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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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격리절차를 보면 여기서는 비전송음을 차단하는 무선 통신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지랄한다.”

나는 예비 신입이 보고서를 읊으며 건네는 마스크를 온실구석으로 힘껏 던진 후 귀에 통화용 무선 이어폰을 끼우고 말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 오듯이 흐르는 온실에서 제대로 일을 하려면 기계장치가 붙어있는, 헬멧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법한 무거운 마스크 따위는 없는 편이 낫다. 나는 특수 작물 농장(Special Crop Plantation) 소속의 4.5등급 인원으로, 엄밀히 따지면 경비원도 연구원도 아니라서, 저 규칙은 우리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나는 농부다. 재단소속 농부라니 좀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나의 일이 자랑스럽다.

나는 잘 익은 토마토 하나를 따서 한 입 베어 물었다. 전 세계에서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소량 생산되기 때문에 작은 크기에도 개당 가격이 10$가 넘는 아주 귀한 품종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저 토마토’와 똑같은 맛이었다. 문득 예비 신입에게도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중에 공급되는 토마토는 수확한 후 일정기간 더 성숙시켜 출하하는 후숙과일이고, 당연히 다 익은 채 수확된 것보다 맛이 떨어진다. 틀림없이 도시출신인 예비 신입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맛이리라. 하지만 예비 신입은 기어코 마스크를 쓰고 들어와서는 완전히 익은 후에 따먹는 토마토의 맛을 느낄 행복을 누릴 드문 기회를, 모든 작업이 끝난 뒤로 미뤄야 했다. 하긴, 막 들어온 예비 신입이라 아직 애기들의 “취향”을 모를 테니, 혹여나 괜히 무의식중에 어설픈 농담을 했다가 뼈가 부러지는 것보다는 그런 사소한 행복을 잠시 뒤로 미루는 것이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대체 어떤 병신이 모종을 이따위로 심은 거야?”

예비 신입에게 줄 토마토를 고르던 중 열매가 맺히는 가지가 안쪽으로 들어간 녀석이 중간중간에 보였다. 토마토는 중심 줄기에서 한 마디에 한 개씩 줄기가 나며 그 방향은 서로 마주본다. 신기하게도 토마토는 홀수 번째 줄기에서만 열매가 맺히기 때문에, 특히 이 농장에서처럼 한 둔덕에 모종을 두 개씩 심을 때는 방향을 잘 맞춰 심어야 불필요한 노동을 줄일 수 있다.

“여기는 작년에 1등급 녀석 몇 명 데려다가 심은 곳이잖아요? 신경 쓰라고 이르셨다지만, 지들 멋대로 대충 심었을 게 뻔하죠. 제 후임도 틀림없이 그랬을걸요. 뭐 어쩌겠어요. 일손이 많이 부족했는데. 선배가 이해하세요.”

아직 이 기지에 근무 중인 녀석이 있다면, 수확 철이 지나기 전에 꼭 한번 데려와서 일을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농장은 온갖 위험한 SCP를 다루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상당히 악명 높은 곳이었고,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이곳에 일손을 보탠 경험이 있는 인원 중 다시 농장을 찾은 것은 내 뒤를 따라다니는 예비 신입뿐이었다. 게다가 이 녀석은 3등급 연구원씩이나 되는 주제에 스스로 농장에서 근무하겠다고 지원하기까지 했으니 이 얼마나 어여쁜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장 재미있는 마지막 시험을 그냥 건너뛸 수는 없다.

“어이, 예비 신입. 포도가 자기소개하면 뭐게?”

“네? 자…잠깐만요, 농담 하나 하시게요? 격리절차에서는 분명…”

“포도당! 재밌지?”

방금 막 해치워버린 토마토의 꼭지를 어딘가에 대충 던진 후 잘 익은 토마토를 하나 더 골라 따며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턱이 깨지기에 딱 좋은 썰렁한 농담이었다. 거의 동시에 토마토가 흔들리고 나뭇잎과 줄기가 파르르 떨리는 소리가 온실을 뒤덮자 예비 신입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나는 방금 딴 토마토가 다가오지 못하도록 힘겹게 밀어내는 시늉을 하다가 예비 신입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였다.

“짜식, 쫄기는. 좋아, 마지막 시험이다. 오늘 견학이 끝날 때까지 네 턱이 깨지지 않을 농담을 하나 준비해봐. 힌트는 내가 했던 농담.”

굳어있던 예비 신입의 표정은 더욱 심하게 굳어졌다.

“아니, 선배. 농부가 되는…”

“농부가 되는 거랑 농담 잘하는 게 무슨 상관이냐고? 잘 생각해봐. 그걸 알고 그동안 배운 걸 잘 생각해서 괜찮은 농담을 고르면, 방금 내가 던진 농담보다 더 재미없고 썰렁해도 애기들이 네 뼈를 부러뜨릴 일은 없을 거야.”

예비 신입의 표정을 보니 ‘애기’라는 호칭이 상당히 어이없던 모양이다. 일부러 힘줘서 말했는데, 똑똑한 녀석인데다가 처음 면담 때 나에게 죽도록 까인 기억도 있고 하니, 곧 뭐든 하나쯤은 알아챌 것이다. 나는 방금 딴 토마토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이번에는 최근 해명되어 학계에 공개된 옛 SCP 기술을 적용하여 이탈리아에서 개발 중인 포엘노마 품종과 같은 맛이었다. 이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토마토였다. 처음에는 먹을 때마다 달라지는 맛에 농부들은 당황했지만, 이내 SCP-504는 먹는 이의 취향과 먹을 때의 기분에 따라 가장 잘 맞는 토마토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토마토임이 분명해졌다. 무리하게 어떤 변칙적인 생물의 유전자를 삽입했다가 우연히 이런 긴장감 넘치는 특성도 가지게 됐을 것이라는 사소한 증거 몇 가지도 이미 재단의 농부들 사이에서 계속 포착되고 있었지만, 우리는 이 정보를 상부에 보고하려들지 않았다. 유전자를 기증한 생물은 이미 재단에서 오래전에 확보한 SCP인데다가 이 유전자는 이미 재단에서 확인한 것이니, 그 생물이 풀려나서 보고서를 [데이터 말소]와 █로 가득 채울 짓을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닌 재단의 탓이고, 우리는 우리만의 정보를 보고하지 않는다고 해서 딱히 위험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 애기들을 가꾸는 농부, 아니 ‘어버이’이자 ‘배우자’로서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이런 “직감”에서 오는 나태함에 더하여 올 때마다 잘난척하는 ‘연구원’들을 향한 장난스러운 복수심 비슷한 감정이 상당히 크게 반영되었으리라.

“선배.”

아직 견학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토마토를 반 정도 먹을 때쯤 신입이 나를 부르며 마스크를 벗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굳어있던 신입의 얼굴에는 어느새 웃음기가 가득했다. 적어도 두세 시간은 고민할 줄 알았는데, 벌써 눈치 챘나보다.

그래도 제발 공대개그만은 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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