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무진
평가: +3+x

내가 나고 자란 무진을, 이제 떠나려 한다.

한 마디로 무진, 이라 해도 이런저런 곳이 있다. 저 산자락의 찾는 사람 적은 마을부터 저어기 남쪽의 도심, 거기서 다시 산 너머의 작은 포구에서 다시 배를 타고 나가는 섬 몇 개까지, 무진시는 지금껏 그 크기를 키워왔다. 내가 태어난 곳은 굳이 말하자면 무진의 바다라고는 조금도 안 보이는 산자락의 마을 쪽으로, 내가 태어나기 십 년 전쯤 무진시로 편입된 곳이다.

그 마을은 젊은 사람이 드문 농촌으로, 무진 시내까지는 비포장 도로인 탓도 있겠지만 차로 꼬박 30분 이상 걸리는 곳이었다. 마을 풍경은 누구나가 시골 마을 하면 떠올릴 풍경이었고, 다만 누가 무진 아니랄까봐, 매일 새벽 안개가 끼는 것만이 특이했다. 마을 중앙에는 큰 느티나무, 마을 입구에는 장승, 곰이라거나 호랑이가 나왔다던 뒷산, 농가들 외에는 그저 논밭이 있을 뿐인, 어디에나 있을 평범한 마을이었다.

마을에는 안개 끼는 날이면(이래봐야 매일이지만)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던 폐교만이 있었을 뿐, 다른 교육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몇 없는 마을의 아이들은 초등학교부터 무진 시내의 학교를 다녔다. 매일 새벽 아이들이 마을 입구에 모여서, 마을 아저씨의 승합차를 타고는 안개의 도시를 가로질러, 반쯤 꿈 속을 떠돌며 시내에 도착할 때에야 새벽 안개는 천천히 걷히는 것이었다.

안개의 도시라고 하면 바깥 사람들은 신비함, 또는 두려움, 중의 어느 한 쪽을 느끼겠지만, 안개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안개는 그저 생활의 일부였을 뿐이다. 가끔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 있으면 오히려 무슨 일이 있을까 불안하다고 할까. 안개의 도시 사람들은 안개가 아무리 짙어도, 안개 때문에 길을 잃거나 사고를 내는 일조차 없었다. 다만 이제 와서 이상하다고 할 점은, 이 안개의 도시가 조금씩 그 행정 구역을 넓힐 때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 도시의 안개 역시 자신의 구역을 넓힌다는 소문이었다. 그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도시의 확장은 내가 아는 한에서는 내가 태어나기 십 년 전쯤이 마지막이었다.

그 도시에서는 유난히 목숨을 끊는 사람이 많은 편이었다. 매일같이 안개를 떠돌던 지역 토박이들은 아니었지만, 햇빛을 바라보며 살던 바깥 사람들은 그 안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었을까.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이런 뜨내기들을 우리들끼리는 '갈 사람'이라는 식으로 불렀다. 얼마 안 가서 그 도시를 떠날 사람들이라는 뜻이었다. 그 사람들은 삶에서 잃을 수 있을 만한 것들을 모두 잃고 안개에 홀리듯 그 도시에 흘러들어와, 몇 달도 안 지나서 생을 마감하거나 도망치듯이 그 도시에서 나가는 것이었다. 나 역시도 그런 식으로 '그 도시를 떠나는' 사람을 몇 번이나 보았고, 경찰차가 요란스럽게 도로를 달릴 때는 당연히 아, 또 나갔구나, 하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십몇 년 전쯤 내가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가족이 모두 상경하게 되었다. 남아계시던 할아버지도 곧 돌아가시고, 졸업 후 아예 그 주변에서 취업을 하게 되면서 '그 도시'와의 인연은 이미 그 때 끊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귀소본능이라고 할까, 어쩌다 한번씩 '그 도시'를 들르게 된다. 어느 날 훌쩍 떠나서 저녁에 도착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고, 새벽같이 일어나서는 어린 시절처럼 반쯤 꿈 속을 떠돌듯 '그 도시'의 안개를 마음껏 들이켜고 안개가 걷힐 때쯤 되돌아 나오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의미 없는 행동이기는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하는 것으로 마음 한켠의 허전함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그 도시'는 조금씩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지도나 네비게이션에서 '그 도시'가 점차 사라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뭐? 그게 어디야?' 하는 반응이 돌아오거나, '그 도시'와 관련된 책이나 인터넷 글들이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내 호적 상의 출생지는 언제부턴가 이전에 '그 도시'에 붙어 있던 순천시의 한 마을로 변해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 도시'로 가는 길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 길로 가보면 언제나 엉뚱한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공포를 느꼈지만, 또 언제부턴가 이 변화에 대해서 납득하고 말았다. 안개 낀 '그 도시'의 새벽 풍경이 마치 꿈 속을 떠도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도 어느새 '그 도시'의 안개에서 벗어나 햇빛을 보고 사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안개가 걷히자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더라'던 '그 도시' 특유의 도시전설들의 결말처럼, 안개가 걷힌 '그 도시'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나고 자란 '그 도시'를, 이제 떠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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