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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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탈출한다! 긴급상황을 기지 내부로 알리고 우선 뛰어!"

"실험 ████-26. 실시하겠네."

[알겠습니다.]

25번이나 되는 실험동안 알아낸 것이라고는 이 SCP-████는 일종의 자연현상으로 [데이터 말소]한 조건 아래 자연발생 한다는 것과, SCP-████로 인해 발생하는 SCP-████-1은 일종의 군집체인데, 이걸 따로따로 떼어놓으면 아무 문제없이 소멸한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18번째 실험은 소각실험이었는데, 이걸 태우자마자 엄청난 양의 부식가스가 방출되어 기지 전체의 산화가 가능한 모든 금속이 녹슬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해서 현재 임시로 유클리드 등급을 지정하고, 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실험은 반응실험이다. 화학적 반응에 대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에 대해서 조사하고 보고해야한다.

일단 조건을 맞추게 되면, SCP-████이 일어나 SCP-████-1이 나타난다. 이 SCP-████-1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주위에 있는 모든 물체를 자신의 몸체로 하려는 성질이 있다. 즉, 주위에 물체가 있으면 있을수록 거대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너무 큰 물체는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없다는 결과도 나온 상태이다.

"일단 염기류부터 시작해볼까."

실험방법은 간단하다. SCP-████-1에게서 샘플을 채취한 뒤 종류별로 염기를 투여한다.

사용되는 염기의 종류는 수산화구리(Cu(OH)₂), 수산화철(Fe(OH)₂), 수산화베릴륨(Be(OH)₂), 수산화마그네슘(Mg(OH)₂), 암모니아(NH₃), 수산화리튬(LiOH), 수산화나트륨(NaOH), 수산화칼륨(KOH), 수산화칼슘(Ca(OH)₂), 수산화스트론듐(Sr(OH)₂), 수산화 바륨(Ba(OH)₂)이며, 이 용액들을 순서대로 각 샘플마다 투여하여 반응을 지켜보면 된다.

실험결과로는 반응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염기성일 가능성이 있겠군. 이것들이 모여서 염기성을 이루는 건가?"

아마도 [데이터 말소]에서 견디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약한 염기성을 띄는 것일 수도 있다. 불에 타는걸 보면 반응성이 없는 것 같지는 않으니 다음으로 넘어가야겠다.

"다음, 산성 용액을 준……."

치이익!

산성 용액을 준비하려는 찰나 샘플에게서 무언가 이상한 현상이 검출되었다. 설마 반응?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를 비롯한 다른 요원들이 순식간에 목에 매고있던 방독면을 착용했다. 당연하겠지만 부식방지처리가 되어있다.

치이익!

계속해서 이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 반응이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들은 슬금슬금 출구 쪽으로 뒷걸음질 치면서 반응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반응이 아니라 흡수 같은데요?"

한 연구원이 나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실험에 사용했던 용액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어느샌가 증식한 SCP-████-1이 주위 실험도구와 용액들을 닥치는 대로 흡수하여 몸체를 불려나가고 있었다. 거기엔 물론 아까 사용했던 염기용액도 들어있었다.

"젠장! 그럼 저놈은 지금 걸어 다니는 인간 용해제라는 말이잖아!"

방금 어떤 연구원이 외친 말은, 지금 저놈에게 덮쳐졌다간 그대로 체내단백질들이 강한 염기에 의해 녹아내릴 것이라는 말이다.

"일단 탈출한다! 긴급 상황을 기지 내부로 알리고 우선 뛰어!"

슬금슬금 뒤로 빠지던 요원들이 내 명령에 뛰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내 손에 들린 건 아까 세척하여 비어버린 실험용 스포이트와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던 맥가이버 칼밖에 없다.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어느 정도 시간을 벌어야한다. 밖에 기동부대가 도착만한다면…….

철컹!

그 순간 내 남은 인생의 종을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런 제기랄!

"어떤 개자식이야! 출입문 잠근 놈!"

