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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のろい = 노로이 = 呪い = 저주

[注: 이 글을 읽던 도중 돌연 심신에 불쾌나 부전이 느껴질 경우, 즉시 글을 읽기를 중단하시오]

직업상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각지의 민화와 전승, 혹은 속칭 「괴담」이라 불리는 것들을 모으다 보면, 때로는 「이것은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마음 속에 간직해야 한다」고 직감적으로 느낌이 드는 것 같은 이야기와 만날 때가 있습니다.
무슨 「자기책임계」 괴담이나, 에전에 유행한 불행의 편지처럼 이것을 읽고 이러저라하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명확한 재앙이 닥친다……던가, 그따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괴이 치고는 수수하고, 사람을 무섭게 할 목적으로 만든 공포영화나 괴기소설 같은 기복도 없는, 그런 것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뭐래야 하나,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온다는 공포나, 실제로 몇 명이 죽었다거나 그런 연유가 아니라, 그저 단순히 본능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괴담에는 말해서 좋은 이야기와 말해서는 안 될 이야기가 있다」고 어느 저명한 괴담작가가 말한 바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바로 그런 인상을 받습니다.

제 생각에 공포라는 것은 인간이라는 생물이 진화하면서 다양한 정서를 첨예화하는 와중에, 지금도 형태를 바꾸어 진화를 계속하는 그런 가변적인 감정이 아닐까요.
최초라고 해야 할까 원초적인 공포는 죽음의 공포였겠지요. 인간이 원숭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수렵채집을 하던 시절, 유일한 절대적인 두려움이란 상위 생물에 의한 포식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성」을 얻으며 그에 따른 다양한 감정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컨대 지금 가지고 있는 지위가 무너지는 공포, 또다른 예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미움받는 공포. 그것들은 어떤 의미에서 인간이기에 갖는 감정입니다. 그것들은 「죽음」과는 별개로, 각자가 「싫은 것」을 상상하는 것으로 형태를 바꾸었고, 그런 감정들인 셈이니까요.
공포증 등도 좋은 예입니다. 제 친구 중에 집합체에 대한 공포감정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녀는 부엌 개수대에 쌓인 세제 거품조차 보기 싫다고 합니다. 물론 세제거품이 죽음에 직결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무섭게 느끼고 가능한 접촉을 피하려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공포하기에 이르는 이유는 그 사람의 출신이나 배경마다 다양하고, 가지각색의 사정이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아까부터 이야기하고 있는 「말해서는 안 될 이야기」는 그것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각자 마음 속에 지닌, 싫은 것을 상상해 버리는 형태의 공포가 아니라, 다만 그저 금기를 알아채 버리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사람이 어떤 출신이나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그것이 「안 되는」 이야기임을 무의식중에 자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저와 같은 취미 혹은 직업을 가진 분들 중에도 때때로 그런 이야기를 하신 분들이 계시니, 어쩌면 지금 이것을 읽는 중에도 그것이 어떤 경험인지 짐작이 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써 내려갈 것은, 제가 이전에 들은 그런 금기 중의 하나 혹은 여럿을 최대한 희석해서 묘사한 것으로 생각해 주세요. 물론 여기서는 이것을 쓴 사람이 특정되거나 어떠한 영향이 독자에게 미치지 않도록 몇 가지 꾸밈이나 거짓을 섞어서 적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대략적인 구성과 내용에 대해 믿음직한 분 몇 명에게 확인을 받고 양해를 받은 바 있으므로, 아마도 읽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만일 이것을 읽다가 무언가 알아채 버린 경우에는, 즉시 읽는 것을 멈추기를 권장합니다.아까 말한 대로 「읽는 사람에게 명확한 재앙이 닥친다」는 그런 류의 이야기는 분명 아니고, 애초에 영장(霊障)이란 그런 단순한 것일 리가 없으므로, 읽기를 멈추기만 하신다면 그것만으로 괜찮을 것입니다.

