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적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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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잘못되었다.

할 조던은 가운뎃손가락에 낀 반지를 톡톡 두들기며 자신 앞에서 굼뜬 동작으로 서류를 찾고 있는 데스크 직원을 노려보았다. 평범한 날인가 싶었다. 평범한 날이었고, 평범한 아침, 오후를 넘어 평범한 저녁이 될 터였다. 이 데스크 직원이 삼십 분째 할의 회의실을 찾지 못하지만 않았어도. 박사의 내면에서 삼십 분째 가열된 짜증이 마구 열불을 내고 있었다. 일반 사무직의 고용 기준이 어떻게 되는 건지, 또 급여는 정당한지에 대한 순도 높은 학구열이 불타오르기도 했다. 직원의 상체가 데스크 아래서 올라오더니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조던 박사님. 기록이 전혀 없어요."

그는 화를 잘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감정을 쉽사리 드러내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화가 날 때면 눈썹 근육이 자유자재로 작동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무서운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 동작에서 조던 안의 모든 홧증과 열불이 느껴지곤 했으니까. 할이 입을 열어 말했다.

"공학 기술 지원부 기록은요?"

"없었어요."

"과학부는요?"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외교부?"

역시 없음. 할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제 이메일에서는 제가 분명히 회의에 참석해야한다고 적혀있었습니다만."

직원이 더욱 주눅이 든 모습으로 재차 확인되지 않는다고 말랬다. 돌겠군. 할 조던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자네 여기서 뭐 하나?"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박사는 등을 돌려 뒤에서 말을 걸어온 남자를 쏘아보았다. 달갑지 않은 상대였다.

"그레이브스, 자네가 상관할 일은 아닐세, 신경 써주어 고맙긴 하네만…"

그레이브스라고 불린 사내가 빙긋 웃었다. 두 사람은 많은 면에서 대조적이었다. 말쑥한 키에, 전문적이고 냉철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상, 날렵한 몸매의 할과, 키는 커도 구부정한 자세 때문에 그렇게 보이지 않고, 보헤미안적이고 능글맞은 분위기, 영양 불균형의 예를 몸소 보여주는 그레이브스. 그리보면 당연한 일인지, 두 사람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에 빗대어 보면 그레이브스가 조던을 먼저 부른 일은 예삿일이 아닌 셈이다. 당연히 예삿일은 아니지. 할은 엄지로 반지를 어루만졌다. 비웃으려 할 속셈이겠지. 보나 마나.

할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자네가 미아가 되었단 소식이 들려오더군그래. 자네답지 않게 40분(그레이브스가 분명 비열하게 웃었다.) 일찍 오지 않았다 하던데."

"그래, 회의실이 어딘지 몰랐어."

그레이브스가 다시 빙긋 비웃듯 웃었다.

"이쪽일세."

"잠깐, 자네도 그 프로젝트에 참가하나?"

그레이브스가 의아한 듯 박사를 쳐다보았다.

"시트라 아크라? 그래."

"자네가 왜?"

"자네가 왜라니, GOI 전문가도 몇 필요할 것 아닌가."

조던은 미간을 찌푸렸다. 맞다. 그는 GOI 전문가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그도 분명 전향자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그레이브스가 싫었다. 누구보다 변칙을 옹호했으면서 수가 틀어지자 그걸 팔아 잇속을 챙기려 하는 자. 그것이 속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차라리 끝까지 제 자리를 지켰다면 명예로웠으리라. 아무리 혐오스럽게 있었다 하더라도. 할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은 채 그레이브스의 뒤를 따랐다.

회의실은 B3 층. 기밀처리 되어서 온 이메일에 적혀져 있었다고 했다.

"난 못 받았는데."

"잊어버린거겠지."

"난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아."

할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정말이었다. 그가, 누구보다 꼼꼼하다 자부하는 그가 이리도 중요한 걸 잊었을 리가 없다.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조던과 그레이브스는 조심스럽게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회의실 안은 수십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작은 멀었지만, 할은 사람들의 말 사이에 숨은 열기에서 이들의 준비도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는 재빨리 착석해 놓인 배포물을 읽기 시작했다. 그레이브스도 설렁설렁 그의 옆에 앉긴 했지만, 읽진 않고 제목만 들여다보았다.

"<CASE-10132 "사르킥 명화 도난">…"

십분 뒤 기다란 탁자에 사람들이 모두 착석하자, 회의가 시작되었다. 먼저 시트라 아크라 프로젝트에 소속되어있는 요원이 발표를 시작했다.

