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박사의 속마음을 한 번 알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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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세영 박사의 신변 확인이 끝난 후, 모든 연구원은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만, 오직 신하나 연구원만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신하나 연구원은 머뭇거렸다. 다른 연구원처럼 별 의심하지 않고 넘어갈 것인지, 아니면 사세영 박사의 상태를 조금 더 확인할 것인지 정하지 못 했다. 불필요한 시간 낭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진정 그녀는 괜찮은 상태일지도 모른다. 나만이 그릇된 시선을 갖고 있고 다른 모든 사람이 정상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박사의 속마음을 한 번 알아보기로 했다. 만에 하나 박사가 썩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라면, 혹시나 박사가 심각하게 잘못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라면, 그녀는 박사를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그녀는 박사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고, 또한 가장 잘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저 재단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박사를 내몰아버렸다. 재단은 원래 그런 곳이고 자신은 누군가를 위로해 줄 만큼 다정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인격을 비인간적으로 버렸다는 느낌은 씻을 수 없었다.

그녀는 사세영 박사의 곁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박사의 얼굴을 쳐다보기 두려웠다. 매몰차게 박사를 버린 자신에게 향하는 분노를 담고 있을지, 결국 환경에 휘둘리는 자신에 혐오감을 느끼고 있을지, 아니면 철저히 부숴져 버려 어떤 것도 남지 않은 텅 빈 얼굴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모든 상황이 두려웠다. 당장이라도 박사의 상태를 얇은 천으로 덮어 버리고 어떤 것도 잘못되지 않았다고 하며 그 방에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즉시 이 현실에서 벗어나 재단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모든 것이 잘못되지 않은 그 상태로 돌아가고 싶었다.

방에서 나가는 방법은 간단했다. 눈을 감고, 몇 번 걷고, 문을 열고, 방에서 나가고, 문을 닫으면, 된다. 두려워 할 것은 없었다. 문을 닫는 순간부터는 이 방 안에서 사세영 박사가 썩든 벌레가 박사의 몸으로 들어가든 신경 쓸 것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된다면, 그녀는 재단이 시킨 일을 잘 해낸 것이고 칭찬 받을 것이며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복잡해지는 머릿속의 생각을 막지 못 하고 쓰러지듯 바닥에 앉았다. 죄책감과 올바름, 어떤 것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녀는 죄책감 때문에 이 방까지 왔으나, 올바름 때문에 앞으로 가지 못 하고 있다.

난 뭘 해야 되지? 그녀는 손을 떨며 누구도 대신 주지 않을 답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사실 무언가를 선택하고 당당히 행할 만큼의 위인은 아니었다. 모든 두려움을 방 안에 던져 버리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에 그렇게 보일 뿐, 그 방 안에서는 두려움이 끝 없이 썩어 들어가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방 문을 열어 버리고 진실된 자신을 마주하며 당당하게 서 있을 용기가 없기에, 오히려 그녀는 외부의 자극에 무덤덤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방 안에 있다. 앞에는 사세영 박사의 시체가 있다. 시체가 아니었으면 했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내가 박사를 죽였다.

사세영 박사는 살고자 했지만, 내가 멍이 들 정도로 그녀의 팔을 세게 잡아 당기고 주사 바늘로 그 가죽을 헤집어 버려서 죽은 것이다. 박사는 약물을 누가 넣었는지 확인하고 수일간 절망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죽어버리라고 수차례 그녀를 바늘로 찔렀다. 그녀는 내 악의를 바라보고 완전히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그녀는 눈 앞에 놓인 약물을 바라보며 나에게 정녕 원하는 것이 이게 맞냐고 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약물은 그녀의 몸 속으로 들어갔고 그녀는 그 약물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신하나 연구원은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었다.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는 신경 안정제 하나가 막 그녀의 몸 속에 들어가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물을 조금 더 똑바르게 보기 위해 숨을 가다듬었고 쓰러져 있던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평상시처럼 침착하게 사세영 박사의 옆으로 가 얼굴을 바라봤다. 박사는 신경 안정제 때문에 사망한 탓인지 제법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안도했다. 박사가 생각보다 괜찮은 상태라고 생각했다. 죽은 지 오랜 기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신체는 훼손되지 않았다.

안정적인 상태가 된 그녀는 꽤 담담하게 사세영 박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사로부터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박사의 상태가 괜찮다는 것을 빠르게 확인한 후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책상에 놓인 한 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의심하십시오.

제가 변칙성에 오염되었을 때 첫 번째로 한 생각입니다.

어떤 것도 믿을 수 없게 된 저는 과거 저의 흔적을 통해 '무엇이 정상적인지' 나름대로 정의하려고 했습니다. 과거에는 어떤 상황에 어떻게 행동했고 어떤 평가를 내렸는지 기억에 의존해서 정상성을 정의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기억을 해석하는 주체도 결국 저였기에 변칙성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느 때부터 변칙성에 오염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아서 과거의 기억도 신뢰할 만한 배경이 되지 못 했습니다.

