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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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는 자신의 방바닥에 앉아있었다. 방 안은 잔뜩 어질러져 있었다. 책상 위에는 온갖 서류 더미들이 차곡차곡히 쌓여있었고, 방바닥에는 책과 종이가 굴러다니고 있으며 침대 위는 이불과 옷이 엉켜있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마크는 바닥에 앉은 채로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이미 개봉된 맥주캔 하나가 놓여있었다. 캔을 집어 들고는 한 모금 넘기더니, 보던 책을 한 장 넘겼다. 밖에서 문소리가 들렸다. 지난 몇 년간 마크가 혼자 살던 집이지만, 2개월 전부터 동거인이 생겼다.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신 뒤 읽던 것을 덮자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다녀왔어.”

문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어서…술 마셨어?”

희미한 술 냄새가 났다. 그리 많이 마시지는 않은 것 같았다. 마리안느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그냥 네 잔 정도 마셨어. 진귀한 경험도 해보고.”

“진귀한 경험?”

“그런 게 있어.”

마리안느는 발로 대충 바닥에 널브러진 종이를 치웠다. 마크는 멋쩍게 웃으며 바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리안느도 거기에 동참했다.

“좀 치우고 살아.”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으니까.”

“뭐라 할 수가 없는 이유네.”

마리안느가 말했다. 그녀도 그랬으니까. 예전부터 둘 다 방 정리를 안 해서 부모님의 꾸중을 자주 듣곤 했다. 그럴 때마다 둘이 하는 말은 같았다. 자신들은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다가 뭐 하나 찾느라 방 전체를 뒤엎어 놓는 것은, 둘의 몫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것을. 한참을 정리하던 와중에, 무언가 마리안느의 시선을 끌었다. 그녀가 오기 전에 마크가 보고 있던 것이었다. 집어 들어 살펴보니, 가족 사진첩이었다.

“사진첩이네. 이거 보고 있던 거야?”

“어? 어. 그냥, 갑자기 그러고 싶었어.”

마크는 묘하게 허둥대며 대답했다. 영문모를 오빠의 행동에 마리안느는 피식 웃고는 사진첩을 열었다. 온갖 추억이 되살아났다. 대학 졸업식. 마크의 대학 졸업식. 고등학교 때 파티.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초등학교 때 열었던 생일파티까지. 가장 최근의 사진부터 거꾸로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가장 첫 장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마리안느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마리안느는 가장 처음의 사진을 만져보았다. '마리안느 큐빅, 5살. 마크 큐빅, 9살.'

“왜 나 5살 때랑 오빠 9살 때 전의 사진은 없는 거야?”

마리안느의 물음에, 마크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곧 겸연쩍게 목덜미를 만지며 말했다.

“그, 앞부분은 이사할 때 아빠가 잃어버리셨다나 봐.”

“아빠가? 뭐, 아빠는 조심성이 조금 없으시니까….”

마리안느는 수긍하며 사진첩을 덮고는 책장에 꽂아놓았다. 그리고는 이제는 깔끔해진 침대에 걸터앉았다. 마크는 책상 의자를 끌어다가 앉으며 말했다.

“요즘 일은 조금 어때?”

“예술가 부서야 언제나 같지. 주시 목록에 있는 예술가들 감시하고, 새로운 예술가 찾고, 작품 회수하고, 정보 조작하고…. 손이 부족하지 뭐.”

“네가 유능하다면서 부서장이 고마워하더라.”

마크가 키득거렸다. 마리안느는 한숨을 내쉬며 뒤로 쓰러지듯이 누웠다.

“그 '유능함' 덕분에 날마다 고생하고 있다고.”

“그런 당신을 위한 선물.”

마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 쪽으로 갔다. 문을 열자, 안에는 익숙한 상표가 그려져 있는 상자가 하나 있었다. 마크가 상자를 열자, 안에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보였다. 마리안느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였다.

“너 먹으려고 사놨다가 임기응변식으로 꺼내는 건 아니고?”

물론, 마크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마크는 씩 웃으며 말했다.

“이런, 들켰네.”

“오빠라는 인간이 말이야.”

마리안느는 미소 짓고 그렇게 말하자 마크는 실소를 내뱉으며 포크와 접시를 각각 두 개씩 들고 왔다.

“고마워.”

마리안느의 말에, 마크는 부드럽게 말했다.

“별말씀을.”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차가웠다. 그와 동시에 달았다.


“그럼 잘자.”

“내일 또 봐.”

마크의 인사를 뒤로하고 마리안느는 방을 나갔다.

마크는 한숨을 내쉬며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다. 삐걱. 오래된 의자에서 소리가 났다.


문이 닫힌 순간, 은은한 미소는 굳은 얼굴로 바뀌었다.

입가의 미소는 어느샌가 쓴웃음으로 바뀌어있었다.


황급히, 마리안느는 발걸음을 옮겼다.

마크는 책상에 손을 뻗어 한 장의 편지를 집어 들었다. 펜으로 쓴 단정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마리안느의 손에

마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마크와 마리안느는 여러 면에서 비슷했다. 습관까지도 같았다.

둘 다, 거짓말을 할 때 목덜미를 만지는 습관이 있었다.


뭘 숨기려는 거야. 마리안느는 생각했다. 있어서는 안 될 의심이 정신을 파고들자, 저도 모르게 한기가 돌았다.

이제 밝힐 때가 온 건가. 마크는 생각했다. 지금은 은퇴해 시골에서 작은 농장을 하시는 부모님이 떠올랐다.


입 안에 남아있던 아이스크림의 단맛이 쓰게 느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여섯 번째 조각이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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