"몇 시간 전 테네시 주 인근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제보를 받고 지역 경찰로 위장한 재단 인원들이 출동했습니다. 피해자는 브란트 제약회사 CEO 에드윈 브란트 4세와 그 식솔들 일부. 평소 사르킥교도로 의심받던 사람인데, 그래서 평소 정보국 준요주의 인물 리스트에 올라 있었죠. 크리켓가이 의료 실장님, 부검 기록에 대해 조원 여러분께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한 젊은 남자가 서류 뭉치를 한 손에 들고 일어섰다. 할 조던의 시선이 그의 옆에 앉아 있는 역시 젊은 여자와 실장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 한 남자에게로,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남자에게로 향했다. 제27기지 인원들이었다. 여기까지 오다니. 프로젝트의 범위가 생각보다 큼을 증명해주는 셈이었다. 그는 시선을 다시 실장의 날카로워 보이는 얼굴로 옮겼다.

"살해수법은 장기의 급격한 비대화로, 사르킥적인 행위, 혹은 변칙예술가의 예술에서 나타나는 반응이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피해자의 체내에서 최면제가 소량 검출되었고, 일부 신경에서 정신재해로 인한 상처로 추정되는 것들이 발견되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한 사항이긴 합니다. 다른 식솔, 이를테면 경호원 두 명, 가정교사로 추정되는 여자 한 명, 요리사와 가정부들의 사인 역시 동일했습니다."

"아까 식솔 일부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생존자가 있나요?"

"브란트의 딸이 있었죠."

할이 질문하자 실장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순간적으로 굳은 표정이 지나갔다. 옆의 여자가 옆구리를 쿡 찌르자 실장은 갑자기 자기가 어디 있는지 자각한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집 안 깊숙이 위치한 옷방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발견 당시 경미한 공황 상태에 빠져있었죠. 아버지를… 찾았는데, 그냥 데려갔습니다. 아니, 정황상 정신재해 따위의 위험에 처해 있을 가능성이 높아 재단 의료부에서 심문과 치료를 목적으로 그 아이를 데려갔습니다."

실장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CCTV나 그런 영상물은 없나요?" 누군가가 큰 소리로 물었다.

"영상은 거의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히 망가져 있었습니다. 현재 재단 과학부에서 정신재해나 밈 따위의 방어기제를 해체하고 복구작업에 돌입해 있는 중입니다. 음성은 있죠."

요원은 어떤 음성 파일을 열었다. 파일에서, 남성이 뭐라 뭐라 애원하고 있었다. 조금씩 잡음이 섞여 들리지 않는 소리 속에서 할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림'이었다. 감정적인 어조였다. 뭘 도난당했다고, 또 다른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말했다. 처벌이라는 단어가 귀에 꽂혔다. 그리고 비명.

"본 음성 파일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그림'이 뭔지, 그 정체를 찾다 보니 몇 달 전 브란트의 거래 명세에서 이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수집하던 미술품의 일부인 것 같더군요. 참고하실 분은 SCiPNET 기록 보관소 페이지에서 거래 명세를 확인해주십시오. 음, 기부 항목에 넣어져 있었네요."

"뺏었네."

좌중에 낮은 웃음이 깔렸다. 할은 웃지 않았다. 웃기지도 않을뿐더러, 이딴 농담을 던질 인간은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헨리 그레이브스. 그는 옆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를 애써 무시했다. 요원이 말을 이었다.

"담당 인원들이 당초 그 그림이 위치해 있다고 추정되는 자리를 분석했는데, 액자만 남아있고 주위엔 몇 가지 풍선 재질의 고무 쪼가리밖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남성의 의무가 저 그림을 지키는 것이었는데 누군가에게 도둑을 맞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 처벌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보이고요."

"근데… 도둑을 맞은 게 맞을까요? 그 최면제 따위를 사르킥 고위 인원들이 투여했을 수도 있잖습니까. 저 그림이 그 그림인지도 모르고요."

어떤 요원이 묻자 나이를 조금 먹어 보이는 박사가 대답했다.

"도둑을 맞거나 분실한 게 옳을 듯합니다. 아까 크리켓가이 의료 실장이 말한 바를 토대로 보면 벌루타르, 혹은 사르키스트 정도나 되는 사람이 굳이 최면제나 정신 재해를 이용해 사람을 고문할까요? 그들의 주 무기인 혈술과 애완 생물체들이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의료 실장, 그 성분이 얼마나 오래 침전해 있던 거죠?"

"발견된 시각으로부터 적어도 2주는 되어있었죠."

"그렇습니다. 타인이 투여할 가능성이 높죠. 도둑을 맞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건은 뭘 말하는 것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사르키스트나 벌루타르같은 인간들이 강제로 뺏고 죽이는 장면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습니까?"

