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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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올라오고 나서 초기의 기억은, 짙은 안개 너머로 보이는 산의 윤곽처럼 분명하지가 않다.

새로운 학교에 좀 익숙해지기 시작했을 무렵이었을까, 커다란 검은색 차가 우리 집 현관 앞에 서더니, 차 안에서 숙부가 나타났다. 숙부는 나를 신사에 대려가려고 했다. 에어컨은 충분했을 텐데, 차창 너머로 보이는 윤곽이 뚜렷한 여름 경치 찻이었을까, 왠지 후텁지근하게 느껴졌다.

신사는 굉장히 훌륭한 편이었다. 비석에 적힌 신사의 이름은 한자가 어려워서 읽을 수 없었다. 완만한 오르막길 위에, 푸른 하늘을 떠받치는 듯이 커다란 토리이가 서 있었다. 마치 해저세계의 배수구 같아서, 거기 빨려들어가면 다시는 지상으로 돌아올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 경외심도 지나치고 나면 별 것 없었다. 국화 문장(紋章)이 내걸려 있는 문과 또 하나의 토리이를 지나치면, 경내에는 숙부의 동료인 것처럼 보이는, 몹시 딱딱해 보이는 사람들이 거북해 보이는 꼴을 하고 무언가 떠들고 있었다. 지금은 그 글귀 한 글자 한 글자를 다 암송할 수 있지만, 당시 소학생이었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집이 다른 집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우리 친척들은 모두 「활동」에 힘쓰며, 무언가를 찾고 되찾으려 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의 활동이라는 것이 세상 이치와 어울릴 수 없는 사물을 다루는 것임을 알게 되고, 나도 그 활동에 참여하면서 스스로가 세상의 예사롭지 않은 쪽에 한 몫을 거들고 있음을 자각했다.

호분(胡粉)이 접시에서 흐르고, 쌘비구름이 피어오른다. 푸른 하늘에 구멍을 뚫고 토리이를 세우며 하야아키츠 히메(速開津姫)가 만물을 들이킨다. 그 토리이 너머에 지켜야 할 것이 있다. 따라야 할 것이 있다. 경외하며 받들어야 하는 것이 있다. 다시 새워야 하는 것이 있다. 돌이켜야 하는 것이 있다. 활동은, 그런 생각 위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고 있을 터였다.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지도 이해하고 있을 터였다. 활동의 일환으로서 그 학원에 입학한 후에도, 자신의 행동원리는 활동의 목적과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모두 틀렸었다.

만약, 그 싸움에서 싸웠던 사람들이, 지금의 세상을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내 안에는, 지금 세상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있다.

만약, 그 싸움에서 싸웠던 사람들이, 지금의 활동의 형편에 대해 알면 뭐라고 생각할까. 비웃는 것은 아닐까.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고. 혹은 사위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그 자리에서의 삶을 다하지는 못하고, 없어진 것이나 있었을지도 모르는 것을 찾아 헤매는 삶을 보고.

왜 굳이 되찾아야 하는 걸까. 나는 되찾지 않아도 상관 없다. 되찾으려는 것보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왜 굳이 과거를 바꾸어야 하는 걸까. 나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국화 밑에 떨어진 무궁화를 위해 고통받고 매화와 함께 덧없어진 것들을 애도하는 것 뿐이다.

어쩌면 내가 지금 부족함이 없다고 느끼는 것은, 그 조직이 우리의 활동을 그만두게 만들기 위해 부린 술책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활동」은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구두선에 불과하다. 지금 나는 눈앞의 바다를 즐기고 있다. 그것이 예전의 것들에 대한 마음의 기록이 될 것이다. 토리이 너머 저편에서도 그렇게 생각할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제, 무언가 되찾으려 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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