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 밑에는 음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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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여름, 부산.

한 분식집에서, 덩치 큰 두 청년이 식당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를 위협하고 있었다.

"아저씨, 불사조 돌격대 몰라? 아니, 여기서 장사하는거 도와주겠다잖아 우리가."

"죄, 죄송합니다. 저는 그럴 돈이…"

사장이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자, 확연히 리더격으로 보이는 청년, 이성재가 다른 청년을 제지했다.

"야, 그렇게 거칠게 말해서 되겠어? 우리 불사조 돌격대는 젠틀하다고. 월 40만 주시면, 확실하게 보호해 드릴…"

"푸하하하! 불사조 돌격대래, 이름 한번 유치하네."

그 말에 두 청년은 동시에 뒤돌아보았다. 그들을 비웃은 사내, 정철민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감히 우리 이름을 모욕해?"

다혈질의 청년은 곧바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보기에 정철민은 얼굴에 가득한 흉터를 제외하면 덩치나 인상이나 그리 별 볼일 없어 보였다.

"철우야 잠깐…"

이성재는 뭔지 모를 위화감에 급히 청년을 불러세웠지만, 그 때는 이미 늦었다. 청년은 이미 쓰러져 있었고, 정철민은 느긋하게 돈까스를 썰던 칼을 닦고 있었다.

"진짜 어디서 이렇게 기어나오는 건지 모르겠네. 이 좁은 땅덩어리에 뭐 먹을 게 있다고 깡패새끼들이 이리 많아."

정철민은 손에 들고 있던 식기구를 내려놓고 비웃음을 흘렸다.

"삼대천이 손 뗀지 한 25년쯤 되었나. 그새를 못 참고 또 별 잡것들이 기어오르고 말이야…"

명백히 상대를 얕잡아보는 듯한 말이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성재 역시 그것을 깨달았다. 눈 앞의 저 남자는 말 그대로 빈틈이 없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지고 있을 급소가 없다. 그동안 숱한 사선을 넘어온 이성재에겐 그의 모습이 그렇게 보였다. 그것이 이상했다. 전투 준비도 하지 않고 있는 남자가 어째서…?

"잡것이 아니다. 난 부산의 이성재다. 모르나?"

이성재는 품 안의 칼을 꺼내 허리를 굽혔다. 오직 상대를 찌르기만을 위한 자세. 그러나 정철민은 태연했다.

"몰라. 나 때는 말이다. 자기 이름 앞에 지역 명을 붙일 수 있는 남자는 단 세 명 뿐이었어."

"…"

"전라도에 정철민, 경상도에 이화천. 그리고."

이성재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려들었다. 가게 주인은 거의 울 지경이 되었지만, 그건 더이상 이성재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일단 저런 강자를 만난 이상, 그는 싸우고 싶었다.

"어이쿠, 말은 끝까지 하게 해줘."

이성재는 대답없이 칼을 휘둘렀다. 공격을 가할 수록, 이성재는 막막함을 느꼈다. 이 정도로 강한 적이 있었던가.

정철민은 이성재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고 그의 배에 칼을 꽂았다.

"마지막으로…전국구로다가 임한영."

이성재는 피를 뿜으며 쓰려졌다. 그가 입을 열려 하자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고작 칼질 한방에 내장이 완전히 찢어진 듯 했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부산의 뭐? 지나가는 개가 웃겠어. 뭐, 대응도 못한 네 친구에 비하면 조금 쓸만하긴 하지만, 감히 그렇게 칭할 정도는 아니야."

"이런 씨…정철민이니 누구니…다 처음 듣네. 이봐, 꼰대 아저씨.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야지…내 진짜 별명."

정철민은 이성재의 말에 이성재를 내려다보았다. 이성재는 피를 흘린 채 웃고 있었다.

"부산의…미친개 이성재."

이성재는 정철민의 발목을 물었다. 어찌나 꽉 물었는지, 깊게 문 발목에서 피가 새어나오지 않았다. 이성재는 꽉 문 채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 어금니엔 독이 있어. 특수부대들이 혀를 깨물면 바로 죽는 그거. 발목이라 심장까지 안가면 살 수 있어. 같이 죽던가, 꽁지 빠지게 도망치시던가."

정철민은 웃었다. 방금 전까지의 비웃음과는 달리, 진심이 담긴 웃음이었다.

"기고만장하군. 재밌네."

정철민은 자기 발목을 베었다. 정확히 말하면 떼어냈다. 처음으로 이성재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무슨…? 기계…?"

"보다시피 난 이런 꼴이다. 휼륭한 공격이었지만…그 공격은 통하지 않지."

곧바로, 이성재는 등 쪽에 느껴지는 강렬한 충격에 정신을 잃었다.