SCP-███-JP를 아시는지요?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후쿠오카현 쿠라테군이라는 곳에 살다 실종된 어느 어머니의 비디오테이프인 SCP로, 이 비디오테이프에 기록된 영상에는 부정기적인 타이밍에 잡음이 끼어들면서 불분명한 음성과 정체 모를 화상이 삽입됩니다. 문제의 변칙성은 이것을 시청한 사람들이 그 소음과 유사한 환각, 환청에 시달림을 말하게 되는 것으로, 보고서에는 "기록 ███-JP_(번호)" 형식으로 이 SCP에 관한 다양한 조사 자료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이하는 SCP-███-JP에 관해 제가 아는 이야기라는 것으로 치겠습니다.

제가 후쿠오카현의 민담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은 약 10년 정도 전의 일이었습니다. 학술적인 흥미가 있다는 그런 고상한 이유가 아니라, 어떤 이유였냐 하면, 어딘가 괴담이 뒹굴고 있지 않을까 그런 세속적인 속물근성이 근저에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인터넷에서 후쿠오카 지방의 민속어휘 등을 수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이윽고 그 주변에 갈 일이 생겼을 때 몇 가지 아다리를 맞춰 근처의 신사나 민속자료관에 들러보기도 했습니다. 남의 눈으로 보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못 보던 얼굴의 손님이 와서 민속자료와 지방의 전설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죠. 그러나 어느 지역에도 말하기 좋아하는 분들은 일정 수 계신 것으로, 고맙게도 수십 분에 걸쳐 몇 가지 기담을 들려주거나, 신사 안쪽에서 예스러운 책 따위를 꺼내 주시는 등 정중하게 대응받는 일도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민속학 답사를 온 학생이나 뭐 그런 것으로 오해받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몇 년 전, 한 작은 신사에서 사람 좋게 늙으신 대머리 신주님에게 여우에게 홀린 남자의 골계담이나, 해안의 큰 바위로 변해버린 해녀의 슬픈 이야기 등 가지각색의 이야기를 듣던 때의 일입니다. 오랜만에 맞는 손님이라 기분 좋게 말하던 그 노인의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이야기는 차차 그의 신세타령이 되어갔습니다. 듣자하니 그는 수십년 전에 부인을 잃고, 아이도 없어서 혼자서 신사를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경우 무녀를 아르바이트 등으로 고용하지 않느냐 물어보았는데, 요즘은 어느 가정이나 모두 바빠서 그런 신사 관리를 위해 일하려는 사람이 좀처럼 없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무녀는 월경을 하는 동안에는 그 직업내용이 제한된다고도 하지요. 그래서 오래된 신사에서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분만 고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으니, 분명히 그런 경우라면 대다수의 여성이 사회에 진출해 일하는 요즘 시대에 신사에서 무녀로 일하겠다고 나설 분들은 드물지요. 저는 그의 주름 많은 얼굴을 보면서 말을 듣는 데 전념했습니다.

부인의 사인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고, 저도 묻지 않았지만,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나오는 표현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 그 마음, 정신에 관계된 일이 아니었을지 저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름도 모르는 고인에 대해 함부로 깊이 탐색할 권리 따위 저에게는 없기에, 그렇게 느끼기에 이른 요인 등을 상술하는 일은 여기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아주 친절하고 마음씨 좋은 분이었다 합디다. 신주님이 관리하는 신사는 민사(民社)라 불리는 것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자영업 같은 형태였습니다. 통상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주는 관사(官社)의 경우, 신주가 되기 위해 많은 공부나 실습 끝에 특별한 계위를 수여받거나 하지 않으면 궁사(宮司)가 될 수 없는 것인데, 이에 반해 민사에서는 이 부분이 느슨하여 때때로 가계 중에서 대충 후사를 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좋다 나쁘다 말할 계제는 아니지만, 이 신사도 분명 그런 경향에 있는 바, 즉 그 분은 소위 「신사의 가계」였던 것입니다. 이 시대에 신직, 게다가 (그의 표현 그대로를 빌자면) 「비공식」이 된다니, 처가 측에서 맹렬한 반대를 받았다고 합니다.

