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딜레마

"이마에 구멍이 나 있었어요. SCP-████-9과 면담하다 난 거죠. 자꾸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도 이해가 가더라고요."

- 3등급 현장 요원 프로파운드 케이, 스완 요원과의 만남을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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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쩌다가 여기서 일하게 됐지?"

스완은 투덜거리며 보안 시설의 복도를 걸어갔다. 복도의 끝에는 금속 문이 있었다. 그냥 문이 아니었다. 손잡이와 열쇠구멍 대신 지문 인식 장치와 보안 코드를 입력하기 위해 있는 키 패드, 일이 잘못될 경우 밈적 살해인자를 띄우기 위해 존재하는 조그만 모니터가 달린 하나의 괴물이었다.

보통 저렇게 생긴 금속 문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 문 안쪽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 침입을 막아야 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안에 침입자가 애타게 찾는 여자가 있다던가, 금괴나 유가 증권이 들어 있다던가(물론, 전자는 19세기 이후로 거의 사라진 케이스이긴 하다). 하지만 이 문은 달랐다. 이 문의 정면에는 다음과 같은 마크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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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크는 지금 스완의 눈 앞에 있는 이 문이 SCP 재단에서 만든 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비슷하게 생긴 다른 문들과는 존재 이유가 180도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문이었다. 그러면 이 문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어디에 있는 문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스완은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완은 이 문을 열어야 했다. 그게 그의 직업이었으므로.

문 앞에 선 스완은 긴 한숨을 내쉬고는 키패드에 손을 뻗었다.

보안 코드 입력: H3@dcR4b

연산자 태그 입력: AGENT_SWAN

연산자 태그 확인, 본인 인증을 위해 지문을 인식시켜 주십시오.

스완의 손가락이 지문 인식기를 훑고 지나갔다.

지문 확인. 환영합니다, 스완 요원님. 격리실을 개방합니다.

"누가 환영한다는 거야, 네가, 아니면 이 안에 있는 게?"

스완 요원은 그렇게 빈정대며 문을 열고 격리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격리실 안으로 들어오자 마자 익숙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기분 나쁜 촉감을 가진 무언가가 그의 얼굴에 달라붙는 것을 느꼈다. 그의 머리카락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그것의 두 앞발이었다. 그의 턱을 마치 족집게마냥 붙잡는 것은 그것의 두 뒷다리였다. 그리고 지금 그의 이마에 느껴지는 이건…

"으아, 씨바아아아아아아알!!!!!!!!"

스완 요원은 머리에서부터 온몸에 퍼지는 끔찍한 느낌에 절규했다. 재단이 격리하고 있던 게형 외계 생명체의 생각과 정보가 60분의 1초 동안 그의 뇌로 전달되었다. 동시에 스완 요원의 생각 또한 외계 생명체에게로 전달되었다.

그 다음 60분의 1초, 외계 생명체는 스완 요원이 이 모든 상황이 매우 거지같다고 생각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다음 60분의 1초, 스완 요원은 그 외계 생명체란 놈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으며, 이 행위는 대상이 호감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다음 60분의 1초, 외계 생명체는 지금까지 스완 요원이 기억하고 있던 모든 욕설을 습득했다. "Branleur"는 대체 무슨 뜻일까?


처음에는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만 같았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다른 사람과, 또 다른 동물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동물들을 이해하고 또 그것들과 '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는 것은 마치 하나의 퍼즐을 풀어내는 것만 같아서 그에게 성취감과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켰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그는 더 어려운 퍼즐을 찾아내기로 결심했다. 그 새로운 퍼즐은 바로 외계 생명체였다. 아직 우리가 만나지도 못한, 진짜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생명체들과는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까? 그는 대학교에서 연구에 박차를 가했고, 그 연구 내용을 토대로 논문을 써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재단이 그 논문을 봤다. 그것이 재앙의 시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가 그를 찾아왔다. 그 남자는 자신이 '외계 생명체들을 다루는 기관'에서 왔다고 말했으며, 스완에게 '외계 생명체와의 면담을 직업으로 삼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스완은 보통 이런 제안을 받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하는 말("잘못 들은 것 같은데, 외계 뭐요?")을 하기에는 너무나 흥분해서, 그 남자가 당황해 할 정도로 그 제안을 넙죽 받아들였다.

그렇게 그는 SCP 재단이라는 곳에서 '위험 SCP 면담 요원'이라는 직함으로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매우 흥분되었기 때문에 그의 직함 앞에 붙은 '위험' 이라는 단어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무지 음침하게 생긴 SCP-████와 그 생명체의 외관에 걸맞는 무지 음침한 면담을 나눈 것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문제는 스완 요원이 SCP-████와 관련된 문서를 읽은 순간 일어났다. 그 문서에는 스완 요원 이전에 총 6명의 재단 요원이 대상과 면담을 시도했다가 [데이터 말소] 당했다고 적혀 있었다. 참 친절하게도 재단은 보고서에다 희생자의 클로즈업 사진까지 첨부해 주었다. 꿈틀거리는 촉수가 그의 목구멍을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부터 그의 눈가리개가 벗겨졌다. 한순간 스완 요원은 자신이 사람을 죽게/미치게/미친 다음 죽게 하는 것들의 한복판에 던져졌음을 깨달았다. 거기에 더해 그는 그 미친놈들과 대화를 해야 하는 일을 맡고 있지 않았던가. 겁에 질린 그는 상부에 몇 번이나 사직서를 내었지만, 수십 통의 사직서가 거절된 끝에 재단에는 '사직'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SCP 재단이 수천개의 변칙 존재들을 격리하는 동안, 그 역시 재단에 '격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겠는가? 그는 더 고등하고 복잡한 존재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에 목말라 있었다. 또한 그것이 인류의 역사에 있어 커다란 두 번째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기회라는 것 또한 그를 매료시켰다("L██ S███은 외계 생명체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인간이다.") 더구나 이대로 대학을 졸업했다간 고학력 실업자가 될 판이었다(어떤 기업이 외계 생명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직원을 필요로 하겠는가?). 그 남자는 스완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기회와 동시에 두둑한 보수도 제공했다. 개나 고양이를 훈련시키면서는 절대로 만져볼 수 없는 금액이었다.

