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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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이바노브나 민디흐씨."

니나는 갑작스레 눈을 떴다. 그러나 니나의 머리는 눈앞의 현실을 알아차리기를 거부했고 니나의 머릿속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종이 12시를 알리듯 대종 소리가 불쾌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현실은 잔혹하리만큼 우릴 기다려주지 않고 우리 눈앞에 당도하기 마련이었다.

"니나 이바노브나 민디흐씨."

눈앞의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니나는 이내 자신이 굉장히 크고 푹신한 적갈색 안락의자에 앉아있음을 알아차렸다. 의자가 니나의 키에 비해 너무 커서 니나는 스스로 왜소하고 구속된 느낌을 받았다. 아마 의도된 장치였겠지만 니나에게는 그걸 인식할 틈도 없었다. 남자는 니나를 계속해서 지켜보면서 러시아어로 말했다.

"니나 이바노브나씨, 당신은 지난 48시간 동안 4번의 자백제 투여와 3번의 강화심문을 받았고 신체검사 또한 두 차례 받았으므로 당신이 제가 하는 말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당신은 기억 못 하시겠지만 당신의 몸은 48시간 동안 허락 없이 입을 연 대가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니 부디 지혜롭게 행동해주길 당부드립니다."

니나는 완전히 겁에 질렸고 자신이 고개를 끄덕였는지조차 기억하질 못했다.


"전 1933년에 살레하르트에서 셋째로 태어나서 16살, 12살 오빠들을 두었고 3살 차이 나는 여동생도 있었어요. 그곳에서 제가 7살이 되던 해에 마을 여관에서 한 떠돌이를 만났었어요. 6대 도시 금지형을 받은 레닌그라드 출신의 사람이었는데 그곳의 아름다움을 보드카를 들이마시면서 떠들어댔죠. 빛의 도시니 소련에서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도시니 어쩌고요. 그리고.."

니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

"전 그 얘기에 홀려버렸어요. 살레하르트도 나쁜 곳은 아니지만 어렸던 저에게는 레닌그라드는 환상 속의 세상인 줄 알았어요. 전 1년 동안 계속해서 부모님을 졸라댔는데 열차 한번 타면 소련 최고의 도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죠. 그리고 기가 막히게도 아버지의 옛 친구가 몇 년만에 편지로 연락을 했어요. 유랑극단 쪽의 사람인데 소련 내 유랑극단들의 활동 증대와 지원을 위해 레닌그라드에 연락책이랑 주요 밴드들을 모으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아버지는 그 친구분에게 여쭤보았죠. 본인이 혹시 도울 일은 없는가. 그 친구분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흔쾌히 레닌그라드로 온다면 우리 가족이 정착하는 거까지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자기네도 일손이 늘어나는데 서로 좋은 일 아니냐면서요. 그렇게 우리 가족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죠. 그렇게 레닌그라드에 도착한게 1941년 6월 14일이었어요."

게오르기는 다시 스푼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는 입을 열었다.

"그때면.."

"네, 우리 가족이 레닌그라드에 도착하고 나서 8일 후에 대조국전쟁이 일어났죠. 하지만 그때 그 유랑극단 사람들은 없었어요. 우리 가족은 도착하자마자 일단 그 사람들부터 찾았지만 모두 온데간데없었죠. 그 당시 우리 모두 몰랐지만 알고 보니 엔카베데가 유랑극단 사람들을 압송하고는 모두 추방한 거였어요."

니나는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여튼간 대조국전쟁이 일어나고 아버지와 오빠들은 징집되었어요. 그리고 3명 모두.. 일주일 만에 전사했고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닌그라드가 포위되었어요."

게오르기의 얼굴은 당혹스러움과 미안함으로 얼룩져 있었다.

"내가 자네에게 너무 몹쓸 짓을 한 거 같군. 이런 이야긴 줄 알았으면.."

니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아요. 정말로요. 당신이 이야기를 털어놓으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잖아요. 자책하실 필요 없어요."


남자는 말을 이어갔다.