최종적으로는 거의 가출하는 형태로 두 사람은 결혼했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생활도 오래 가지 못한 채 부인이 죽고, 마음에 큰 공백이 생긴 듯한 기분 속에서 그는 다시 혼자서 신사를 관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합디다.

그렇게 말하던 그는 방금 전까지 제게 보여주던 두툼한 책을 자기 수중에 돌려놓으며 페이지를 훌훌 넘겼습니다. 『쿠라지 기요』(鞍橋紀要)라고 적힌 그 책은 중후한 장정이 된 민속잡지로, 지금으로 치면 그 정(町)1의 정사(町史)에 해당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곳은 옛날 어디어디의 호농이 나누시(庄屋)2를 지냈었다던가, 병합되기 전에는 이런 이름의 촌(村)3이었다던가 그런 정보도 있었지만, 그 밖에 민화와 전승을 다루는 장도 있었습니다. 오십음도 순서로 그 땅에 전해지는 설화를 비롯한 민속어휘들이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옛날 이야기의 계승이라는 관점에서도 그런 정보를 담은 시사(市史)를 만드는 것이 그리 드물지 않지만, 그 옛날 시대에 민속학(당시에 이런 호칭이 보편화되었는지조차도 잘 모르겠습니다)적 논고를 위해 특별히 장을 할애하고 있다는 것이 나름 신선한 일로 느껴졌습니다.

찾던 페이지를 찾아냈는지, 그가 다시 책을 제게 내밀었습니다. 그곳은 "토(と)"란으로, 「취반가의 일」(取返歌ノ亊 [토리카에시노우타노코토])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그는 말했습니다.

이것이 돌려받는 노래(とりかえしのうた [토리카에시노우타])에 관한 것이라, 먼저 가 버린 마누라를 한 번이라도 불러올 노래였으면 했네.

보아하니 그것은 일종의 강령술 같았습니다. 개중에서도 분신사바(狐狗狸さん) 따위가 아니라, 생구(生口)4나 오키나와 지방의 유타(ユタ)5와 비슷한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돌려받는, 이라고요? 저는 그렇게 물었습니다. 주고받는 노래(取り交わしの歌 [토리카와시노우타]) 라면 들어본 기억이 있었습니다. 후쿠오카 지방에 전하는 혼인의례의 일종으로, 양가의 친목을 깊게 하거나 혼수를 주고받을 때 부르는 축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리 짐을 받아부렀으니 이제 돌려보낼 수 없네(こがん荷物ば受け取るからにゃ、まんご末代帰しゃせぬ)” 그런 가사를 부르면서, 양가 가장이 선창을 메기면 술을 마셔 불그레한 얼굴이 된 가족 전체가 받아서 따라 부르는 모습을, 후쿠오카에 친척이 몇 명 있는지라 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인은 분명히 돌려받는 노래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에 대해 자세히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못박아 두겠습니다만, 이 글에는 몇 가지 거짓말이 섞여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말하는 것을 정확히 재현하더라도 아무 성과를 거둘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되는 것은 미망인 뿐이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미망인이란 요새의 의미처럼 남편 잃은 과부를 가리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의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요점은 부부 가운데 어느 한쪽을 잃은 사람으로, 미망인이란 아직 망(亡)하지 않은 사람,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부부 중 한 쪽이 죽으면 나머지 한쪽도 따라 죽지 않으면 안 된다. 돌려받는 노래 취반가는 그런 가치관이 아직 남아 있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저는 추측했습니다.