스피커를 향해 소리 질렀지만 스피커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이미 다른 요원들은 전부 실험실을 빠져나간 상태에서 문을 잠가 버렸다는 건 일부러 문을 잠근 것이다. 나 한명쯤은 사라져도 상관없다는 거지? 빌어먹을! 나 혼자서 이놈을 상대하기에는 당연히 무리다. 평소라면 메뉴얼에 따라 그냥 손으로 떼어놓아도 어지간한 크기의 SCP-████-1은 무력화되어 자연스럽게 사라지지만, 지금같이 강염기성 용액을 가득 머금고 있는 저놈을 떼어놓으려면 산성 용액이라도 부어서 중화시켜야하는데, 아쉽게도 미리 준비해둔 산성 용액은 저놈 건너편에 있다. 거기다가 아무리 강한 황산이나 염산이라고 해도 지금 저놈의 양을 보고 있으면 괜찮을지 의문이 든다.

진정하자. 아직 죽은 건 아니잖아?

"곧 죽을 거 같지만."

들고 있던 스포이트를 꽉 쥐면서 조심스럽게 SCP-████-1을 향해 다가갔다. 마음 같아선 영화처럼 벽을 타고 달려 저것을 넘어가고 싶지만 그게 가능할리가 없다. 일단 다행이라면 저것에게는 일단 시각과 청각이 없다. 대신 한번 닿기라도 하면 그대로 빨려 들어가 몸의 일부가 되기에, 닿지만 않고 넘어가면 된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하며 주위를 둘러보던 중 마침 아직 흡수되지 않은 책상이 보였다. 좋았어. 실험용 책상의 무게가 꽤 나가긴 하지만 혼자서 못 옮길 정도는 아니다.

"끄응~ 차!"

책상을 뒤집은 채로 들어 SCP-████-1에게 깔아뭉갰다. 그 순간 SCP-████-1이 책상을 흡수하기 시작했지만 길쭉하고 넓은 실험용 책상의 특성상 그렇게 빨리 흡수되지는 않는다.

타다닷!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용기로 그런 짓을 했는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어쨌든 나는 책상을 다리삼아 드디어 그것을 건너는데 성공했다. 착지하면서 어디에 긁혔는지 팔에서 피가 나긴 하지만, 어느 정도 참을만하다.

"과학자한테 이런 액션신 찍게 하지 말라고!"

한숨을 쉬며 여러 개의 병에 담겨있는 산성 용액을 보았지만 아무래도 강한 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고른 게 질산과 염산. 스포이트를 놓지 않아서 다행이다. 계량기는 이미 SCP-████-1의 몸의 일부가 된지 오래라서 비율이 잘못되면 조합을 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질산 1과 염산 3의 비율로 조합하면, 적어도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산이 완성된다. 금조차도 녹여버리는 왕수(Aqua regia)가 지금 내 손에 들려있는 용액의 정체라는 말이다.

촤악!

그대로 SCP-████-1에게 부어버렸다.

치이이…….

반응은 성공적이었는지 SCP-████-1에게서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SCP-████-1은 꿈틀거렸지만, 아쉽게도 물은 SCP-████-1이 흡수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왕수라는 게 단점이 여러 가지 있는데, 일단 방독면을 차고 있어서 냄새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이, 이놈의 왕수는 반응성이 무진장 높아서 잘못 다루면 격렬한 반응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무슨 뜻이냐고? 간단히 말해서 폭발한다는 거다.

콰아앙!

그 후 폭발로 인해 SCP-████-1은 자연소멸, 나는 그 방에서 기절해 있다가 구조되어 화상에 대해서만 간단한 치료를 받고 복귀했다. 물론 밖에서 문을 잠가버린 놈을 SCP-████-1의 실험 때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박사님. 다음 실험이 준비되어있습니다만."

"곧 가겠네."

딱지가 내려앉은 팔을 긁적거리며 실험실로 향했다. 딱지를 떼어낸 자리에서는, 일반적인 인간의 것과는 다른 검은색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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