"정신이 드나."

"여긴? 으윽…"

이성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건물. 주변에도 삭막함 뿐이었다.

"날 죽일 생각인가…아무도 없는 곳에 묻으려고?"

이성재의 말에 정철민이 피식 웃었다.

"여기가 그러라고 있는 곳이긴 하지만, 널 죽일 생각은 없다. 지금은."

"지랄."

이성재는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했지만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눈 앞의 남자는 분명 시체를 유기해본 경험이 많을 터였다.

"삼대천을 알고 있나."

그래서일까, 이성재는 정철민의 물음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삼대천을 들어본 적 없냐고? 씨발, 들어봤지. 좆밥들이 상대를 못 이길거 같으면 이용하는 약팔이 회사 아니야?"

날이 선 대답에 정철민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은 네 말이 맞다. 삼대천은 한때 한국의 초상 폭력 조직 전부를 지배했지만 현재는 철수했지. 그 덕에 너 같이 억제력이 사라진 폭력 조직들이 날뛰었고, 지금은 전국구의 위세를 자랑하는 폭력조직이랄 게 없지. 언젠간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야?"

"…이 세상은 여러 층위로 이루어져 있지. 장막 안과 밖. 장막 안에서도 양지와 음지. 삼대천은 음지의 폭력조직을 대부분 청산하고 양지의 기업이 되었지만, 일부는 더 아래로 숨어들었다. 음지 밑에도 음지는 존재하니까."

이성재는 정철민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 그래서. 거기가 어딘데?"

"느긋하게 기다려라.  여기선 너나 나나…손님이니까 "

그리고 어느 순간, 어두운 세상은 밝아졌다. 여전히 어둠 속이었으나, 화려한 빛은 그 어둠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찬란히 드러내었다.

급작스러운 변화에 이성재의 입이 벌어졌다.

"그림자 도시에 온 걸 환영하지."


"…이건 대체."

"확실히 어린애군. 경상남도에 살면서 그림자 도시를 모르다니."

"부산은 경상남도가 아닌데. 광역시라."

이성재의 말에 정철민은 헛웃음을 지었다. 싸울 때와는 전혀 다른, 어벙해 보이기까지 하는 성격. 하지만, 그가 정철민 자신의 발목을 물었을 때 보인 투지는 분명 진짜였다.

"소꿉놀이는 그만하고, 내 밑에서 일해볼 생각 있나?"

"소꿉놀이라니…"

"너라면 느꼈을 것 아니냐. 아니라면 내가 잘못 본 건가."

이성재는 침묵에 잠겼다. 자신도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 앞의 상대는 규격 외였다.

"이걸 받아라."

정철민은 이성재에게 초대장을 건넸다.

"엠브로즈 서울점…여기가 서울? 확실히 수도는 다르구나…"

"아니, 여긴 경남이다. 하지만 그 초대장이 있으면 이곳에서 서울로, 또 서울에서 이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앞으로 내가 호출하면 이걸 통해 와라."

이성재는 초대장을 빤히 쳐다보다 말했다.

"아니, 신기하긴 한데. 내가 왜 당신을 따라야 하지?"

"일단은 널 살려준 목숨값이라 하자."

그 말에 이성재는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저 사내는 자신을 손쉽게 죽일 수 있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네 삶의 목표가 무엇이든, 삼대천은 그걸 이뤄줄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그 말에 이성재는 생각에 잠겼다. 내 목표는 무엇일까. 강자와 싸우는 것? 아니면 누구도 무시 못할 자리에 오르는 것?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좋아요. 그러면 당신이 굳이 날 영입하려는 이유가 뭔지 들어나 봅시다."

"…꼭 알아야 겠나?"

이성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철민은 그답지 않게 대답을 고민했다.

"복수를 위한 칼이 필요하다. 그 정도로 해 두지."

그 대답이, 이성재는 썩 마음에 들었다.

"당신의 칼이 되려면, 앞으로 좆빠지게 노력해야겠네요."


2012년 가을, 서울.

앰브로즈 서울점에서 정철민은 느긋하게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 그 앞에, 옷에 피를 잔뜩 묻힌 이성재가 나타났다.

"해결했습니다. 이제 그림자 도시에 살덩이들은 한동안 안 보일 겁니다."

"수고했다. 그림자 도시는 버려진 자들의 것. 그곳을 장악하면 많은 것을 숨길 수 있을 거다."

"명령을 수행한지, 이제 3개월입니다. 전 삼대천도 아니고, 그냥 이렇게 당신의 명령만 따라야 합니까?"

"그만큼 강해졌잖나."

