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III
평가: +13+x

니나는 테아트랄나야 광장을 걸어갔다. 날씨는 적당히 밝고 푸른 하늘에 구름들이 화풍마냥 전시되어 있었다. 광장에는 정장을 입은 남녀노소가 제각기 중요한 사정을 담은 서류가방을 들고는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또 그녀의 눈앞에는 약속시간을 놓쳐 낭패를 본 장교 한 명이 볼쇼이 극장으로 허겁지겁 들어가고 있었고 그녀의 뒤편에는 스베르들롭스크에서 온 여학생들 무리가 있었다. 광장 오른편에는 그 이름에 걸맞지 않은 형형색색의 붉은 광장이 있었지만 그녀는 오른쪽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왼편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 방향의 끝을 생각했었을 때 그녀의 행동은 다분히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곧이어 그녀는 트베르스카야 거리에 접어들었다.

트베르스카야 거리의 전경이 니나의 눈앞에 들어왔다. 거리의 부속물 하나하나가 움직이듯 거리의 모든 사람이 바삐 움직이며 거리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 데에 충실히 협조해주고 있었다. 니나 또한 트베르스카야의 물결에 합류했지만 거리의 분위기에 협조하지는 않았다. 니나는 트베르스카야를 뚫고 나아갔다.

그러다가 니나는 거리의 이단아가 되았다. 어느 한가지 사실이 그녀를 신경 쓰이게 하였다. 사실 그게 별것은 아니었다. 그냥 호주머니 속의 작은 물건일 뿐이었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자신이 향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하늘로 들었다가 길바닥을 보고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거리의 모든 이들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멈춰있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이것이 니나는 그날 처음으로 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니나는 호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 들어 잠시동안 바라보았다. 정말 오래되었고 사실상 니나의 인생을 함께했다고도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레닌그라드에서 폭격이 떨어지고 어머니의 불타버린 시신조차 찾지 못했었던 그곳에서 기적적으로 찾아낼 수 있었던 사진이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분이 함께 찍었던 사진이었는데 비록 반쯤 타버려 아버지의 친구분만이 사진에 온전하게 남아있었지만 니나는 그것을 버리지 않고 간직했다. 왠지 버려서는 안될 거 같은 느낌이 들면서 니나는 그 사진을 4년 동안 레닌그라드에서 간직했었다.

니나가 어제밤에 게오르기 표도르비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것은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심정이 나아질 것 같아서였다. 전략적 사고의 실패였다. 그녀는 전혀 나아지지 못했다. 기억은 범람하였고 니나는 더이상 외면하는 게 의미가 있긴 한가 의문이 들었다.


"축하합니다. 니나 이바노브나 민디흐씨."

남자는 니나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니나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니나의 메마른 반응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당신은 우리 유한회사 마셜, 카터 그리고 다크와 맺은 계약사항을 15년 동안 충실히 수행해주었고 유한회사 인적자산 관리행정부는 당신이 15년 동안 수행한 계약사항에 이상이 없다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에 따라 오늘부로 당신과 우리 회사 간의 계약이 만료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남자는 한결같았다.

15년 전에 그녀를 바라볼 때도. 15년 동안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상부에서 하달되는 명령을 읖을때도. 15년이 지난 지금.

유한회사의 노화 억제 시술 덕에 니나도 남자처럼 외모가 그리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남자는 정말로 한결같았다.

언제나 남자의 시선은 고정되어 있었다.

그 시선은 한결같이 니나를 물어뜯듯 니나에게 매달려 있었다.

언제나 남자는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상대를 그 어느 때나 찢어발길 준비가 되어있는 웃음이었다.

니나는 욕지기를 느꼈고 자리를 벗어났다.


니나는 거리를 걸어갔다. 거리의 수많은 인파는 거리 위의 모든 것을 짓밟고 청소부들이 그 남은 찌꺼기들을 남김없이 쓸어가지만 니나는 그 거리 위의 추억만큼은 남아있음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마도 그 추억이 그 거리 위에 남아있는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끈적한 물질이 달라붙어서 일 것이다. 그 물질은 죄책감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니나는 그 거리 위에서 처음으로 친구들을 만났을때를 회상했다. 노래를 그리고 그림을 부르는 괴짜 친구들과 그녀는 아주 쉽게 친해졌었다. 아마도 방어기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도망쳤었고 의지하고 함께할 사람들이 필요했었다. 한마디로, 그녀는 위안거리가 필요했었다.