"당신의 이야기는 꽤나 흥미롭더군요. 1933년에 살레하르트에서 태어나서 1941년, 그러니까 당신이 8살이 되던 해에 레닌그라드에 이주했으며 아버지 이반과 두 오빠 일리야와 바실리를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고 일주일만에 모두 잃었고 어머니 마리나는 공습으로, 5살짜리 여동생 소피야는 아사로 세상을 떠났고요."


니나는 고개를 숙였다.

"제가 그곳에서 홀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제 능력 때문이었을 거에요. 저 스스로도 그때 어떻게 한건지는 이해는 안 가지만요."

니나는 잔을 입가에 가져가 르카치텔리 와인을 조금 마셨다.

"어쨌든 전쟁이 끝나고 나서 전 12살 나이에 홀로 살아남았죠. 그 후 2년 동안 레닌그라드의 성 어쩌고 고아원에서 살게 되었어요."


"전쟁이 끝난 후 레닌그라드에서 성 안셀름 고아원에서 살았고 1947년에 그곳에서 다시 그 사람이랑 재회했죠?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추방된 아버지의 친구분 말입니다."

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니나는 표정을 보이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였으나 그 모습은 겉으로 보기엔 그저 궁지에 몰린 먹잇감이 움츠러든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그런 니나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미하일 일리치 예이세노프 아저씨였어요. 6년 만에 만나게 된 아버지 친구분의 이름은 말이죠. 그리고 저와 그분은 서로를 알아차렸어요. 전 아버지가 징집되면서 어머니에게 남겼던 유품 덕에 그 분을 알아볼 수 있었어요.

니나는 호주머니 속의 물건을 의식하면서 말했다.

"아버지와 친구분이 함께 찍은 사진 덕분이었죠. 그분은 절 어떻게 알아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말 극적인 재회였어요."

니나는 살짝 비꼬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가 곧바로 그 미소를 지워버렸다.

"믿기지 않게도 그분은 죄책감 때문에 돌아온 거였어요. 가짜 여권을 사서 변장을 한 채로 검문을 피하면서 실낱같았던, 그분 스스로도 믿지 않은 가능성 하나만으로 목숨을 거시고 레닌그라드로 돌아오신 거였죠."


"그 후 1948년에 레닌그라드에서 대만 타이베이현으로 이주하였고 1956년까지 소위 그 '한낮의 떡갈나무 유랑극단' 이라 자칭하는 사람들과 전 세계를 말 그대로 유랑하셨군요. 파리, 함부르크, 피렌체, 그리고 뉴욕과 런던까지."


"그후에 대만으로 가게 되었고 제가 스물세살이 될 때까지 많은 곳을 유랑했어요. 팀부나 살바도르, 콜롬보 같은 곳이요. 전 그냥 미하일 아저씨를 따라다니기만 했어요. 그리고 그분들은 많은 걸 가르쳐주셨죠. 영어, 프랑스어, 카우벨 치는 법, 작곡하는 법, 비올라랑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법 같은거요. 그분들은 모두 헌신적인 사람들이었어요. 그분들은 음악과 사랑으로 모두 하나 되어 화합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던 사람들이었죠."

니나는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더 낮고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주저치 않고 함께 내려가고 그들을 붙들어 함께 치고 올라오는 사람들이었어요. 항상 낮은 곳을 전전하면서 세상의 어두운 곳을 노래로 밝게 빛내려고 했죠. 그분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그리고 전.. 그분들을 싫어했고요. 제가 그분들을 싫어하는 데는 이유가 없었어요. 그냥 코가 맘에 안 든다, 요리를 자주 태운다, 자꾸 솔 샤프 부분에서 실수한다.. 그냥 전 제가 그분들을 싫어할 이유를 만들고는 싫어했어요. 그분들이 여러 지역에서 총칼로 위협 받으면서 쫓겨나고 자신들이 도왔던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더 못한 상황으로 전락하는 등 그분들이 실패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 속으로 한심하게 여기기도 했어요."

