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SCP의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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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문이 열렸다.
들어선 사람은 하얀 실험복을 입고 있는 남자였다. 어지러운 듯 잠시 손을 이마에 갖다 댄 후, 남자는 침실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어느 노인이 침대에 누워있고, 아직 노인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리는 듯 기계가 계속해서 심장박동에 맞추어 삐삐거리고 있었다.
남자는 조용히 문을 닫고, 그간의 오욕의 시간을 떠올렸다. 여기 이 무력하게 누워있는 노인이 그에게 준 오욕을. 하기야, 이 노인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상을 휩쓸며 천재라 불렸고, 노벨상까지 받은 그 노인에게 동물들에게 약물이나 주입하며 살아가는 아들은 보잘것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쓰러져있는 노인을, 남자는 마음껏 비웃을 수 있다. 그간의 수모를 갚아줄 수 있는 것이다. 남자는 들고 온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로 다가가, 몸을 구부리고, 속삭였다.
“아버지.”
“제 말 들리십니까? 아니, 들리든 말든 말하지요. 그동안 당신이 나에게 했던 말들, 했던 짓들, 비웃었던 것…….”
말할수록, 남자의 말은 점점 더 격해져갔다.
“그래, 그렇게 대단하신 걸 연구하시던 분이, 지금 이게 무슨 꼴입니까? 똥오줌도 제대로 못 가리고, 심박수를 재면서 살아있는 걸 확인해야하는 처지의 당신이 말입니다. 당신이 예전에 나에게 한번 말한 적이 있었죠. 뭐라 했더라…….”
남자는 잠시 창가 쪽으로 다가가 바깥의 풍경을 내다보다가, 커튼을 쳤다. 커튼을 뚫고 들어온 햇빛이 곳곳에 그림자를 남겼다.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아, 기억나는군요. 내가 우주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냐 물으셨죠. 내가 버려진 동물들을 안락사 시키며 죽음을 수도 없이 보았겠지만, 죽음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 우주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내게 물으면서, 나를 실컷 비웃고, 뒤에서 가련해 했겠죠. 쥐뿔도 모른다고. 하나뿐인 아들이 수의학과를 나와서 병원도 아니고 유기된 동물들을 안락사 시키는 일을 하는 게, 당신에게는 부끄러웠겠죠. 안 그렇습니까? 아-버-지.”
비웃듯이 마지막 문장을 끝내며, 남자는 돌아섰다.
그 때, 병실의 문이 갑자기 열렸다. 간호사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리 가족분이시라도, 이렇게 시끄러우시면 곤란해요. 환자의 안정이 최우선이어야죠.”
남자는 성의 없이 고개를 까딱해 보이고, 턱으로 문을 가리켰다. 간호사는 어이없다는 듯 남자를 바라보다 문을 닫고나갔다.
남자는 닫힌 문을 노려보다가, 다시 노인에게 관심을 돌렸다.
“그렇지만 당신 꼴을 보시죠. 당신의 연구가 당신을 구원해 주고 있습니까? 당신의 학문은? 책은? 하하하…… 이제 내가 당신을 구원해야할 때가 온 것 같군요. 내가 배운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가르쳐드리죠.”
남자는 가지고 온 가방에서 주사기와 앰플 병을 꺼냈다. 주사기에 앰플에 든 액체를 넣으며 남자가 말했다.
“이건 말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아끼시는 우주가 내게 준 선물입니다. 한 몇 달쯤 전인가, 아주 사나운 개가 한 놈 들어온 적이 있었죠. 막 발광을 하던 놈이었는데, 그 놈이 약물을 주입받고 죽으니까 아주 신기한 일이 벌어지더군요. 빌빌대며 쓰러진 걸 확인하고 소각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일어나질 뭡니까? 그 움직이는 것도 약물을 애초에 받지도 않은 것처럼 엄청났습니다. 그 덕에 나도 물릴 뻔했고, 경찰이 출동해야 했지만……. 뭐 어쨌든 중요한 건, 그 놈이 지 혈관 속에 가지고 있던 게 그냥 피는 아니었다는 거란 말입니다.”
주사기가 꽉 차자, 남자는 노인에게 서서히 주사기를 가져갔다. 주사기에 든 액체를 다 집어넣자, 남자는 이번에는 가방에서 라텍스 장갑을 꺼내 착용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 피에서 나온 걸 가지고 실험을 좀 해 보았죠. 당신의 실험은 칠판에 수식을 쓰는 거겠지만, 내 실험은 훨씬 더 다이나믹하고 재미있습니다. 뭐, 이것도 실험의 연장선상이겠군요. 개 세 마리에 오랑우탄 한 마리에 이어 이제 인간이라. 윤리강령 뭐시기에 의해서 실험을 설명해주자면, 이걸 피에 집어넣은 대상이 죽으면, 바로 쌩쌩해져서 뛰어다녔다는 겁니다! 아버지마냥 비실거리는 동물들이 그걸 확인해주었죠. 너무 쌩쌩해져서, 신나게 날뛰더군요! 이제 당신은 살아나서, 당신 삶을 내게 빚지고 있단 걸 느껴야할 겁니다. 이번에는 내가, 당신이 죽기 전까지 잊지 못하게 해드리죠. 당신이 누구 때문에 다시 그 잘난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는지. 당신에게는 내가 당신의 삶을 구해주었다는 게 끔찍하겠죠! 그래, 정말 우아한 앙갚음 아닙니까! 죽이는 게 아니라, 살림으로써 당신을 파괴할 수 있으니!”
남자는 장갑을 낀 손으로 노인의 목을 졸랐다. 이제 노인은 잠깐의 죽음을 거치고 깨어나, 영원한 낙인을 지고 살아가리라. 남자는 그렇게 기대하며 손에 더 힘을 주었다.
그 때, 문이 벌컥 열렸다. 남자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아까의 신경질적인 간호원이 아니라 중무장한 사람들과 맞닥뜨렸다.
“경찰인가? 젠장- 내 손으로 따라갈 테니, 수갑 따위는-“
그 때, 그들이 총을 쏘았다. 남자는 그대로 뒤로 자빠졌고, 희미해지는 의식으로 목소리가 뚫고 들어왔다.
“본부, 대상을 제거했다. 젠장, 감염자군. 일단 SCP부터 확보하겠다-”
“뻔뻔한 놈, 자기발로 따라가기는 개뿔-“
그들은 노인과 남자를 각각 바디 백에 집어넣고, 병실을 빠르게 나섰다.
조용히,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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