고 있었지
그러다 졸업하고 오후 8시 41분근데 졸업하고 보니까 함양고는 졸업식이 내 학교보다 좀 늦는다더라
그거 들으니까 갑자기 걔가 생각남
그래서 뭐 하고 지냈나 보러 가봤어 오후 8시 43분그런데 멀리서 다시 보니까 엄
그제야 내가 아직도 미련 있단 거 알게 됨
걔는 아직 나 눈치 못챈 것 같아서 다가가려 했는데 먼저 다른 세 사람이 걔한테 가더라
초등학교 때 같이 놀던 사람들이었음 나랑 걔까지 다섯이서
그 셋은 중학교까진 잘 놀았는데 고등학교 가면서 멀어짐
여자 둘에 남자 하나인데 남자애는 나랑 같은 고등학교 가긴 함
근데 걔랑 다른 둘은 장래 준비하면서도 여유 내서 놀고 그랬는데 나는 맨날 놀려고만 했으니까
노는 그룹이 달라져버렸지 오후 8시 55분막상 그렇게 넷이 모이니까 괜히 내가 끼기엔 뭣한 거야
보니까 그 셋도 걔랑 졸업식 전까지 연락한 적 없는 것 같던데
그럼 걔는 내가 이딴 꼴 된 것도 모를 거란 거잖아
왠지 걔 앞에서 나 혼자만 그런 꼴인 거 보여주기 싫어서 몰래 훔쳐들음 오후 8시 59분들어보니까 우리 도시 고등학교 가면서 장래 준비하게 됐다는 말 듣고 큰 충격을 받았댔음
자기는 중학교 내내 할 일만 하면서 놀 생각만 했다고
고등학교 첫 모의고사에서 점수 못 나온 게 결정타였다면서
그래서 자기는 기반도 없고 학원도 못 가니까 혼자서 공부하고 조사하고 다녔댄다 오후 9시 2분너무 긴데
오후 9시 3분 그래서 니가 걔 안 만나고 유학 온 이유만 세줄요약좀
인내심 없는 새끼
쨌든 요약해 봄
난 걔처럼 열심히 안 하고 생각 없이 게으르게 산 게 쪽팔렸고
걔한테 안 부끄러울 사람 되고 다시 만나려고 결심함
그래서 연락 다 끊고 지인도 뭣도 없는 여기서 내 장래에 집중하고 있음 오후 9시 7분
ㅇㅋ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연락 다 끊었음 걔 어디서 뭐 하는 줄 알고
오후 9시 13분 다시 만난다는 거임?
그거
가기 전에 엄마한테 부탁해서 걔한테 뭐 하나만 줬어
그게 있으면 나를 기억해 주지 않을까 해서 오후 9시 16분
걔가 버리면 어쩌게
애초에 사람이 바뀌는 법인데
당장 니가 그 바뀐 사람이고
걔가 그새 공부 말고 다른 것도 알아서 남자친구 될 사람 찾지 않는다는 보장 없잖아
오후 9시 21분 진짜로 그렇게 됐으면 그런 건 부담스러워서 버리든 했겠지
안 버렸음
아마 확실할 거임 오후 9시 24분
시발 너 그걸 어떻게 암
오후 9시 26분 설마 위치추적기 같은 거라도 달았냐?
아니 무슨 날 범죄자로 보냐
뭐 대충 감이 오는 거지 오후 9시 27분
뭐 그 물건이랑 칼라로 이어져있기라도 한가
오후 9시 29분 너 프로토스였음?
지랄노
어쨌든 걔도 나한테 뭔가 마음이 남긴 한 거 아닐까 오후 9시 30분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별로 신경 안 쓰이게 생긴 거라 그냥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님 그냥 어릴 때 친구 거 정도로만 갖고 있는 걸 수도 있고
오후 9시 36분 솔직히 너도 그거 갖고 있는 정도만으로는 뭔지 모른다는 거 알고 있지 않음?