미망인은 의식에 앞서 몇 년간 머리터럭을 자르지 않고 계속 기릅니다. 적당한 시기, 즉 돌이키기에 족한 모량이 되면 머리터럭을 다 밀고 돌려받는 의식에 사용합니다.
길게 기른 머리터럭을 두 개의 다발로 나누고, 그것을 새끼처럼 꼬아서 시메나와(注連縄)6를 만듭니다. 시메나와는 새끼를 꼬는 방향이 오른쪽(반시계방향)인가, 왼쪽인가(시계방향)인가에 따라 의미가 바뀌는데, 이 의식에서는 죽은 것이 여성일 경우 오른새끼, 남자일 경우 왼새끼를 만듭니다. 시메나와가 시계방향인 것은 태양의 순행을 나타내는 것으로 남성적인 힘을, 반시계방향일 경우 거기에 대응하는 존재, 즉 달을 나타내 여성적인 힘을 나타낸다는 것은 신도학에서도 자주 듣는 이야기이므로, 이것도 그런 이야기와 관련된 것일지 모릅니다.

저는 그의 머리에 시선을 향했습니다.
신주는 신도의 전승자. 불교의 승려와 달리 삭발의 의무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머리는 부자연스럽게 벗겨져 있으며, 면도칼에 베인 듯한 붉은 상흔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습니다.

시메나와를 준비했으면 그것을 걸어놓을 것도 마련해야 합니다. 이 경우 그것은 손수 만든 작은 토리이가 되겠습니다. 토리이의 주재료는 고인의 묘석과 유골이 일반적이라 합니다. 립목(笠木)과 상인방, 그리고 두 개의 기둥만으로 그것이 토리이라고 판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만 맞추면 되는 듯, 그래서 장식적인 명신토리이(明神鳥居)가 아닌 심플한 신명토리이(神明鳥居)7를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문(鬼門)8 방각으로 매듭을 만든 후, 그 매듭을 태움과 동시에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노래의 곡조는 못 들었지만 그 가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아간미마케바타마요비스루냐(あがんみまけばたまよびするにゃ), 케리요케리요토츤보가미(けりよけりよとつんぼがみ)”
이렇게 부르면 그 사람 안에 배우자의 어령(御霊)이 빙의하고, 다양한 환각과 환청의 형태로 자신의 의사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실시할 기회는 일생에 한 번 뿐이며, 만약 여기서 빙의에 실패할 경우 두 번째는 없다고 합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두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첫 째는 이 가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 케리요(けりよ)라는 말을 저는 전혀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만, 무슨 의미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좀전과 변함이 없는 상냥한 말투로 노인은 금방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한자로 쓰면 「귀의」(帰依)이며, 즉 신에게의 귀의를 나타나는 것이랍디다. 귀의의 훈독 카에리요루(かえりよる)가 와전되어 "케리요"가 되었다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질문입니다만.
부인께서 뭐라고 말씀을 하시던가요.

노인은.
능악(能楽)의 각시탈9처럼 아주 섬짓한 미소를 지으며 제게 말했습니다.
「오지마(くるな)」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아마 그런 말을 했다고 기억납니다.
해가 진 신사를 떠나기 직전, 노인은 처음과 다름 없는 미소로 제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또 이 영감의 말벗이 되어 주게.
예에. 또 언제 이 근방에 오면 만나뵈러 옵죠.

그리고 나는 그 노인을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제가 아는 SCP-███-JP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걸 여러분이 어떻게 읽게 되었는지 모르겠고, 저로서는 가능하면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이 본심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글을 쓰기에 이르렀는가. 그것이 마음에 켕기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네요.
그것은 사실 이 일을 경험하고 몇 년 뒤. 즉 지금. 이 이야기에 대해 약간의 진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진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뜻밖에도 저는 큐슈지방에 대한 민간신앙이나 민화, 즉 민속학을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역시 이 체험이 머리를 스치더군요. 그래서 다시 한번 그때의 일을 재조사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주로 “케리요”라는 말에 대해서였습니다. 그 설명을 들었을 때 느꼈던 위화감을 도저히 지울 수 없어서 갖가지 민속어휘사전과 민속학지를 뒤졌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케리요라는 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귀의는 불교용어기에 종교영어사전도 찾아 보았는데 그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이르러 저는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습니다.
신도의 전승자인 신주가 불교 용어를 쓰는 의식을 할 리가 없잖아?

