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의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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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knock 20/08/28 (금) 09:14:24 #07749131


어젯 밤에 꾼 꿈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이 꿈을 굉정히 선명하게 기억하는데, 굳이 요약하자면 길을 잃어버리는 꿈이었다.

그 꿈 속에서 나는 중고등학생 정도의 나이로 돌아가서, 가족여행을 위해 공항에 갔다. 현실에서도 그 무렵 가족끼리 국내외 가리지 않고 여행을 자주 다녔고, 어릴 때부터 비행기를 이용할 기회가 많았다. 여행 가는 것도 좋아하고, 처음 가는 장소, 처음 보는 경치, 처음 하는 활동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가 되는 공간인 공항 또한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였다. 나는 언제나 모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꿈 속의 나도 굉장히 들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나는 따라가던 앞사람이 내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 어디서 흩어진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인파 뿐, 가족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끔찍한 고독을 느꼈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미아센터에 뛰어들면 별 일 없었을 것이나, 냉정을 잃은 것인지 꿈 속의 나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 무작정 걷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공항처럼 넓은 시설을 무작정 걷는다고 가족과 합류할 리가 없지만,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다리를 멈출 생각도, 그리고 용기도 내게 없었다. 나로서는 다리를 계속 움직이는 것이 유일한 해결방법이었다.

하지만 요행하게도, 어느 정도 걷자 다시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생겼다. 내 쪽인지 가족들 쪽인지 어느 쪽이 이동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족들이 다른 층에 있었던 것이다. 가족들은 아래층에서, 나의 부재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어떤 줄 — 탑승구는 아닌 것 같았다 — 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가족들의 모습에 소외감을 느끼면서도, 「바로 아래로 내려가면 된다」는 명확한 목적을 얻어낸 것에 대해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기대와는 달리, 계단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정도 규모의 시설에 계단이 없을 리가 있을까? 불가사의하게 여기면서도 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어느새 또 한 가지 기묘한 점을 깨달았다. 사람이 너무 적다. 조금 전까지 시야를 가릴 정도로 가득했던 사람들이 돌연 모습을 감추었고, 그 가운데 드문드문 지나가던 사람들도 걸어가 버렸다. 그리고, 공항 시설 그 자체 또한 명확하게 부자연스러운 풍모로 변화해간다. 천장, 벽, 바닥, 어디를 보아도 공항스럽지 않은 통로를 지날 때 느끼 위화감이 지금도 뇌리에 박혀 있다. 어느새 나는, 업무용 또는 비상용의, 어둑하고 커다란 나선계단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 계단이야말로 가족들에게 갈 수 있는 올바른 길이다”라는 확실한 예감을 가지고 있었다.

올커니, 드디어 합류할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서둘러 계단을 내려간다. 그러나, 아무리 내려가도 결코 그것은 실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이 나의 실패를 시사하듯이 점점 어두워지고 — 혹시 계단식 우물이라고 알까. 그것처럼 거꾸로 뒤집힌 사각뿔이 끄트머리가 좁아지듯이 배치된 계단의 단수가 조금씩 조금씩 줄어든다. 그것은 즉, 계단의 종점이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목적하는 장소가 그렇게나 깊은 곳에 있는지 괴상한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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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식 우물. 다만 꿈에서 본 계단은 외길이었다.

어쨌든, 여기까지 왔는데 되돌아갈 수도 없다. 여기서 찾지 못하면 어쩔 수 없다는 데까지 이르러서, 나는 최후의 계단까지 발걸음을 재촉해 뛰어내려간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 모든 것이 무의미함을 상징하는 듯 튀어나온 막다른 길을.

Nicknock 20/08/28 (금) 09:16:37 #07749131


여기까지 읽은 것만으로는, 그냥 흔한 악몽 중 하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이 꿈을 여기 투고하는 건 다른 이유가 있다.

실은, 나는 이와 같은 내용의 꿈을 여러 번 꾸고 있다. 몇 주에서 몇 달에 한 번 꼴로, 합쳐서 1년에 3, 4번 정도의 빈도로, 대략 3년간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후반의 계단 부분 내용만 기억에 남았고, 다른 부분은 일어나자마자 잊어버렸다. 막다른 길의 전개는 꿈을 꿀 때마다 다양했다. 막다른 시점에서 깨어날 때도 있었고, 가장 좋은 결과였을 때는 황급하게 계단을 되돌아오다가 도중의 문을 통해 밖으로 나와 겨우 가족들과 합류해서 무사히 탑승구에 도착하기도 했다. 다만, 이번에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꿈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꿈의 도중 — 계단 위에 섰을 때, 지금까지 비슷한 꿈을 꾸었던 기억이 났던 것이다. 꿈 속에서.

그렇기 때문에 계단을 내려갈 필요성을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동시에 「만약 계단 너머에 아무 것도 없다면?」이라는 공포를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막다른 길은 그 의심의 결실이다. 계단 끝에 아무 것도 없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것이 꿈 속에서 현실이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또 다른 안 좋은 생각을 갖고 있다. 다음에 이 꿈을 다시 꾸었을 때, 내가 계단을 내려가면서 만약 지금의 이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면? — 이 의문의 답을 알기를 나는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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