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이사회 긴급 회동

"고독, 나는 이번 일에 대해서 전혀 들은 바가 없는데요."

창문이 없는 커다란 방에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울렸다. 온통 검은색과 짙푸른 색으로 장식된 방 가운데에는 붉은 빛의 고풍스러운 목제 원탁이 밝은 조명을 받으며 놓여 있었고, 그 둘레에는 양복을 차려 입은 여덟 사람이 값비싸 보이는 고급 사무 의자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군사작전부장 마라"라고 적힌 명패를 앞에 두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여자는 "첩보부장 고독 Isolation"이라는 명패 앞의 남자를 여전히 노려보고 있었다.

"윌과 회장의 아이디어였습니다. 나는 묵인했을 뿐이죠. 윌에게 물어보십시오."

"고독"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마라"와 사람들의 시선이 바로 옆 자리의 남자에게 옮겨 갔다.

"사실입니까?"

쏘아붙이는 "마라"의 질문에, 인적자원부장 "윌"은 조용히 차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잠입세포-50, 연가시 문제는 전적으로 제 책임 아래에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왜 중대한 문제인지, 알고는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마라."
"관할 밖의 말단 세포 조직에 대한 지나친 월권 행위만으로도 중대한 내규 위반인데, 잠입세포로 적대 조직의 핵심 기밀을 공격하면서 이사회는 커녕 군작부에도 귀띔조차 주지 않는 게 말이 됩니까? 삼각분쟁은 소강되었을 뿐입니다. 재단이 곧장 선제 공격을 결심했다면, 아니, 작전 도중에 이미 전투 부대를 대거 동원해왔다면 대체 어쩔 뻔 했습니까?"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것은 분명히 저의 실책입니다…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연가시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때부터 모든 교전세포에 대응 태세를 상향하도록 조치했다는 사실은 참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점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요청으로 경계 태세를 발령한 게 나니까요. 하지만 더 적절한 대처를 위해서 사령부의 작전 참모들은 경계가 필요한 대상과 이유를 알아야 했습니다."

"마라"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격앙되지 않은, 절제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윌"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는 것을 표시했지만 "마라"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지난 작전에서, 후송 차량 급습과 포로 후송은 분명히 교전세포가 나섰어야 하는 임무였을 터인데 어째서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죠?"
"당신이 작전에 반대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라. 적이 연가시의 활동을 추적하기 시작한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작전을 최대한 빠르고 조용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로렌초의 동의 하에 활동세포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갑자기 자신에게 불똥이 튀자 활동세포 대표회의 의장 "로렌초"는 연신 헛기침을 하며 콧수염을 쓰다듬더니, "마라"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 말대로입니다. 다만 활동세포-377 뱁새는 교전 참여 경력도 있고 잘 훈련된…"
"그래서 결과가 대표 활동가를 포함한 세포원 전원 피살 또는 피랍입니까?"

아픈 지점을 찔린 "로렌초"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교전세포는 어떤 종류, 어떤 규모의 전투 임무에도 완벽히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은밀 행동, 빠른 작전 속행, 전장에서 우세 확보, 어느 면을 고려해도 충실한 전문성을 갖춘 교전세포를 투입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효과적입니다. 바로 이 전문화를 위해서 우리 부서가, 또 이사회가 존재하는 겁니다. 이사회가 필요로 하는 임무라면 교전세포는 어떤 희생도 각오하고 수행할 겁니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해 주시길."

"마라"는 강한 경고를 남기고 휠체어의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유념하겠습니다."

"윌"은 곧이어 자리에서 일어나 좌중의 주목을 끌었다.

"마라의 말대로, 이번 사건은 재단이 공세적 수단을 선택하는 결과를 불러올 겁니다. 이는 우리가 전장에서 모습을 숨기는 것으로 끝을 맺었던 지난 싸움이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석자들은 조용히 "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재단은 서둘러서 당장 보복에 나서진 않을 것입니다. 재단 내에서도 기밀로 취급되는 감찰 부서를 공격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그렇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정보를 빼돌린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으니까요. 표면상으로 이번 사건은 별다른 활동이 없던 우리 스파이 몇 명이 적발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비난 성명은 곧 발표되겠지만, 대대적인 공격을 벌일 명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죠. 잠입세포에서 올라온 재단의 동향 정보 보고서를 봐도 '클라우지우스의 검'을 비롯한 군사 부문은 잠잠하고, 방첩 분야 정도만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재단이 당장 열전을 일으킬 정황은 없는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윌"이 동의를 구하듯 "고독"을 바라보자, "고독"은 고개를 끄덕여 화답했다. 원탁의 청중을 둘러보며 모두가 납득했음을 확인한 "윌"이 발언을 이어갔다.

