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있는 곳

karkaroff 2021/8/2 (월) 19:12:19 #72416532


추억 돋는 옛날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 아직 성인에도 못 미친 틴에이저였을 시절의 시덥잖은 이야기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일본에 있었다. 여름방학 시즌이라 친척과 심령스폿에 나가 보거나, 이런저런 괴한 아르바이트를 숙부에게 소개받아 친구와 담력시험 겸 용돈벌이를 하면서 놀았다.

숙부는 나름 작은 부자였고, 이 담력시험 겸용의 시덥잖은 일거리들은 좋은 벌이가 되었다.

숙부는 저당이 잡히거나 소유자가 없어져 경매에 부쳐치게 된 그런 토지를 사서 되파는 좋은 취미의 부동산업에 손을 대고 있었고, 토지를 이래저래 이용할 수 있도록 사전준비를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그런 일을 시켰고, 어째 1주일 정도 가구조차 거의 없는 빈 집에서 숙박하게 되거나 하는 그런 괴한 일들을 이래저래 받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 중 하나다.

karkaroff 2021/8/2 (월) 19:21:51 #72416532


Karuizawa%2C_villa%2C_classic-car.jpg

분위기는 이런 느낌이이었다.

그 건물은 대수롭지 않은 별장지에 있었다. 소유자가 없어진 지 50년이 지났다던가 어쨌다던가 해서 저당잡힌 물건이 있었는데, 거기를 고쳐 청소하고 새 별장으로 팔아먹기 위한 준비를 한다고. 우리는 청소랑 사진촬영이나 그 밖에 이것저것, 전문가들이 들어가기 전의 사전준비에 투입되었던 것이다.

당시, 나와 친구 두 명과, 작업을 지시하는 숙부의 회사 사람, 그리고 오랫동안 토지를 관리해왔다는 별장지 관리인 해서 다섯 명이 들어갔다. 문제의 저택은 소유자가 없었는데, 소유자였던 남자가 어째서인지 사라진 후, 계약과 유언에 따라 남은 그의 자산에서 관리비와 고정자산세는 계속 지불되어 왔다……는 경위로 비교적 깔끔한 편이었다.

그러다 관리비가 떨어졌기 때문에 이 토지는 자산관리인과의 계약에 의해 경매에 내놓아졌고, 매매가가 최종적으로 자산관리자에게 납부되면 계약이 만료되게 되었으므로, 계속 토지를 관리해온 지 10년째라는 관리인은 겨우 어깨가 가벼워졌다는 분위기를 전신에서 발산하고 있었다.

계약에서 해방되었다……라기보다도 이 토지 자체로부터 해방되어서 기쁜 것 같은 개운한 얼굴에 위화감을 느꼈지만, 이 때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저택을 탐험하며 이것저것 사진을 찍고 기록하거나, 그런 일을 하면서 보내는 탐험여행 같은 일에 들떴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괴이하게 여겼어야 했다. 젊을 때라 그랬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참…….

karkaroff 2021/8/2 (월) 20:20:20 #72416532


시덥잖은 모험여행은 이박삼일 스케줄로 되어 있었고, 그 중 대부분을 이 별장에서 지내게 되었다. 라고 하지만 관리가 계속 이루어진 만큼 먼지로 더러워진 방은 있어도 붕괴될 염려는 없는 것이었고, 주인이 실종된 저택을 호기심과 용돈에 눈이 먼 욕망의 눈으로 돌아다니게 되었다.

레지던트 이블이었나, 그거 1편을 떠올리고, 거기서 기묘한 장치들만 제외시켰다는 대체로 그런 느낌이었다. 레지던트 이블의 건물을 엄청나게 스케일 다운하고 연구소와 기숙사를 없애면 딱 그 집이었다.

다만 구태여 말하자면 항상 기묘한 기미가 따라다니고 있었던 것 같은 게, 그 원인은 3가지였다.

첫번째는 여기저기에서 발견되는 손톱자국이었다. 뭔가가 할퀸 듯한 흔적이, 모두 눈 높이에 있었다. 서재에 응접실, 침실에서 오락실까지 곳곳에 5-8인치 높이에 뭔가로 할퀸 듯한 기묘한 흔적이 몇 군데나 발견되었다.

관리인 노인네가 말하기로 동물이 침입했던 흔적도, 사람이 빈번히 머물렀던 적도 없는데 서서히 늘어왔다고 이야기하며, 고개만 갸웃거리는 노인에게서 까닭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두 번째는 구조의 위화감. 그럭저럭 넓은데도 묘한 폐색감이 있는 방들이 몇 군데나 있었다. 충분히 넓이가 있는데도 숨이 막히는 듯 했다. 창문이 붙박이로 되어서 열리지 않는 방, 열리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어 환기가 고작인 게스트룸. 마치 무언가를 “내보내지 않도록” 설계된 것 같았다.

