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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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머Palmer 기사(技士)한테서 하품이 나왔다.

05시 20분, 6시간짜리 교대근무 시간은 고작 40분 있으면 끝났다. 재단 제12구역 델타 모니터실에서 교대근무 시간에 맡는 일은, CCTV랑 음성 피드를 계속 주시하고, 필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모니터 보면서 확인하고, 가끔 불쌍한 연구원이 보이면 기술지원을 해주는 정도였다. 지난 몇 시간은 지금까지는 비교적 별일 없이 지나갔다. CCTV 피드 속 격리된 SCP 개체들은 예상하는 대로들 행동했고, 음성 피드로는 밤을 꼴딱 새우며 자리를 지키는 연구원들 소리가 들려왔고, 모니터 상의 데이터 속에서 모든 시스템들은 평상시처럼 잘 기능했다. 물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괴테의 《파우스트》 덕분에 따분함은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한두 페이지쯤 들여다볼 여유가 날 때라면. 근무 중에 독서 같은 짓은, 특히 저렇게 위험한 개체들을 감시하는 와중에는 부적절한 행동인 점은 팔머도 잘 알았다. 그래도 참나, 눈 계속 띄우고 있기에는 기본 제공 카페인 알약보다 이쪽이 더 효과 좋다니깐. 그리고 어쨌거나 잠 깨어서 책 약간 읽는 쪽이, 잠들어서 아무것도 관찰 전혀 못하는 쪽보다는 훨씬 더 나았다.

팔머가 맨 처음의 하나님과 메피스토펠레스의 대화 부분을 막 모두 읽었을 때, 모니터 하나에서 빨간 불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팔머는 책에서 눈을 와짝 떼고 화면을 보더니 움찔했다. 데이터상으로는 이 격리실에서 조명기구 하나가 방금 고장난 상태였다. 그 데이터가 등장하기 무섭게, 다른 데이터들이 주르륵 화면에다 뒤이어 떠올랐다.

경고: 시스템 고장
장소: 베타 격리동 017호실
개체 등급: K
위협도: 알파
감독자에게 즉시 연락할 것.

팔머의 심장이 조금 요동쳤다. 개체 등급 K. 케테르라니. 위험한 놈이었다. 더구나 우선순위 알파 개체라면. 제12구역이 그런 개체들을 여러 개 격리하긴 했지만, 고장 때문에 위협도 알파가 발동된 건 팔머한테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12구역으로 전근 오기 전에 팔머는 밴쿠버 섬의 저위협 격리시설인 제28지구에서 선임기사를 맡고 있었다. 모종의 사건으로 제12구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임무를 더는 수행하지 못하게 되어버리면서 팔머가 불가피하게 제12구역으로 발령받게 되었다. 팔머는 이렇게 위험이 철철 넘치는 상황에 익숙하지 않았다. 위협도 알파는 특히나 끔찍했다. 위협도가 알파라는 말은, 시스템이 고장났다간 SCP 개체의 격리 상태에 위협이 실제로 막바로 엄습하고, 격리가 실패하는 대로 해당 시설이랑 그 인원들한테 중대한 위협이 닥쳐온다는 뜻이었다. 물론 팔머도 그 인원이었고.

지체없이 팔머는 감독자에게 즉시 연락했다. 상대편이 전화를 받자, 피곤한 목소리가 바로 흘러나왔다.

"샌더스Sanders다, 말해."

팔머가 떨리는 목소리로 인터컴에 대고 말했다. "어, 부장님, 방금 베타 격리동 017호실에서 시스템 고장 경보가 나왔습니다. 조명기구 고장으로 보입니다."

샌더스의 대답도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돌아왔다. "017? 케테르 등급이야?"

팔머가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둘은 잠깐 아무 말도 없었다.

"미치겠네. 좋아, 베타동 위협태세THREATCON 오메가로 격상하고 시설 폐쇄랑 프로토콜 305-유타 발동이랑 여차하면 동시에 실행할 수 있게 대기한다. 대응팀한테는 내가 연락하지. 잘했다 팔머."