저는 한 대학에서 종교학 비상근강사를 하는 분에게 연락을 해서 제가 경험한 것에 대해 의견을 물었습니다. 의견 자체는 다양하게 나왔지만, 그것만으로 무언가 의문이 해결되는 일은 없었고, 솔직히 결과적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그 강사가 한 이 말이 지금도 제 머리 속을 친친 감고 있습니다.

「취반가라니. 그딴 건 무엇보다 신도적으로 생각해서 의식이 맞지가 않아. 원래 일본 전통의 영혼관은 유령이나 귀신을 공포영화처럼 겁먹고 기피하는 게 아냐. 경외하면서 멀리하는 것이지. 그런데 그런 어령을 일부러 이승으로, 그것도 신주가 불러낸다니 있을 수가 없어. 그 사람 정말 신사 사람 맞아?」

이후 저는 그 장소를 다시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찾아간다고 해도 그 노인과 다시 얘기할 생각은 역시 들지 않았지만, 적어도 신사를 먼발치에서 보기만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한번 가 본 적 있으니 잊혀지지 않았지요. 하지만.
몇 번을 찾아봐도 거기에는 신사 따위는 없었습니다.
예전에 거기에 그런 시설이 있었던 사실도 전혀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제가 앞서 말한 「진전」 중 하나입니다. 사실 여기서 붓을 놓을 생각이었지만, 사실 불과 며칠 전에 한가지 더 커다란 진전이 있었습니다.
앞서 밝혔다시피 다시 찾은 그 주소에는 신사도 그 노인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소에서 저희 집으로 소포를 보낸 것입니다.
긴 고민 끝에 저는 그 소포를 뜯었습니다.
그 안에는.
한 개의 비디오테이프가 있었습니다.

이상이 「이전에 들은 그런 금기 중의 하나 혹은 여럿을 최대한 희석해서 묘사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끝입니다. 여기까지 독파하신 분, 정말 감사합니다.
몇 번이나 말씀드린 것과 같이, 지금까지의 이야기에는 몇 가지 허구가 섞여 있습니다. 그 허구들은 정도도 규모도 크고 작게 다양하므로,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않기를 권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읽어 주신 분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그 중 가장 큰 허구의 일부를 여러분에게 제시하고 싶습니다. 이는 이 문장 뿐 아니라 다른 부분에 관해서도 거짓말이니, 만약 제가 말한 이것들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고 싶다는 분이 계실 경우 가르쳐주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하의 내용은 지금까지 읽으셨을 글과는 다른 것이 되므로, 특별히 궁금하지 않다 하시는 분은 여기서 열람을 종료해도 전혀 상관 없습니다.

만일 이대로 열람을 계속하려는 분에게는 다음 세 가지 주의사항을 일러드립니다.

첫째. 이 글의 원인이 된 이야기는,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린 듯한 「말 해서는 안 되는 류의 괴담」 그 자체였습니다. 그럴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쓰고 있지만, 만일 당신이 고찰의 끝에 무언가 알아차려 버렸을 경우, 몇 번이나 일러드리는 것이지만, 그 이상 파고드는 것은 삼가해 주십시오.

둘째. 제가 지금부터 보여드릴 것은 제가 한 거짓말 중 「일부분」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라고 썼지만 그것은 거짓이고 사실은 ××였습니다」 처럼 정중하게 쓴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을 기대할 경우, 그 기대에 응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셋째. 지금부터 보여드릴 정보는, 적어도 지금까지 읽으신 문장의 본 줄거리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더 읽는 것은 정말로 당신의 자기 책임이며, 더이상 읽지 않아도 지금까지 읽은 글의 근간은 바뀌지 않습니다.
이상 세 가지를 이해하면서 열람을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로 쭉 내려 주세요.












































죽어 死ね










しん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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