정철민의 말에 이성재는 목구멍까지 반박할 말이 차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정철민은 생각보다 영악한 사내였다. 적어도 그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그가 제공한 의뢰들은 언제나 한계 이상의 난이도를 자랑했고, 그걸 넘을 때면 이성재는 한층 더 강해져 있었다.

"어쨌든, 이제 말해줄 때가 되신 것 같습니다. 복수의 칼날이 어디를 향해야 할지. 설마 살덩이파같은 짜바리들을 썰기 위한 칼은 아닐 것 아닙니까."

이성재의 도발에 정철민은 반응하지 않고 와인을 건넸다. 이성재는 피 묻은 옷 그대로 털썩 의자에 걸터앉았다.

"내가 전에 말했지. 전라도에 나, 경상도에 이화천, 그리고 전국구에 임한영이라고."

"예."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날의 충격은 이성재의 인생을 송두리채 뒤바꾸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말은 80년대 중반까지 절대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말이었다. 임한영은 혼자서 전국의 모든 조직을 쓸어버렷고, 그 과정에서 나와 이화천은 임한영의 밑으로 들어갔다."

"혼자서…"

이성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임한영이란 자는 자신이 막연히 상상하던 로망을 그대로 실현시킨 자 같았다.

"대략 10년간은 행복했지. 우리는 무적이었고 사치와 향락을 마음껏 즐겼어. 특히 화천 형님은 생긴 것과 달리 거칠게 놀았었지. 잘생겨서 그런가 여자들이 그래도 좋아해주더군."

"그런 이야기는 넘어가죠. 복수의 대상은 그러면 이화천인가요."

"아니. 끝까지 들어봐. 문제는 88년도 이후였다. 88년, 우리나라엔 올림픽이 있었지. 삼대천은 그 당시 운동선수들과 접촉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재단의 눈에 크게 띄었다."

"재단이라면."

"압도적인 힘을 지닌 국제 단체다. 어쨌던, 임한영은 정부의 개 노릇을 오래 해 왔기에 그 정보를 누구보다 빨리 알았고, 과감히 폭력조직으로서의 삼대천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서 당하기만 했습니까?"

"아니지. 우리는 숙청당하느니 회장의 등에 칼을 꽂기로 했다. 화천 형님은 임한영 회장을 감화시키려 했지만, 난 아예 죽여버릴 생각이었어."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보면 알잖나. 화천 형님은 목 아래가 문자 그대로 식물인간이 되었고. 나는 규격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회장은, 배신자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했죠? 그런 배신을 했다면, 당신은 어째서 아직도 살아있고, 삼대천 스포츠의 사장 일을 하고 있죠?"

"이화천은 싸운 자의 손가락을 가져갔었다. 임한영은 어디일것 같나?"

"설마…"

이성재의 눈은 아래를 향했고, 정철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삼대천에서 배신자의 말로는 참혹하다. 난 칼질이라는 기술이 있기에 살아남았지만, 나머지는 죽었다. 전부."

"그, 이화천이란 사람도?"

"죽었다 살아난 사람은 예외지."

이성재는 입을 다물었다. 재단, 삼대천, 죽었다 살아난다…머리 속이 복잡했다. 가뜩이나 그림자 도시의 괴이들이 자신을 불청객 취급하기 시작해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상태에서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왔다.

"…제가 지금까지 하던 건 정말 놀이었군요."

"이성재. 넌 괜찮은 소질을 가지고 있다. 이제 놀이는 그만두자. 언젠가 넌 임한영을 찌를 칼이 되어야 한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이거 참. 자신감이 없어지는군요."

그 말에 정철민은 남은 와인을 단번에 들이키고 입을 열었다.

"참 신기하지. 공포로 인해 무뎌졌던 복수라는 칼날이. 그 감정이 유치한 감정에 의한 거라고 생각했는데…몸의 일부나마 기계가 되니 더욱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복수는 내 눈앞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난 임한영을 쓰러트려야만 해."

"당신은 이미 충분히 강한데."

이성재의 말에 정철민은 고개를 저었다.

"난 그에게 대항할 수 없다. 이미 한번 꺽인 존재야. 규격화 덕에 노화는 피햇지만 성장이 완전히 멈췄지. 난 영원히 32세의 정철민보다 강해질 수 없어. 앞으로 나는 가늘고 길게 살아가는 것. 그게 답일 뿐이다. 그러나 너는 다르지. 넌 지금은 좆밥이지만."

"뭘 좆밥까지야…"

"언젠간 날 뛰어넘을 거다."

그 말은 이성재에게 거대한 울림을 주었다. 부산의 미친개에게 목표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이성재는 무릎을 꿇었다.

"그럼 그때까지, 당신의 사냥개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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