그래 시발
솔직히 인정하긴 싫은데 그렇지
그래도 걔가 날 최소한 기억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좋아
걔 앞에서 안 부끄러울 사람이 되면 혹시 다시 이어질지도 모르잖아 오후 9시 40분
그러냐
얼마나 좋아하는 건지 참
오후 9시 46분 그래 친구로서 응원할 테니까 잘 돼라
ㅇㅇ ㄳ
아 맞다 너 설연휴에 집 간댔지
그때 혹시 내 고향집에 가줄 수 있음? 오후 9시 52분
어잉 갑자기?
시간 될라나 모르겄다
오후 9시 55분 뭐라도 있음?
내 집이 [편집됨]인데 거기 내 방에 중학교 때 다섯이서 찍은 사진 있음
엄마가 치우진 않았겠지
어쨌든 괜히 방해만 될 것 같아서 놓고 왔는데
그거라도 없음 안 될 것 같아서
미안한데 시간 내줄 수 있냐? 오후 9시 57분
글쎄 되려나
뭐 니가 나 적응 도와준 것도 있고
오후 10시 01분 듣다 보니까 좀 불쌍한 것 같기도 하고
고맙다
진짜로 오후 10시 03분
오후 10시 05분 그럼 나 갖고 왔을 때 뭣좀 쏴 봐
기록 끝
아, 뭐야. 안녕하세요.
뭐라 해야 하나, 그 기운이 없어 보이시네.
제가 여기 얼마나 있었죠?
어디 보자… 열 달 좀 됐나 그러네요.
기지에 있을 때도 쭉 교도소에 갇힌 기분이었어요. 이젠 아예 독방에 갇혀서 날짜 감각도 잃은 채로 살고 있고 말이죠. 아예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이젠 아무 것도 잡히지가 않아요. 책은 의미 없는 글자덩어리고, 영상 속 평범한 현실조차도 저한테는 안 닿는 꿈속 같은 곳이고. 뭔 생각을 해도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사람도 없고. 말은 정기 면담이지만, 이젠 뭐 시간 모자라다면서 대충 저 멀쩡히 있나 확인하는 수준이잖아요. 근데 이렇게 갑자기 얘기를 하시려는 거 보니까, 아직 뭐 필요한 게 남으신 거예요? 이제 궁금하실 게 더 있나 싶은데.
네. 김나준 씨 얘길 좀 하려 하는데요. 조사를 해보니까 이전에 사귀셨다던데?
음, 어. 맞긴 한데, 그게 뭔 상관이 있을진 잘 모르겠는데요. 뭐, 설마 걔가 이런 구슬 준 게 전에 사귄 그거 때문이다 이 말이에요?
그럼 딱히 뭐 다른 이유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아뇨. 그치만 걔가 마음이 남았으면 이런 쫄보같은 방법은 안 쓸 텐데. 뭐, 사람이 4년이면 바뀔 만이야 하지만은… 그런대도 왜?
글쎄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뭐 그거로 자기를 기억해 달라는 뜻 같던데요?
거 참 의미 깊어라. 내가 쓸 줄도 모르는 구슬 갖고 있다고 기억해 준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왔대요? 애초에 걔한테 소중한 물건인 걸 아니까 안 버리긴 했지만, 가차 없이 버린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나 봐요? 한숨. 몰라요. 걔가 절 좋아하든 어쩌든 제 알 바인가.
그래도 꽤나 사이 좋으셨던 것 같은데, 안 그리우세요?
안 그립다고 하면 구란데, 뭐 그리움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니잖아요. 뭐 근데, 다시 사귀고 싶다거나 그런 마음은 없어요. 얘는 이런 짓 하는 거 보면 아닌 거 같아서 좀 미안하긴 한데.
정확히 어떻게 지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별 거 없는데. 뭐 다른 애들 노는 것처럼 놀았죠. 철도 안 든 중학생 애들 사귄다고 노는 게 어디 특별하겠어요? 게다가 스킨십도 손 잡고 다니는 게 고작이었고. 아 그래, 그래요 맞다. 저흰 좀 비범한 일을 겪긴 했었죠. 그거 감안해도 특별할 지는 모르겠는데… 대충 걔랑 있었던 일 얘기나 해보죠.