팔머는 잘했다는 게 정말 잘한 가치를 다해주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베타동에 스레트콘 오메가를 발령하는 버튼을 누르고, 프로토콜 305-유타를 대기시키는 접속 코드를 입력했다. 시설 내 오만 스피커들한테서 경적 소리가 터져나오면서 자동음성으로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경고. 베타 격리동 위협태세 오메가로 격상. 비필수 인원 전원 본 구역에서 대피하라. 실제 상황. 반복한다. 베타 격리동 위협태세 오메가로 격상. 비필수 인원 전원…"

한시라도 더 빨리 대응팀이 도착하기를 팔머는 기도했다.


베타 격리동 복도에서 대응팀 에코Echo는 017호실에 닥친 사태에 대응할 준비가 한창이었다. 머리 위에서 경고등이 빨간빛으로 돌아가며 모든 인원들에게 지금이 초경계태세임을 알렸다. 무장경비원들이 복도의 출입구들과 다른 격리실로 들어가는 문을 지켜보고 있었다. 연구원들이며 직원들이 속속 지나가고, 개중에 한 사람이 카드를 리더기에 대고 문을 열어 고기로 가득한 카트를 격리실로 들였다. 격리 실패 상황에서 구역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가까이 있는 다른 개체들을 제대로 격리하는 것 역시 중요했다. 어떤 격리 실패를 막으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다른 개체의 격리를 방해했다간 또 다른 격리 실패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 그런 이유 때문에 에코 팀은, 임무를 완수하는 데 필요한 최소의 인원으로 최적의 효율을 낼 수 있게 작업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지금, 정비기사 스윈번Swinburne은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빛을 온통 반사하는 바디슈트가 이제 몸통 위를 덮은 참이었다. 지금 같은 임무에는 기사 한 명의 몸뚱이가 필요했다. 조명기구는 보통 경우야 옆이나 뒤에서 갈아끼우면 되지만, SCP-017의 격리실을 사방으로 둘러싸는 다른 SCP들의 격리 절차 때문에 조명기구 뒤로는 기어갈 자리 하나도 없었다. 주위에는 스윈번이 맡은 임무를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예비 기사들이 대기 중이었다. 바닥에는 매우 큰 고휘도 아크등 전구가 놓여 있고, 또 그 옆으로 포장된 채로 3개가 더 있었다. 그리고 또 그 전구들만큼 휘도 높은 스탠딩 램프들 여럿이 휴대용 발전기 하나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렇게 배치된 불빛들과 머리 위에 켜진 전등 (그것도 밝기 최대로) 때문에, 구역 안은 빛이 구석구석 비쳐서 어디에도 그림자 하나 드리우지 않았다.

스윈번 옆에는 SCP-017 수석연구원 마텔Martell 박사가 있었다. 스윈번이 낑낑대며 슈트를 착용하는 동안 마텔은 최종 브리핑을 했다.

"손 오므리면 안됩니다. 다리 너무 가깝게 붙여서 걸으면 안됩니다. 손가락은 펼쳐서 따로 뗀 채로 두세요."

"아 예." 스윈번이 오른팔을 슈트 소매로 밀어넣었다.

"발을 끌면서 걸으세요. 발을 들면 안됩니다. 방 안이 아무리 밝아봤자 바닥에서 1센티만 뗐다가는 잠깐이라도 그림자가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럼요." 왼팔이 들어갔다.

"짐은 몸에 붙이지 말고 가슴 높이로 드세요. 램프는 갈아끼우기 되게 쉬운 구조로 돼 있습니다. 조명에 설치된 테두리를 뽕 빼내고 원래 전구를 돌려빼서 새 전구를 돌려끼우기면 하면 됩니다. 끼우고 나면 새 전구는 1초 안에 최대 밝기로 켜집니다. 전구가 뜨겁지만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슈트도 단열 잘 돼 있고, 다른 전구들 과열 안 되게 격리실을 항상 쌀쌀하게 해놓거든요."

"그래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하셔야 합니다. 격리실에는 바닥에도 램프가 설치돼서 안 막히고 뚫고 움직일 공간이 빠듯합니다. 천천히 신중하게 움직이는 게 키포인트예요. 슈트는 반사가 잘 되니까 램프 빛을 살짝 막게 되는 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전하긴 한데, 지금 이 일이 그렇게 운에만 기대도 될 일은 절대 아니에요."