마지막 날 니나는 친구들에게 과민반응을 보였고 충동적으로 행동했었다. 말로는 그저 너희를 위한 일이라고 했지만 결국은 그녀 자신을 위한 방법이었고 이 방법이야 말로 유일하게 실효성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했지만 실효성 따위는 고려하지도 않았었다.

결국 그 결과는 어디로 간 걸까? 니나는 거리를 바라보았다. 한때의 추억과 행복이 있었던 거리에는 죄책감 말고는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니나는 마을을 걸어갔다. 물론 지금은 돌무더기와 잿더미 밖에는 남아있는 게 없었다. 마을은 내전으로 박살나버렸고 니나의 재건시도가 확인사살을 해버렸다.

그날 니나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었으나 수습하기에는 이미 늦었었다. 많은 극단원이 피해를 입었고 회복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채 그들은 군인들에게 쫓겨났다.

모두가 괜찮다고 했고 니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모순적으로 가족의 죽음을 돌리면서 미워했던 그들에게 괜찮다는 위안의 말을 듣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고 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녀 자신의 무력함이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니나는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수를 택해버렸다.

니나는 돌무더기들을 지나가며 그날의 흔적들을 속속히 알아볼 수 있었다. 아직도 희미하게 진동하는 현실성 찌꺼기들과 몇몇 풀밭의 빈자리까지. 모든 것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서 니나를 괴롭게 하였으나 니나는 자리를 떠나지는 않았다. 그냥 한 손에 사진을 쥐고는 마을을 바라보았다.


니나는 도시들과 마을과 거리들을 걸어갔다. 그녀는 그녀와 극단이 함께 나아갔었던 곳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딱히 목적도 의미도 없는 방랑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그녀는 그 모든 곳을 찾아다녔다. 그때보다 더 나아진 곳도 있었고 달라지지 않은 곳도 많았다. 더 나빠진 곳도 물론 있었다. 니나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아주 적게나마 있었고 환대를 받거나 과거의 무례를 다시 받기도 했었다.

그리 즐거운 여행은 아니었다. 좋은 기억을 되살리려고 하거나 과거를 추억하려는 여행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니나는 확인하고 싶었었다. 정확히 뭘 확인하려는 지는 니나도 몰랐다. 그냥 과거의 유랑을 알고 싶어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영 만족스러운 여행은 아니었고 우울과 죄책감의 연속이었다. 니나는 그냥 주저앉고 싶었지만 아직 때는 아니었다. 끝은 그곳에서 내야 하니까. 손에 들고 있는 반쯤 타버리고 변색된 사진 속의 미하일 일리치 예이세노프를 바라보면서 니나는 생각했다.


니나는 이야기가 처음 시작했던 곳을 걸어갔다. 이야기가 시작한 이래 가장 어렵게 돌아온 이곳에서 니나는 그냥 주위를 둘러보았다. 또 막상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했다가 다시 돌아오니 뭘 해야 할지가 아주 명확해졌었다. 니나는 머뭇거림 없이 그곳을 향해 나아갔다.

공습이 떨어지고 여동생 소피야의 울음소리가 불길 속에서도 잔혹하게 들려오는 와중에 니나는 어머니를 찾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돌아오는것은 살이 타는 냄새뿐이었고 니나는 어머니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내 누군가가 니나와 소피야를 낚아채듯 불타 무너지는 벽돌 더미들에게서 구해내었다. 하루쯤 뒤에 니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나치의 폭격기는 훌륭하게 집을 박살을 내놓았었다.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있었고 주변에는 불타버린 사람들만이 남아있었다. 니나는 어머니의 잔해가 이곳에 남아있지 않기만을 바랬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던 중 그녀는 흩날리는 불똥 사이에서 검은 조각 같은 것을 발견했다. 흑백사진이었고 니나는 이것이 아버지와 친구분이 찍었던 사진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비록 사진의 왼편은 불타버려 아버지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냥 사진을 간직했다.

니나는 길가를 계속해서 걷던 중 한 기억나는 장소를 발견했다. 아주 조그만 건물 틈이었다. 어린아이가 아니라면 들어가지도 못할 좁은 틈이었다. 여기서 소피야가 굶어 죽었다.

