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시작»
(달칵.)
(부스럭거리는 소리.)
(정적.)
"이 녹음을 듣고 있다면 당신은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아직 잠들지 않은 이거나, 깨어난 이거나. 하지만 전자일 가능성도, 후자일 가능성도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네요."
"만약 당신이 아직 잠들지 않은 이라면, 이 녹음이 적어도 잔잔한 마지막 자장가는 되어 줄 것입니다. 깨어난 이라면, 축하합니다. 아직 인류의 운이 조금은 남아있을지도요. 여러분이 살아갈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짧은 기록이 과거에 있었던 일을 되짚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정적.)
"저는 제21K기지 소속 연구원, 김세린 박사입니다."
"이제는 잘 아실 SCP-985-KO의 연구를 담당했었고, 지금은 이끌었던 연구팀의 마지막 남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녹음을 켠 이유는, SCP-985-KO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이제 와서 이미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의미가 없겠지만, 인간은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존재니까요. 그리고, 혹시나 이 이야기 속에서 무언가를 찾을지도 모르니까요."
(한숨, 정적.)
"SCP-985-KO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2030년 즈음이었습니다. 새로운 유형의 수면 장애가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전 세계에서 돌고 있었죠. 모든 새로운 질병 혹은 현상은 그 원인이 변칙현상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절차상 조사를 진행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보고를 받고는 무언가 꺼림칙한 기분을 느꼈지만, 별일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사람들이 점점 더 오래 잠든다. 깨어나지 않는다."
"최초 사례는 대한민국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발생했고, 환자는 생명 징후를 보였지만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몇 주 전 기면증 의심 증상으로 병원을 방문했던 사람이었죠."
"사실은 그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요. 한 마을에서 사람들이 이유 모를 원인으로 하나 둘 씩 잠들어 며칠 동안이나 깨어나지 않았었는데, 인근 광산에서 나온 일산화탄소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었죠."
"그런데 조금 파보니까,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그 환자의 진료를 담당했던 의사와 간호사들도 동일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SCP-985-KO가 '졸음병'으로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 갑니다. 아직까지도 무엇을 통해서, 무엇이 옮겨가는 것인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요."
"어쨌든, 재단이 개입하기 시작할 때 즈음 되어서는, 이미 늦었던 것 같습니다."
"집에서, 직장에서,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쓰러졌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오래 잠들었습니다. 조금씩 잠드는 시간이 길어지다가… 마침내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한국, 일본,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원인을 모르니, 막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는 빠르게 이슈가 되었고, 여러 추측과 치료약을 판다고 주장하는 사기꾼들이 나타났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전염병이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아니다 모종의 신이 내린 저주다, 이 약을 먹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
"구원… 그것이 사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재단은 위기를 느꼈습니다. 연구원들도 SCP-985-KO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기에, 연구와 조치는 발 빠르게 진행되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뇌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작은 변칙성의 실마리라도 발견하기 위해 환자의 뇌를, 신체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통해 무엇인지 모를 그 무언가를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죠. 아무것도."
(침묵.)
"정말… 저주였던 것일까요."
(정적)
"팀 연구원들도 SCP-985-KO에 - 이 표현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 '감염'된 상태였기에, 연구는 날이 갈수록 진행이 더뎌졌습니다. 우리는 작은 팔찌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날 수면 시간과 패턴을 계산해서 숫자로 보여주는 장치였죠. 표시된 숫자가 24에 가까워질 수록 남은 날이 얼마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본 모든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잠들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저는 비교적 나중에 영향을 받았기에, 그들이 무기력하게 스러져가는 과정을 하나 하나 지켜봐야했죠."
"제 딸을 포함해서요."
"딸의 팔찌가 24를 가리키던 날, 바쁜 와중에 휴가를 내고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어요. 맞벌이를 했었으니까, 평소에 미안한 마음도 있고, 모처럼 하고 싶었던 걸 다 해줬는데…"
(정적.)
"딸아이가 졸기 시작했습니다. SCP-985-KO는 버티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어떤 사람은 쓰러진다고 묘사할 정도죠."
"이불을 덮어 주고, 매일 밤 해준 것처럼 자장가를 불러 주었습니다. 손목의 팔찌를 풀러 옆에 내려놓고, 잘 자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마지막이 될 것이었지만, 기색을 내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천천히 방을 나가려는데 눈을 감은 아이가 저를 다시 불러세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내일 봐요."
"그리고 잠들었습니다."
(정적)
"일주일 동안 밤 늦게까지 일에 몰두했습니다. 사람이 적어져 조용해진 기지의 새벽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 팔찌는 19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잠을 자려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책상에는 앉아 있었지만,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죠."
"그렇게 한참이 지났을 즈음."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박세희 박사가 들어왔습니다. 함께 SCP-985-KO의 연구를 담당하고 있던 연구원이었습니다. 늘 에너지가 넘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겉보기에도 피곤에 한껏 찌든 모습이었습니다. 비틀거리며 걸어와 쓰러지듯 매달리더니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자기는 노력했다고. 너무 힘들었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그녀 손목의 팔찌는 23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가늘게 떨리는 몸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자신을 혹사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저는 그녀를 안아주며, 괜찮으니까, 많이 노력했으니까, 그동안 힘들었으니까, 이제는 쉬어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다 괜찮아져 있을 것이라고요."
"박세희 박사는 그 말을 듣고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습니다. 다시 그녀를 불렀을 때는 이미 저에게 안겨 잠든 뒤였습니다."
"재단이라고 잠든 인원을 따로 정리하는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잠든 이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 정도입니다. 언젠가는 깨어나리라 믿으면서요."
"박세희 박사를 그녀의 방으로 옮기고는, 이불을 덮어 주었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그들과 함께 눈을 감겠지, 생각하면서."
(침묵.)
"밖에 노을이 예쁘게 지는군요."
"어렸을 때부터 노을 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아마도 책 어린왕자를 읽고 나서 부터였던 것 같아요. 어린왕자가 작은 별에서 의자를 당겨 몇 번이고 노을을 보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걸 따라해 보겠다고 작은 의자를 끌고 동네를 무작정 걸어다니기도 했었죠. 결국 길을 잃으면서 끝났지만요."
"노을은 하루의 끝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내일 또 오는 태양이니까요."
"아직까지 SCP-985-KO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오히려 이것에 희망을 걸어 보려고 합니다."
"헛된 희망일지라도, 꿈꾸는 것은 남은 이들의 자유겠죠."
"제가 바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침 햇살에 눈부셔 깨어나는 그 날입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영원한 이별이 아닐 것이라 믿기에."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이라고 믿기에."
"그런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가나 봅니다."
"이야기를 오래 했더니 피곤하군요. 아무래도 조금은 무리였나 봅니다. "
"꿈에서, 딸아이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좋은 꿈 꾸세요."
(달칵)
«기록 종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