걔가 고백한 건 제가 퇴원하는 날이었어요. 뭐 다친 건 진작 치유했고, 그렇게 오래 있을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에요. 병원비도 애들이 모아서 내줬다니까요. 어쨌든 나준이 걔가 갑자기 뭐라 말했는지 아세요? "전부터 쭉 좋아해 왔어. 근데 아직도 못 알아주는 것 같아서, 지금 아니면 영영 기회를 놓쳐버릴 것 같아. 어, 그러니까… 내 고백 받아줄 수 있어?" 에휴, 제가 눈치 빠르단 소리는 많이 들었는데, 그런 쪽에는 둔감했나 봐요. 확실하게 호의 가졌단 건 잘 알고 있었는데, 그게- 이거까지였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거든요. 뭐, 어쨌든 저도 딱히 싫을 건 없고 하니까 받아줬죠. 별로 진지하게 생각한 것도 아니고…진지하게 생각하신 게 아니셨다면, 뭐 사춘기 때 갑자기 이성에 관심 가지는 그런 정도로 생각하셨다 그런 건가요?
네 뭐. 근처에서도 슬슬 잠깐 사귀고 헤어지는 거 반복하는 애들 늘기도 했고, 나준이도 그런 느낌인 거라 생각했거든요. 부끄러워하는 모습이나 전부터 좋아했단 얘기 다 그냥 처음이라 그런가 보다 했죠. 근데 아직도 마음이 남았다니, 그럼 걔 고등학교 때 다른 여자 한 번도 안 만났대요?
아뇨. 듣기로는 꽤나 문란하게 노셨다긴 하던데…
그러니까 더 이상하네요. 뭐 존나게 만나고 보니까 나만한 사람 없다는 뜻인가. 음, 이상한데? 그렇다기엔 사귈 때 제가 특별히 해준 것도 없다 싶은데요.
뭐 노는 것도 평범하게 읍내 갔다가 가끔 도시 가거나 집에서 게임 하는 정도였고, 어느 한 쪽이 뭐 그렇게 챙겨 줬던 적도 없고… 굳이 특별한 게 있었다 치면, 음, 걔 구슬로 추억 훑던가 하던 거?어떤 식으로요?
뭐, 뭐… 어른 몰래 지리산 가서 놀았던 데 다시 가는 데 쓰거나, 아니면 뭐 구슬에 화상 같은 거 담아서 이불 둘이 뒤집어쓰고 보거나- 솔직히 이것도 조금 편한 카메라 수준이잖아요? 생각하는 소리. 아, 맞다. 걔랑 저 둘이서 서로한테 첫키스 했었네요. 사귀다 보니까 좀 신나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도 꽤 진도 나가셨네. 그런 것도 그냥 어린 시절에 불태운 것 정도로만 남으셨다 이 말이에요?
뭐, 그렇기도 하고. 애초에 첫키스 정도로 진도 뺀 날이 3학년 2학기 기말고사 기간쯤- 아시죠? 얼마 뒤에 도시 고등학교 나갈 준비한다고 몇 달 동안 안 만났던 거. 처음엔 못 봐서 슬프단 느낌은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네요. 그 이후 몇 년 동안 머리띠 졸라 매고 공부에 온 신경을 집중했으니까.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요. 마음이 남아 있으면 왜 말을 않고 연락처도 안 남기고 그냥 유학을 떠나 버린대요? 오히려 보기 싫은 사람이 그렇게 할 것 같은데.
보기 싫은 게 아니라 보이기 싫은 걸 수도 있죠.
어- 뭐가 그리 쪽팔린다고. 애초에 제가 마음이 남아 있었으면 지가 뭔 꼴이든 다시 받아줬을 텐데. 참… 매번 이런다니까요. 걔가 저 좋아한다는 거 안 뒤에야 깨달은 거긴 한데, 애가 저한테 좀 부끄러움을 많이 타더라고요. 말할 때도 그렇고, 손도 안 잡으려 하고. 혹시 뭐 자기가 실수하진 않을까, 그거로 싫어하진 않을까. 이 구슬도 그런 거겠죠? '이미 내가 이딴 꼴이란 걸 알지도 몰라, 몰랐다고 해도 만나면 바로 알아버릴지도 몰라. 그러니까 내가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 돼서 돌아오기 전에는 추억만 남겨주자.' 같은 식으로요.