니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때 저는 몰랐어요. 아니 알면서도 이해하지 않으려고 했죠. 그분들은 세상의 어두운 면을 보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서로를 웃으면서 돕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어요. 전 그걸 알면서도 억지로 그분들에게 제 가족이 죽은 이유랑 이유 없는 미움을 돌렸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그분들은 절 이해하면서 사랑했어요."


"정말 이상주의자들과 살아오셨군요."

남자는 재밌다는 듯이 말을 계속해나갔다.

"어쨌든 당신은 그들과 같이 일하셨죠? 17살때부터 그 소위 '기술 감독' 으로서 말입니다."


"제가 제 능력을 정확히 알게 된 건 14살 때 부터였어요. 그리고 17살때 무렵부터 극단에서 기술 감독을 맡아서 공연에 필요한 여러 기술적인 일을 해나갔죠."

니나는 주위를 다시 돌아보았다. 웨이터들은 여전히 잘게 저며진 일본식 연어회나 라오하 와인 등을 서빙하고 있었다.

"그분들은 절대 강요하지 않으셨어요. 어딘가로 움직일 때마다 저에게 같이 갈 것인지 늘 물어보셨고 제 능력을 아셨을 때도 제가 17살이 되기 전까지는 도와달라는 말조차도 하지 않으셨었죠. 그리고 제가 17살이 되자 도와달라고 정식으로 저에게 부탁 하셨어요. 그리고 전 도와드리겠다고 했고요."

니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잔을 들어 와인을 조금 마셨다.

"그때 전 제가 그분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우쭐하게 여겼죠."

니나는 마치 방금전 자신이 한말을 곱씹어보듯이 고개를 숙여보았다.

"어찌 되었든.. 전 23살이 될 때까지 그분들과 세계를 돌아다녔어요. 그러다가 제 잘못으로 전 극단에서 나왔, 아니 도망쳤어요."


"당신이 설계했던 공연장에 오류가 있었었죠? 기저 심층부 말입니다. 그리고 이 사고는 당신이 저지른 설계상 실수였고요."

남자는 계속해서 모든 걸 안다는 듯이 말하였다. 니나는 남자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자선 행사는 난장판이 되어버렸죠. 당초 우리가 원했던 건 마을의 재건이었어요. 하지만 제 실수로 사고가 일어나버렸고 많은 사람이 다쳤어요. 미하일 아저씨도 포함해서요. 하지만.."

"하지만 전 그때 인정하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 탓을 하면서 도망쳐 버렸어요."


"도망친 후에 새로이 만나게 된 친구들도 있었죠? 하디르, 에리카, 유리.. 뭐 기타 등등 예술가 친구들이요."

니나는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남자는 니나의 얼굴을 보았다. 니나 또한 남자의 얼굴을 보았으나 남자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니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다른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엔드릭슨은 무크자니 와인을 음미하고 있었고 유엘은 골든 랍스타를 양껏 먹으면서 황홀해 하고 있었다.

"그 뒤에 카사블랑카나 파리를 돌아다니면서 괜찮은 친구들을 만났었어요. 저 머저리들이랑은 다른 예술가 친구들이었죠."

"뭐.. 할레키, 모니카, 앨런.. 다 착한 친구들이었어요. 정말 순수하게 예술을 하는 얘들이었고.. 저한테는 과분한 친구들이었어요."


"그 친구들이 당신에게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불어넣은 겁니까? 우리 유한회사를-"

니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것만은 안된다는 절박함이 그녀의 공포를 부숴버렸다.

"아뇨! 아니에요! 아니 정말로 아니에요. 제, 제가 그냥 당신들이 싫어서 한 일이에요, 제 친구들이랑은 아무 관련이 없어요!"

"물론 그러시겠죠. 당신이 공간폐색점을 설계하는 동안 당신의 친구들은 평화롭고 때 묻지 않은 자유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었겠죠."