"그런 말씀 안 하셔도 되는데요." 스윈번이 지퍼를 내려 마스크를 목 부분까지 딱 붙여 착용했다. 심지어 지퍼며 손잡이며까지 반사 아주 잘 되는 크롬으로 도장했다는 걸 알아차리며. 그리고 마스크 위치를 조정해 접안 위치를 정확하게 맞췄다. 접안부는 시꺼멓게 칠해진 렌즈들이 슈트 나머지와 자연스럽게 이어진 모양새였다. 스윈번은 이어폰을 귀에다 더 깊숙이 꽂았다. 목소리로 작동되는 스위치가 달려서 아무것도 손댈 필요가 없는 무전기에 연결된 이어폰이었다. 이어폰을 끼우면 끝났다. 착용 완료.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마텔이 마지막으로 스윈번을 죽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할 말씀은 이제 이게 끝이네요. 들어갔다 나옵시다. 행운을 빕니다."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누고, 스윈번은 갈아끼울 전구를 조심스레 들었다. 마텔이 017호실 문 앞으로 가서 문을 여는 절차를 시작했다. 맨 먼저 카드 리더기, 그리고 생체 손바닥 스캐너, 홍채 인식, 음성인식 시스템. 하나라도 실패했다간 기지 사무관 이상 인원의 권한을 동원하지 않는 이상 접근은 거부된다.

잠시 후, 문틈으로 초록불이 깜빡였다. 접근 승인.

마텔 박사가 문을 당겨 열고 마지막으로 끄덕였다. 스윈번이 격리실로 — 아니 사실은 엘리베이터로 발을 들였다. 진짜 격리구역은 아래쪽에 있었다. 마텔이 문을 닫자, 밀폐 장치가 쉬이익 소리를 내며 문틈을 꼭 막았다. 그리고 스윈번이 아래로 내려갔다.

스윈번은 다른 2등급 기사들처럼 자기도 얼마든지 교체해 쓸 수 있는 사람인 점을 잘 알았다. 흔한 일이었으니까. 스윈번은 비록 다른 인원들처럼 제12구역에 격리된 SCP 개체들을 잘 아는 건 별로 아니었지만, 적어도 두 가지는 알고 있었다. 제12구역의 다양한 격리 지대들을 필요할 때 제대로 정비하는 방법, 그리고 입 다무는 방법. 재단으로 오기 전에 스윈번은 육군에서 전투공병으로 복무했다. 그러면서 익숙해진 것이라면 바로 명령 계통, 지휘받는 방법, 그리고 목전에 닥쳐오기 일쑤인 위험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2교대로 근무를 서면서 스윈번은 육군표창훈장, 그리고 상이군인훈장을 얻었다. 아직도 그때 다친 다리가 꼭 잊을 만하면 아파왔다. 물론 그 전의 일이었다. '재단'이란 곳에 '특별지원자'로 뽑혔던 때의 — 그땐 그 말이 어떤 곳을 가리키는지 전혀 몰랐는데. 그러나 평가 및 자격을 모두 충족했던 스윈번은 어쨌든 그렇게 뽑혀간 딱 3명 중에 하나가 되었다. 물론 재단은 잠재적 가치가 증명된 그 사람들 서명을 받기 전에 자기가 뭐 하는 곳인지부터 알려주었다. 2등급 기사 한 사람이 재단 자산으로서 0등급 봉사인원 몇 명보다 훨씬 중요하고, 더구나 D계급 한 명보다는 더 막대하리만치 중요하니까 (물론 그네들도 나름의 가치야 있긴 하지만). 그래서 스윈번은 변칙적인 존재들, 특수 격리 절차, 그리고 확보하고 격리하고 보호해야 하는 이유 등의 이야기를 들었고, 구미가 당겼다. 종교는 딱히 없었지만 아직도 마음속에는 만물을 바라보는 경이감 같은 걸 한 자밤 품고 있었다. 이렇게도 세상은 흥미로운데, 한발 더 나가서 어떤 식으로 흥미로운 건지 드러내주는 조직에 참여할 수 있다면 그런 기회를 도저히 퇴짜 놓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재단의 제안을 거절했다간 기억소거제 맞고 바로 다른 데로 재배치를 갈 테니까. 그렇게 스윈번은 재단에 합류했다.