작게 숨 삼키는 소리.
하지만 걔가 저한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 된다 해도 다시 만날 일은 없잖아요. 제 주변 날씨는 비쩍 마를 것처럼 뜨거운 햇살이 비치기도 하고, 우중충하다 못해 눈앞을 가리는 안개가 끼기도 하고, 미친 듯이 눈이 내리기도 하고, 다 쓸어버릴 듯한 바람이 불기도 해요. 가끔은 쾌적하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지만 이거 하나는 똑같아요. 절 여기에 묶어둔다는 거.
엄, 대학생활 하다가 중학생 시절이 생각나도 '난 해야 할 일이 있다!' 이러면서 버텼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저 보러 왔던 세 명 표정이 어른거려서 마음 달래려고 정말 잠깐만 왔던 건데… 침묵. 막상 여기 오래 있어 보니까, 조금 생각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뭐가요?
그대로 그냥 학교에 돌아간다고 제대로 해결됐을까 싶은 거 있죠. 아예 새로운 많은 사람들을 보고 색다른 정보도 접하다 보니까 뭐랄까, 그냥 생각하는 게 아예 바뀌어버린 느낌이에요. 진짜로 해야 할 일이 뭔지, 아직도 날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같은 생각도 되고. 여기서 이렇게- 묶여 있으니 그냥, 좆같기만 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뭐 어쨌든. 근데 있죠, 이렇게 여러 가지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까- 이 날씨가 꼭 저를 잊지 못하는 친구들 생각이 구슬에 담겨서 표현된다는 생각도 드네요. 뭐, 그렇게 생각하면 또 왜 하필 같이 그런 걸 겪었던 사람들이 나를 그리 생각할까. 그리고 왜 그것 때문에 나한테 이런 이상한 일이 생길까. 그리고 또 왜 시간이 갈수록 줄진 않고 커져 갈까- 이렇거든요.
저한테 말이에요, 몇 년 동안 못 본 누군가가 잊지 않고 계속 생각할 만한 그런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침묵. 그런데, 그게 저 스스로도 그렇게 자신을 못 하겠는데, 그렇게나 그리워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참…
코를 훌쩍임. 조금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에요.기록 끝
야 너 한국 다 가서 갑자기 말해서 미안하긴 한데
사진 가져오지 말아주라 1월 30일 오후 7시 13분잠만 갑자기?
너 그리워 디질 것 같다며
오후 7시 28분 갑자기 마음 식음?
아니
오히려 아직도 타는 것 같다
근데 말이야
결국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도 걔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뿐이자나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걔는 어찌 됐건 걔 스스로를 위해서 그런 선택을 했는데 오후 7시 35분뭐 어느 쪽이든 유학 온 시점에서 걔한테 크게 영향 받은 선택을 한 거지만
그래 나도 내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냐
막말로 지금 이런 상태로 걔랑 다시 이어진다 치면 오히려 난 뭔갈 할 동력 잃는 거잖음
뭐 걔를 잊겠다 그건 아닌데
옛날에 휘둘리지 않고 내 앞길에 대한 비전도 제시할 때가 온 것 같다 오후 7시 40분그러냐
정말 괜찮겠음?