3번째, 이것이 가장 알아차리기 쉬운 위화감이었다. 기둥 사이의 한 칸이 커다란 빗장에 쇠사슬, 단단한 자물쇠로 잠겨 열리지 않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위험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당시의 나는 심령스폿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오컬트 오타쿠였다. 지금 와서야 이렇게 쪽팔린 이야기이지만……, 들떴던 것이다.

karkaroff 2021/8/2 (월) 20:29:29 #72416532


이 저택에 오고 나서 첫날 밤. 저녁식사를 마치고 한가해진 친구 두 명이 말을 꺼냈다.

「그 저택 안쪽에 열리지 않는 칸, 밤중에 열어서 탐험하자!」

「염매인지 뭔지 있을런지, 찾아서 정말 뭐기 있는 것인지 열어보자!」

확실히 흥미가 있었다. 관리인에게 그 열리지 않는 칸의 열쇠도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헛되이 낡은 열쇠뭉치도 받아두었었고, 무엇보다 오컬트 씹덕적인 무언가를 수신한 것도 있었다. 숙부의 회사 사람이 먼저 잠들자 그 사람을 내버려두고 우리 셋이서 문제의 열리지 않는 칸으로 향했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지 못한 채……

karkaroff 2021/8/2 (월) 20:40:01 #72416532


ASTOR_LIBRARY_%28TOWER%29%2C_MANTEL%2C_LOOKING_NORTHEAST_-_La_Bergerie%2C_River_Road%2C_Barrytown%2C_Dutchess_County%2C_NY_HABS_NY%2C14-BARTO.V%2C2-42.tif.jpg

이런 느낌의 방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쓸데없이 튼튼한 자물쇠를 열고 빗장을 제쳤다. 쓸데없이 단단하고 연식이 오래 된 문이 보잘것없는 저항으로 우리들의 애를 태웠지만, 결국 기기이 하는 싫은 소리를 내며 서서히 우리에게 항복의 뜻을 표시했다.

먼지와 곰팡이와 싫은 공기를 내쉬며 봉인에서 해방된, 그 답답하게 열리지 않은 기둥사이 칸의 정체는 서재였다.

조명은 없었고, 회중전등과 복도 불빛을 의지해 방 안을 들여다보니, 방 중앙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너덜너덜한 책상이 하나, 엄청나게 먼지를 뒤집어써서 건드리기도 망설여지는 책장과 옷장이 나란히, 그리고 방 가장 안쪽에는 천이 덮인 거울이 놓여 있었다.

봐서야 그냥 서재처럼 보였지만, 방 중앙에 놓인 책상, 그 위에 놓인 것만이 이채를 띠고 있었다. 네모낳고 이음매가 없는 블록 같은 무언가가 하나, 덩그러니 책상 위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보기에는 한 편이 십몇 센티 정도 되는 나무상자였고, 먼저 들어간 친구가 손에 들어 보니 대그락대그락 하면서 뭔가 속에 들어 있는 듯한 작은 소리가 났다.

「있다, 있어, . 분명히 이거, 저주의 아이템이다. 열어 보자」

「그거 속을 들여다보면 저주받는 그거잖아! 부숴 보자! 분명히 재미있는 걸 볼 수 있을 거야」

친구 둘이가 그렇게 약탈자 같은 만행을 벌일 것 같아서, 나는 그것을 부드럽게 말렸다. 어디서 그랬더라, 군자는 위험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나는 다음 날 숙부의 회사 사람에게 어떻게 할 지 들어보고 문제가 없으면 부숴보자고 제안했고, 친구들도 마지못해 내 말을 따르려는 것으로……,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우리는 방에 있는 책장이나 거울이나 기타 잔류물들을 뒤져보고, 그 밖에는 달리 그럴싸한 재밋거리가 없음을 확인하고 잠들었다. 적어도 나는 그럴 생각이었다.

그리고, 공포가 시작되었다.