남자는 비웃듯이 니나의 절박함이 담긴 비명을 쳐내었다. 니나는 필사적이었지만 그녀 또한 그녀가 내뱉는 모든 말은 아무 의미 없는 공허한 항변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 친구들은 정말 낭만주의자들이었어요. 유랑극단 분들처럼 헌신적이고 열정적으로 자신들의 예술혼을 불태워댔죠. 얼마나 낭만적이었는지 유한회사가 압도적인 자본력으로 예술제에 개입하고 예술가들을 빼내가서 부잣집 도련님들에게 예술품을 바칠 때도 공격적으로 대응하질 않았어요. 소위 예술 테러리스트식으로 대응해 볼법도 했지만 이 친구들은 그러질 않았죠. 그 대신 조금 더 평화적으로 대응하려 했어요. 돈에 얽매이지 않는 순수 예술제를 기획했죠. 그리고 전.. 그런 친구들한테서 제가 도망친 유랑극단 사람들이 연상되었고 결국 전 친구들을 떠나버렸어요. 전 그들에게 그런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한 뒤에 제 방식대로 하겠다고 떠나버렸어요. 뭐.. 보잘것없는 어리석은 핑계였죠. 전 그냥 자신들의 예술적 신념을 위해서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친구들한테서 유랑극단 사람들이 떠올라버려서 불편해하면서 도망친 거였어요. 그냥 마주하기 싫어서 회피하고는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쿨한척 과격하게 행동하려고 했어요."


남자는 그의 품에서 작고 묵직한 짙은 색깔의 물체를 꺼내었다. 니나는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고 남자는 그런 니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총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니나에게 총을 겨누었다.

"대충 당신의 인생사 얘기는 끝났으니 이제 당신의 향후 처분을 결정해야 할 때군요."

역설적이게도 눈앞의 총구로부터 니나는 현실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당.. 당신이 절 쏠 리가 없어요. 그러기엔.."

남자는 피식 웃었다.

"그러기엔 너무 비효율적이다? 맞는 말이긴 합니다. 당신을 그냥 쏴죽이는 건 당신에겐 너무 편안한 길이고 그 의자도 너무 아깝거든요."

남자는 눈앞의 탁자에 총을 내려놓았다. 그 둔탁한 소리에 니나는 움찔했다. 남자는 말을 이어갔다.

"아깝고 말고요. 그냥 처형시켜 버리는 건 삼류들이나 하는 일이죠. 당신은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당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남자는 니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어나갔다.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당신을 자선 경매에 넘기는 게 있습니다. 당신이 압살하려고 했던 고객님들은 당신을 적당한 값에 사주시겠지요. 하지만 당신을 통째로 파는 건 조금 아까운 일입니다. 조금 더 영리한 방법으로는 당신을 분해해 각각의 조각 상품으로서 당신을 팔아넘기는 것도 있습니다. 운이 좋다면 다시 재조립될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당신 스스로 예술기증품이 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런 방법도 장기적인 수익성을 보장하는 길입니다. 보통 유한회사는 이렇게 일을 합니다. 통상적으로는요."

니나는 떨고 있었다. 유한회사는 니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니나와 그들을 위한 최적의 방법을 고안하고 있었다. 니나는 이제 통속의 포도알이 되어 짓밟히고 으깨져서 짜일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통상적인 때가 아니죠. 지금은 전시 중이니까요."

기적이 일어났다.

"저의 상관들은 당신에게 조금 관용을 베풀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신은 저급 상품으로서 그냥 뭉개질 수도 있지만 우리 유한회사에 고용되어 상급 인적자산으로서 적절한 혜택을 보장받으며 당신에게 과분할 정도의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니나는 남자의 말을 거의 이해할 수 없었다. 속은 울렁거렸고 머리가 진동하는 듯한 불쾌한 느낌이 이어지면서 시야가 흔들렸다.

니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남자는 질문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했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전시 중이라고요. 모두가 폭주하고 있고 수면 속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또한 상등품 자원을 확보하려는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실력 있는 인적 자산은 점점 더 찾기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관용이란 모두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바람직한 기회입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다시 묻겠습니다. 함께 하시겠습니까?"

달리 선택지가 있었겠는가? 아니었다. 이 공간의 모든 것이 니나를 짓눌렀다. 이 모든 게 다 니나의 선택을 강요하기 위해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다. 니나 또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내릴 답 또한 알고 있었다. 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만족하는 것 같았다.

