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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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자면 나는 뱀을 수도 없이 본 적이 있다. 나 자신이 집에서 애완용 뱀을 길렀기도 하거니와, 조부모님 댁이 강원도의 산골에 있기 때문에 매년 벌초를 하러 갈 때마다 온갖 뱀들을 보곤 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뱀의 종류에 대해 의외로 박식해서 "이 뱀은 독사다, 가지고 놀지 마라." "이 뱀은 독사가 아니니 나뭇가지로 머리를 눌러 보거라" 하는 식으로 내게 뱀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어릴 때부터 나는 뱀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 감정은 어린아이가 가지기 쉬운 비일상에 대한 동경이라기 보다는 좀 더 추상적인 일이었다. 뱀이라는 한 글자의 구성원들에 대한 연모, 그 어감에 대한 사랑, 혹은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미물에 대한 동정. 세가지가 모두 합쳐진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나는 커왔고, 마침내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부모님은 내 생일 선물로 애완용 뱀을 하나 사 주셨다.

그 때를 기점으로 내 뱀에 대한 감정은 더욱 커져갔다. 누군가 내게 내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나는 자신있게 아픈 뱀을 고쳐주는 수의사라고 대답했을 정도로. 나는 내 뱀에게 '칠점'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 이유는 할머니가 알려주신 뱀 중에서 가장 무섭고 독한 뱀이라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애완동물이 강하게 커 주기를 원했기에 그에게 독사의 이름을 붙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은 웃긴 일이지만, 내가 칠점이 강하게 커 주길 원한 이유는 어렸을 때의 기억과 관계가 있다.

늘 그랬듯이 벌초는 매년 찾아오는 법이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기 때문에 어영부영 할머니와 같이 깎인 풀들을 넉가래로 밀어놓을 정도는 되었다. 남자 어른들이 예초기를 돌려가며 무덤을 깎고 있을동안 할머니는 내게 뱀 이야기를 해 주셨다. 구렁이, 칠점사, 살무사, 혹은 여러가지 다른 뱀들의 특성과 이야기를 할머니는 아주 잘 알고 계셨다. 또한 왠지는 모르게 그날따라 뱀이 잘 보이지 않았다. 예년에는 벌초 할 때 뱀 여러마리를 직접 보면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해에는 뱀이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한 마리를 제외한다면.

내가 '그것'을 보게 된 건 순전한 우연이었다. 때마침 비단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뱀 종류의 외모에 대해 신경을 쓸 리가 없는 어린 아이는 지나가던 뱀 하나를 가리키며 그 정체를 궁금해 했을 뿐이다. 그 뱀은 온 몸에 얼룩이 져 있었고 꼬리에 상처가 나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상당히 무섭게 보였다. 공포에 대한 순수한 동경으로 나는 물었다.

"할머니. 저건 뭐야?"

할머니는 그걸 바라보더니 순간 몸이 굳어서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할머니는 말을 이으셨다.

"바라보지 말아라. 저건 구렝이가 아니고 구신이다. 손 내리라."

"구신? 귀신이 저렇게 생긴 거야? 신기하다.."

"빨리 손 내리라. 할미가 말하라고 하기 전까지 말 하면 안된다. 구신이 우리 손주 잡아가지 못하게 할미가 단단히 지킬 테니까."

"네에.."

그 때즈음의 어린아이가 그렇듯 나는 금방 시무룩해졌다. 손을 내리고 말을 하지 않았지만 바라보는건 호기심에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사실은 금방 발각되었고 이내 할머니는 내 눈 앞을 작은 몸으로 막으셨다. 삼십 분 쯤 지났을까, 할머니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내리가라. 할애비한테 말해야쓰것다. 무덤자리에 구신이 나왔사."

물론 나는 귀신에 대한 보호보다는 뱀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할머니가 무슨 이야기를 할 지 몰랐기에 당돌하게 질문했다.

"할머니, 저 귀신은 왜 뱀처럼 생긴 거야?"

"한 50년 전에 내란이 크게 터졌사. 피난민이 북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려왔디. 그러다가 한번 뒤쪽 대열에 공산당 놈들이 뛰쳐들어와 보이는 대로 다 쏴죽였다. 몇명은 팔, 다리가 날아가고 몇명은 죽고.. 큰 불행이었사. 그 이후로 저짝 산 너머 포탄 떨어진 자리에 구신이 가끔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능구렁이 한 마리가 같이 있었다고 했더랬지. 피난민의 행렬이 하늘에서 보면 큰 뱀과 같았는데 그 뱀의 꼬리가 반쯤 잘려나갔으니 어찌 원통해서 이승을 하직하겠나."