다 재단의 실상을 전혀 예상 못하던 시절 이야기였다. 재단에서 스윈번은 가능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 그 누구도 꿈도 꿔본 적 없는 것들을 숱하게 만났다. 물론 차라리 자기가 이러는 게 낫다는 건 자기도 알았다. 바깥 세상한테 아직 준비가 안 된 지식이 지금의 이 현실을 어지럽혔다가는 재난만 일으킬 테니까. 재단이 격리하는 몇몇 개체는 존재 자체가 재난이긴 하겠지만.

예를 들면 이 개체, SCP-017이 그랬다. 스윈번도 그 파일을 읽어본 적 있었다. 겉보기로 연기나 그림자 같은 걸로 이루어진, 주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만 있으면 바로 완전히 둘러싸 버리는 놈. 소설에서 읽어도 섬뜩한 놈인데, 더구나 그런 놈이 실존한다는 사실에다가 어떤 준정부기관에 꽁꽁 가두어진 것까지 아는 입장이라면? 재단에서 정기 정신건강 검진을 그렇게 자주 잡는 게 놀랄 일이 아니었다.

승강기가 밑바닥층에 닿았다. 스윈번 앞으로 보이는 조그만 복도가 바닥이며 천장이며 벽에다 온갖 고출력 전등들을 설치한 채로 있었다. 단열복을 두껍게 입었는데도 스윈번에게 추위가 밀려왔다. 격리실을 항상 쌀쌀하게 해 놓는다는 마텔의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온도가 -6℃는 될 테니까. 그래도 이건 좋은 일이었다. 수많은 전등들이 불철주야 빛을 밝히고 있으려면 과열은 기본에 잠재적으로 고장날 가능성까지 생기는 게 당연했다. 그런 상황이 혹시라도 생길 일 없게 재단은 항상 최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려고 노력했다.

복도 끝에 유리문이 유리 손잡이를 단 채로 있었다. 슈퍼마켓에서 보이곤 하는 그런 문이었다. 스윈번이 숨을 깊이 들이쉬고, 침을 꿀꺽 삼키고 무릎으로 문을 밀어 SCP-017의 주격리실로 들어갔다.

방 전체가 어떤 면에서도 하나 빠짐없이 비치는 밝은 하얀 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모서리 6미터 정육면체 공간에 고출력 백열전구가 수백 개는 있었다. 재단에 이런 시설을 돌릴 자원이 있다는 건 그야말로 천행이 아닐까 하고 스윈번은 생각했다. 고개를 올려다보니 투명 플라스틱 격리실이 방 한가운데 매달려서 017을 넣어둔 채로 있었다. 작은 퍼스펙스 상자였는데, 금고 크기 정도였다. 투명 벽 한쪽에 어린이처럼 생긴 형체가 기대 웅크려 앉아 있었다. 눈이 부실 지경인 격리실의 빛 속에서 보이는 유일한 까만 얼룩이었다. 움직임은 전혀 없이, 어느 모로 보나 무해한 모습이었다. 017호실에 정비 땜에 들어올 정도의 인가가 있는 사람이면 본모습을 다 알았지만. 한기가 밀려오는데도 슈트 속 스윈번의 이마에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스윈번은 애써 마음을 침착하게 다잡았다. 한 발짝만 헛디뎌도 목숨이 날아갈 테니까. 군에서도 전투를 겪어본 적 있었지만, 그때는 조건이 전혀 달랐다. 누가 내 몸에다 총알을 쐈다 그래도 그건 자연스럽고 받아들을 만한 사건이었다. 이건… 이곳 일은 변칙적인 사건이니까.