오후 7시 43분 보통 그리워하는 게 아닌 것 같던데
그니까 더더욱 참고 해야지
걔는 고등학교 3년에다…
지금도 혼자 열심히 하나
그럼 이제 7년이 다 된 건데
난 이제 3년이네 걔 고등학교때 만큼이잖음 오후 7시 47분거기다가 뭐냐
내가 3년 걔처럼 온전히 미래 준비에만 썼겠냐
갑자기 이러니 적응하는 데만 엄청 걸렸지
처음엔 다른 놈들이랑 저녁마다 술 마시고 했으니 원 오후 7시 54분적응 기준이 나랑 좀 다르네
그럼 얼마나 더 공부하고 만날 생각인데
솔직히 너 진짜로 버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는데
오후 7시 58분 그리고 대체 돌아온 다음에 그 사람은 어케 찾을 생각인 거고
일단 학위 따고 귀국해서
일자리 구하면서 걔 찾을 거임
방법이야 뭐든 있지 오후 8시 00분
근데 진짜 그 사람이랑 한 마디라도 나누고 가지 그랬냐
다른 사람 만나고도 훨씬 남는 시간인데
오후 8시 02분 그렇게 잊지도 못할 거면서 왜 너 잊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보지도 않고 오냐 참
그러게
나도 후회되는데
진짜 어쩔 수 없다 싶다 오후 8시 04분허접한 내 모습으론 걔 행복하게 못 해줄 거란 생각에
엄마한테 부탁해서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정신없이 유학 왔는데
괜히 돌아갈 마음만 생겨서 그거 잊으려고 점점 공부에 몰두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와버려서 도중에 돌아가기도 애매하게 되고 오후 8시 08분그래 맞아 이 정도면 걔도 슬슬 공부 말고도 다른 거 할지도 모르지
나보다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까지 생각할 수도 있고
그래도 괜찮아
애초에 내가 이렇게 온 것도 걔한테 행복한 삶 주고 싶어서였으니까
걔가 나 잊는다 해도 행복하면 그걸로 돼
그니까 나도 혹시 모르니까
걔 잊을 준비 해야지
괜히 사진만 보면서 매일밤 질질 짜지 말고 오후 8시 14분야 메시지에서 니 우는 소리 들린다
그래 니 맘 알겠다
오후 8시 20분 응원할 테니까 어느 쪽으로든 잘 돼라 꼭
2022/01/31, SCP-662-KO-1이 파괴되었으며, 동시에 SCP-662-KO의 변칙적 현상이 소멸했다. SCP-662-KO는 잠정적으로 무효화된 것으로 간주되며, 격리 해제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에 대해 SCP-662-KO와 면담을 가졌다.
기록 시작
뭐죠? 진짜 뭘까요?
그러게요. 저도 이렇게 갑작스러울 줄은 몰랐는데.
뭐야, 그럼 곧 이거 없앨 수 있을 거란 거 아시면서 그냥 냅두신 거예요? 아주 답답해 죽어하던 사람을?
아뇨, 아뇨. 연구가 거의 다 돼 가긴 했는데 끝난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던 건 아니었거든요. 어, 그러니까, 오히려 그 구체가 연구랑 상관 없이 부서지더니 이렇게 된 거거든요.
엥?
말 그대로요. 말씀드리진 않았는데, 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연구를 하던 중이었거든요. 힘 자체는 제법 익숙한 거였는데, 작동 기작이 영 까다로운 게 아니라 잘못 다루면 지리산 힘을 엄청나게 끌어올 수가 있었어요. 이미 제법 커진 상태에서 지리산 힘까지 끌어당겼다간 없던 변칙성도 새로 생겨날지 모르는 일이라 그것만 어떻게 하고 있었는데… 가볍게 혀를 참. 이젠 연구는 더 이상 못 하게 됐네요.
뭐 어찌 됐든, 그 구슬도 연구할 수 없게 되고, 이 이상한 날씨도 사라졌고 하면 전 나갈 수 있는 건가요?
일단은 그렇긴 한데- 조금 필요한 게 있어서요. 밖에 나가시면 재단이랑은 관련 없는 민간인이 되시는 거잖아요? 근데 재단에 대해 아시고 계시면… 저희가 여간 곤란한 게 아니라서 말이죠.
아니 그러면, 제 기억을 지운다고요? 이 오랫동안 경험한 것들을 다?
보통은 그래야 했는데, 이번엔 사례가 꽤 특별해서요. 아시다시피, 당신은 이미 재단에 오기 전부터 변칙이 있단 걸 알고 계셨잖아요? 하지만 네 사람 빼고는 그걸 아무한테도 말씀하지 않으셨고, 알아보니까 그 네 분도 남한테 말하지 않고 사시는 것 같더라고요. 뭐 보통은 말해 봤자 미친 사람 취급할 테니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거기다 변칙 관련해서 안 좋은 일을 자주 겪으셔서 별로 엮이고 싶어하지도 않으시고.