결과적으로 스완 요원은 심각한 딜레마를 겪고 있었다. 그의 정신 세계 속에서 재단은 호메로스가 어슬렁거리는 엘리시온 들판이었고, 동시에 관세음보살마저 돌아보지 않는 무간지옥이었다.


"아, 그 딜레마는 아직 아무도 해결 못 했어요." 프로파운드 케이가 말했다.
"저만 그런 고민 하는 게 아니군요."

스완 요원은 자신의 이마에 난 구멍을 어루만졌다. 그 외계 게새끼가 호감을 표시하느라고 저지른 일이었다. 두개골에 █cm짜리 구멍이 났는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 다행이기도 했고, 소름끼치기도 했다. 한편 프로파운드 케이는 그런 스완 요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케이 요원은 제1A기지가 임시 격리 중인 SCP를 인계하기 위해 스완이 일하는 시설을 방문했다. 그는 스완 요원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스완 요원의 이마에 구멍이 나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스완 요원이 엄청난 딜레마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스완 요원이 케이에게 도움을 청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다는 것도.

간단히 말해, 케이는 스완과 면담을 하게 되어 버렸다. 물론 주제는 스완의 딜레마였다.

"사실, 재단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고민을 한 번쯤 하게 돼요. 재단이 막장 직장인 것도 아니고. 보수 두둑하지, 대우 좋지(물론 D계급은 예외입니다만), 그리고 철저하게 실력주의라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쓸 수 있고요. 재단이 직원들을 특이사건부처럼 대했다면 아무도 고민하지 않았을 걸요."
"바로 그겁니다. 꼭 우리가 불나방이 된 느낌이라니까요. 재단이 딱 촛불을 켜 두고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자, 여기 보수와 너의 재능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어서 날아와.' 그러면 나방들이 날아들고, 화르륵."
"그런데 불나방이랑 우리랑 다른 점이 뭐냐면, 촛불로 날아들면 죽는다는 걸 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촛불로 날아드는 걸 그만둘 수가 없죠."
"대체 왜죠? 아니, 도대체 불에 타 죽는 게 무슨 이점이 있기에?"

그리고 그들은 교착 상태에 이르렀다. 이 딜레마는 해결 방법이 통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가만히 앉아 침묵했다.

"어쩌면,"

갑자기 스완 요원이 입을 열었다.

"어쩌면 그것 때문 아닐까요."
"무슨 뜻입니까?"
"거기에 유일하게 불빛이 있으니까, 온기가 있으니까. 그곳 외에는 죄다 어둠 뿐이니까. 그 때문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린 불나방보다 더한 멍청이군요." 케이가 웃으며 말했다. "햇빛을 찾을 생각도 안 하고 눈에 보이는 불빛에 달려드니까요."
"그렇죠, 죄다 멍청이들이에요." 스완도 같이 웃었다.
"그럼, 저는 이제 그만 가 봐야겠습니다. 변칙 확보 부서를 오래 비울 수 없어요."

케이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저도 면담 일정 때문에 일어나야 합니다." 스완이 말했다.

그걸로 딜레마 해결에 관한 논의는 끝이었다.


케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1A기지에 도착했다. 제1A기지에는 할 일이 산적해 있었다.

"이거, SCP-325-KO 관련 제안서."

제1A기지 격리반장 페린 박사가 케이에게 꽤 두꺼워 보이는 서류철을 내밀었다.

"무슨 제안인데?"
"이걸 다른 기지에 옮겨놓으면 어떨까 한다던데. 어차피 우리 기지 특성상 공간 많이 차지하는 물건 필요 없잖아."
"글쎄, 그거 특성상 옮기는 것도 번거로울텐데. 일단 검토해 볼게. 서류 얼마 뒤에 돌려줘야 돼?"
"3시간."
"그래, 있다가 연락 줄게."

페린은 서류를 사무실 책상에 내려놓고 사무실 문을 향했다. 케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자신의 일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 역시 때로는 격무와 죽음의 위험에 지쳐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스완에게 말했듯이, 스완의 딜레마는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아무도'에는 케이도 포함되었다.

케이는 스완과 나눈 대화를 생각했다.

"거기에 유일하게 불빛이 있으니까, 온기가 있으니까. 그곳 외에는 죄다 어둠 뿐이니까. 그 때문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린 불나방보다 더한 멍청이군요. 햇빛을 찾을 생각도 안 하고 눈에 보이는 불빛에 달려드니까요."
"그렇죠, 죄다 멍청이들이에요."

'하지만 햇빛이 우리 삶에 있었을까?' 하고 케이는 생각했다.

"앨리스."
"왜?"
"저녁 휴게 시간에 변칙 확보 부서에서 토의를 할까 하는데, 너도 낄래?"
"주제가 뭔데? 또 보컬로이드의 미래 운운할거면 관둬."
"백조Swan의 딜레마."
"그게 뭐야?"
"오늘 다른 시설 요원이랑 이야기를 했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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