……호러물을 보면 꼭 나오는 말 안 듣는 젊은 놈들, 그것은 정말로 실재하는 것이다. 친구들은 말을 듣지 않고 내가 잠든 뒤 그 상자를 ”열어”버렸다.

karkaroff 2021/8/2 (월) 21:33:03 #72416532


아침에, 그 관리인 노인과 숙부의 회사에서 나온 사람이 나를 깨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해가 다 뜨지 않은 여명의 시간대에 나는 절반 정도 잠에서 덜 깬 상태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황급히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두 사람에게, 나는 뭐가 뭔지 전혀 모른 채 눈을 비비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른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내 친구 두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저택을 뛰어다니다 결국 현관을 열고 어딘가로 뛰쳐나갔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봤는지, 무엇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난리법석을 떨었다는 두 사람도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일단 경찰에 연락한 뒤, 방에서 숙면하고 있던 나를 깨워 뭔가 일어났는지 뭔가 알지 못하는지 확인하려 했다고.

나는 열리지 않은 사이 칸과 나무상자 이야기는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야 상세히 상담하자고 했기 떄문에 그 앞의 이야기는 당연히 하나도 알지 못했다. 다만 확인을 위해 문제의 열리지 않은 사이 칸에 들어가 보았더니, 문제의 나무상자가 있던 장소에는 뭔지 모를 뼛조각들이 여럿 흩어져 있었고, 어젯밤 잠들기 전에 보았던 상황과는 크게 바뀌어 있었다.

바닥에도, 책상에도, 그야말로 누군가가 못된 장난으로 흩뿌린 듯 그 조각들이 흩어져 있고, 문제의 나무상자는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다.

karkaroff 2021/8/2 (월) 22:12:02 #72416532


결론부터 말하자면, 친구들은 잠시 후 저택에 찾아온 경찰 순찰차를 타고 회수되었다. 길가에 털썩 주저앉아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있는 그들을 데리고 왔다는 경관의 말로는, 무언가 무서운 것으로부터 도망쳤다는 둥 어쩌고저쩌고 떠드는 상황에서 착란하고 있었기 떄문에, 한 번 확인하기 위해 순찰차에 태워 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페트병 한 병 들이의 차와 과자빵 몇 개를 처먹고 부활하여, 전후사정을 이야기했다.

내가 잠든 뒤, 둘은 게스트룸을 벗어나 문제의 열리지 않은 사이 칸에 들어가서, 나무상자를 어떻게 열 방법이 없는지 이것저것 시험해본 것 같다. 두드려 보아도, 이음매를 찾아 보아도, 흔들어 보아도 열릴 기색은 없었고, 1시간 정도 씨름한 끝에 그냥 자자는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방을 나서려고 하니, 그 방의 거울에 머리 없는 스켈레톤이 입구에 서 있는 것이 비쳤다……고 한다. 대그락대그락, 대그락대그락, 머리가 없는데도 그 해골은 웃으면서 다가왔고, 공포에 질려 스켈레톤을 들이받으며 달아났고……, 정신을 차려 보니 경찰에게 잡혀 보호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해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대그락대그락 하는 소리는 계속 쫓아왔고, 지금도 어디선가 해골이 보인다고 그들은 쥐어짜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 둘 이외에는 해골으이 모습을 본 사람이 없었고, 경찰관은 마약을 탄 술을 마시고 환각을 봤다고 의심하는 지경이었다.

아무튼 더 이상 일을 계속할 수도 없어서 우리는 저택에서 빠져나갔고, 적당히 이러저러한 보고서와 사진을 제출하여, 무사히 ”벌이 좋은 아르바이트”는 종료되었다.

친구들은 그 뒤로 딱히 해골에 시달리거나 하지 않고, 지금도 원기 좋게 심령스폿을 다니거나 괴담을 나누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저택은 무사히 매각되었고 관리인 노인도 역할에서 해방되어, 지금은 어딘가의 중국인이 별장을 토지째로 사들여 ”유효활용”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 집에서 기묘한 분위기를 느꼈고, 뼈가 흩어진 흔적을 보았다. 친구들은 해골에게 쫓겼다. 관리인 노인은 아무 이야기도 없으니, 이야기는 어둠 속에 가라앉아 다시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 이건 예전에 숙부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 때, 방에 흩어져 있떤 뼛조각들……, 아무도 청소하지 않았는데 깔끔히 사라져 있었다……는 것이다. 나무상자도, 뼛조각들도, 아니 애초에 나무상자가 놓여 있던 그 책상까지, 모두 깔끔히 없어져 있었다. 다만 책장과 거울이 있는 서재만 거기에 남아 있을 뿐이라, 숙부는 우리가 보고서에 장난을 쳤다고 의심까지 한 것 같다.

그 상자에 흩어져 있던 뼈, 열리지 않는 사이 칸에 봉인되어 있던 그것들은 해방된 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어쩌면 지금도 아직……, 그 저택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배회를 계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