"축하드립니다. 니나 이바노브나 민디흐씨. 당신은 오늘부로 유한회사 마셜, 카터 그리고 다크에 상급 인적자산으로 정식으로 등록되었습니다. 당신과 관련된 특수한 상황에 따라 당신이 맺게될 계약의 세부 사항은 우리 유한회사 측에서 결정할 것입니다. 질문 있으신가요?"

니나는 떨고 있었다. 분명 그녀가 묻고 싶은 이 질문은 이 방안의 설계된 모든 것에 위반하는 것일 것이다. 입을 여는 것조차도 공포스러웠다. 그러나 그녀는 물어봐야만 했다.

"다.. 다른 사람들은..?"

남자는 말 없이 상체를 조금 굽혀서 니나를 조금 더 똑바로 바라보았다. 남자의 얼굴에 음영이 짙어 니나는 여전히 남자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흥정을 시도하려 하지 마십시오. 니나 이바노브나씨. 우리가 당신의 목숨을 구원했다는 것 이상의 호의를 바라지 마시라는 겁니다."

남자는 굽히었던 상체를 다시 피더니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 지금은 당신이 목숨을 건졌다는 것에 기뻐하시는 게 좋겠지요. 시장하시죠? 건너편 방에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듣기로는 주방장이 샤토 디켐과 오소보코를 준비했다는군요. 이제 가실까요?"

남자는 의자에서 일어나 왼손을 문쪽으로 폈다. 그러나 니나는 머뭇거렸다. 그러자 남자는 이해한다는 듯이 다시 몸을 숙여 오른손을 니나에게 내밀었다.

니나는 고개를 조금 들어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니나는 알아보았다.

남자는 줄곧 똑같은 얼굴로 똑같이 미소 짓고 있었다.

니나의 이름을 불렀을 때도, 니나의 불쌍하고 어리석은 인생을 풀어나갈 때도, 니나에게 비참한 죽음과 비참한 삶의 선택지를 알려줄 때도, 니나에게 그녀를 살려주었던 호의의 대가를 알려줄 때도, 그리고 지금.

남자는 미소 짓고 있었다.

정말 최악의 역겨운 미소였다.

오로지 자신이 구석에 몰린 한 마리 불쌍한 먹잇감을 바라보고 있는 완벽한 포식자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자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였다.

정말 최악의 완벽한 미소였다.

그리고 니나는 남자가 내민 손을 잡았다.


"전 행운아였어요."

니나는 이제 디저트를 서빙하고 있는 웨이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행운아였어요. 모두가 인적 자산을 원하는 때에, 그리고 아직 인격 개조술 따위의 기술이 못 미더웠던 때에 제 발로 잡혀버린 거였죠. 아무튼 전 유한회사의 상급 인적자산이 되었어요. 제가 압살시켜 버리려고 했던 도련님들에게는 다른 사람이 배달되고 친구들은.. 사라져버리고 나서요. 그렇게 전 지금까지, 그러니까 15년 동안 이곳에서 일해왔어요."

게오르기는 입을 열었다.

"그러면 자네는…"

니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이제 전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요? 전 저에게 너무 과분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리고 모두 제 잘못으로 떠나보냈고요. 전.. 제가 어디로든 갈 자격이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자네가 가장 원하는 것이 뭔가? 가장 그리운 이들은? 아까 내가 말한 고향은 바로 그런 것들이라네 니나. 자네가 15년 동안 그것들을 잃고 살아야 했다면 이젠-"

니나는 게오르기의 말을 잘랐다.

"아뇨,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전 제 잘못으로 유랑극단 분들과 친구들을 떠나버렸어요. 그래놓고는 살기 위해서 이곳에서 15년 동안 일하면서 사람도 죽였어요. 다른 사람이 죽느니 못한 처지에 전락하는 걸 도왔어요. 제가 살려고요. 전 제가 돌아갈 자격이 있는지, 아니 돌아가고 싶은건지 조차 모르겠어요.."

니나는 고개를 숙였다. 게오르기는 뭐라 말을 잇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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