"물론 재단이 이번 사건을 그냥 넘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연한 일이죠. 그들은 우리가 내부보안부 자료를 비롯한 기밀 정보들을 빼돌린 게 아닐지 우려하고 있고, 우리는 실제로 그 정보들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단지 재단이 공격을 결심하는 데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뜻입니다."
"핵심 목표였던 내부보안부 수사관 생포는 실패로 끝난 게 아니었는지요?"

가만히 듣고 있던 재정예산부장 "새턴"이 손을 들며 질문했다. "윌"이 대답했다.

"연가시-1은 잠입해 있는 동안 내부보안부의 암호 통신 상당수를 수집해왔습니다. 수사관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을 고급 정보를 놓친 건 아쉬운 일이지만, 재단이 위기감을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을 정도는 이미 손에 넣은 상태입니다."

이번엔 시설관리부장 "F"가 손을 들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유용했던 대재단 휴민트를 상실했습니다.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되었을 때 이 첩보 공백이 불리하게 작용하지는 않겠습니까?"
"무리한 작전 수행으로 연가시-1이 사망하고 연가시-2, 3, 4가 적발된 것은 분명 뼈아픈 손실입니다…"

"고독"이 대신 답했다.

"하지만 고치벌연가시의 나머지 세포원들은 성공리에 침투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재단의 핵심적인 움직임의 얼개는 파악하고 있고, 필요하다면 내부 공작도 언제든지 실행할 수 있지요. 정보전에서 우리가 갖고 있던 우위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고독"은 설명을 마치고 "윌"을 향해 어깨를 으쓱여 보이며 말했다.

"계속하시죠, 윌."
"감사합니다."

다시 바톤을 넘겨받은 "윌"은 차를 한 모금 마저 마셨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재단이 지금 당장은 잠자코 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재단의 공격은 시간 문제라는 사실은 모두 이해하셨을 겁니다. 적당한 구실을 찾아내거나 우리가 명분을 만들어주는 순간, 파악된 모든 거점에 재단 특무부대가 들이닥칠 것이고 우리는 순식간에 존폐의 기로에 몰릴 겁니다."

"윌"이 잠시 뜸을 들이는 동안 회의장에는 무거운 정적만 감돌았다. 적막 속에서 "윌"이 빈 잔을 원탁에 내려놓는 소리가 나지막이 울렸다. 곧 "윌"이 엄숙하게 선언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수단은 선제공격 뿐입니다."

회의장이 술렁였다. 일찍이 이 결론을 내린 당사자들을 제외하고는 저마다 한 마디씩을 보태며 이 극단적인 해결책의 득실을 따져보고 있었다. 웅성임은 몇 분 동안 계속되다가 점차 잦아들었다. 모두가 이 파격적인 도박수 말고는 좋은 방도가 없다는 판단에 수긍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단 한 마디도 없이 조용히 회의를 지켜보고 있던 "회장"이 입을 열었다.

"삼각분쟁을 재개할 때가 왔다는 것에, 총의가 모인 것 같군."

그렇게 말하고 "회장"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곱 이사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깍지 낀 손을 무릎에 올리고 몸을 뒤로 기대며 "새턴"이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움직일지를 결정해야겠군요."
"우리가 재단을 공격한다면 GOC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곧이어 "마라"가 말했다.

"지금 우리가 벌이고자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멈추었던 지난 삼각분쟁' 그 자체이니까요."

다른 이사들도 그 발언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객관적으로 볼 때 우리와 적대 세력의 전력차가 얼마나 됩니까?"
"병력 규모로만 보면 숫적 열세는 피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재단과 GOC 모두 이미 단독으로 우리 전력을 압도하는 재래식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시구르드, 대장장이러다이트의 연구 진척은 어떻죠? 물리적인 전력 차이를 얼마나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신병기 개발도 적성장비 무력화 연구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당장 전세에 유리하게 작용할 결과물도 상당수 확보했소. 하지만, 워낙에 무식하게 거대하고 강력한 상대들이니까 말이지. 이길 수 있다고 장담은 드릴 수 없소."