"아니요, 사르킥교는 생각보다 계급 사회적 성향이 강합니다. 적어도 계급 변동이 쉬이 일어나지는 않지요. 더불어 투쟁 역시 놀랍도록 적습니다. 기타 다른 종교들에 비해서는요. 다시 말해 고위층 누군가가 무언갈 원하면, 대부분 '기꺼이' 제공할 겁니다. 강제는 아니지요. 그리고 그림에 관한 건, 우리가 현재까지 확인한 에드윈 브란트의 수집품 가운데 사라진 것은 그 '그림'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종합해보자면 우리가 말한 그 그림을 제삼자가 가져갔단 이야기가 되겠군요. 나다나란 요원, 영상을 틀어주겠나?"

요원이 영상을 트는 동안 박사는 다시 말을 이었다.

"주변 CCTV는 살해 시각에는 역시 먹통이었으나, 최면제와 정신 재해가 일어났다 여겨지는 시각에는 아직 데이터가 남아 있었죠."

카메라는 숲속에서 일렁이는 형체를 잡고 있었다. 이 상태에선 아무것도 식별할 수 없다. 그냥 형체일 뿐이다. 카메라도 그걸 알아챘는지 줌인을 시작했다. 그러다 저 멀리서 날아온 풍선에 맞고 그대로 터진 풍선의 잔해에 가려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한다. 암전.

"이 상황에서 어떤 걸 알아볼 수 있으시겠습니까?"

침묵.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던 역시 피어오르는 궁금증에 눈썹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떠오르는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그는 손을 들고 말했다.

"글쎄요, 일단 명확한 건 세 가지네요. 첫째, 이 도난 사건은 계획된 것이다. 둘째, 도둑은 변칙 현상 혹은 물체에 웬만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그 사용에 능하다. 셋째, 도둑은 풍선과 어떤 관련이 있다."

"너무 당연한 소리 아닙니까?"

젊은 연구원이 물었다. 척 보니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할은 그런 이들이 좋았다. 자만감에 찌들어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조차 모르니까.

"당연한 소리를 해서 명제를 깔고 가는 것이 기본입니다, 웰스 연구원. 기억하기론 당신의 SCP-████-KO 보고서가 그런 명제조차 소거하고 작성해 한 번 거절당한 것으로 아는데."

젊은이의 입가가 파리해졌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내가 그걸 거절했거든요. 그 프로젝트의 팀장이 나였으니까."

연구원의 입가가 더욱더 파리해졌다.

"그래서 어쩌라는거요?"

저 앞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지 알 것 같았다. 할은 시선을 돌려 그를 응시라고 있는 번드르르하지만 험상궂게 생긴 사내를 쳐다보았다. 포 안셴 버크너 연구원이었다.

"저 떠버리는 집어치우고 요점만 이야기하쇼, 조던 박사. 피차 바쁜 몸 아니오?"

웰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박사는 차가운 눈길로 버크너를 쏘아본 다음 말을 이었다.

"이때 '기본적인' 가능성은 두 가지인데, 내부자의 소행이냐, 아님 외부자이냐죠. 로우 박사님께서 이미 고위층 내부자의 가능성은 말소해주셨으니, 비슷한 계급만 살펴보면 되겠죠. 하위 계급이라도 굳이 본교의 배척까지 받아서까지 뺏을 이유는 없을 겁니다."

그를 마주 보고 있던 요원이 물었다.

"만약 배척을 받는단 사실을 몰랐다면요?"

"그럼 풍선의 존재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할 이유가 없고요."

"그럼 외부자라면 어떤 POI, 혹은 GOI가 개입했다고 보시는지요?"

저 멀리서 질문이 들려오자 할은 딱 잘라 말했다.

"이다음의 논의는 제게 있어 유비추리의 영역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상입니다."

"그럼 제 의견을 살짝꿍 드러내도 될는지요?"

조던은 그레이브스를 멍하니 응시했다. 일어난 것까진 좋았지만… 이 작자는 무슨 말을 할지 모르니까. 좌중이 완전히 조용해지자 그레이브스는 입을 열었다.

"저 역시 그놈의 유비추리가 진리에 다다르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니라는 의견을 갖고 있긴 하나, 어쩌겠습니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워야지. 좋아요, 여러분. 생각해봅시다. 조던 박사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이 범죄는 계획되었고, 변칙을 사랑하고, 풍선 페티쉬가 있는 애가 저질렀죠. 잠시만요, 로우 박사님? 이러한 사건이 전에도 있었을까요?"

주디스 로우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게다가 독창적이기까지. 신사숙녀 여러분, 저는 이 사건에서 평소 우리가 또라이들이라고 부르는 GOI의 스멜이 너무나 독하게 풍기는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어떤 요원이 말했다.

"그럼 박사님 말씀은, AWCY나 GAW, 원더테인먼트 따위의 것들이라는 것인가요?"

"네, 그렇죠. 특히나 전 AWCY나 GAW가 이 사건의 주요 용의자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버크너가 다시 인상을 썼다.