니나와 소피야 둘다 한 친절한 군인 덕에 불길 사이에서 목숨을 건졌지만 소피야는 사지가 멀쩡하게 나오지는 못했었다. 소피야는 왼쪽 다리와 팔이 불에 그슬렸고 낮에는 배고파하며 움직이지도 못하고 밤에는 고통스러워 하면서 울었다. 둘은 집도 잃고 보호자도 잃은 상태였다. 도시는 포위되었고 배급은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음식을 구하기가 점차 힘들어졌다. 니나는 소피야를 위해서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었다. 그러나 8살짜리 여자아이가 반쯤 타버린 5살짜리 여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었다. 소피야는 어머니 마리나가 죽은 지 나흘도 안 되어서 어머니를 따라갔다. 니나가 소피야를 위해서 배급을 받으려고 전전긍긍하던 사이였다. 니나는 곁에 있어주는 것조차 못 해주었고 남아있는 건 빵 부스러기와 그것조차 삼키지 못하는 차가운 시체만이 남아있었다.

그후 니나는 그냥 살아남았다. 그녀가 어떻게 살아남은 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니나는 4년 동안 그곳에서 버텨내었다. 누군가가 그때의 그녀를 본다면 계속해서 한 사진을 들여다보는 니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니나는 배급을 받거나 공습 등이 오지 읺는 한 대부분의 시간을 사진을 들여다보는 데에 썼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니나는 도시에 남아있었다. 달리 갈 곳도 없었기에 니나는 성 안셀름 고아원에서 2년 동안 지냈다. 그곳에서도 니나는 사진을 계속해서 들여다보았다.

니나는 고아원을 바라보았다. 차갑고 좁은 그 고아원은 그때의 위상을 아직도 유지한 채 더러운 분위기를 발하였다.

전쟁 후의 삶도 그리 나을 바는 없었다. 굶주림은 계속되었고 빛의 도시라는 위상 아래 잿빛만이 널려있었다. 그리고 그날 그가 돌아왔다.

니나는 거리에 가만히 서서 그날을 기억했다.

당연하게도 니나는 그의 이름은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4년 동안 그 반쯤 타버린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그의 얼굴을 속속히 알고있었다. 작은 키에 살짝 기울어진 자세로 서서는 사진을 보면서 어색한 웃음을 짓는 그 밋밋한 얼굴을 니나는 기억했다. 그리고 니나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를 바라보았던 것을 회상했다.

그날 니나는 고아원 입구의 계단에 가만히 앉아 사람들이 길가에 지나다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껍게 외투를 싸맨 채 고개를 숙이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나 손이나 발이 떨어져 나간 몇몇 사람들까지. 니나가 늘 보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다가 니나는 어떤 남자에게 시선이 끌렸다. 길 건너편의 그 남자는 마흔이 조금 안 돼 보였는데 이 도시의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랐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고개를 숙여 칙칙한 땅바닥만을 보는 대신 고개를 들어 주위를 계속 돌아보며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특이한 점이 있었다. 아이들을 보면 그는 웃으면서 간식거리를 나눠주었고 손가락을 마치 연주하는 것처럼 자세를 취하면서 진짜로 악기 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마술을 부리면서 그는 아이들을 웃게 만들어주었고 그도 웃음을 지었다. 그가 길 건너편으로 고개를 돌려 니나와 눈을 마주치기 전까지는 그랬다.

니나는 길 건너편에서 웃음이라곤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표정으로 그가 다가왔던 것을 기억했다.

그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니나에게 다가왔다. 니나는 그런 그를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니나는 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길 건너편의 니나에게 천천히 다가왔고 니나의 앞에서 몸을 굽혀 서로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조용히 흐르고 마침내 그는 입을 열었다.

"혹시..네 이름이 니나 이바노브나니?"

니나는 심장이 북을 치는 것을 느꼈다. 가슴 속의 그녀를 짓누르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니나는 대답했다.

"네."

남자는 순간적으로 휘청이는 거 같았다. 그러나 그는 몸을 다잡고 니나에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반가워. 내 이름은 미하일 일리치 예이세노프라고 한단다. 난 네 아버지의 오랜 친구였단다."

니나는 계단에서 일어나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몸을 조금 일으켰다.

"알고 있어요. 여기에.."

니나는 말을 잇지 못했고 미하일 또한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조금 진부한 행동과 조금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다. 그는 니나를 안고는 눈물을 흘렸다.

"정말 미안하단다. 단 한 순간도 너희 가족들을 잊은 적이 없었단다. 이렇게 늦게와서 정말 미안해…"

니나는 말이 없었다. 대신 미하일을 안음으로써 그와 함께했다.

그리고 지금.

니나는 건너편의 고아원을 바라보았다. 그날은 기적의 날이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적어도 고아원의 문이 열리고 한 노인이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오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노인은 계단에 내려오는 것이 힘에 부치는지 계단의 중간쯤 되어서 계단에 걸터앉아서 숨을 골랐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숨을 내쉬면서 주위를 바라보다가 건너편의 니나와 눈을 마주쳤다.