그렇긴 한데- 그러면 기억을 안 지우고 내보내줄 수도 있겠단 거예요?
바로 그거죠. 전례가 없다시피 하기도 하고 아직 기획만 한 정도거든요. 그래도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재단에 협력해 주신다 하면, 이후 처분 회의에서 좀 더 바람직한 결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이쪽이면 좀 더 기다려야 하시긴 할 텐데, 어차피 원래 변칙성 잠깐 없어진 거로 바로 격리 해제 때리진 않고 무효 확인 기간은 거치니까요. 게다가 2년 반동안 실종되셨던 거 역정보도 처리해야 하고. 아 맞다, 기억 소거 안 하고 나가시면 이쪽에서 연기를 좀 잘 하셔야 할 것 같은데.
아, 그러네요. 저 그간 걱정했을 사람이 있긴 한- 아, 그렇지. 애들은 절 기억하고 있을까요? 제가 사라진 걸 알고 걱정했을까요? 그랬다면 진짜 구슬에 애들이 절 걱정하는 마음이 담겼던 걸까요?
그동안 그분들하고 연락을 하긴 했는데, 저도 확실히 그런 건지는 장담을 못 하겠네요. 근데 부탁드릴 게 좀 있어요.
그분들께는 저희가 당신 가두고 있었단 건 절대 안 들키게 해주세요. 친구분들, 여간 좋은 사람이 아니시더라고요.고개를 떨굼. 7년 동안, 고작 한 번 만나서 잠깐 얘기한 게 다였는데, 아직도…
게네 연락처는 알고 계신 거죠?김나진 연구원 아시죠? 처음으로 대화 나누시고 또 몇 번 보셨던. 지금 많이 친해졌어요.
네. 망설이는 듯 작게 소리를 냄.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제가 괜히 저 가둔다고 뭐라 하고 화풀이하고 그랬는데, 맞아요. 여기 아니었으면 더 험한 꼴 봤겠죠. 괜한 투정도 참고 쭉 말상대 돼 주셔서 고마워요. 격리이사관보님.아뇨, 뭘. 어차피 해야 할 거였고. 뭐, 어떻게 나가시게 되든, 쭉 좋은 인연이었으면 좋겠네요. 그럼, 당분간 맘 편히 쉬시고 계세요. 나가서 연기하실 것도 가끔 연습하시고.
하하, 네. 원랜 나가면 다 못한 공부를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만 있었는데, 절 그렇게 걱정해준 애들- 고마워서라도 걔들부터 봐야겠죠. 나준이도 어떻게, 찾으신 거예요?
작정하고 잠적한 게 아니고서야, 재단 정도 능력으로 못 찾을 거야 없죠.
그래서 걔도, 저 없어졌다 하니까 그리 걱정하던가요?
사실- 아예 모르셔요. 저번에 김나준 씨가 뭔 생각으로 유학 가셨는지 가볍게 추측하신 거 있잖아요, 사실 그게 진짜예요.
에이 참, 말도 안 돼요.
더 말도 안 되는 것도 더 많이 겪으셨잖아요.
정말, 진짜로 그런 미련한 짓을 할 줄은 몰랐죠. 4년 동안이나 못 본 사람한테 부끄러움은 왜 그리 타고, 거기서 또 몇 년을 못 볼 텐데 내가 지 기억할지 어떨지도 모르면서 이런… 참, 원래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이런 바보가 되나요?
그러게요. 저도 옛날엔 이런 바보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리 그렇다곤 해도- 저는 이제 마음이랄 건 안 남았는데 말이에요. 그래도, 걔 유학 끝낼 때까진 기다려 줘야겠죠? 같이 다니다 보면 또 달라질지도 모르니까요.
그럴지도요. 뭐 다시 마음을 불태우시든 어쩌든- 좋은 인연 계속 간직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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