스윈번이 움찔하며, 밝은 방을 살펴보다가 마침내 나가버린 전구를 찾아냈다. 방 건너 저편에 허리 정도 높이로 달린 전구였다. 천장이 아니라니 하느님 감사합니다. 천천히, 다른 불빛들 쓸데없이 가로막지 않게 조심하면서 스윈번은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훈련이며 육군 때 경험이며 이제껏 겪은 모든 두려운 일 다 합쳐서 지금 이때가 제일 조마조마했다. 가슴 속에서 심장이 쿵쾅거리고, 온몸이 삐질삐질 흐르는 땀에 절고, 입이 아프리카의 가뭄처럼 바싹 마르는 게 스윈번에게 느껴졌다. 목표로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머리 위에 매달린 저것의 손에 끔살당하는 길은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움직이거나 반응이 있는지, 고개를 들고 쳐다보고 싶었지만 스윈번은 꾹 참고 전구를 몸 앞으로 든 채로, 그림자가 생기지 않게 계산해 둔 행동 그대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상태 어떻습니까, 스윈번?"

귓속으로 찔러들어온 마텔의 목소리 때문에 스윈번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손을 떨지 않는 채로 계속 전구를 들고, 나가버린 전구 쪽으로 마지막 몇 걸음을 옮겼다.

"이제 도착했습니다." 스윈번이 송신기에다 크게 말했다. "현재 상황 최적입니다. 017은 아무 활동 없습니다."

"좋아요. 상황이 변화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숙지하세요."

"로저."

말소리가 다시 멎었다. 나가버린 전구를 갈아끼우려면 먼저 지금 켜진 격리등을 몇 개 정도는 가로막아야 한다는 사실을 스윈번은 알았다. 뭐 그런 게 문제는 아니었다. 격리실 안에 램프는 충분히 많고, 또 슈트가 밝게 반사하는 빛 덕분에 그래도 그림자는 드리우지 않았으니까.

스윈번은 몸을 굽혀 두 손으로 전구 주위로 설치된 테두리를 빼냈다. 크롬으로 도장한 원형 테두리였다. 스윈번은 테두리를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고, 나가버린 전구를 돌려빼기 시작했다. 처음에 전구는 잘 돌아가지 않으려다가, 시계 방향으로 몇 번씩 힘을 주니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자신이 저것을 등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려니, 오싹한 기분이 스윈번의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몇 번 더 돌린 끝에 원래 전구가 빠져나왔다. 스윈번은 전구를 테두리 옆에 내려놓고 새 전구를 돌려끼우기 시작했다.

반시계 방향으로 전구를 돌리는 그 소중한 잠깐 동안, 스윈번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제발신이시여제발신이시여제발신이시여성공해라실패하지마라제발신이시여"

그때 새 전구에 불이 밝게 들어왔다. 빛을 본 스윈번이 또 움찔했다. 그리고 테두리를 들어올려 원래 자리에 꽂아두고, 원래 전구를 든 다음 승강기로 다시 걸어갔다. 매달린 격리실 속의 017을 스윈번은 딱 한 번 다시 쳐다봤다. 늘 그렇듯이 아무 움직임 없었지만, 변함없이 스윈번의 몸 전체가 다시 오싹한 기분에 휩싸였다.

승강기로 다시 돌아오고, 저 괴물을 가둔 미친 방에게서 승강기가 올라가며 멀어지기 시작했을 때, 스윈번은 털썩 쓰러져 벽으로 기어가 기대어 터져나오려는 울먹임을 꾹 눌러 참았다. 겨우 다시 일어나 정신을 가다듬었을 때, 승강기 문이 열리고 베타 격리동의 복도가 다시 나타났다. 스윈번은 바로 지퍼를 내리고 가면을 벗겨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마텔 박사와 에코 팀 다른 대원들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마텔 박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시스템 고장 수리 완료, 위협태세 오메가 해제 요망. 반복한다, 시스템 고장 수리 완료."

잠시 후 번쩍이던 비상등이 꺼졌다. 안내방송 시스템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 인원 주목. 베타 격리동 위협태세 중립으로 하향. 전 인원 평소 위치로 복귀하라. 반복한다, 베타 격리동 위협태세…"

마텔이 스윈번에게 걸어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잘했습니다, 로이드Lloyd. 가시죠, 식당 가서 커피나 하자구요."

로이드 스윈번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때보다도 더 진 빠진 모습으로. 두 사람을 복도를 내려가는 동안에도 확성기는 메시지를 계쏙해서 읊었다. 에코 대응팀은 해산해 대기 상태로 돌아갔고, 연구원 및 직원 들은 베타 격리동에서 원래 맡던 임무로 돌아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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