과거의 기억을 믿을 수 없게 되자 저는 과거의 객관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행동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그나마 재단 보고서 강령에 적힌 인지재해 대응법을 토대로 정상성을 정의하고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대처하는 것까지는 행할 수 있게 되었지만 문제를 정작 해결하지 못 했습니다. 문제가 어쩌다가 발생한 것인지 알지 못 한 채 지금의 상황을 일일이 막기 바빴습니다. 게다가 지나치게 규범적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매우 고되고 지치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이런 일을 맡기에는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이었을까요. 모든 주변 환경과 사물들이 저에게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소리침에도 정해진 규율에 맞게 움직이며 현실의 정상성을 거부하는 행위는 너무 힘들며 아픈 행위였습니다. 어쩌면 환경의 정상성과 규율의 정상성을 조화시킬 만큼 훌륭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상황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겠죠. 아니, 또 어쩌면 처음부터 규율이 비정상적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애초에 조화될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저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단지 재단이 빨리 이 기지에 도착해 저를 구원해주길 바랐습니다. 어떤 것도 하지 못 하고 철저히 무너져 내린 채 환경에 방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재단이라면, 재단이 이 상황을 빠르게 알아챈다면, 저는 이 변칙성에서 벗어나 올바름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흔한 일을 올바르게 여기는 지옥은 이곳에서 끝날 뿐이고, 재단은 제가 잃어버린 저를 되찾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결국 저를 되찾게 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저보다 흔한 상황을 더 반겼습니다. 저는 유별난 사람이 되었고 연구 가치가 없는 사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반면, 이 흔한 상황의 변칙성은 재단의 존치에 심각하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버려지고 환경은 살아남았습니다. 결국 개인은 환경을 이겨내지 못 하는 겁니까? 개인의 기억도, 보편적 규율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도 모두 의심하고 잃어버리게 된다면, 저는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저는,

저는 어렸을 때 변칙성을 직접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환경이 개인을 유린하는 상황을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무언가와 싸우는 소리, 그릇이 깨지는 소리, 급하게 달려가는 소리, 문이 강하게 닫히는 소리, 그리고 그 문을 열려고 계속 두드리고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계속 울립니다. 변칙성의 선택을 받지 못 한 개인은 부숴질 뿐이었습니다. 선택의 울타리 안에 있던 저는 그때부터 두려움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저는 외부에 무심해지는 방법을 알아갔습니다.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외부에 무심해지면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에게 가해지는 외부의 관심도 사라지지만, 그보다도 변칙성에 삼켜지지 않는 이점이 더 컸습니다. 변칙성으로부터 좋은 관심을 받는다고 해도, 변칙성이 흡족해 하는 일을 했기 때문일 뿐이지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관심을 끊는 것이 가장 편한 일이었습니다. 외부에 관심을 주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했습니다. 아마 이것 때문에 제가 재단에 입사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재단은 변칙성을 격리하고 관리하기에 집보다 편했습니다. 변칙성을 명확히 분석하고 그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변칙성에 관한 어릴 적 트라우마를 유일하게 긍정해주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트라우마를 밖으로 꺼내지는 못 하더라도 재단은 변칙성에 관한 대화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재단은 변칙성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고 그렇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변칙성을 가장 가까이 두어 관찰하기에 재단은 변칙성을 다룰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재단도 변칙성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변칙성은 사용 가능하고 어떤 것은 불가능한지 임의적으로 정해버리고 그것을 고집했습니다. 재단은 완벽한 단체가 아니고, 또한 그런 단체가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사실을 마주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변칙성은 우리 사회에 너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이미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고 있던 겁니다. 재단도 저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재단은 그렇기에 변칙성을 이용했고, 저는 그렇기에 변칙성을 혐오했죠.

그래서 이렇게 된 겁니다. 재단은 개인보다 변칙성을 선택했습니다. 약물로 저를 편하게 만들기 위해 애써봤자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겁니다. 좋아도 했고 기대도 했지만, 이게 뭡니까.

결국 저도 버려졌는데.

신하나 연구원은 편지 읽기를 끝마쳤다. 편지지 위에 물방울이 떨어져 깊게 스며들고 있었다. 세상이 점점 유리 조각처럼 일그러지며 그녀의 눈 속에서 부서지기 시작했다. 부서진 세상의 조각들이 그녀의 눈에서 떨어져 나와 편지 위로 흩어져 내렸다. 세상이 하나씩 무너질 때마다 심장을 더욱 깊게 찌르는 조각에 그녀는 온 몸을 떨며 아파했다. 그녀는 박사에게 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박사의 상태를 올바르게 직시하기보다 변칙성에 기대어 회피하는 것을 선택했다. 나름 괜찮은 상태일 것이라고, 그녀는 착각했다.

하지만, 조금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사세영 박사를 다시 바라봤다. 그녀는 끓어오르는 역겨움을 참아내며 박사의 얼굴을, 아니 끝없는 죄책감과 중압감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의심했다. 그녀의 행위를 너무나도 쉽게 타당화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녀는 마주 보았다. 박사와 그 곳에 들어 있는 모든 아픔들을. 그리고 그녀는 박사에게 다가가 박사의 옆머리를 조금 넘겨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이해하기 시작했다. 박사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을. 그 안에서 외치고 있는 부조리함에 대한 저항을.

그 순간, 그녀는 문 위에 걸린 재단 로고를 총으로 쏴 산산이 조각냈다. 그녀가 박사 앞에 서 있던 덕분에 박사한테는 파편이 날라가지 않았다. 그녀의 뺨에는 파편이 튀어 상처가 생겨났지만, 그녀는 한 손으로 피를 닦고 방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박사의 편지를 자신의 주머니 깊숙이 넣으며 다짐했다.

신하나 연구원은 후회하지 않는다.

신하나 연구원은 무심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 다시 박사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부서져 내리더라도 지킬 것이다.

신하나 연구원은,

이제 그 누구보다도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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