연구지원부장 "시구르드"가 찌푸린 표정 그대로 거의 웅얼대다시피하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희망적이진 않은 현실이었다. 적은 어디에나 있었고, 그중 어느 하나도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자칫하면 BE는 선수를 치고도 그 자리에서 거꾸로 완전히 포위당할 수도 있었다. 초상세계의 양대 거두를 적으로 돌린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그런 현실에 짓눌려가고 있던 회의장의 침묵을 깬 것은 "F"였다.

"우선 시설관리부는 즉시 기존의 전 거점을 방기하고 긴급 재배치를 실행하겠습니다. 안전가옥을 새로 확보하고, 주요 세포들과 전투 병력을 수용할 지역 방어 거점은 예비 시설로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파기한 시설들은 적 병력을 유인할 미끼 겸 부비트랩으로 전용하고요. 불시의 기습을 피하고, 운이 좋다면 적 전력도 조금이나마 깎아먹을 수 있겠죠."

이 방안은 곧 이사회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방어 대책은 시설 이전과 교전세포 운용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남은 건 결국 공세 전략을 어떻게 하느냐인데…"
"초전에서 재단과 GOC의 군사 역량에 얼마나 큰 피해를 줄 수 있느냐가 이후의 전황을 결정지을테죠."

"새턴"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모두 주목해주십시오."

"윌"이 다시 한 번 참석자들의 앞에 나섰다.

"먼저 우리의 대전략의 궁극적인 목표가 'BE의 생존'임을 확실히 해두고 시작하겠습니다. 이 점에 이의가 있으십니까?"

나머지 이사들은 조용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이를 위해서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재단과 GOC의 군사력을 한 차례 꺾어 놓아야 한다는 것은 새턴이 말한 그대로입니다. 여기에 더해 최근 급속도로 개선된 재단과 GOC의 관계를 악화시켜, 이전 삼각분쟁 당시처럼 삼자의 상호 적대 구도를 성립시킬 수 있다면 전력 격차를 더욱 좁힐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작전안을 이사회에 상정하고자 합니다."

"윌"이 그렇게 말하고 리모컨을 조작하자 원탁 위 천장에서 디스플레이가 전개되었다. 네 개의 모니터가 서로 등을 맞대듯 배치되어 원탁의 모든 참석자들이 내용을 볼 수 있도록 설치된 화면에는 어떤 글자가 띄워져 있었다.

"K급 시나리오?"
"예. 알고 계시겠지만 재단은 변칙 개체로 말미암은 재단 자신과 인류 사회의 파괴 위험에 대응하기 위하여 이를 시나리오화하고 대처 방안을 수립해두고 있죠. 이러한 시나리오 상황이 발령되면 재단의 모든 가용 전력이 총동원되어 저지에 나섭니다."

화면에는 경보가 울리면서 재단 부대들이 움직이는 이미지가 출력되고 있었다. "마라"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렇다면, 고의로 모종의 K급 시나리오를 일으키고, 재단이 시나리오에 대응하느라 행동이 제한되는 동안 총공세를 펼치자는 이야기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연 것은 "새턴"이었다.

"적절한 목표가 필요하겠군요. BE까지 휘말릴 만큼 위험하지 않으면서, 재단에게 충분히 위기감을 줄 수 있고, 동시에 그정도 위기 앞에서 재단과 GOC가 반목하게 만들 수 있는… 우리에게 유리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줄 개체가."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윌"이 눈빛을 보내자 "로렌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활동세포-309 고라니가 수 년 간 추적해, 고치벌의 지원으로 최근 그 소재를 파악한 개체가 있습니다. 최적의 목표라고 확신합니다."

화면에 새로운 문서가 나타났다.

"푸른 인어 소녀?"

곧 화면에 표시된 것과 같은 문서가, 원탁에서 올라온 인쇄기에서 출력되어 각 이사들 앞에 놓였다. 이사들은 제각기 문서를 읽어보며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회의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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