"왜 서커스는 뺍디까? 그놈의 풍선, 꽤 그쪽 느낌이 나지 않소?"

"서커스는 결코 독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항상 다 같이, 천막을 치거나 공연장에서 사람들을 꾀죠. 예외라 해야 적고, 대부분 곡마단장 허먼 풀러 정도인데, 이런 일에 있어서야 차라리 납치하거나 대놓고 가져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 양반이 직접 풍선 불고 깽깽이 절고 파이를 던지는 걸 하는 건 아니잖아요?"

포 버크너는 여전히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기에 그레이브스는 특유의 짜증 나는 그 미소를 얼굴에 걸었다.

"그럼, 그레이브스 박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하나로 고르자면?"

로우 박사가 상체를 쭉 피며 물었다. 자못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레이브스의 얼굴에 겸연쩍은 미소가 일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론(버크너가 "저건 회피하려는 수작이야."라고 중후히 중얼거렸다.), AWCY의 소행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풍선이잖아요."

어떤 연구원이 묻자 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대부분 예술이라고하면 그래피티나 유화, 작곡을 생각하지만, 세상엔 변칙존재의 개수만큼이나 예술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풍선 아트일 가능성이 있겠죠."

할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선 말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변칙예술가 특유의 폭력성과 잔인성, 병적인 행위 따위가 발견되지 않았소. 깔끔했고, 완결성도 좋았지. 오히려 사르킥교도의 행위가 훨씬 옳으리라 보이는군요. 더 확률이 높은 걸 찾아보자면, 시카고 스피릿이나 연합 따위의, 전문적 습격 행위라는 의견은 어떻습니까?"

"그렇게 느낄 여지가 있긴 합니다만, 오히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변칙예술가 '특유의'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예술의 종류는 천차만별이고, 이는 곧 예술가의 종류도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주죠."

그레이브스의 얼굴이 순간 경직되었다. 조던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받아쳤다.

"하지만 AWCY의 전체적인 양상은 공격적이고 병적입니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생명들이 죽습니다. 비변칙적이고 물정 모르는 생명이요! SCP-588-KO 사건으로 내가 뭘 깨달았는데요."

"바로 그거에요!!"

갑자기 그레이브스의 얼굴이 활짝 펴지더니 할의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입은 확 벌어지고 얼굴의 모든 근육이 행복을 형상화해내고 있었다.

"AWCY가 아녔던 거지… 그래, 어딘가 뒤가 구렸다니까. 프리랜서일까? 아마도 그럴 수도 있겠어. 아니라면? 아닌 거지 뭐… SCP-797-KO와 관련 있을까? 그래, 비폭력주의자였던거지… 음, 정말 비폭력주의자일까? 활동 양상을 보면… 아닐 수도 있어."

"그레이브스 박사!"

할이 소리치자 헨리는 그제야 중얼거림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며 외쳤다.

"쿨쟁이들 따위가 아녔던 겁니다! 활동 양상이 달라요. SCP-797-KO의 제작자들과 맥을 같이 하는 놈들 중 하나겠죠. 하지만 그 구름의 제작자들과는… 조금 다르군. 조금 더 폭력적이고… 조금 더 교묘해… 생각해봐요… 미친 것과 미치지 않은 것의 경계에 서 있는 인간. 자신의 병적인 힘을 잘 이해하고…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있는 거지. 의식을 지닌 좀비와도 같은 거야… 이런 놈들이 더 위험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궁금하군요."

그레이브스는 숨을 들이켰다.

"대체 이런 놈들의 머릿속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을지, 그러니까, 정신 상태가 어떨지, 다시 말해, 어떤 놈일지."


광대는 편의점에서 라스푸틴 춤을 추다가 쫓겨났다.


"조던!"

할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레이브스가 구부정하게 그를 따라오고 있었다. 할은 잠자코 그가 다 따라잡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레이브스가 마침내 그 옆에 서자, 박사는 입을 열었다.

"오늘 가설은 흥미로웠네. 자네가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진척없이 회의가 끝나긴 했지만."

"나한텐 좋은 경험이었어. 용의자가 좀 좁혀지긴 할 것 같네."

"자네만 알면 뭐하나?"

그레이브스는 껄껄 웃더니 몸을 바로 폈다. 할은 그의 키에 조금 놀라 하면서도 여전히 냉정한 표정을 유지했다.

"이거 아무래도 즐거울 것 같네."

"뭐, 자네 옛 친구라도 만날 것 같나?"

그레이브스의 입가가 조금 굳어지는 것을 할은 놓치지 않았다.

"글쎄, 만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레이브스는 조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저만치로 앞서갔다. 할은 왠지 그의 등이 굽히기 전보다 더 굽어진 것 같다고 느끼면서, 어깨를 손으로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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