니나는 심장이 북을 치는 것을 느꼈다. 31년 전의 그날과 같이 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니나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노인은 니나를 보면서 웃기 시작했다. 31년 전과 같았다. 한쪽 편에서 다른 편까지. 길을 건너는 순간은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그리고 노인과 니나는 눈을 마주했다. 마침내 니나는 입을 열었다.

"미..하일 아저씨?"

노인은 화답했다.

"오랜만이구나. 니나."

니나의 속에서 치밀어 오르던 것이 마침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눈물이었다.

"어떻게 여길…"

미하일은 웃으며 말했다.

"떡갈나무는 자신을 찾는 이에게 나타나는 법이니까. 네가 우리가 다녔던 곳을 계속해서 찾아다녔는데 우리가 어떻게 널 몰랐겠니? 돌아온 걸 환영한단다."

니나는 고개를 숙였다.

"전..미하일 아저씨. 전.."

미하일은 몸을 일으키고는 31년 전의 행동을 반복했다.

"괜찮단다. 니나. 괜찮아. 말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니나는 흐느꼈다. 미하일과 그녀의 과오와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흘리는 참회의 눈물이자 감사의 뜻이었다.


이렇게 됐었다면 어땠을까? 니나는 눈앞의 묘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미하일 일리치 예이세노프의 묘비였다. 결국 그녀는 참회도 사과도 하지 못했다. 기적은 다시 반복되지 못했다. 미하일 아저씨는 니나가 유한회사의 노예가 된 지 3년이 되던 해에 성홍열로 죽었다. 그날 니나의 실수로 입은 부상 때문은 아니었지만 그게 니나를 위로하지는 못했다. 니나는 결국 그 누구에게도 용서와 화해를 받지 못했다. 니나는 그저 고개 숙여 눈앞의 묘비를 바라보며 추모했다.


니나는 조그마한 벽돌 담벽락에 주저앉아있었다. 구름 사이로 태양 빛이 흘러나오며 니나가 앉아있는 풀밭을 싱그럽게 빛나게 해주었다. 꽤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니나는 그냥 고개를 숙인 채 등 뒤의 회색빛의 담벼락처럼 조용히 있었다. 잠시 뒤 니나는 고개를 들었다. 표정은 밝지는 못했다. 그녀에게 이 묘비를 안내해준 다른 극단원들은 니나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한 극단원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니나는 멍하게 대답했다. 모르겠네요.

극단원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다시 저희와 함께 가시는 건 어떨까요?

니나는 대답했다. 전 이기적이에요.

극단원이 물었다. 네?

니나는 다시 대답했다. 결국 제가 당신들의 흔적을 찾아다니면서 여행을 한 이유는 당신들에게 용서받기 위함이었어요. 그냥 제 마음의 짐을 지우려고요. 그뿐이에요. 전 유랑극단과는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예술가는 더더욱 아니고요.

극단원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니나는 물었다. 네?

극단원이 대답했다. 당신이 용서받기 위함이었든 뭐였든 우린 당신이 과거의 장소들을 다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도왔다는 것을 알아요. 당신이 용서받기전에 당신의 친우들과 미하일 그분이 돌아가신 일은 정말 안타깝지만 그분들이 살아계셨다면 장담하건대 니나 당신을 용서해줬을 거에요.

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극단원은 말을 계속해나갔다. 당신은 이기적이지 않아요. 진정으로 이기적이었으면 당신은 그냥 도망쳤겠죠. 이렇게 과거의 흔적을 따라 여기에 오는 것이 아니라요. 당신은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굳이 고행을 한 것은 우리에게 돌아오고 싶어서였잖아요. 우린 당신을 버린 적이 없어요. 자책하지 마세요. 니나 당신은 용서받을 자격이 있어요.

니나는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의 미하일 아저씨는 여전히 어색하게 서서 카메라를 응시했다. 니나는 조용히 아저씨에게 답을 구했다. 아저씨는 레닌그라드에서 그랬듯이 말이 없었다. 하지만 아저씨의 얼굴은 달랐다.

레닌그라드에서 폭격이 떨어질 때도. 1947년에도. 니나가 14살이었을 때도. 니나와 미하일이 고아원 계단에서 서로를 바라보았을 때도. 그리고 지금. 참 변함없이 어색하게 니나를 바라보며 웃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니나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제가… 자격이 있을까요?"

극단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자격이 왜 필요한가요? 사람이 사람을 돕는 일인걸요. 언제나 환영이에요."

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주위의 한낮의 떡갈나무 극단원들과 함께했다.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