"에이, 50년 전이면 엄청 옛날이잖아."

"자기들 원한을 풀어달라고 남아있는건데 한자리에 없고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니면 어디 원한 풀어줄 사람이 있것나."

"나쁜 놈들이네. 내가 잡아야겠다."

"아서라, 귀신이 잡아갈라."

그리고 그 대화가 그 날 벌초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별 생각도 없이 잠을 잤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기괴한 모습을 한 뱀을 보고 어째서 거실에서 혼자 살 생각을 했을까. 평소에 기가 센 편이지만 그날은 가위를 눌렸고, 큰 뱀이 내 목을 조르는 꿈을 꾸었다. 뱀의 눈은 하얀색으로 희번덕거렸으며 어딘가 뱀이라기보단 사람의 눈에 가까워보였다. 귀에 무언가 속삭이는듯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아침에 가위를 겨우 깨서 아침먹는동안 그 이야기를 하자 할아버지가 밥을 다 먹고 일어나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동네 용한 무당을 불러오겠다고 하셨고, 두 분 모두 바깥으로 나가셨다. 나는 따라갈까 하다 그만두었지만 이내 마당에서 큰 소리가 들리는걸 보고 바깥에 나갔다.
할머니는 지붕에 대고 소리를 치고 계셨다.

"이놈! 어디 뒈져버린 놈의 종자가 살았는 아를 해하려고 하나? 다른 아들은 몰라도 내 손주는 아니 된다니! 꼬리가 아이고 모강지를 칼로 잘라 쳐 버리기 전에 썩 꺼지라!"

그리고 놀랍게도 지붕에는 어제 본 바로 그것이 또아리를 틀고 앉아있었다. 비록 멀어도 똑똑히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비웃는듯한 표정으로 쉭쉭거리며 혀를 놀렸다. 할머니는 그런 뱀을 보며 쉴새 없이 욕을 했다.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굵은 소금이 있었다.

"꺼지라! 가족 친지 다 버리고 도망친 주제에 무슨 염치가 있어서 원한을 쌓았나! 또 원한이 쌓이면 당사자에게 가서 풀으면 될진대 어린 아를 노릴라 하다니 요물은 요물이사 네놈들에게 줄 건 보생이뿌이 없다. 속히 꺼지고 다시는 내 손주 앞에 나타나지 말라!"

할머니는 소금을 뿌리면서 칼을 휘둘렀다. 뱀은 잠시 쉭쉭거리더니 지붕을 타고 내려갔다. 칼을 휘두르고 있던 할머니와 멍청하게 서 있던 내 사이로 그 무언가는 지나갔고 대문을 통해 당당하게 나갔다. 쫓겨나가는게 아닌, 마치 "이번은 가 주겠다." 라고 말하는 듯한 태도였다. 할머니는 대문에 미친듯이 소금을 뿌려대었다. 거의 한 움큼 소금을 뿌려대자 할머니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한 이십 분 지나자 할아버지와 무당이 도착했고, 무당은 부적 몇 개를 태우더니 요물에 홀린 잡귀밖에 없지만 요기가 사방에 가득하니 그 위세를 알 만 하다며 다시 나갔다. 특이하게도 복채는 받지 않았다. 퇴치는 할머니가 이미 했고 내일 아침이면 추석을 앞두고 이런 일을 벌인 요물에게 분노한 선조께서 집 안의 요기들을 싹 치워버릴 것이라는 것이다. 선조가 가호할테니 한동안 다시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혹시 또 오면 바로 자신을 부르라고 했다.

다음날 우리는 평소대로 추석을 보냈다. 어제보다는 머리가 상당히 가벼웠고 절을 할 때마다 조금 몸이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후쯤에 우리는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그 이후로 나는 뱀에 대한 흥미가 조금은 떨어졌으니 신기한 일이다. 어쩌면 뱀 모양을 한 그것에 대한 혐오감이 내 감정의 일부를 집어삼켰을 수도 있다. 탐욕스러운 뱀이 그 먹이를 사냥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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